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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4. MON

RING THE BELL

공명의 소리

유연한 얼굴과 청량한 ‘기럭지’, 긍정의 힘으로 지금을 사는 남자 공명과 만났다

파자마 실루엣의 실크 셔츠와 팬츠는 Kimseoryong


“안녕하세요, 저는 소처럼 일한 지 5년 됐습니다.” 제법 거리를 두고 앉은 소속사 직원들에게 장난과 진담의 농도가 절반쯤 될 법한 원망의 눈빛을 보내며 건네온 배우 공명의 첫인사. 한때 ‘완소녀(완전 소처럼 일하는 여자)’였던 에디터의 소개와 대칭을 이루는 이 ‘완소남’의 대답은  쉼 없이 달려온 지난 시간을 소환하게 만들었다. 삶이 일정한 형태를 띠는 한 우리 삶은 습관 덩어리일 뿐이라 했다. 마냥 신기한 경험들이라 절로 신이 났던 배우 그룹 ‘서프라이즈’ 멤버로서, 2년간의 연습생 시절과 맞물려 시작된 그의 커리어는 반복되는 행동이 만들어낸 극적인 변화, 즉 습관의 힘을 터득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수많은 훈련을 통해 정교하게 설계된 습관을 몸에 익히고 대회에 참가하는 운동선수의 관성을 지녀온 덕분에 새로운 습관의 형성 속도가 남달랐을지도. 사극 드라마 <화정>을 시작으로 일일 드라마 <아름다운 당신>, 미니 시리즈 <딴따라> <혼술남녀> <하백의 신부>라는 커리어의 지점들을 거치며 차츰 우리 시선에 스며든 청년 공명은 먼저 독립영화와 저예산 상업영화에서 심도 깊게 기본기를 다졌다. 데뷔작 <얼음강>을 시작으로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수색역> 등의 초기작들은 그간 우리가 봐온 젊고 자유분방하며 천진난만했던 드라마 속 모습과 차이가 있어서 그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데뷔작인 인권영화 <얼음강>으로 말문을 연 덕분인지, 그는 실제로도 철철 흘러넘친다는 ‘비글미’를 잠시 잠그고 차근차근, 또박또박, 청춘의 순간들을 나직하게 더듬어가기 시작했다.


최근 1, 2년간 삶의 속도가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맞아요. 스물네 살 때는 시속 24km로 시간이 가고 서른엔 30km로 간다는 말을 들은 적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의 속도를 즐기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연습생 시절에 데뷔작 <얼음강>을 찍게 됐는데 그때의 시간과 지금을 비교하면 확실히 삶에 가속도가 붙은 거 같아요. 너무 빨리 지나간 시간들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데뷔작이 인권영화였다고요 세상에 공개된 건 서프라이즈 멤버들과 참여한 웹드라마가 처음이었지만 <얼음강>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 첫 작품이었어요. 옴니버스 영화 <어떤 시선>에 수록된 편이었는데, 종교적 신념 때문에 병역 거부를 선택하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이들의 인권을 존중해 대체복무제 같은 사회의 배려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주제를 던지는 영화예요. 민용근 감독님이 종교나 부모님의 이해 등을 우려하는 질문들을 하셨는데, 당시 저에게 그런 건 문제가 안 됐고 첫 작품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렇게 제가 모르고 있던 사회의 이면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요.


보통 배우들이 데뷔작 얘기할 땐 당시의 열정과는 달리 쭈뼛거리게 되는 포인트가 있잖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그래도 전 누가 물어보면 “봐주세요” 그래요. 영화 속 상황도, 이런 작품 했다고도 얘기하고 싶어서요. 초기작들에서 제 역할의 흐름을 보면 지금과는 많이 달라요. 병역 거부자 역할을 시작으로 성소수자, 가난한 동네의 불우한 환경에서 밑바닥 인생을 사는 청년 역할도 했어요. 저와 완전 다른 성향을 끌어내 극대화한 작업들이라 하나하나 좋은 자양분으로 남아 있어요.



