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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1. FRI

AIR OF MYSTERY

수수께끼의 남자

영화 <버닝> 속 스티븐 연, 그의 존재가 더 짙어졌다

네이비 니트 톱은 Valentino by Mue Man. 팬츠는 System Homme.



화이트 니트 톱은 Maison Margiela. 팬츠는 Paul Smith. 안경은 Oliver Peoples by Luxottica.



얼마 전 한국에 도착해 쉴 새 없이 영화 <버닝> 홍보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데 괜찮아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워킹 데드> 시리즈를 하면서 이 정도 스케줄에는 단련됐어요.

지금까지 이룬 것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아주 러키하죠. 저도 노력했지만 운이 없었다면 절대로 여기까지 오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번 작품도 그래요. 이창동 감독님과 같이 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래도 자신의 계획대로 이뤄진 게 하나쯤 있지 않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일부러 관리를 잘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었어요. 저를 알리게 된 <워킹 데드>도 그렇고, 주어지는 것에 한해 선택하고 움직였어요. 단, 자신감이랄까, 마음의 준비는 늘 돼 있었어요. 이창동 감독님이 저를 불러주셨을 땐 이렇게 생각했어요. ‘내게 뭐가 있으니까 같이 일하자고 하셨겠지’ 하고요. 그래서 연기도 용기를 내 자유롭게 했어요.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요 <워킹 데드> 시즌3에 이런 장면이 있어요. 제가 연기한 글렌이 의자에 묶인 상태로 좀비와 싸워요. 대본에는 ‘글렌이 이긴다’고 적혀 있었는데 저는 막 소리 지르고 의자도 부수면서 엄청 에너지를 쏟았어요. 컷을 안 하더라고요. 그 장면 그대로 나갔죠. 그때 깨달았어요. 대본대로 따라가지 않아도 되고, 내가 연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걸. 그러면서 배우로서 다음 스텝으로 갈 수 있었죠. 요즘 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무슨 일이든 선택이 중요한 것 같아요.

카메라 밖에서도 뭔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많을 텐데 선택의 기준은 명확한가요 어릴 땐 어른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거기서 벗어나기도 힘들어요. 나중에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고, 무서운 것을 점점 알게 되면서 선택의 기준이 조금은 명확해져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결혼하고 아이가 생긴 뒤에 결정하는 게 더 쉬워졌어요. 우리 가족에게 도움이 되면 하고, 안 되면 안 해요. 그래서인지 마음이 편해요.



셔츠는 Reiss. 티셔츠는 Maison Margiela. 데님 팬츠는 Polo Ralph Lauren.



피케 셔츠는 Man on the Boon. 팬츠는 Fendi.



<버닝>은 어떤 부분에 끌려 출연을 결심했나요 처음에는 이창동 감독님 때문이었어요. 예전에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감독님과 작업해 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운명처럼 연락이 온 거죠. 그리고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내가 ‘벤’이라는 캐릭터를 가지고 어떻게 놀 수 있을지, 이 영화를 찍는 게 어떤 경험이 될지 곰곰이 생각했어요. 전에는 대본을 보면서 화면에 내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에 중점을 뒀어요. 이 장면을 동양인 배우가 연기하면 관객이 어떻게 볼까 하면서. 그런데 이번 작품은 마음이 그냥 따라갔어요. 

얼마 전 영화 제작보고회에서 벤은 미스터리한 인물이라 캐릭터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없다며 끝까지 말을 아꼈어요. 이렇게 만났으니 조금 더 얘기해 줄 수 없나요 음… 벤은 부자고 미스터리한 사람이에요. 미안해요. 계속 미스터리, 미스터리라고 해서. 영화를 보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이창동 감독은 “스티븐 연이 갖고 있는 밝고 신비한 매력이 벤과 묘하게 어울린다”고 했던데요 맞아요. 벤은 그런 면을 갖고 있기도 하고 어두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해요. 성향이 한쪽에 치우쳐 있지 않아요. 그래서 속을 더 알 수 없는 인물이죠.

촬영하면서 감독님과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눴나요 서로의 생각들과 철학을 나눴을 뿐 캐릭터에 대한 얘기는 별로 안 했어요. 처음에는 감독님도 정확히 벤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어요. 촬영 테이크를 여러 번 가져가면서 딱 벤이라고 여겨지는 장면들을 발견하곤 했어요

상투적인 연기를 싫어하는 이창동 감독은 배우가 인물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진짜 느끼는 것에 집중하도록 한 장면을 여러 번 찍는다면서요. 그런 과정에서 벤을 연기할 때 유독 기억에 남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벤은… 외롭다? 성격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 때문에 외로워요. 벤은 남과 다르게 세상을 봐요. 그래서 외로움을 느끼고 그 감정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하게 돼요.

