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 > 스타 인터뷰

2018.06.05. TUE

THREE OF HEARTS

세 청춘

<변산>의 세 사람 김고은, 박정민, 이준익이 어깨를 맞대고 웃었다



베이지 오픈칼라 셔츠는 AMI, 브라운 슈즈는 Paraboot by Unipair.




박정민의 직진

첫 번째 단독 주연이다 크레딧 맨 앞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감개무량하다. 어떤 기분인가 주인공이다 보니 책임감도 크고, 해야 할 것도 많은데 말 그대로 몸이 안 따라줬다.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모든 회차에 등장하는 데다가 랩도 하고, 사투리도 배우고, 녹음 때문에 변산과 서울도 오가고…. 다들 술 마시며 이야기할 때 혼자 숙소에 틀어박혀 가사를 썼다. 그래서 고은이에게 고맙다. 나 대신 현장 분위기를 많이 이끌어줬거든. 고은이는 정말 이 영화를 많이 사랑하는 게 느껴진다. 어떨 때는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두 사람의 호흡을 궁금해 하는 사람도 많다. 아무래도 학교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고 원래 친했다. 고은이는 나보다 훨씬 어른이다. 상업영화 데뷔는 내가 빨랐지만(<파수꾼>), 고은이는 데뷔와 동시에 주목받는 생활을 해왔다. 그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요즘 든다. 모두 김고은을 아는 상태에서 연기하고, 평가받는 중에 지금 촬영하는 작품은 작품대로 또 제대로 해내야 하니 이게 보통 ‘멘탈’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 나는 <그것만이 내 세상> 개봉 때 거의 나가떨어질 뻔했다.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서로 오그라들겠지(웃음).
<변산>은 ‘빡센 청춘’을 위한 영화라더라. 주인공인 학수의 어떤 면에 공감이 갔나 오히려 촬영 중에는 청춘을 대변해 연기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고향에 돌아가게 됐고, 선미(김고은)를 포함한 주변인을 통해 과거를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맞닥뜨리는 학수를 보면서 청춘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흑역사’에 대한 생각은 들었다. 사실 이 영화가 박정민의 흑역사가 될까 봐 두렵기도 하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 <변산>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래퍼라는 설정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8마일>의 에미넴처럼 진짜 래퍼의 자전영화도 아니고, 배우가 래퍼를 연기하는 것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더라. 게다가 랩은 더빙할 수도 없고 100% 내 목소리로 해야 한다. 완전 정면 돌파다. 이 영화를 ‘흑역사’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정말 열심히 했다.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만들었으니까.
직접 랩을 쓰면서 가장 이입했던 가사가 있다면 가장 공들여 썼고 좋아하는 가사는 영화 클라이맥스 부분에 나온다. 학수의 내면이 랩 가사로 계속 표현되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아직 밝힐 수 없다.
<동주>에 이어 이준익 감독과 두 번째 촬영이다. 어땠나 감독님과 함께하는 현장은 항상 즐겁고 행복하다. <동주> 때와 다르다면 그건 내 역할 때문 아닐까? <동주>에서는 아무래도 송몽규보다 동주(강하늘)가 짊어질 게 많았으니까.
기본적으로 고민이 많은 편인가 자기학대 수준이다(웃음).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였는데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나도 나를 바꾸려 했을 거다. 그런데 조금씩 역할도 커지고, 성과가 보이니까 ‘이렇게라도 하니까 이 정도 됐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더라.
그래도 스스로 칭찬해 준다면 이런 거, 이렇게라도 하는 걸 칭찬해 주고 싶은 거다.
다른 사람들이 해준 말 중에 간직하고 싶은 말은 내 능력치를 칭찬하는 건 안 믿는 편이다. 결국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니까,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정민 씨가 촬영 끝나고 떠나는 거 보니 울컥하더라’ 같은 말은 그 사람이 자기감정으로 판단하는 것 아닌가. 그런 말은 기분이 좀 좋더라. 내가 괜찮았나 보네, 열심히 했나 보다 싶고.
앞으로 더 성공하면 지금의 자조적인 고민이나 스스로 표현한 ‘찌질이류 갑’ 같은 말이 어색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 사실 일상 자체는 지금도 변한 게 없다. 예전에는 아무도 나를 못 알아봤다면 지금은 하루에 한 명 알아봐주는 정도? 그런데 나를 자리 잡아가는 배우라고 보는 시선이 있다. 이준익 감독님 영화에 두 번이나 출연하는 것도 누군가에겐 굉장히 부러운 일일 수 있고. 그래서 요즘은 ‘아, 제 인생은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같은 말은 안 하려 한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물론 내가 생각하는 나는 여전히 ‘찌질’하지만.
30대 중반이 되면 사람들은 보통 좀 더 현실적인 것을 고민한다. 당신은 어디쯤에 있는 것 같나 아직은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스무 살 때와 생각하는 방식이나 태도도, 만나는 사람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바뀌긴 했겠지. 근육운동을 할 때 하루하루 몸이 바뀌는 건 모르다가 몇 달 전과 비교해서 달라진 걸 깨닫는 것처럼, 그렇게는 변했을 거다.
스무 살의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 딱 하나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는 것. 어릴 때는 ‘내가 뭘 해야 하는가’ ‘마흔 살 때 나는 무슨 역할을 하고 있을까’ 같은 고민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고민의 크기가 좀 작아졌다. ‘내일 촬영인데 시나리오는 언제 보지?’ ‘다음 작품은 어떤 게 좋을까’ 같이 굉장히 현실적인 고민을 한다.
최근 여배우들이 영화계나 다양한 사회 문제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동료 배우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남자인 내가 체감하지 못하는 고충이 있을 거다. 어떤 분야에서나 문제점을 느낀 당사자들이 자기권리를 이야기하거나 목소리를 내는 건 당연히 응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8쇄를 찍은 에세이 <쓸 만한 인간>에 실린 자문자답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지금 당신이 가장 말하고 싶은 건 뭔가 최근에 깨달은 건데,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게 굉장히 행복한 일이라는 거다. 스스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는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있었다. 괜히 적대적이 되기도 하고, 예민하기도 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서로 주고받는 갖가지 이야기들, 그 이야기를 나누며 해소되는 것들의 재미를 왜 이제 알았을까 싶다. 그래서 요즘은 촬영장에 있는 게 즐겁다.