블랙 터틀넥 스웨터는 Dior Homme.


최근작 <하백의 신부> ‘비렴’과는 거리가 있는 캐릭터들이었네요 네. 재작년부터 드라마에 참여하면서 젊고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많이 보여줬는데 사실은 그게 제 원래 성격이랑 비슷해요. 그래서 굉장히 편했어요. <하백의 신부> 비렴도 ‘신’이라는 생소한 부분만 제외하면 내면에 순수하고 자유분방함이 크게 자리 잡은 아이라는 점에서 제 모습과 크게 다른 거 같진 않아요.


<혼술남녀>를 기점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좀 달라졌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화정>으로 드라마 작업을 시작해 <아름다운 당신>과 <딴따라>는 촬영이 맞물려서 넘어갔고, <혼술남녀>는 전작과 텀이 일주일밖에 안 됐어요. 작품 사이사이에 틈이 없었으니 대중의 반응은 물론이고 제 연기를 되돌아볼 겨를도 없었고요. 그럼에도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이게 뭐지’ 하는 푸념도 안 했고 ‘열심히 하다 보면 사람들이 알아봐줄까’ 하는 생각도 못했어요.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이랑 재미있게 놀고, 재미있게 촬영하자는 생각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거든요. 주위 분들도 저를 현장을 즐기는 긍정적인 아이로 보는 것 같았고요. <혼술남녀>를 끝내고 처음으로 대중의 시선을 느꼈을 땐 ‘와 신기하다’ 그랬어요. 신선했어요, 정말. 한편으론 한없이 부족한 연기를 돌아보게 됐지만, 내가 달려온 시간이 값졌다는 것과 그 사이 많은 걸 얻었다는 것도 알았고요.


스스로를 ‘아이’라고 부르네요. 그러고 보니 정수정(크리스탈) 씨도 공명 씨를 ‘귀엽고 순한 애’라고 표현했어요 저는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정말 커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편이고 애교도 부리고 스킨십도 하면서 친근함을 최대한 표현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혼술남녀>의 3인방이었던 기범, 동영 형들과는 아직도 자주 연락하면서 만나고 <하백의 신부> 동갑내기 3인방과도 호흡이 잘 맞았어요.


공명 씨의 자료를 찾아보는 도중 최근 들어 ‘애교’라는 단어를 가장 밀도 있게 접한 것 같아요. 애교라는 단어를 잊고 있었던 사람을 위해 설명 좀 해줄래요, 그게 뭔지 ‘애교 보여주세요’라고 했을 때 반응하는 행동이나 ‘뿌잉뿌잉’ 뭐 이런 거라기보단 오픈 마인드로 상대방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게 애교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좋아서 정말 자연스럽게 나오는 표현이요. 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애정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타입이에요.


키스 신은 어때요. 할 때마다 사랑에 빠질 것처럼 마음이 끌리진 않나요 아무래도 이야기의 흐름이나 상황에 지배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키스 신을 떠올려보면 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에서 남자랑 해본 적도 있고, 단막극 <개인주의자 지영 씨>랑 웹드라마 <방과 후 복불복>에서도 신이 있었어요.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에서는 그 순간 진짜 사랑에 빠진 것 같은 감정이 드는 반면, 어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하는 키스도 있기 때문에 그때마다 감정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하백의 신부>에서의 키스 신은요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렴이라는 캐릭터가 어찌 보면 로맨티스트의 면모도 있는데, 제가 보기에 이번 신은 살짝 오글거릴 거 같아요. 확 이렇게 일방적으로 해가지고…. 좋아하는 감정과 장난 삼아 하는 느낌, 홧김에 하는 분위기가 섞이기도 했고, 그날의 촬영이 멜로 라인과는 다른 분노를 표출하는 신들이 많이 오간 터라 아쉬움이 있어요.


