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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SAT

WOMEN IN HOLLYWOOD 2017

빛나는 여자들

탁월한 연기력과 존재감, 남다른 우먼 파워를 보여준 올해의 배우 세 명

JESSICA CHASTAIN


재킷과 팬츠는 모두 Celine.


백치 미녀부터 냉혹한 로비스트에 이르기까지, 제시카 차스테인은 어떤 역할이든 ‘혼연일체’의 연기력을 선보여왔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한 단계 나아가 좀 더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실크 톱은 Balenciaga. 왼손의 브레이슬렛은 Bvlgari. 오른손의 브레이슬렛은 Chopard. 링은 본인 소장품.


제시카 차스테인은 배역을 얼마나 진지하게 준비할까? 2012년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을 다룬 영화 <제로 다크 서티>에서 그녀와 함께했던 캐스린 비글로 감독은 이렇게 회상했다. “제시카는 ‘테러’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했어요. 한번은 저한테 자신이 처단해야 할 오사마 빈 라덴의 머릿속을 이해하는 게 힘들다고 털어놓더군요. 현실에서도 마야(극중 CIA 요원) 그 자체였죠.” 2000년대 지하 포커 세계를 휩쓸었던 몰리 블룸의 회고록을 기반으로 한 <몰리스 게임>의 주인공 몰리 역을 맡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인물인 몰리 블룸을 만나는 것으로는 모자랐는지 직접 뉴욕의 게임장을 찾아가기까지 했다. “하필 나를 그곳에 데려가준 신사분이 4시간 동안 무려 50만 달러를 잃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어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더군요. 마치 내가 저주의 부적이라도 된 듯이요.”
미국에서 11월에 개봉한 <몰리스 게임>은 <소셜 네트워크>와 <스티브 잡스>의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한 에런 소킨의 감독 데뷔작이다. 이드리스 엘바가 블룸의 변호사로 등장한다. “제시카는 이드리스와 여섯 장면을 찍었는데, 매 신마다 대사량이 8~10쪽에 달해요. 대부분의 영화보다 훨씬 긴 분량이에요.” 밀도 높은 대사로 유명한 에런 소킨이 긴장됐던 현장 상황을 언급했다. “리허설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어요. 어쨌든 다 해내야 했죠.” 이드리스는 당시 상황을 묘사할 수 있는 또 다른 증인이다. 그는 제시카가 완벽하게 대사를 소화했을 뿐 아니라 특유의 매력으로 감독은 물론 촬영장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즉석에서 호흡을 맞춰야 했어요. 그녀는 이런 압박 속에서도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는 동시에 인간적이고 창의적인 모습을 잃지 않았어요. 이런 점이 바로 캐릭터에 생명력을 가져다주죠.”
누구나 제시카의 재능이 천부적이란 건 인정하겠지만, 오늘의 성공이 쉽게 얻어진 건 결코 아니다. 뉴욕 줄리어드 스쿨에서 연기를 공부하고 TV 드라마에도 간혹 출연했지만 서른이 넘도록 스크린에 등장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긴 무명 시절의 마침표는 2011년에 갑자기 찾아왔다. 첩보 스릴러 <언피니시드>를 필두로 <테이크 쉘터> <트리 오브 라이프> <헬프> 등 일곱 편의 영화에 잇따라 출연했다. 이후에도 그녀는 쉬지 않고 맹렬히 달리며 30여 편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놀란 듯한 눈동자와 창백한 안색, 매혹적인 적갈색 머리를 지닌 그녀는 시선을 확 끄는 전형적인 미녀는 아니지만, 그래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냉철하고 단호하거나(<마션> <미스 슬로운>) 따뜻하고 사랑스럽거나(<트리 오브 라이프> <주키퍼스 와이프>) 카리스마 넘치고 지적인(<제로 다크 서티> <모스트 바이어런트>)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녀의 여성에 대한 관심은 카메라 바깥으로도 향해 있다. <미스 슬로운>과 <언피니시드>에서 함께 작업했던 감독 존 매든이 현장에서 지켜본 그녀에 대해 설명했다. “제시카는 영화 속 여성들의 역할을 증진하는 데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요. 이야기 속에서 여성이 맡는 역할의 범주를 넓히고 여성들이 제대로 역을 맡게 하자는 거죠.” 제시카는 나아가 할리우드 여성 영화인들의 권리를 높이기 위한 비영리단체이자 제작사인 프리클 필름을 설립하고 활동 중이다. 40대에 접어든 그녀 앞에는 할 일이 쌓여 있다. 촬영을 마친 <우먼 워크 어헤드>에서는 19세기 미국 인디언들의 투쟁을 도운 아티스트 캐서린 월던 역을 맡았고, 2018년에는 컨트리 가수 토미 와이넷의 전기를 그린 뮤지컬 영화도 선보일 예정이다. 개인적인 삶으로 화제를 돌리자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그녀는 5년간의 열애 끝에 지난 6월 이탈리아 사업가 잔 루카 파시와 결혼해 한창 신혼을 즐기는 중이다. 문득 <트리 오브 라이프>(2011) 속 그녀의 대사가 떠올랐다. “사랑하지 않으면 인생은 그냥 지나가버려요.”