베이지 수트는 Nina Ricci.




씩씩한 김고은

<도깨비> 이후 꽤 오랜만인 것 같다 그런가(웃음). <도깨비>는 드라마였고, 촬영이 워낙 긴박하게 진행됐기에 체력적인 회복이 필요했다. 잘 쉬었다, 적당히 쉬었다 싶었을 때 마침 <변산>을 만났다.
<변산>은 다소 의외의 선택처럼 느껴진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좀 더 예산이 크거나, 비중이 높은 작품을 할 줄 알았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하지만 때가 맞는 작품이 있다. 역할이 욕심난다고 해서 내가 해낼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작품이라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내 감정과 생각들, 그 감정에 근접한 작품을 만나게 되면 반갑다. 아, 이준익 감독님의 현장이 궁금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배우를 행복하게 해주는 감독으로 워낙 소문이 자자해서.
촬영 분위기는 기대만큼 즐거웠나 기대 이상의 위로와 행복을 많이 받았다. 동네 주민처럼 산책하고, 맛있는 가게를 찾아다녔다. 선미 역할을 위해 8kg을 찌운 것도 즐거웠던 이유 중 하나다. 맛있는 간식이 오면 다들 나를 먹이느라 정신없었다. ‘살 빠지면 안 된다’는 말을 듣는 게 어찌나 행복하던지! 초반엔 처음 보는 살찐 내 모습이 너무 웃기기도 하고, 이대로 화면에 나가도 되나 위축도 됐는데 ‘연기가 아름답다’는 감독님의 말에 바로 극복했다. 물론 살을 다시 빼는 건 정말 힘들었다. 죽음의 두 달이었다(웃음).
감독과 많이 이야기를 나누며 작업하는 스타일이라고 들었다. 이번 작업은 어땠나 정민 선배가 중요한 장면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감독님을 내가 독차지하지 않으려 했다. 안 그래도 분주한 현장을 지체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다행히 감정적으로 이해가 안 가거나, 혼자 극복하기 힘든 부분이 적기도 했다.
현장에서의 행복 외에 또 어떤 걸 얻었나 좋아서 시작한 일도 계속하다 보면 정말 ‘일’이 돼버린다. 항상 경계해 온 태도였는데 언젠가부터 나도 일로서 받아들이는 게 많아지더라. 책임감을 갖고도 충분히 즐기며 일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좋은 에너지를 많이 얻었다. 이 기운을 다음 작품에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한예종 선배인 박정민과는 왠지 연기 이야기를 많이 했을 것 같다 전혀! 연기 이야기는 일부러 안 했다. 괜히 파트너라고 ‘이건 어때?’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라고 의견을 말하는 것조차 정민 선배가 묻기 전까지 기다렸다. <차이나타운> <협녀>에서 대부분의 회차에 출연했던 경험이 있기에 선배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부담과 스트레스,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 같은 것.
학수와 선미의 우정은 영화에서 가장 기대되는 부분 중 하나다. 실제로 ‘남사친’이 많은 편인가 가장 친한 친구들이 고등학교 친구들이다. 남녀공학이었기 때문에 남자 사람 친구도 물론 있지만 여자친구들이 더 스스럼없고, 아무래도 사이도 더 깊다. 남자친구들이 있을 때 나는 주로 고민을 들어주는 역할이다. 연애 상담도 해주고.
스물일곱. 완연한 청춘이다. 잘 즐기고 있나 나이에 맞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하고, 또 내게도 좋은 일 같다. 그런 면에서 딱 내 나이를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고민하는 지점은 다르지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여전히 많다. 대다수 사람들이 겪는 실질적인 고민에 귀 기울이려 한다.
