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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1. SAT

I AM NOT MYSTERIOUS

서예지의 응시

한껏 비밀스러워 보이는 서예지는 누구보다 두 발을 단단히 땅 위에 딛고 서 있다

레이스가 트리밍된 캐미솔 톱은 Danielle Frankel by Net-A-Porter. 크림 컬러 와이드 팬츠는 Rabbitti.


“가만히 있어서 녹이 스는 건 싫어요. 저를 다 쓰고 싶어요.” 인터뷰에서 곧잘 하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건, 데뷔 이후 빼곡히 채워진 필모그래피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출연한 드라마 <화랑>의 숙명공주, 사이비 종교 집단에 감금된 <구해줘>의 소녀가 기억에서 완전히 걷히기도 전에 올해 서예지는 긴 머리를 선뜻 자르고 변호사 하재이가 되어 힘껏 달렸다. <무법변호사>까지 무사히 완주를 마친 사이, 주연을 맡은 두 편의 영화가 개봉했음은 물론이다. 깊은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다가도 활짝 반달 눈으로 웃는 서예지의 어떤 얼굴을 담을까 고민하다가, 우선 인사를 건넸다. 다시 활짝, 미소가 대답처럼 돌아왔다.



그런지 스타일의 니트 풀오버와 슬래시 디테일의 롱 드레스는 모두 Max Mara. 이어커프는 Brill Piece.


라벤더 컬러의 드레이핑 드레스는 Low Classic. 볼 모티프의 티파니 하드웨어 볼 후크 이어링은 Tiffany & Co. 심플한 골드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어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면서요. 여행 이야기를 가장 먼저 들을 수 있겠네요 드라마 촬영을 마치면 항상 여행을 가곤 해요. 이번에는 난생처음으로 스태프들과 푸껫을 다녀왔죠. 같이 고생했으니 쉬는 것도 같이 쉬자는 마음으로요. 3박 4일 동안 쌓인 스트레스와 고단함을 날려버렸어요.
개인적으로 떠난 여행과는 뭐가 다르던가요 원래 숙소 하나를 골라 그 안에서 책을 읽거나 가만히 시간을 보내곤 해요. 하지만 여러 명이 함께 다니다 보니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보게 되더라고요. 덕분에 거리 구경도 많이 했어요.

여행지에서 본 풍경이나 맛있는 음식 사진을 찍어 누군가에게 보내기도 하나요 여행 사진은 잘 찍지 않아요. 아름다운 장면은 눈으로 담고 싶거든요. 시간이 지나 사진으로 다시 확인하기보다 기억을 더듬어 회상하는 게 좋아요. 이번 여행에서 묵었던 리조트 아침 식사 시간에 새들이 빵 조각을 먹으러 테이블에 날아드는 풍경을 처음 봤는데 신기했어요.

<무법 변호사>에서는 씩씩하고 밝은 하재이를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데뷔 초 <감자별 2013QR3> 때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연기 변신을 하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에요. 지난 작품인 <구해줘>의 (임)상미도 재이처럼 당찬 면이 있지만, 드라마 내용상 어쩔 수 없이 침울하고 어두운 장면이 많았잖아요. 그런 어두움에서 좀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상미로부터 빠져나오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면서요. 하재이와는 좀 헤어진 것 같나요 자꾸 전에 없던 장난기가 발동하는 걸 보면 아직 못 벗어난 것 아닐까요(웃음). 아무래도 저는 캐릭터에 맞춰 사는 편인 듯해요. 곧 공포영화 <암전> 촬영을 시작하는데, 꽤 멋있는 역할이거든요. 아마 그때 저를 만나시면 또 다른 서예지일지도 몰라요.

개인적으로 <무법 변호사> 여성 캐릭터들이 좋았어요. 판사 차문숙 역할의 이혜영 씨뿐 아니라 남순자, 강연희 모녀(염혜란, 차정원), 무법 로펌의 금자(서예화) 등 중요한 장면에 여성끼리 잡히는 장면이 많았죠. 개성 있는 여성 출연자들과 일하는 건 어땠는지 복수라는 드라마의 구도상 저는 특히 이혜영 선배님과 잡히는 장면이 많았어요. 선배님의 굉장한 힘을 받아들이면서 저도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했던 것 같아요. 우아하고 강해 보이지만 실은 애교 많고 잘 챙겨주는 성격이세요. 즐거웠어요.

결말에서 하재이와 봉상필(이준기), 두 사람은 더 큰 악과 싸우기로 결심하고 서울로 와요. 만약 당신에게 권력이 주어진다면 어디에 쓰고 싶어요 제게 법적인 힘이 생긴다면 동물보호법과 관련해서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요. 유기견 제도와 식용법 등 법적인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많으니까요. 지난 생일에는 이용녀 선생님과 유기견 센터 봉사 활동을 다녀왔어요. 사료 기부도 하고요. 선생님은 유기견을 정말 마음으로 대하시는 분이더군요.

반려동물의 어떤 점이 위안이 되나요 위안을 받거나 마냥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부모님 댁에서 강아지들과 같이 살 때 저는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컸거든요. 제가 집에 늦게 들어가면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반겨주는 것도 미안하고, 나랑 같이 살아주는 것 자체가 고마우면서도 미안했어요. 그 미안함을 상쇄하기 위해 내가 책임지고,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나 봐요.



