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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4. TUE

NEITHER

브리짓이라 불러주세요

프랑스에서,아니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삶을 사는 여자 브리짓 마크롱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패션 스타일, 스물네 살 연하 남편과의 러브스토리, 엘리제궁에서의 삶, 마음속 깉은 고민까지


브리짓 마크롱(Brigitte Macron)의 첫 번째 인터뷰다. 지금까지 미디어가 ‘수집’한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덧붙여지거나 축소되고 종종 제멋대로 지어졌다. 문학 교사였던 그녀가 상처를 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그녀 특유의 솔직한 성격이 바뀐 건 아니다. 엘리제 궁 사람들에 따르면 그녀는 잘 웃고 잘 듣고 잘 다가온다. 다방면에 걸친 지식과 통찰력이 그 친근함에 가려지는 게 안타까울 정도. 브리짓 마크롱은 자신의 독특한 지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드레스가 헐렁할 때와 타이트할 때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향한 과한 기대와 말 끝나기도 전에 쏟아지는 비판이 진정될 것이라는 것도 안다. 유능한 사람들이 그렇듯, 그녀는 이 폭풍 같은 시기를 잘 헤쳐나갈 방법은 ‘일’이라는 결론을 냈다. 매일 그녀의 아침은 엘리제 궁 사무실에서 일과를 만년필로 적으면서 시작된다. 세 자녀를 둔 브리짓은 자신보다 스물네 살 어린, ‘모든 걸 다 아는 바보’를 만나기 전까지 평범한 삶을 살았다. 사회적 규범을 위반했다? 그녀는 이 같은 표현에 이의를 제기한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쓸 법한 어느 작품의 여주인공이라면 모를까. 우연히 찾아온 열정으로 인해 자유를 얻은 여주인공. 그렇다고 그녀가 엘리제 궁에서 살게 될 운명을 예측한 건 전혀 아니었다. 선거 캠페인이 시작된 지 단 1년 만에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궁금한 인물이 됐다. 누구나 알고 있는 불변의 사실은 그녀가 프랑스 제25대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아내라는 것이고, 브리짓은 그녀의 남자를 위해 모든 걸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프랑스에서, 아니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삶을 사는 여자 브리짓 마크롱을 <엘르>가 직접 만났다.




대통령 당선 후 일주일 만에 엘리제 궁으로 들어왔어요 에마뉘엘도 그렇지만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에 이젠 익숙해서 다음 모험은 무엇이 될까 늘 궁금합니다. 지난 20년이 쭉 그랬어요. 두 번째 선거 날(프랑스는 선거를 두 번에 걸쳐 한다) 저녁엔 정말 당황했어요. 첫 선거가 끝나고 우리가 이겼다고 생각했으리라 짐작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전 앞일을 미리 생각하지 않아요. 무슨 일이 일어나야 일어난 거죠.

대통령 선출일 저녁에 아찔한 기분이 들지 않았나요 선거 사무실 소파에 앉아 에마뉘엘의 얼굴이 TV에 나오는 걸 보고 현기증이 났어요. 정신이 들자 걱정이 됐죠. 에마뉘엘에 대해선 어떤 의심도 없었어요. 그가 얼마나 준비돼 있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다만 선거운동을 하면서 종종 사람들에게서 지나친 기대가 느껴졌기 때문이죠.

불안한 마음은 어떻게 표현했나요 말하지 않아요. 불안은 좋지 않은 징조인데 제 천성과는 맞지 않거든요. 두 번째 선거 직후, 에마뉘엘이 앞서서 단상을 향해 걷는 걸 보고 거의 제가 분열되는 것 같았어요. 곧 아이들이 절 찾으러 왔어요. “엄마가 올라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전 답했죠. “아냐, 아냐, 그냥 아래에 있을 거야.” 딸들이 재차 제 팔을 잡았어요. “어서 가세요!” 울고 싶었어요. 좋은 의미로요. 단상으로 올라가 에마뉘엘을 봤어요. 그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대신에. 그리고 그가 올라선 산에 대해 생각했어요. 1년 전엔 없었던 산을요. 그가 내 남편이란 사실 말고 그가 성취한 모든 것을…. 이후부턴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어요. 에마뉘엘이 웃으며 말했죠. “앞으로 24시간 동안 쉴 생각은 포기해요.” 전 답했죠. “잘됐네요. 한시도 쉴 생각이 없거든요.”