많은 이가 당신을 알아보고 당신의 SNS나 행보에 반응한다. 익숙해졌나 배우가 관심을 받는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다만 아무것도 몰랐던 22세에 데뷔한 이후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 있었다. 지금도 ‘진짜 프로다운 건 뭘까’ 고민하며 나아가는 중이다. 내가 주목받는 자리라면 그 자리에서 책임지고 해내야 하는 것들이 분명 있겠지만, 그런 생각이 내 일상까지 침범하지는 않게 하려고 한다. 사실 모든 사람이 항상 나를 지켜보거나 주목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들 얼마나 바쁜데(웃음).
개인 SNS나 여러 인터뷰에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사랑은 당신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 나는 인생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빼면 남는 게 없는 것 같다. 사실 사랑이라는 단어가 하나밖에 없는 것도 아쉽다. 사랑의 대상과 감정은 너무나 다양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세한데, 그 많은 감정을 포함하는 단어는 하나뿐이니까…. 그러다 보니 ‘사랑’이라는 말을 자꾸 쓸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그 다양한 감정을 주변 사람에게 어떻게 표현하나 주변 관계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가족과 친구,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된 인연들…. 내가 그들을 계속 좋아할 수 있도록 내 옆에 있어주는 게 고맙다. 생일 같은 건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사람이 생각날 때면 바로 연락하고 표현하는 편이다. 대뜸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스스로 의리도 있고, 불의를 못 참는다고 했다. 20대 배우로서 살기 힘든 성격 아닌가 사회생활을 더 해봐야 한다(웃음). 불의를 참지 못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약자한테 함부로 대하는 건 잘 못 본다. 어떻게 보면 모난 태도일 수도 있지만 싫은 티가 어쩔 수 없이 나더라.
사람들은 여배우를 사랑하지만, 때로는 금세 미워할 준비도 된 것 같다. 인터뷰를 하거나 목소리를 내는 일이 두렵지는 않나 미움 많이 받았다(웃음). 그래서 인터뷰를 피했던 적도 있다. 여러 일을 겪고 나니 다른 배우분들이 왜 말하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하고 형식적인 답을 하는지 이해가 가기도 하더라. 그래도 말할 때는 진심을 다해 말하려 한다.
개인적으로 오래 탐구하거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있나 다들 치열하고, 바쁘고, 본질적인 것을 고민할 여유가 없다. 사치스러운 소리 같지만 일부러라도 나는 왜 사는가에 관한 질문을 자주 한다. 그냥 살아지니까 사는가,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건가 같은 질문들. 나름대로 내린 대답은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는 거다. 그래서 뭘 해야 내가 행복한지, 자꾸 생각한다.
그래서 김고은은 언제 행복한가 맛있는 것 먹을 때, 야식 먹을 때, 좋은 사람들과 술 마실 때다. 그래서 내가 맹렬히 다이어트했던 지난 두 달간 ‘왜 사는가’ ‘지금 나는 행복한가’ 이 생각을 그렇게 많이 했나 보다(웃음). 정말 행복하지 않더라.


