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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4. SUN

BETTER TODAY

미완의 가능성

짐작보다 달변이고, 집작보다 깊고, 짐작보다 변화에 열려 있다. 시간이 고경표에게 가져다준 선물. 그래서 나날이 새로워질 남자

블랙 롱 코트는 Kimseoryong. 체크 팬츠는 Tonywack. 이너 웨어로 입은 티셔츠와 실버 네크리스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트랩 슈즈는 Bananafit.



재킷은 Kimseoryong. 스트라이프 셔츠는 Maison Mihara Yasuhiro by Boontheshop. 화이트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풀오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와이드 팬츠는 Indigo Children.



베이지 풀오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컬러 블록의 스트라이프 모헤어 니트는 Saint Laurent by Mue. 와이드 팬츠는 Tonywack.



드라마 <최강 배달꾼>을 끝내고 <크로스>로 빠르게 돌아왔네요. 중간에 여행을 다녀왔더군요 (박)보검이와 둘이 다녀왔어요. 나이아가라 폭포를 시작으로 토론토, 뉴욕 등을 갔죠. 제가 드라마 촬영 중이어서 모든 일정을 보검이가 혼자 짰어요. 너무 미안했죠. 일정 짜는 틈틈이 보검이가 “이건 어때요?”라고 물어보면서 “형 촬영하고 있는데 제가 방해하는 것 같아 미안해요”라더군요. 진짜 미안한 건 난데. 너무 착하고 예쁜 친구예요.

보검 씨와의 동반 여행은 팬들의 목격담과 사진으로 알려졌어요. 사적인 여행이 팬들에 의해 강제 생중계된 셈인데요 그 부분은 많이 부담스러웠어요.

일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많이 아쉽나요? 아니면 배우로서 이해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긍정적인 방향으로 스스로와 타협하는데, 그게 너무 어려워요. 스트레스이기도 하고 감사한 일이기도 하고. 배부른 소리일 수 있지만 나름 고민이기는 해요. 저는 배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겐 직업일 뿐이거든요. 그래서 남들처럼 일상적인 것들을 누리며 살고 싶은데, 이게 뭐랄까. 모순적인 고민이 돼버렸어요. 감내해야 할 일이죠.

해결할 수 없다고 결정을 내렸군요 네. 제가 이 일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래서 이 일에 대해 항상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생각이 원래 많은 편이기도 하고요.

카메라 각도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달라 보이는 얼굴이에요 체중에 따라 턱 선도 예민하게 변하죠. 크게 고민하지 않아요. 캐릭터를 위한 체중 감량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외모적인 만족을 위해 체중을 빼야 하는가에는 의문을 가지고 있어요. 그건 스스로에 대한 만족이 아니라 그런 걸 바라는 분들의 만족 같거든요.

두 가지 다 아닐까요? 그걸 바라는 사람의 만족도 있겠지만, 배우라면 자신이 조금 더 멋지고 잘생겨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잖아요 이상하게 그런 게 별로 없어요. 제가 잘생겼다는 생각을 전혀 안 해요.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그냥 현실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얼굴 중 하나였을 거예요. TV에 나오고 연예인으로 각인되다 보니 ‘어떤 환상’ 같은 게 자리 잡아서 제가 조금 멋있어 보이는 게 아닐까 싶어요.

자신에게 냉정한 건 주변 말에 휘둘리지 않기 위함인가요 늘 이유를 생각해요. 이 사람들이 나에게 왜 이런 행동,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이 사람은 왜 나를 좋아하지? 싫어한다면 그 이유는 뭘까. 무차별적인 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분명 어떤 이유에 의해 그런 선택을 했을 테니,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늘 이유를 생각해요.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됐어요.

안 물어볼 수 없네요. 과거 SNS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가 여러 논란에 휩싸인 경험의 여파도 있나요 있죠. 당시 저는 너무 못난 사람이었어요. 그 일을 겪으면서 많이 반성했어요. 무엇이든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됐고요.

그때의 나와 화해했다고 해야 할까요 그때의 저는 그저 안타까워요. 소신을 가지고 조금 더 진중한 단어로 이야기했다면 의견이 됐을 텐데,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못난 마음을 가지고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했기에 결국 맹목적인 비난이 돼버렸죠. 그게 부끄러워요.

과거를 반성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굉장히 진솔하네요 저는 그냥, 여리고 약해요.

이렇게 인정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건,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해요 저는 제가 늘 여리고 약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냉소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많이 느끼고, 많이 아파하고, 많이 기뻐하고 싶어요. 살면서 느끼는 무수한 감정에 무뎌지고 싶지 않으니까요. 제가 요즘 무뎌지고 있어서 이런 마음이 더 간절한 것 같아요.