지금까지 엘리제 궁에 입성한 영부인들은 본의 아니게 궁을 떠나게 됐어요. 세실리아 사르코지는 이혼했고, 카를라 사르코지는 엘리제 궁에서 살지 않았죠.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전 올랑드 대통령의 동거녀)는 떠나야만 했고요. ‘엘리제의 저주’라고도 하는데 전 오히려 엘리제 궁에서 살았던 여성들의 흔적을 느꼈어요. 그들 역시 이곳에서 행복한 순간을 겪었다고 생각해요. 저주요? 전 라이프니츠 신봉자에 가까워요. 행복과 불행 사이엔 언제나 정확한 균형이 존재한다고 할까요. 뼛속까지 낙관주의자는 아니어도, 전체를 보면 세상은 그리 나쁘지 않아요. “모든 것이 좋지 않다 해도 그만하면 괜찮은 것”이라고 볼테르가 <바부크가 손수 쓴 환각>에서 상기시켜 줬죠. 그리고 불행 덕분에 우린 행복의 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답니다.

영부인이란 자리에 대해 논란이 많았어요 ‘퍼스트레이디’란 말은 영어에서 왔는데 그리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에요. 저는 ‘퍼스트’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지막도 아니지만 ‘레이디’도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그냥 브리짓 마크롱입니다. 멜라니아 트럼프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도 ‘멜라니아’라고 불렀고요. 그녀는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애쓰는 교양 있는 여성이에요. 그간 국가 혹은 정부 책임자들의 아내들과 많이 교류했는데, 모두 유익한 역할을 하는 데 관심이 있을 뿐 호칭은 중요하지 않아요.

능동적인 여성이자 ‘슈퍼 와이프’지만 속박된다고 느끼거나 자유가 침해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 남편은 절 가두는 사람이 아니에요. 엘리제 궁을 나갈 땐 한두 명의 경호원이 있어야 하지만요. 전 매일 궁을 나갑니다. 산책하며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기쁨을 누리죠. 모자와 이어폰, 안경만 있으면 이 세상 끝까지도 갈 수 있어요. 아주 최근까지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사람들이 제 머리 색을 알아보는 순간 난리가 나더라고요. 사람들과 만나는 걸 좋아하지만 그런 순간엔 당황하긴 해요.

대통령은 당신을 두고 ‘(자신과) 삶을 잇는 끈’이라 했어요. 엘리제 궁이란 비현실적 공간에 살지만 현실 속에서는 프랑스 국민과 계속 연결돼 있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오, 저 역시 모두와 똑같이 현실에 발을 담근 여자입니다. 삶은 단지 찰나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희한한 경험을 남보다 많이 했다고 해서 이 세상을 보는 제 시선이 바뀌지는 않아요. 에마뉘엘은 엄청나게 열심히 일하면서 끊임없이 현실과 접촉하고 있어요. 한밤에도 두 개의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걸요! 대통령을 하려면 체력이 따라줘야 한다는 걸 당선 후에 알았어요. 전 세계 대통령들은 정말이지 굉장한 체력을 가졌더군요. 내면의 뭔가가 그들을 고무시키는 것 같아요.

남편을 잔다르크에 비유한 적 있어요 선거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했던 농담이에요.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잔다르크를 동정녀에 비유해요. 환청에 사로잡힌, 어리석을 만큼 순수한 목자로요. 내면의 소리를 따른 용감한 전사이자, 샤를 7세보다 더 가치 있는 행동주의자 여성이었는데!

교사란 직업을 사랑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말한 적 있는데,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나요 셋째를 낳고 나서 다른 일을 하던 때였어요. 한 친구가 근처 스트라스부르의 학교에서 교사를 찾는다고 알려줬어요. 제가 문학석사 학위가 있으니까 지원해서 그 자리를 얻었죠. 교실에 딱 들어갔는데 종속절에 대해 배울 차례였어요. 전 접속사절, 관계절, 상황절 같은 건 아무것도 몰랐어요. 문학 공부만 했으니까요. 첫 시간이 어찌나 아찔하던지. 보름간 잠도 안 자고 공부만 했어요. 가르치는 일이 진정한 행복이었고, 정말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수업을 잘 끝내고 나올 때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아세요? 반대로 한 시간을 망치면 끔찍한 기분이 들죠. 그건 한 시간을 잃은 것보다 더 큰 기회를 놓친 거니까요.




