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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7. SAT

WARM BREEZE

김태리의 생생한 활력

그녀의 맑고 단단한 기운이 <리틀 포레스트>에 스며들어 환하고 따스하게 약동한다

와이드 슬리브 화이트 셔츠는 Nohke J.



아이보리 베스트는 Vanessa bruno. 화이트 셔츠 원피스는 Beheder.



화이트 컬러 팬츠 수트는 A.Bell.



레더 소재의 화이트 블루종과 스커트는 Tod’s.



우드 버튼과 와이드 슬리브가 특징인 화이트 셔츠는 Nohke J. 카키 컬러의 와이드 팬츠는 A.Bell. 워크 부츠는 Jeffrey Campbell.


고맙다는 말부터 할게요. 좋은 영화 잘 봤어요. <1987>이 개봉한 후 이런 말을 많이 들었을 텐데 기억에 남는 칭찬이 있나요 무대 인사를 하면 팬 레터를 많이 받는데요, 그중에 읽고 너무 좋아서 감독님께 보여드린 편지가 있어요. <1987>에서 연기한 ‘연희’에 대한 리뷰였는데, 이 캐릭터를 두고 제가 걱정하고 고민했던 부분들을 완벽히 이해하고 썼더라고요. “제가 그러고 싶었어요”라며 맞장구를 칠 정도로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어요. 이 편지가 저한테는 다른 어떤 칭찬보다 기억에 남아요.
2월에 개봉하는 <리틀 포레스트>에서 연기한 ‘혜원’은 도시생활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와 자급자족 농촌생활을 하는 인물이에요. 누구나 좋은 영화의 기준이 있을 텐데, 이 영화는 특히 어떤 점이 좋았나요 시나리오를 읽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어요. 꼭 ‘휴식’ 같은. 특별한 드라마나 복잡한 사건이 있는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편하게 다가왔어요. 또 영화가 사계절을 고루 담아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자연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도 좋았어요. 이게 저한테는 큰 매력이었어요. 강렬한 이야기의 영화도 재미있지만 그 사이사이 숨 돌리게 하는 영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리틀 포레스트>는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영화는 어떤 용기가 필요한 작품이었나요? 영화를 연출한 임순례 감독은 “<리틀 포레스트>는 기본적으로 김태리의 영화”라고 했던데요 앞서 일본에서 만든 동명의 영화가 계절에 따른 일상 풍경을 세밀하게 보여줬다면, 저희 영화는 인물의 감성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요. 그래서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아요.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에요. 제가 촬영 전 회차에 다 나왔거든요. 영화가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제 얼굴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아무래도 혼자 영화를 끌고 가야 하는 게 부담이 되기도 했어요. 평소의 제 모습이 많이 반영된 것 같은데 이게 영화에 좋게 작용했는지는 아직은 모르겠어요.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판단해 줬으면 좋겠어요.
재작년 겨울부터 이듬해 가을까지 촬영에만 고스란히 1년이 걸렸어요. 이 사이에 눈에 담은 것 중에서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게 있다면 촬영에 들어가기 전 이런 생각을 하긴 했어요. 사진을 잘 찍지는 못하지만 한 그루의 나무를 계절마다 찍어봐야지. 그런데 촬영이 마무리됐을 때 자연 풍경보다 영화에 함께한 사람들이 더욱 값지게 느껴지더라고요. 아직 많은 작품을 한 건 아니지만 현장 분위기가 다른 영화들과 확연히 달랐어요. <아가씨>의 경우 4개월 반 동안 에너지를 응집해서 촬영했다면, <리틀 포레스트>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경상북도의 한 마을에 모여 2~3주씩 찍었어요. 그렇게 1년 동안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현장이 집처럼 편안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겨울에는 추위에 다들 옹기종기 모여 온기를 나누고, 봄이 왔을 땐 촬영장에 파릇파릇 활력이 돋았어요. 여름에는 물놀이 장면을 즐겁게 찍었고, 영화가 마무리되는 가을에는 다들 아쉬움이 묻어나는 얼굴로 촬영을 했어요.
<리틀 포레스트>는 어떤 감성,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욱 와 닿을까요 제가 연기한 혜원은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도 모르는 답을 찾아 헤매요. 자기 삶에 대해 고민이 짙은 사람들, 그러니까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이 옳은지,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혜원의 모습에 많이 공감할 것 같아요.
영화는 어떤 답을 제시하나요 딱히 그렇지도 않아요. 보고 느끼는 대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이 영화의 미덕은 ‘뭐 어때’인 것 같아요.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때?’ 하는. 혜원이란 인물도 삶에 대한 고민이 있지만 영화는 뚜렷한 답을 주지 않아요. 누구나 잘 굴러가다가도 돌부리에 걸려 철퍼덕 넘어질 때가 있잖아요. 잘 추슬러 일어나면 되겠지만, 완전히 분해되어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인생에 한두 번은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는 혜원이가 그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나는지를 보여줘요. 그녀의 선택은 고향으로 돌아와 오랜 친구들과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는 거예요. 다른 사람에게는 또 저마다의 방식이 있을 거예요.
<리틀 포레스트>가 지금 이 시점에 사람들에게 왜 필요한 영화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처럼 들리네요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자신의 삶을 응시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현재 20~30대는 그런 기회가 부족한 상황에 놓여 있잖아요. 그들은 내가 진짜 바라고 원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조차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각자의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달려가고 있어요. 그래서 실패가 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죠. 사실 인생을 넓게 보면 실패는 실패가 아닐 수 있어요. 하나의 결과일 뿐이죠. 실패를 결과로서 받아들인다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삶을 조금 더 즐기게 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스트라이프 패턴의 루스한 셔츠는 A.Bell.



