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 > 스타 인터뷰

2017.01.10. TUE

MUSICIAN TALK

케빈오의 어제오늘내일

뉴욕에서 온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 그건 케빈의 어제다. 일 년이 지나서야 직접 만든 노래를 가져온 케빈 오의 오늘은 내일로 향한다


<슈퍼스타K>(이하 <슈스케>)라는 프로그램에 대해선 말이 많지만, 오디션에 도전한 사람들은 그와 무관하리만큼 순수하게 열정적이다. 케빈 오도 그렇다. 최종 우승의 무게가 그를 무겁게 에워싸기 전까지 케빈은 뉴욕을 떠난 적 없는 사람이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맨해튼에서 직장을 다녔지만, 모든 걸 때려치우고 밴드만 하던 시절을 지나 한국에서 뮤지션이 되기로 했다. 노래는 오직 한 곡, 이 곡은 케빈이 앞으로 들려주고 싶은 음악과 그간의 고민 그리고 어떤 결심을 갖고 건네는 말이다.


평소 곡을 쓸 때 곡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진짜 좋아하는 뮤지션 시빌 워스의 존 폴 화이트가 매일매일 숙제처럼 ‘오늘은 최대한 잘 써보자’ 하고 앉아서 노래를 쓴대요. 저는 그렇게 못해요. 어릴 때 원래 성격은 매일 숙제처럼 공부하고 그랬죠. 곡은 아무리 쓰고 싶어도 영화 보고, 여행 가고, 친구 만나고, 누굴 사랑하면 곡이 안 나와요. 모든 게 저한테 너무 가까워서요. 헷갈리기도 하고요. 그래서 사람도 안 만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 음악이 강하게 저를 찾아와요. <슈스케> 이후 완전히 준비된 상태로 나오고 싶었지만 결국 영원히 ‘준비’라는 게 없을 것 같고 완벽한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게 굉장히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냥 이 모습 이대로 보여지는 게. 


뉴욕으로 갔던 게 어떤 영향을 줬나요 그 전까지 사람들은 어떤 음악을 좋아하겠지, 한국적인 음악을 만들어야겠지, 포크의 연장선이어야겠지,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뉴욕으로 가니까, 제가 원래 하던 스타일을 제가 아는 대로 만들고 그걸 사람들이 좋아해 주면 감사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가사 한 줄 없이 뉴욕으로 갔다고 했는데, 갑자기 이런 스토리를 쓰게 된 이유는 대학 졸업 후 이스트 빌리지에 살았어요. 그때 사귀던 친구와 동네를 많이 걸어다녔죠. 그땐 몰랐는데 이번에 뉴욕에 다시 가 보니까 제가 그 후 4년간 단 한 번도 이스트 빌리지에 가지 않았더라고요. 옛사랑을 추억하면 그 사람보다 시간이나 장소 같은 디테일을 생각하게 돼요. 그 친구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얼굴 뒤에 흐릿하게 보이는 바 사인 같은 걸 보면서 추억이 떠올랐어요. 오랜만에 마지막으로 느끼는 감정, 이제는 다른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가 그렇게 나왔어요. 


케빈에게 사랑이란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제일 모르는, 계속 사라지면서도 다시 찾아오는 거요. 그래서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우린 이 세상에 먼지처럼 와서 마지막에 별처럼 사라지는 거고, 그 전에는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다음에 낼 EP 음반 제목도 <스타더스트>로 지었어요. 


<슈스케>에 도전한 것, 돌이켜보니 잘한 것 같나요 완벽하지 않았고 저만의 힘든 점도 있었고, 참가할까 말까 고민도 오래했죠. 그런데(사이). 네. 잘했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안 했으면 지금 계속 뉴욕에 있었겠죠. <엘르>와 만나지도 못했고. 어쩌면 음악을 안 하고 있었을지도. <슈스케> 방송을 아직 못 봤어요. 


아직도 안 봤다니요 네. 제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저한텐 투 머치라서. 아마 나이 들었을 때? 




서울엔 <슈스케>에 참가하러 온 게 처음이었죠 처음엔 쇼크를 받았죠.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거 자체가. 그런데 그런 이질감이 생각보다 빨리 없어지더라고요. 내가 한국인이란 걸 느끼고 나니까 여기가 나를 좀 받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고민이 많은 편인데 너무 많이 고민만 하면 아무것도 못하게 되고 어떨 때는 일단 저지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수많은 악기 중에서 케빈은 기타를 좋아하죠 기타는 제가 스스로 선택한 악기에요. 중학교 때 집에서 아빠의 옛날 기타를 찾았거든요. 엄마가 연애할 때 선물해 준 것 같아요. 아빠가 느끼하게 ‘로망스’를 가르쳐주기도 했죠(웃음). 그때 막 구글과 유튜브가 생겼고 그렇게 기타를 혼자 배웠어요. 뭘 배우고 싶을 때 구글 검색을 한 시간만 해 보세요. 거의 해결돼요. 한국은 사람들이 정말 바쁜데 미국에선 학생일 때 시간이 많거든요. 항상 기타가 옆에 있었죠. 


기타가 왜 좋았어요 모르겠어요. (긴 침묵) 설명이 안돼요. 


지금 치는 기타는요 악기 욕심이 많아요. <슈스케> 전에는 취미로 음악을 했는데, 그런 사람이 300만 원짜리 기타는 부담스러워서 살 수 없잖아요. 오늘 가지고 온 기타는 엄마가 인터넷으로 엄청 검색해서 마틴 기타 중에서 정말 좋은 모델을 사서 한국으로 가지고 온 선물인데, 사실 살짝 싫었어요. 존 메이어가 쓰는 기타라서요. 이미 누군가의 시그너처인 악기를 쓴다는 게 촌스럽잖아요(웃음). 그래서 엄마 이거 팔고 다른 거 살까 했더니 의미 있는 거라서 절대 팔면 안 된다고. 엄마는 의미 있는 것들을 되게 좋아해요. 


보컬리스트로서의 케빈은 어떤가요 저는 막 고음을 내지르는 사람은 아니에요. 딱 G까지만 부를 수 있어요. 친구들과 노래방 가면 왜 나만 ‘보고 싶다’ 못 부르지 하는 마음에 답답했어요(웃음). 그런데 예전에 읽은 토킹 헤즈 자서전 보니까 아무 의미 없는 ‘퐈퐈퐈’ 그런 소리도 의미보단 악기처럼 들리도록 가사를 썼다고 해요. 저도 마찬가지로 노래에 목소리를 맞추고 싶어요. 앞으론 어떤 곡에서든 제 목소리가 악기처럼 쓰일 수 있도록요. 


영어로 부를 때와 한국어로 부를 때 목소리가 달라서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소리가 나올 수도 있어요 맞아요. 저도 어색했던 시기가 있었죠. 제 목소리를 찾는 과정이라기보다 스스로 부끄러움이 점점 없어지는 과정이에요. 한국어로 노래하고 말하는 제 목소리를 받아들이는 거죠. 가사도 꼭 한국어로 쓰고 싶고 한국어로 노래하고 싶어요. 적어도 지금은.


CREDIT

PHOTOGRAPHER 김선혜
FASHION EDITOR 허세련
EDITOR 이경은
HAIR & MAKEUP 이은혜
DIGITAL DESIGNER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1월호
참고하세요!

저작권법에 의거, 엘르온라인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타 홈페이지와 타 블로그 및 게시판 등에 불법 게재시 불이익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