인생의 책이라 꼽을 만큼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일까요 플로베르를 정말 좋아해요. 사람들이 <마담 보바리>를 읽지 않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에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플로베르를 싫어할 권리가 없었어요(웃음). 그의 문체는 예리한 메스가 지나간 듯해요. 도처에 널린 무지와 지독한 악의를 간파해 내죠. 시의 천재는 랭보예요. 그리고 침대 옆에 항상 놓아두는 책은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고요. 이 시집 속의 시들은 거의 외울 지경이에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말투가 참 유쾌하면서도 어쩐지 인생의 쓸쓸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다는 느낌이 드네요 전 청소년기를 즐기지 못했어요. 때문에 상처 많은 사춘기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는 게 좋았죠. 아이들은 언제나 과거를 아쉬워하거나 어른이 되고 싶어 하기에 결코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아요. 저도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게 생생히 기억나요. 정말 다행인 건 다정하고 멋진 부모님이 계셨다는 것이죠.

부모님은 어떤 교육을 해주었나요 특히 중요하게 가르쳐주신 건 타인에 대한 존중이에요. 부모님은 나쁜 점수를 받아오는 건 괜찮지만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을 땐 극도로 엄격하셨어요. 솔직히 제가 아주 얌전한 소녀는 아니었어요. 종종 버릇 없이 굴기도 했죠. 학교에서 눈을 내리뜨고 있지 않았고, 제 생각과 다른 걸 강제로 머리에 입력하는 건 거부했어요. 너무 일찍부터 비판적인 사고를 가졌다고 할까요.

세계적인 아이콘이 됐어요. 해시태그 ‘#그는_자신보다_24세_많은_여성과_결혼했다’는 웨이보에서 600만 번 사용됐어요. 명성에 걸맞은 특별한 삶을 살고 계신가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에마뉘엘의 유일한 단점은 저보다 어리다는 거죠. 우리 사이에선 별일 아닌데, 사람들은 우리의 나이 차를 그냥 넘기지 않더군요. 전 저보다 나이 어린 남자에게 한 번도 끌린 적 없고, 에마뉘엘은 제 학급의 학생도 아니었어요.

에마뉘엘의 연극반 교사이긴 했죠 맞아요. 연극연구회였는데, 모두 함께 작품을 썼고 교사와 학생이라기보다 예술적으로 동등한 관계였어요.

둘의 관계가 좀 달라졌다는 걸 언제 깨달았나요 에두아르도 데 필리포의 <코미디의 기술>이란 작품을 했을 때인 것 같아요. 금요일 저녁마다 둘이 작품을 썼는데, 토요일이 되면 다시 다음주 금요일이 기다려졌어요. 왜인지도 모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감정에 저항해 보셨나요 그럼요. 에마뉘엘에게 파리로 가서 마지막 학년을 마치라고 권했어요. 그 편이 그에게 더 낫다고 판단했어요. 당시 우리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지만 소문은 빠르게 퍼지고 있었어요. 저는 다른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제 아이들만 걱정했어요.

평범하지 않은 러브 스토리를 겪으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2007년까지 우리 둘을 물리적으로 떼어놓았던 거리. 그런데 이 시기에 서로에게 엄청나게 많은 편지를 썼어요.

‘규범을 깨뜨렸다’는 표현에 동의하시나요 전혀 아니에요. 우리의 러브 스토리는 그리 급하게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저도, 에마뉘엘도, 서로의 가족이 우리 사랑을 이해할 수 있도록 천천히, 조금씩 이끌었어요. 불가피하게 뭔가가 부숴졌을지는 몰라도 전부가 와장창 깨진 건 아니에요. 그럼에도 저 역시 아이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걸 알아요. 가장 후회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누구에게나 인생이 걸린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제게 그 순간은 에마뉘엘을 선택할 때였어요.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제 삶을 온전히 살지 못했을 거예요. 아이들은 제게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지만, 제가 완전한 행복을 얻으려면 프레베르가 말한 것처럼 ‘이 사랑’을 맛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에마뉘엘 대통령은 “브리짓이 행복하지 않으면 5년간의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어요 에마뉘엘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걱정해요. 주위 사람들이 잘못 되는 걸 참지 못하죠. 아이들과 손자들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걱정해요. 하루라도 소식을 듣지 않으면 못 견뎌요. 그러나 저로 말할 것 같으면 행복에 관한 한 아주 유능한 재능이 있죠. 천성이 ‘18세기 사람’이에요. 계몽시대의 행복 추구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볼테르의 시 <속물>에 나오는 것처럼 행복은 내가 있는 곳에 있어요. 저는 그걸 확신합니다.