아쉬운 키스 신 이후 둘 사이는 어떻게 되나요. 원작과는 다른 결말인가요 잘됐으면 좋겠어요(웃음).


같은 작업을 계속할 때 탄력이 붙는 시점이 있잖아요. 그런 느낌을 종종 받았나요 연기 탄력은… 음… 진행 중(웃음)? 근데 쉬지 않고 작품을 하다 보니까 카메라 앞에 섰을 때 뭔가 잘된다, 편하다 하는 느낌이 올 때가 있어요. 솔직히 아직은 그게 언제 시작되는지, 어떤 때 가능한지에 대한 데이터는 없지만 그때의 느낌을 기억하려고 해요. 하지만 또 그 기억에 의존하면 안 될 때도 많아서 대본에 충실하려고 해요.


내공이 발휘되는 순간이 오겠죠 경험이 자연스럽게 쌓여 나중에 이것이 나오게 되면 정말 좋겠어요. 전 어떤 느낌이 들 때 뭔가 끄적이는 걸 좋아해요. 예전에 하정우 선배님이 대본에 필기해 놓은 걸 본 적 있는데, 거기서 영감을 받아 연기 분석할 때 캐릭터의 느낌 같은 걸 대본에 쓰거든요. 좀 장황하게 일기처럼요. 그런데 대본을 너무 거칠게 쓰다 보니 나중에 다시 들여다볼 엄두는 안 나더라고요.


연기자 연습생을 거쳐 ‘서프라이즈’라는 연기자 그룹으로 데뷔했어요. 연기자 연습생과 연기자 그룹, 두 형태 모두 당시엔 이례적이었어요 당시 다른 소속사에선 신인 연기자를 뽑아 작품에 투입시키는 방식이었으니 좀 달랐죠. 당시에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진로에 대한 고민이 정말 컸거든요. 그때 부모님의 제안으로 모델 학원에 등록했는데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연기 수업이 특히 재미있었어요. 3개월 과정을 수료할 즈음 마침 소속사 오디션 공고가 있어서 응시했는데 운 좋게 합격하면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체크 패턴의 트렌치코트는 System Homme. 화이트 셔츠는 Burberry. 슬랙스는 D.answer.


연기자 연습생도 아이돌 연습생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나요 커리큘럼이랄까, 트레이닝을 위한 스케줄이 정해져 있었어요. 전 그전에 모델 학원 3개월 다닌 경험밖에 없어서 처음 경험하는 춤이나 노래 트레이닝 같은 게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우와, 우와 그러면서 열심히 하려고 했어요. 나중에 어떤 배역을 맡고 싶다거나,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보단 한 달에 한 번씩 받는 테스트를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 시간을 즐긴 것 같아요. 정말 순수하게요.


연기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넘사벽’이라 생각되는 어려움도 있었나요 아직도 고치고 있는 중인데 제가 흐리게 말하는 버릇이 있어요. 예전 작품을 보면 지금보다 심해요. 그런 단점들을 계속 생각하고 고쳐나가고 있어요.


태권도를 하다 포기했다고 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정말 좋아했고 육상, 야구, 축구 등 다방면에 소질이 있었는데 태권도를 할 때 제일 재미있고 잘해서 9~10년간 쭉 했어요. 부모님 두 분 다 운동을 하셔서 제가 그 ‘끼’를 타고난 것 같아요. 태권도 도장에 다니면서 여러 대회에 나갔는데 메달도 많이 따고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적도 있었지만 운동선수를 목표로 하진 않았어요. 만약 그랬다면 중·고등학교에 태권도부가 있는 곳에 지원했겠지만, 부모님이 힘들게 운동한 터라 운동은 취미로만 했으면 좋겠다는 기저가 깔려 있었어요. 포기했다기보단 나중엔 부상도 많았고, 어차피 선수를 목표로 한 게 아니어서 자연스럽게 된 거예요.