베이지 컬러의 니트 스웨터는 Max Mara.



허리가 잘록한 바 재킷과 안에 입은 점프 수트, 시스루 튤 스커트는 모두 Dior.


한동안 당신을 미스터리한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발랄한 인스타그램 계정과 <아는 형님> 출연 모습을 보고 그 생각은 덜어냈지만요. 에피소드 속에 등장했던 언니와의 관계는 여전히 ‘쿨’한가요 방송이 나가기 전에 언니한테 아무 설명 없이 ‘오늘 <아는 형님> 봐’ 하고 문자를 보냈어요. 형부와 방송을 본 언니한테 ‘죽고 싶니?’ ‘나는 인간관계가 없니?’라고 답이 왔더라고요(웃음). 아무래도 너무 솔직하게 말했나 봐요. 10월에는 첫 조카가 태어날 예정이기도 해요. 아직 실감은 안 나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하나 더 생겼군요. 스스로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심도 있나요 배우로 사는 생활이 마냥 기쁠 수는 없잖아요. 그 내용을 글로 엮고 싶어서 작가인 친구에게 조언을 많이 받고 있어요. 배우로서 제 경력이 절대적으로 길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제 이야기나 감정을 녹인 픽션 같은 형식이 어떨까 해요. 이제 곧 서른 살이 되는 심경도 담아서요.

예전에도 배우는 마냥 즐거워서도 안 되고, 실제로 그렇게 즐겁지도 않다고 했던 적 있죠. 어떤 면이 당신을 힘들게 하나요 대본을 받고 배역을 분석할 때죠. 심혈을 기울여 몰입해야 하기 때문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어요. 상대역과 함께 나오는 장면에서 제가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도 고민스럽고요. 촬영 중에도 그 캐릭터의 인생과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딱히 즐겁거나 행복하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그렇게 몰입한 결과에 만족하거나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연출자와 연기자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있는 것 같아요. 연기를 하고나서 딱 ‘합’이 잘 맞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거든요. 같이 호흡이 맞았다는 희열, 그리고 말없는 격려가 느껴질 때. 그때 기쁘죠.

화제를 모은 <구해줘> 속 ‘방언’ 영상도 그런 장면 중 하나였을까요 사이비 종교에 넘어간 척 빙의 연기를 하는 장면인데, 대본에 아무런 대사도 적혀 있지 않았어요. 리허설도 없이 촬영에 들어가는데 현장의 모두가 저를 믿고, 그저 조용히 지켜봐준 기억이 나요.

실제로 믿는 종교가 있나요 20대 초반에 주일학교 초등부 교사를 했어요. 종이접기, 성교육 자격증 등 다양한 자격증을 보유한 것으로 화제가 된 적 있는데, 사실 그때의 경험 덕분이에요. 원래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볼 때도 손으로는 뭘 쓰는 식이죠. 

3년간 스페인에서 유학생활을 했어요. 20대 초반을 다른 나라에서 보내는 건 특별한 경험인데, 지금 돌아봤을 때 그 시절이 당신에게 미친 영향이 있다면 왜 배우가 됐을까, 요즘 돌이켜보면 그때의 제가 떠올라요. 오직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캐리어 하나만 들고 낯선 나라로 향할 수 있었던 힘이 20대 초반의 당돌함과 포부에서 비롯했다면 지금은 배우로서의 책임감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종교적인 표현일 수 있지만 누군가의 계획 속에서 유학도 가고, 배우도 된 것처럼 느껴져요. 그 힘이 제게는 자연스럽기도 하고요. 저는 배우로서도 잘 흘러가고 싶어요. 그 나이, 그때의 제 얼굴에 맞는 역할을 차근차근 해내면서요.

때로 믿음은 확신을 주기도 해요. 재능이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나요 자신을 의심하는 편은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매우 확신에 차 있지도 않아요. 그런데 그 확신과 의심, 중간적 지점에서 내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렇게 하는 도전 자체에는 확신을 갖고 덤비죠. 그런데 또 무모한 도전은 싫어요. 절대 안 해요.

개인적으로 오늘 촬영에서 헤어스타일을 바꾸자고 빨리 판단을 내린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 결정이 옳다고 생각했고요.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게 익숙한지 원래 주변에 잘 휩쓸리지 않는 능동적인 성격이에요. 제가 판단을 내리는 게 필요할 때가 있다고 생각도 하고요. 배우는 보여주는 직업이고, 화면 속에 제 모습이 나오는 거잖아요. 당사자인 제 결정에 맞춰 사람들이 대안을 함께 고민하고 빨리 다른 답을 찾는 게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어쩜 그냥 성격이 급한 걸 수도 있지만요(웃음). 

서예지는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에 처하면 직접 구하기 위해 두 팔 걷고 나설 것 같아요 물론이죠. 제 힘이 닿는 데까지,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거예요.

CREDIT

에디터 이마루
사진 주용균
스타일리스트 주가은
헤어 전인혜
메이크업 우현증
디자인 황동미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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