함께 연기를 하기 전, 유아인이란 배우에게 어떤 인상을 갖고 있었나요 전부터 아인 씨 팬이었어요. 영화 <완득이>를 보고 진짜 연기를 잘하는구나 싶었어요. 한국에 아인 씨와 같은 배우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는 용감하게 자기 자리를 만들었어요. 그 점을 높게 평가해요.

<버닝>으로 데뷔하는 전종서에 대한 소개도 부탁할게요 연기도 잘하고 정말 멋져요. 종서 씨는 순수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진실된 연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고 2주 뒤 칸에서 첫 공개될 예정이에요. 어떤 질문을 많이 받을 것 같나요 벤과 글렌은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스티븐 연의 이런 모습은 본 적 없거나 전과 많이 다르다는 얘기를 듣지 않을까요?

스스로 생각했을 때 <워킹 데드> 시리즈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나요 저는 그런 것 같아요. 아직도 저를 글렌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 가지 이미지로 갇히는 걸 원치 않아요.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 않으려고 해요.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이어 2년 연속 칸영화제 레드 카펫에 서게 됐는데 무엇이 가장 기대되나요 정말 신기해요. 저한테 또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옥자>는 출연한 배우들이 워낙 많았어요. 그들을 따라다니느라 영화제 분위기를 크게 실감하지 못했죠. 이번에는 감독님, 유아인, 전종서 우리 네 명밖에 없어요. 그래서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영화에 대한 반응이 어떨지 궁금해요. 이런 한국영화는 본 적 없을걸요.

무슨 뜻인가요 <버닝>은 특정한 의미나 정답을 찾으려 하면 오히려 더 어려운 작품이에요. 벤도 비슷한 뉘앙스의 대사를 해요. 찾으려고 할수록 놓칠 수 있다고. 제일 중요한 건 느낌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영화가 남긴 느낌을 말 그대로 느꼈으면 좋겠어요.



셔츠는 Bottega Veneta.



듣고 보니 <버닝>은 그 자체로 미스터리한 영화네요 맞아요. 미스터리(웃음)!

평소 미스터리하다고 느끼거나,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나요 이창동 감독님. 해야 할 말은 정확하게 하시고, 그 외에는 별로 말씀이 없으세요.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미스터리한 면을 갖고 있다고 봐요. 그래야 사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스티븐 연에 대해 모르는 사실 중에서 한 가지만 알려줄 수 있나요 저는 매일 무서워요. 겁이 많다기보다 세상이 무섭다고 여겨요. 하지만 두렵기 때문에 욕심이 나고 도전할 용기가 생겨요. 불이 났을 때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말이죠.

심리학을 전공하고 뒤늦게 코미디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했다는 사실도 많은 사람이 모를 거예요. 세상에 코미디가 필요한 이유를 꼽는다면 대개 사람들은 솔직한 생각이나 몰랐던 진실을 듣는 걸 불편해해요. 하지만 웃음과 함께 진실을 말하면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스탠드업 코미디가 그래요. 진실을 표현하면서 사람들을 웃게 만들죠.

요즘 자신을 눈물 쏙 빠지도록 웃게 만드는 건 제 아들이죠. 15개월 됐는데 진짜 웃겨요.

훗날 아이에게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어떤 작품을 꺼내서 보여주고 싶나요 <옥자>도 재미있고 <버닝>도 중요한 작품인데, 하나를 고르는 것보다 다 보여주고 싶어요. 숨기고 싶은 건 없어요. 그보다 아들이 제 작품을 보고 싶어 해야겠죠(웃음).

아빠로서 아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가이드’로 전하고 싶은 말은 세상을 좁게 보지 말고, 사람을 좁게 보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우리는 개개인을 박스 안에 넣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다 하면서 구분하는 거죠. 그렇지 않고 타인을 100%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면 보다 재미있고 즐겁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저도 새로운 작업을 할 때 아이디어보다 사람에게 더 끌리는 편이에요. 세상을 넓게 보고, 용감하고,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들.

어떤 인터뷰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걸 봤는데, 잘 실천하고 있나요 전에는 말에서 목소리가 나오고 그게 힘이라고 여겼어요. 그랬는데 요새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자기가 가진 믿음대로 행동으로 옮겨야 목소리가 커질 수 있어요. 지금은 주어진 대로 연기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영화도, 쇼도 만들고 싶어요. 우리는 날마다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어요. 그러니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잘 선택해야 해요.

오늘도, 내일도 스티븐 연으로 사는 가장 큰 즐거움은 뭘까요 제 삶에 아내가 있다는 사실이죠. 우리 와이프는 마음이 깊은 사람이고 엄청 똑똑해요. 제가 좋은 선택을 하도록 늘 이끌어줘요.

그런 아내에게 자신은 어떤 남편인가요 많이 가르쳐야 하는 남편.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죠(웃음).

CREDIT

에디터 김영재
사진 박현구
디자인 황동미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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