부쩍 성숙해진 것 같아요 아니에요. 저, 여전히 철부지예요. 다만 지금의 스탠스를 갖기까지 ‘꼭 겉으로 보여져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전에는 상대의 기에 눌리지 않으려고 ‘강한 사람처럼 보여야지’라고 생각했어요. 원래 저는 소심한 편인데, 남보다 앞서가고 싶은 마음에 ‘센 척’한 거죠. 이제는 약해 보여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됐어요. 결국 중요한 건 내가 느끼는 자신이니까요.

올해는 스물아홉. 20대의 마지막 해네요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체감하는 요즘이에요. 영원할 것 같은 모든 것이 결국 이렇게 짧구나. 앞으로 얼마나 더 짧게 느껴질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지나간 것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아쉬움도 크고요. 그리고 지난해에… 사적으로 큰 교류는 없었지만, 갑자기 세상을 떠난 분들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지나간 것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배우는 자신의 한때를 작품에 담아 평생 보관할 수 있죠 공감해요. 그래서 청춘물을 찍고 싶었는데 쉽지 않네요. 제가 어릴 때부터 노안이라 나이에 맞지 않는 역할을 많이 했어요(웃음). 이제야 제 나이에 맞는 캐릭터를 하는 셈인데, 청춘의 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바람이 있었어요. 이젠 그 시기조차 조금 지난 것 같아 아쉬워요. 군대도 가야 하는데, 다녀오면 30대잖아요? 30대의 책임감은 20대와는 전혀 다르리라 생각해요.

20대 마지막의 첫 포문을 여는 <크로스>는 그래서 의미심장하겠군요. 드라마에서 맡은 캐릭터가 천재 의사 ‘강인규’인데 그동안 많은 남자배우가 의학 드라마를 통해 재발견되거나 증명받았기에 차별화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깊게 안 했어요. 같은 배우가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차별성은 있으리라 믿거든요.    <크로스>를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건 디테일이에요. 자문해 주는 선생님이 말하길, 한국 의학 드라마는 드라마적 허용으로 인해 실제와 맞지 않는 의료 행위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드라마를 짜깁기해서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자료로 쓰인대요.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받았어요. 그래서 저희는 절충 가능한 최선의 선에서 디테일을 살리려 하고 있어요.

아버지를 죽인 범인의 복수를 위해 병원과 교도소를 넘나드는 강인규는 과거에 집착하는 인물이에요. 조금 다른 의미에서 당신은 과거지향적인가요, 미래에 가치를 두는 편인가요 과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쪽이에요.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이 있는데, 전 그 표현이 별로예요. 왜냐하면 인간은 모든 걸 갖춰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배우는 존재거든요.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만 돼 있다면요. 저는 인간이 죽을 때까지 완성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완성되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다고 보지만, 스스로 완성형이라고 믿는 사람은 있겠죠.

반대로 나이가 들수록 꼰대가 되는 사람도 많아요 그래서 저는 유시민 작가처럼 ‘괜찮아요’라는 응원을 전해줄 수 있는, 나이 들수록 포용력 있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결국 당신이 생각하는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고 변하는 존재네요 네. 어떤 해답지에 국한돼서 삶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 모두 정답지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인간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감정’인 것 같아요. 저는 인간이 동물과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이 이성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성보다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이성을 자리 잡게 만드는 시작은 감정과 감성이지 않나 싶거든요. 아이가 태어나서 어느 순간부터 ‘이건 분명히 아플 거야’ 하고 조심하는 게 과연 이성적인 판단일까요? 그건 만져보고 느껴보고 다치기도 하면서 감정적으로 ‘아, 이건 좋고 저건 나쁜 거구나’를 무의식적으로 습득한 결과가 아닐까요. 그것을 기반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거죠. 배우라는 직업군 역시 감정과 감성이 있기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히스 레저에 대한 애정을 자주 밝혀왔어요. 그가 생전 인터뷰에서 받은 질문을 당신에게도 할게요. “언젠가 누가 내 인생을 영화로 만들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세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10년 후쯤?” 저는 딱히 한 게 없어서 너무 재미없는 영화가 될 것 같은데요.

히스 레저도 그렇게 대답했죠(웃음). 그럼에도 당신 인생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장르였으면 좋겠어요 코미디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제 삶을 사람들이 웃으면서 봐줬으면 좋겠어요.



CREDIT

사진 김선혜
글 정시우
에디터 김영재
디자인 오주희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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