STYLIST NASR SAMIRA, WRITER BEN DICKINSON



MARGOT ROBBIE


셔츠와 스커트는 모두 Calvin Klein.


매력적인 금발과 글래머러스한 몸매, 강렬한 카리스마까지, 마고 로비는 스타의 자질을 충분히 타고났다. 가장 놀라운 점은 맡는 역할마다 유머와 휴머니티를 더한 자신만의 캐릭터를 창조할 줄 안다는 점이다.



메시 티셔츠는 Gucci. 디스트로이드 진은 Unravel. 이어링과 브레이슬렛은 모두 De Beers.


모든 게 빨간 스틸레토 힐에서 시작됐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3)에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얼굴을 하이힐 끝으로 살짝 밀어내는 장면 말이다. 외도한 남편을 용서하거나 거절할 수 없는 그 미묘한 감정을 로비는 발끝으로 표현해 냈다. “솔직히 촬영 내내 마티(마틴 스코세이지)한테 많은 디렉션을 받지 못했어요.” 호주 출신의 마고 로비는 10대 시절 현지 TV 드라마로 데뷔했다. LA로 이주하자마자 2011년 ABC 드라마 <팬암>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고, 이윽고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만나 날아올랐다. “배우 일은 내가 도약할 수 있는 캐릭터를 찾아 도전하는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기회는 주어지지 않아요.”
건강한 섹시미를 어필하면서도 투지와 유머를 지닌 마고 로비는 빠른 속도로 ‘떠오르는 무비 스타’가 됐다. 그녀의 변신은 거침없었다. <포커스>(2015)에서는 매혹적인 신참내기 사기꾼으로,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2016)에선 전장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종군기자로 분했다. 그녀에게 찾아온 일생일대 캐릭터는 뭐니 뭐니 해도 ‘제인’과 ‘할리 퀸’! 현대판 타잔을 그린 2016년 <레전드 오브 타잔>에서 그녀는 지금껏 없던 진취적인 제인을 연기했다. 오랫동안 ‘민폐녀’였던 제인은 로비를 만나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당차고 강인한 여인으로 변모했다. 비슷한 시기에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그녀가 맡은 할리 퀸은 조커에 필적할 만한 역대급 여자 캐릭터였다. 영화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로비는 이 비현실적 캐릭터를 너무도 생생하게 살려내면서 전 세계에 숱한 할리 퀸 마니아를 양산했다. <어바웃 타임>(2013)에 이어 올해 개봉한 <굿바이 크리스토퍼 로빈>에서 또다시 호흡을 맞춘 도널 글리슨은 그녀를 “절대 핑계를 대지 않는 배우”라고 말한다. “로비는 어떤 역할이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찾아내고 이를 향해 돌진해요. 예상치 못했던 부분을 짚어내고, 누가 제안하지 않아도 스스로 뭔가 만들어내요. 배우고 싶은 점이죠.”
야심만만한 그녀는 최근 또 다른 미션에 뛰어들었다. 2015년 남편 톰 애컬리 감독과 함께 제작사 러키채프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것이다. “늘 연출이나 각색에 흥미가 있긴 했지만, 프로듀서가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그런데 배우로서 이따금씩 꼭두각시가 된 기분이 들 때가 있더라고요. ‘왜 내가 참여하는 작품인데 의견을 말할 수 없을까?’라고 생각했죠.” 회사를 통해 선보이는 첫 작품 <터미널>은 내년 개봉 예정으로, 목숨을 건 임무를 수행하는 두 청부 살인업자의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영화. 로비는 사건에 연루된 웨이트리스 역으로도 출연한다. 한편 언론을 시끄럽게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아이, 토냐>도 곧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감독 크레이그 질레스피가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에서 로비는 ‘은반 위의 악녀’라 불리던 피겨스케이터 토냐 하딩을 연기한다. 유망한 피겨 선수였던 하딩은 1994년 동계올림픽에서 강력한 라이벌 낸시 캐리건의 부상을 사주했다는 혐의로 스포츠계에서 영구 제명당한 인물이다. 시도 때도 없이 트리플 액셀을 연습하던 로비가 잠시 숨 돌릴 틈 없이 러키채프 엔터테인먼트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조시 루크 감독이 연출하는 역사물 <메리 퀸 오브 스코츠>로, 극중 로비는 메리 여왕의 라이벌이자 사촌인 엘리자베스 여왕을 연기한다. 로비는 타임스 스퀘어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비친 그 순간부터 자신의 삶은 한 번도 멈춘 적 없다고 말한다. “전광판에 비친 <팬암> 속의 내 얼굴을 봤을 때, 이 삶이 계속되길 바랐어요. 뭔가 다른 이야기 속에서 흥미로운 캐릭터들을 창조하고 연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배우는 작품을 통해 긴 수명을 얻죠. 전 정말 오래 살고 싶어요.”