이준익이 입은 오버사이즈 재킷은 Munn. 화이트 톱은 Uniqlo. 안경은 Bensimon. 김고은이 입은 인디 핑크 트렌치코트와 슬립 원피스는 Dries Van Noten. 박정민이 입은 차이나 칼라 셔츠는 Beyond Closet. 수트는 Kimseoryong.




예언자 이준익

지난해 여성 캐릭터가 실종한 한국영화계에서 <박열>은 소중한 영화였다. 국내에서 페미니즘 이슈가 본격화되기에 앞서 가네코 후미코란 인물을 그려낸 게 절묘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촉’이나 계산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존재가 대중매체, 특히 영화에서 소외됐던 거지. ‘미투’ 운동 이후로 여성의 사회적 존재 의식이 상당히 급진전할 것 같다. 좀 늦게 왔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크고 멀리 갈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과거로 돌아가진 않겠지.
또 한 번 역사 속 인물을 그리지 않을까 했는데, 현대물로 돌아왔다 <소원> <사도> <동주> <박열> 네 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극중의 아픔이나 역사적 비극에 정서적으로 갇혀 있던 것에 대한 반작용이랄까? 젊은이가 ‘빡세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 현실, 그 현재성을 스스로 극복해 내는 과정에서 나오는 에너지에 끌렸던 것 같다. 원래 시나리오에선 주인공이 단역배우였는데, 그걸 래퍼로 바꾸고 각색을 하면서 영화 속의 발산 에너지를 대리만족하고 싶었던 것 같다.
평소 힙합 음악에 관심 있었나 개인적으로 좋아한다거나 즐겨 듣는 건 아니지만 비와이나 도끼 정도는 안다. 내가 요즘의 젊은 친구만큼 랩 음악을 호흡하지는 못하지만, 젊었을 때 즐겼던 록과 연동해서 생각해 보면 그저 비트가 좀 다를 뿐, 자유와 저항에 대한 욕구를 표출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 않나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 오늘의 청춘에게 전하고 싶은 바가 있었을까 글쎄… 나는 청춘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영화를 찍은 것이 아니고, 심지어 청춘에게 어떤 이야기를 굳이 해야 할 필요도 못 느낀다. 그저 주인공이 청춘일 뿐이고, 성장보다 오히려 ‘성숙’의 지점을 알아가는 영화다.
요즘 청년 문제와 더불어 ‘부모 세대보다 못살고 힘들어지는 최초의 세대’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데 그것 역시 ‘청춘 애환론’의 프레임에 맞춰 자꾸 말을 만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부모 세대보다 못사는 청춘’이란 전제 자체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젊은 시절은 지금 청춘보다 더 못살았는걸. 굳이 청춘에 대한 암울한 프레임을 사회적 용어로 낭비하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청춘들이 역으로 현혹되는 부작용을 염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른들이 ‘꿈을 가져라’ ‘용기를 가져라’는 얘기도 불편하다. 청춘의 특권이란 게 원래 기성 세대의 주문에 반발하는 거거든. “꿈을 왜 꼭 가져야 돼?” 이렇게 말하는 게 청춘이다.
<변산>은 주인공 학수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고향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한 인간이 고향을 돌이켜봤을 때 느끼는 감정은 굉장히 복잡하다. 특히 그 안에는 외면하고 회피해 온 부끄러운 자기 자신이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 학수 역시 고향으로 ‘불림’을 당해 자기가 피해온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 과거와의 화해!
학수 역할에는 처음부터 박정민 배우를 고려했다고 <동주>에서 박정민이란 배우가 지닌 매력을 불과 10분의 1이나 봤을까. ‘이다음에 단독 주인공인 영화로 관객들이 보기 전에 내가 그 매력을 마음껏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시 작업해 보니 역시 매력 덩어리다. 대단한 미남이거나 아주 대중적인 스타는 아니지만, 온전하게 박정민이라는 한 인간, 존재 그 자체의 매력이 배우라는 속성에서 매 순간 불쑥불쑥 뿜어져 나온다. 그걸 카메라에 담고 모니터로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 자체가 특권이지.