그렇게 김동현이란 사람이 배우 공명이 되었네요 제 이름은 소속사 부사장님이 지어주셨는데, 제갈공명처럼 지혜롭고 현명하게 길을 헤쳐 나가라는 뜻도 있고 발성의 공명처럼 울림이 있는 배우가 되라는 뜻도 있어요.


그 공명이 커지고 있는 건 동생과 함께하기 때문일 거란 생각도 들어요. 신인 보이 그룹 NCT의 도영이 친동생이라고 들었어요 처음엔 잘 몰랐는데 같은 분야에 있다 보니 확실히 의지가 되는 부분이 있어요. 친한 동료들과 나누는 이야기도 충분히 힘이 되지만 가족에게 듣는 조언은 또 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예전부터 동생한테 의젓하고 든든한 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 형제의 난 같은 건 없었나요 많이 싸운다는 두 살 터울인데 우린 그렇게 싸운 적이 없어요. 걔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데, 동생이 저를 많이 따르고 좋아했어요(웃음). 저는 이기적으로 대한 적도 많은 것 같은데 매번 우리 형, 우리 형 그러면서 따라준 것 같아요. 집에 가면 우리 둘 사진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서프라이즈 합숙 기간을 끝내고 독립했다고 들었어요. 자유를 만끽하고 있나요 초반엔 좀 힘들었거든요. 밥 먹을 때도 TV 볼 때도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게 되니까요. 근데 외로움이 느껴지는 시간이 좋더라고요. 어쨌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걸 원했으니까요.


혼자 있을 때 ‘멍 때리기’도 하나요 아뇨, 좀 부산하게 움직이는 편이에요. 영화 한 편을 작정하고 본다거나 하지 않는 이상 작은 집을 잘도 돌아다녀요. 속옷이나 수건이 쌓이는 걸 못 참아서 빨래는 자주 하고, 별로 어지르는 편이 아니라 청소는 드문드문 해요. 김치볶음밥, 김치전, 오일 파스타, 계란말이 같은 요리도 할 수 있고 가끔 먹고 싶은 음식이 있을 땐 만들기도 하는데 요리는 거의 안 하죠. 빨래를 깔끔하게 널고 싶은데 집이 좁아서 건조대의 날개를 펴면 냉장고가 안 열려요(웃음).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그 와중에 통로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기도 하고, 통로에 있는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거울을 보면서 운동도 하고 그래요.


펫을 키우고 싶지는 않은가요 애완동물은 책임감 있게 키워야 할 텐데 현재로선 여력이 없어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고양이보단 강아지, 아님 강아지 한 마리랑 고양이 한 마리를 어릴 때부터 같이 키워도 좋을 것 같아요.


큰 목표를 세우기보단 현재를 즐겼을 뿐인데 하나하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게 됐어요. 비결이 있다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에요. 약간의 여지는 두더라도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죠. 물론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적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잊어버리는 성격이에요. 생각보다 빨리 없어져요.


5년간 자신이 선택한 일을 하면서 생긴 어떤 믿음이 있다면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 내가 선택한 배우라는 직업과 연기에 대한 믿음이 확실히 커진 것 같아요. 그리고 일에 대한 믿음이 일상을 살아가는 공명 혹은 김동현이라는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무엇보다 내가 모르는 나와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어요. 사람들은 많은 걸 가지고 있으면서 그중 일부만 표출하고 살거나 혹은 숨기고 사는 경우도 많잖아요. 연기를 통해서 내 안에 있는 걸 하나씩 꺼내볼 수 있다는 게 좋아요. 그렇게 나를 여행하고 있지만, 시간이 나면 실컷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진짜 여행도 하고 싶어요(웃음).


CREDIT

사진 신선혜
컨트리뷰팅에디터 채은미
스타일리스트 구동현(NINE VISUAL)
헤어&메이크업 김환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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