STYLIST SIMON ROBINS, WRITER SETH PLATTNER



TESSA THOMPSON


셔츠와 스커트는 모두 Calvin Klein.


탄탄한 연기력과 사회의식을 두루 갖춘 테사 톰프슨은 진정한 21세기 스타다. 캠퍼스의 활동가든 신화 속 전투 여신이든, 그녀는 매 장면마다 강렬한 에너지를 선사한다.



그래픽 패턴의 재킷과 화이트 셔츠, 스커트는 모두 Louis Vuitton.


뉴욕 미드타운의 레스토랑에서 테사를 만나기까지 그녀의 스케줄은 살인적이었다. 2주 전까지는 여전사 발키리 역으로 출연한 <토르: 라그나로크> 홍보 일정으로 빼곡했고, 바로 전날에는 인기 드라마 <프렌즈>를 흑인 버전으로 패러디한 제이지의 ‘Moonlight’ 뮤직비디오 촬영에 참여했다. 하지만 힘든 기색 없이 자리에 앉은 그녀는 강렬한 카리스마로 모두를 사로잡았다. ‘Yes’라고 새긴 팔목 문신과 반짝이는 눈동자가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내년 2월에 개봉할 신작 <어나힐레이션>의 앨릭스 갈랜드 감독 역시 그녀의 존재가 영화 스토리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 힘이었다고 말한다. 제프 밴더미어의 재난 SF소설 <서던 리치> 3부작을 영화화한 <어나힐레이션>에서 테사는 다섯 명의 탐사대원 중 천체물리학자로 등장한다. 앨릭스 갈랜드 감독은 테사가 캐스팅 오디션에서 그의 전작 <엑스 마키나>에 대한 궁금증을 스스럼없이 물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오디션에서 작품과 관계없는 걸 묻다니요. 하지만 테사는 그런 매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런저런 계산을 하지 않고, 그저 정직하게 부딪히는 스타일이죠.” 함께 출연하는 내털리 포트먼의 평가도 비슷하다. “함께 춤추고 웃거나 정치에 대해 말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물론 테사는 아름답지만, 설사 예쁘지 않았더라도 매력적이었을 거예요.”
사실 연기는 테사가 꿈꿔온 전부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유색 인종으로서의 정체성과 다양성에 관심을 가져왔다. “피부색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훨씬 더 다양해져야 해요.” 멕시코인과 유러피언의 피가 섞인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파나마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편견 어린 시선 때문에 스스로 갇혀 지낸 시간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연기에 몰두하게 된 것은 대학에 다니면서부터. 그녀에게 연기란 ‘힘든 시기’와 동의어였다. 드라마 스쿨에 다니면서 에이전트를 만났고 단역을 맡으면서 여러 일을 전전해야 했다. 차이니스 레스토랑에서 일하거나 바에서 댄서로 일하기도 했다. 그렇게 생계를 유지하면서 8년간 꾸준히 배우로 활동했지만, 그녀의 마음을 크게 움직인 역할은 없었다. “대부분 누군가의 애인이거나 새끈한 흑인 친구 역이었죠. 연기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시기였어요.” 그러던 중 2014년 저스틴 시미언 감독의 <캠퍼스 오바마 전쟁>이 찾아왔다. 아이비리그 흑인 학생들의 정체성과 그들이 겪는 인종차별을 탐구한 이 영화는 그녀의 의욕에 불을 지폈다. “샘은 자칫하면 눈에 거슬리는 캐릭터일 수도 있어요.” 시미언 감독은 그녀가 맡은 혼혈 활동가 샘 화이트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테사에겐 사람들이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특별한 재능이 있어요. 그 안에 겹겹이 쌓인 감정을 보게 되는 거죠. 덕분에 샘은 아주 역동적인 캐릭터가 됐어요.” 두 달 후 테사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전기를 다룬 에바 듀버네이 감독의 <셀마>(2014)에서 급진적 인권운동가 다이앤 내시를 연기했다. 다이앤은 온화하고 예쁘장한 포장에 갇혀 있었지만 훗날 이를 깨고 시민운동에서 중심인물이 된 캐릭터다. 2015년에는 <록키>의 리부트 격인 <크리드>에서 뮤지션이자 복서의 여자친구로 등장하면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재능까지 선보였다. 지치지 않고 달리고 있는 그녀의 커리어는 현재 SF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있다.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첫선을 보인 슈퍼히어로 발키리 역으로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에 참여할 예정이고, 미래 로봇들의 반란을 다룬 HBO 드라마 <웨스트월드: 인공지능의 역습> 시즌 2에도 계속 출연할 예정이다.
“테사는 자신이 가는 길을 잘 알고 있어요.” <셀마>의 감독 듀버네이는 그녀의 행보가 여느 배우들과 다르다고 말한다. “미모에 기대거나 안정적인 길을 택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러지 않죠. 테사가 출연한 작품을 보면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STYLIST NASR SAMIRA, WRITER MOLLY LANGMUIR

CREDIT

에디터 원영인
사진 TSIOLIS TERRY
디자인 박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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