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 > 스타 인터뷰

2017.11.28. TUE

SHE CAN PLAY

그녀를 잡아요

"여배우로 살기가 그렇게 힘들어요?" 한국의 여자배우들이 대답을 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지금까지 했던 것이든 다른 것이든, 무엇이든 하고 싶어요.” 이 말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바로 배우 전도연이다. 배우 문소리가 감독을 맡은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의 관객과의 대화(GV)에 참여해 좋은 여성 캐릭터와 시나리오,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향한 간절함을 토로했던 전도연의 차기작은 지난해 영화 <남과 여>와 드라마 <굿와이프> 이후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녀와 같이 <밀양>을 찍었던 송강호는 올해 상반기 <택시운전사>로 또 한 번 1천만 관객 돌파 영화를 갖게 됐고, <해피엔드>를 함께 찍은 최민식은 <특별 시민>에 <침묵>까지 올해 개봉작만 두 편이다. 마지막으로 호흡을 맞춘 <남과 여>의 공유는 지난해 개봉작만 세 편이었다. 그 시간 동안 칸의 여왕 전도연은 하염없이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혹시 여자배우들에게만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걸까? 40대에도 여전한 미모와 출산 후에도 아가씨 같은 몸매를 운운하는 외모 기사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한국영화계에서 여성 캐릭터를 다루고 여성에게 자리를 만들어주는 방식이 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의 한국영화를 돌이켜봤을 때 가장 문제적인 여성 캐릭터를 낳은 작품 <비밀은 없다>와 예상을 뛰어넘은 방식으로 계급과 국적을 넘어 연대하는 여성들을 보여준 <미씽: 사라진 여자>가 모두 2016년에 개봉한 작품이다. 거기에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과 <연애담>의 이현주 감독 등 인상적인 데뷔작을 보여준 여성감독들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어떤가. 2017년을 연 한국영화는 <더 킹> 그리고 <공조>였다. 두 영화의 주인공은 네 명의 남자 그리고 두 명의 남자다. 그들은 협력하고 반목하고 의리를 지키고 배신하고 뜨거운 우정을 나누면서 사이좋게 설 연휴 극장가를 남자들의 판으로 만들었다. 주연에 이름을 올린 여성 캐릭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이런 흐름은 상반기 1000만 관객 돌파 영화 <택시운전사>로, 그리고 <청년경찰>과 , 추석 연휴 극장가의 <남한산성>과 <범죄도시>로 이어졌다. 마치 약속한 것처럼 영화 속 여자들은 누군가의 아내이거나 딸이었고 더 나쁜 경우는 피해자이거나 시체였다. 한 영화가 흥행하면 비슷한 장르 혹은 비슷한 배우들이 경찰이나 검찰, 조폭, 비리 정치인을 연기하는 기획영화가 양산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고, 거기에 여성 캐릭터가 발을 디딜 곳은 없다. 경찰과 조선족 범죄단의 대결을 다룬 두 영화 <청년경찰>과 <범죄도시>를 보면 최근의 한국영화가 여성을 어떻게 다루는지 명확하게 보인다. <청년경찰>에서 여성은 완벽한 타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남성의 성장과 각성의 도구로 존재한다. 아니면 <범죄도시>처럼 여성에게 그 어떤 관심도 없다. 2017년 9월까지 ‘이름을 가진 두 여성이 남자와는 상관없는 대화를 나눈다’는 벡델 테스트의 단순한 기준을 통과한 한국영화가 단 두 편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다. 적어도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서만큼은 한국영화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니 여자배우들의 갈증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전에는 멜로와 로맨스가 아닌 장르를 갈망했다면, 지금은 여성 캐릭터를 제대로 그린 영화 자체의 필요를 거론해야 할 수준이다. “더 이상 영화가 날 사랑하지 않으니 이제는 내가 영화를 사랑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는 문소리 연출의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의 GV에 전도연, 라미란, 공효진, 김옥빈을 비롯한 수많은 여자배우가 함께한 이유는 너무도 당연하다. 이 영화가 그리는 ‘여배우의 오늘’에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인 동시에 그 오늘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남자 게스트가 “여배우로 살기가 그렇게 힘들어요?”라고 묻는 현실이 계속돼도, 여자배우들은 멈추지 않고 “더 많은 여성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전도연과 마찬가지로 ‘트로피는 많지만 배역은 없는’ 현실을 살던 문소리는 단편영화를 만들고, 그 단편을 묶어 장편영화로 개봉하고, 개봉과 동시에 다른 여자배우들과 함께 ‘여배우의 오늘’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 작품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만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이 한 걸음이 또 다른 여자배우들과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거꾸로 돌아가는 여자배우들의 시계를 잠시 멈추게 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나문희가 있다. 여자배우들에게 이보다 가혹할 수 없는 2017년 한국영화계를 돌이켜본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마디를 남기게 될 것이다.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빠질 수 있는 수많은 함정에 빠지지 않고 극영화로서 완성도를 보여준 수작인 동시에, 우리에게는 배우 나문희가 있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나옥분’은 여성인 동시에 충실한 생활인으로 매일을 살고, 나문희는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단순한 할머니 역할이 아니라 이름과 역사, 진짜 삶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를 정확히 연기하는 현역 배우로 살고 있다. ‘200살까지 살아서 증언하겠다’는 나옥분을 통해 관객들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우리의 ‘위안부’ 역사를 보고, 반드시 달라져야 하는 내일을 위한 희망을 본다. 나문희에게서 희망을 본 것은 관객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전히 더 좋은 시나리오를 여성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이야기를, 더 멋진 캐릭터를 찾고 있는 여자배우들 역시 스크린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나문희를 보며, 자신의 미래를 보았을 것이 틀림없다. 이것이 바로 나문희가 해낸 일이고, 여성을 위한 더 나은 롤 모델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2018년은 올해보다 나을까? 알 수 없다.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한국영화계는 이미 나문희와 문소리를, 전도연을, 김혜수를, 퓨리오사가 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검댕을 묻힐 수많은 여자배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지기 위해 여자배우들의 노력이나 역량에 대해 말할 이유가 없다. 부디 더 이상 뒷걸음질치지 않는 한국영화를 보고 싶다.


윤이나(작가. 책 <미쓰윤의 알바일지>, JTBC 웹 드라마 <알 수도 있는 사람>을 썼다)  

CREDIT

글 윤이나
에디터 김영재
디자인 박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1월호
참고하세요!

저작권법에 의거, 엘르온라인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타 홈페이지와 타 블로그 및 게시판 등에 불법 게재시 불이익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