도대체 어떤 매력이길래 현장에서 볼 때 박정민은 지성미와 야성미의 밸런스가 정말 잘 잡힌 배우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 감각이 너무나 매력 있다. 그런데 김고은도 그렇다. 둘이 정말 찰떡궁합이다.
김고은은 평소 눈여겨보던 배우였나 <도깨비>를 안 봐서 얼마나 떴는지 잘 몰랐다. 관계자들의 추천을 받았는데, 주연을 많이 했던 배우라 이 영화를 안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제의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줬는데, 덜컥 한다는 거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봤더니 박정민 때문이더라. 유유상종, 김고은도 박정민과 마찬가지로 인격의 균형미가 기가 막힌 친구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잘 어우러지는 거고.
<변산>이 <라디오 스타>와 비슷한 영화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많은데 영화를 열 편 넘게 찍다 보니 내 안에 내재된 요소들이 파편적으로 교집합이 돼서 나오지 않겠나. 의도했거나 닮은 신은 하나도 없지만,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변산>에서 <라디오 스타>의 향기가 날 순 있겠지.
<라디오 스타>는 이준익의 영화세계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어떤 작품으로 기억되는지 항상 그 자리에, 그 감정에 머물러 있는 영화다. 맨 마지막 장면, 우산을 씌워주며 안성기와 박중훈이 웃는 그 순간에 나도 항상 머물러 있고 싶다. 살다 보면 마주보기 불편한 사람이 생기기도 하는데, ‘불편함’이란 것은 주로 오해에서 나온 것이고, 그 오해는 언젠가 ‘이해’의 지점에서 풀릴 것이다. 그러므로 언젠가 다시 마음을 활짝 열고 서로를 맞이하길 바라며, 웃으면서 이 시간을 견뎌보자는 이야기였다. <변산>도 그런 영화다. 불편했던 관계를 피해 다니다가 어느 순간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그 불편함이란 것이 내 안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이 미안해지고 감정적으로 충만해진다. 그런 순간을 많이 마주할수록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너무 드라마틱해서 ‘영화 하는 사람들이 힘들겠다’는 말도 나온다. 최근 뉴스나 일상 속에서 가장 영화 같았던 순간을 꼽는다면 당연히 남북정상회담이다. 전작 <평양성>에 북한 핵 문제에 관한 은유를 담은 몇몇 장면이 있다. 영화보다 현실이 더 극적인 순간을 맞이할 때, 영화 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한 쾌감이 있다. ‘맞아, 우리가 상상하는, 꿈꾸는 모든 것은 다 현실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러니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이라고만 생각해선 안 된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보지 못한 ‘현실’일지도 모른다. 그 현실이 진짜 눈앞에 펼쳐졌을 때, 누군가는 당황하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아, 이제 드러났구나’라고 자연스럽게 맞이할 거다.



박정민이 입은 체크 수트는 Man on the Boon. 화이트 셔츠는 Lardini. 브라운 슈즈는 Trickers by Unipair. 김고은이 입은 화이트 도트 블라우스와 화이트 점프수트, 블랙 샤 스커트는 모두 Dior. 이준익이 입은 블랙 재킷과 베스트는 모두 Dolce & Gabbana. 와이드 데님 팬츠는 Indigo Children. 화이트 슈즈는 Vans. 시계는 IWC.

CREDIT

사진 KIM S. GON
에디터 김아름, 이마루
스타일리스트 박선용(MEN), 이윤미(WOMAN)
헤어 이일중(MEN), 에녹(WOMAN)
메이크업 서은영(MEN), 백진경(WOMAN)
세트스타일리스트 김송
어시스턴트 류가영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6월호
참고하세요!

저작권법에 의거, 엘르온라인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타 홈페이지와 타 블로그 및 게시판 등에 불법 게재시 불이익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