레더 소재의 화이트 블루종은 Tod’s.



루스한 실루엣의 화이트 셔츠 원피스는 Beheder. 아이보리 컬러의 베스트는 Vanessa bruno. 레더 앵클부츠는 Amellie.



라운드 플랫 칼라가 돋보이는 화이트 드레스는 Bourie.



경험이나 영화, 책을 통해 최근 새롭게 깨달은 게 있나요 ‘해외에 나가서 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 있어요. 예전에는 꿈도 못 꿀 일이었어요. 언어 문제, 돈 문제를 비롯해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곳에서 지낸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배종옥 선배님의 저서 <배우는 삶 배우의 삶>을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선배님이 연기를 다시 배우겠다며 모든 걸 놓아버릴 기세로 돌연 뉴욕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했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속 한구석이 확장되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건 아니겠죠? 홀로서기에 나선 경험이 있나요 최근 독립했어요. <리틀 포레스트> 촬영을 하던 중에 PD님과 이에 관한 얘기를 나눈 뒤 서울에 올라와서 준비를 착착 했죠. 그리고 두 달 만에 독립을 했어요. 그게 홀로서기라면 홀로서기일 수 있지만, 저 스스로는 그렇게 여기지 않아요. 항상 홀로 서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저는 독립적으로 살아왔어요. 그래서 혼자 살기 시작했다고 해서 일상이 크게 달라지거나 하진 않았어요.
그 평범한 일상 중에서 즐거운 날은 언제인가요 당연히 쉴 때죠    (웃음). 앞뒤로 스케줄이 없고 그 시간을 온전히 나한테 쓸 수 있는 시간. 특별한 걸 하지는 않지만 일할 때 느끼는 즐거움과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에요. 저는 작품이든 화보 촬영이든 뭔가를 하나 끝내면 마음이 편안해요. 이제 이걸 잊어도 된다는 사실이 저한테는 굉장히 큰 성취감으로 다가와요. 그만큼 매달려 있었으면 됐어, 끝났으니 그만 놓아줘도 괜찮아. 그럴 때 가장 기분이 좋아요. 그러다 또 다음 일이 닥치면 괴롭기 시작하죠(웃음).
며칠 사이에 기뻤던 일은 뭔가요 어제 넷플릭스에서 미드 <프렌즈>를 봤어요. 정말 재미있어요! 이번에 전 시즌이 공개됐더라고요. 그래서 천천히 즐기려 해요.
<리틀 포레스트>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 ‘삼시세끼’를 차려 먹는 장면을 위해 요리를 배웠다면서요.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음식을 해준 적 있나요 사실 바빠서 그럴 기회가 많지 않아요. 반대로 정성이 담긴 음식을 대접받은 일이 있어요. 버려진 고양이를 데려와 돌보고 있는데 지방 촬영으로 2~3주씩 집을 비울 때면 친구가 와서 저 대신 고양이 밥도 챙겨주고 화분에 물도 주곤 해요. 그런데 어느 날 촬영을 하고 집에 오니까 갈비탕이 차려져 있더라고요. 무슨 특별한 날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 친구에게 몇 번씩 절을 하지는 않았지만 너무 고맙고 좋았어요.
지금 표정만 봐도 얼마나 좋았는지 알겠어요. 그런 만족스러운 일상에 이거 하나만 더 있었으면 하는 게 있나요 아뇨. 저는 비어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럼 덜어내고 싶은 건 그것도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일할 때 덜 괴로웠으면 하지만,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예전 인터뷰에서 “재능이 있다고 믿어서 이 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 고민한다”고 했던 말이 기억나요. 그 고민은 덜어냈나요 <1987>이 개봉하면서 <아가씨> 때보다 사람들의 칭찬을 덜 의심하게 된 것 같아요. 여전히 재능이 있다고 확신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재능이 제게 있지 않을까, 그걸 찾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어요.
김태리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뭔가요 자신을 낮게 보지 않으려 해요. 물론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저도 되뇌곤 해요. 나는 왜 이럴까? 왜 이것밖에 안되지? 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까? 하지만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낮은 인간이라 여기지 않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어요.
그 어느 때보다 말 한 마디가 큰 힘이 되는 시기에요.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은 인생의 지혜는 거창하게 지혜라고 하긴 그렇지만, 코앞에 놓인 일에 너무 급급해 하면서 살 필요는 없지 않나, 요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바로 앞만 보다 보면 불안한 마음이 커질 수밖에 없어요. 이 인터뷰만 해도 ‘내가 말을 잘못하면 어쩌지?’ ‘내 첫인상이 이상하면 어떡하지?’가 걱정일 수 있어요. 하지만 크게 생각하면 나중에 별것 아니거나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 수 있거든요. 오늘 인터뷰를 망쳤다면 다음 인터뷰에서 잘하면 돼요(웃음).
끝으로 <리틀 포레스트> 예고편에서 인상 깊었던 내레이션을 질문으로 할게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봄을 준비하고 있나요 늘 똑같은 봄 같으면서도 기대가 되는 게 있어요. <1987> 때도 느꼈지만, 작품이 개봉해서 관객과 만난다는 건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에요. <리틀 포레스트>가 2월 말에 개봉하니 봄이 다가올 때쯤 관객과 만나고 있겠죠.

CREDIT

사진 김영준
스타일리스트 고민정
에디터 정장조, 김영재
디자인 오주희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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