대통령이 직접 소설을 쓰기도 했다고요. 그 작품을 읽어본 유일한 사람일 텐데, 솔직한 평을 들려준다면요 <바빌론, 바빌론>이란 제목의 작품인데 아주 훌륭했어요. 그가 지닌 여러 뛰어난 면 중에 지적인 부분에 가장 반했어요. 책을 한번 읽으면 모든 걸 기억하는 사람이에요. 만난 사람들도 모두 기억하죠. 에마뉘엘의 머릿속은 모든 게 잘 정돈돼 있어서, 그와 함께 있으면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안정돼요. 저는 좀 더 뒤죽박죽이고 로맨틱한 면이 많죠. 제 남편이라서가 아니라 한 남자로서 말하는데, 그는 매우 특별해요.




미셸 오바마가 말했죠. “퍼스트레이디가 되는 건 선물입니다. 선출되지 않고도 역할을 맡을 수 있으니까요.”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네, 아주 정확한 표현이에요. 어릴 때 선물을 받으면 고맙다고 말하라고 배우잖아요? 제게 가장 큰 선물은 무엇보다 여러 사람을 만날 기회가 주어졌다는 거예요. 그게 정말 고마워요. 그러나 프랑스 국민은 에마뉘엘을 뽑았지 저를 뽑은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어요. 무엇보다 제가 바라는 건 남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거예요. 꼭 지킬 거예요. 제 존재가 혹시 그의 대통령 직에 방해가 되면 비켜설 것이고, 뒤로 물러나 언제나 그의 편에 설 것입니다.

지난 7월 시몬 베이유(프랑스의 유명 여성 정치가)의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페미니스트였던 그녀로부터 영향을 받았나요 그녀가 여성을 위해 임신중절 합법화를 주도할 때, 이 법에 반대하는 이들이 국회에 태아의 심장 소리를 틀어놓은 장면을 잊을 수 없어요. 그럼에도 당당한 태도로 답했던 시몬 베이유의 모습도 잊히지 않아요. 그녀를 두 차례 만났는데, 존재 자체로도 대단한 분이었고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전 늘 남성보다 여성의 운명에 끌렸어요. 21세기는 여자들의 시대가 될 거예요. 이런 게 페미니스트라면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무조건 남성과 맞서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페미니스트로서 당신의 패션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지겹지 않으세요 프랑스 패션에 도움이 된다면 나쁠 게 없어요! 전 패션에 민감해요. 뭘 입을지 항상 고민하고, 제 딸과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어요. 메이크업을 안 하거나 갖춰 입지 않고는 외출하지 않아요. 최근 루이 비통을 맡은 니콜라 제스키에르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의 감수성과 재능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칼 라거펠트 역시 위대한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로 우정을 넘어 존경의 마음이 우러나와요. 올리비에 루스테잉, 알렉상드르 보티에를 비롯해 다양한 디자이너들을 좋아해요. 아제딘 알라이아도 많이 좋아하지만, 그가 디자인한 스커트는 너무 짧아요! 젊을 때는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었죠. 놀러 갈 때 입으려고 가방에 하나 감추고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안에 블루머를 하나 더 입었어요. 록 음악에 맞춰 맘껏 춤을 춰야 했으니까요.

두 분이 서로 떨어져 밤을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데 사실인가요 떨어져 자는 걸 좋아하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요? 저는 에마뉘엘이 옆에 있어야 안심이 돼요. 그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부부잖아요. 서로 의견이 맞지 않거나 다툴 때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다 흘러가죠. 전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에마뉘엘을 알고 나서 달라졌어요. 사랑도, 인생도 정말 알 수 없어요. 어떻게 된 거라고 설명할 수도 없고요. 그냥 ‘그였고 나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에요. 나이 차 때문에 우리 사연이 더 특별하게 보일지 몰라도, 이런 우연은 누구에게나 일어나요. 사실은 참 심플한 이야기예요. 

CREDIT

사진 MARK SELIGER
글 ERIN DOHERTY, OLIVIA DE LAMBERTERIE
디자인 오주희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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