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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8. WED

MR. MASTERPIECE

고경표라는 조각

차가운 돌덩이를 갈고 깎으면 체온이 느껴질 만큼 정교한 조각상이 되듯, 자신을 담금질하길 마다하지 않는 배우 고경표도 완성되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크 네이비 터틀넥은 COS.


<엘르>와 2015년 1월에 만나고 두 번째네요. 잘 지냈어요 드라마와 영화 촬영하면서 열심히 살았어요. 즐겁게 일하다 보니 웃음도 좀 많아졌고요.


지난 인터뷰 때 부자 캐릭터 한번 해보고 싶다던 거 기억해요? <질투의 화신>에서 맡은 고정원이 재벌이에요. 소원 이뤘네요 진짜 그렇게 됐네요. 하하. 나름대로 고민도 많이 하고 선배님들 조언을 수렴해서 잡은 캐릭터인 만큼 많이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요.


정원이가 ‘로코물’에 양념처럼 등장하는 뻔한 재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물론 재벌 3세로 물려받은 것도 많지만 그냥 금수저는 아니에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사는 자수성가형 재벌이에요. 내공 있는 자의 여유로움이 풍기죠. 하지만 내면엔 외로움이 가득해요. 진부하지 않은 캐릭터라 더 정이 가요.


주연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진 않나요 사실 대본 받고 생각보다 제 분량이 많아서 작가님께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고정원이란 캐릭터에 힘을 실어주고 싶으니까 절대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시더라고요. 잘해낼 거라고 믿는다면서. 화신이와 정원이의 팽팽한 기 싸움이 확실한 대립각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래서 독하게 다이어트를 올여름에 촬영을 마친 <7년의 밤>이라는 영화에 출연하느라 살을 좀 뺐어요. 날렵해진 이미지가 고정원과도 잘 어울린다는 반응이 많아 습관처럼 운동하면서 체중을 유지하고 있어요.


조정석이나 공효진처럼 생활 연기의 대가들과 연기 호흡을 맞추는 게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 워낙 연기를 잘하는 분들이니까 선배님들이 저에게 맞춰주는 경우가 많죠. 가끔 제가 진부한 연기를 하고 있으면 두 분이 금방 알아채고 “그것보다 이런 식으로 한번 해 보면 어떨까?”라고 다른 방식을 제안하기도 하고요.


아직은 연애보다 친구와 학교가 더 좋다던 고경표가 삼각관계의 중심에 서다니 생각보다 쉽게 몰입할 수 있었어요. 공효진 선배를 보고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되던데요. 효진 선배의 미소나 눈빛이 상대방을 참 설레게 하거든요. 사람들이 왜 ‘공블리’라고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블랙 라운드 니트는 Emporio Armani.


고정원이 아닌 고경표가 친구와 같은 여자를 좋아하게 된다면 어릴 때의 저였다면 사랑을 쟁취하려 했겠지만 지금은 좀 다른 선택을 할 것 같아요. 1~2년 사이에 연애관이 많이 변했거든요. ‘쓸데없는 감정 소모는 하지 말자’ 뭐 이런 거죠.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는 게 아니라 삼각관계에 놓이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거죠. 인간관계에 감정을 쏟는 일에 지치기도 했고요. 인연이라면 억지도 당기거나 붙잡지 않아도 저에게 올 거라 믿어요.


노력 없이 사랑을 얻으려는 것 아닌가요 그냥 강요하고 싶지 않아서요. 저에게 멘토 같은 교수님이 계시는데 ‘강요는 사랑이 아니다’라고 했어요. 과거의 제 연애 방식이 부끄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전 자의식이 강한 편이라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을 존경해요. 저를 돌아볼 수 있게 해 주잖아요.


어떤 사람들과 친해지나요 감성이 풍부한 사람. 진지한 사람도 좋고요. 진지함이 결여된 인간관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열 살 많은 조정석과 극중에서 ‘절친’이잖아요. 어설프게 연기하면 친구처럼 안 보일 텐데 어때 보였어요? 너무 어려 보이던가요?


아무래도… 눈가의 주름… 같은 거?


동갑은 아닌 느낌 처음엔 부담됐는데, 재미있는 걸 하나 찾았어요. 제 주변에 돈 많은 형들을 보면 되게 젊어 보여요. 나이에 비해 피부가 얼마나 탱탱한데요. 정원은 화신이와 또래지만 자기관리를 잘해서 동안인 친구. 그런 거죠. 그런 설정이 극의 재미 요소가 되지 않을까요?


영화 얘기를 해볼까요. 2017년 개봉 예정인 정유정 작가의 소설과 동명의 영화 <7년의 밤>에서 맡은 역할은 서원이란 역을 맡았어요. 서원은 굉장히 약한 친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약함이 독함으로 변해 결국 강해질 수밖에 없는 인물이죠.


소설을 읽고 나면 이미 한 편의 영화를 본 것처럼 생생하고 몰입도 높은 글을 쓰는 작가의 작품이잖아요. 독자들의 기대가 충만한 서원을 영화에서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엄청나죠. 책을 읽어본 분들은 어쩌면 ‘고경표가 서원을 연기한다고? 말도 안 돼’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근데 저는 대본으로 먼저 <7년의 밤>을 봐서 그런지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스포일러가 될까 봐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서원의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밑단 풀린 그레이 니트는 MSGM by Beaker. 데님 팬츠는 Covert by Beaker.


드라마와 영화를 쉬지 않고 교차로 찍다 보면 매체의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질 것 같은데 영화나 드라마나 촬영이 즐거운 건 매한가지죠. 차이점이라면 영화는 찍어 놓고 한 번에 공개하니까 기다리는 설렘이 있고 드라마는 실시간으로 반응이 오니까 모니터하면서 다음 회에 할 연기에 바로 적용할 수 있어요.


만약 ‘고경표 눈빛 느끼해’라는 댓글을 본다면 그럼 바꿔야죠. 상처받으면서 다 찾아봐요.


포털 사이트에 이름도 검색해 보나요 거의 매일.


‘악플’ 보면 화나지 않아요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보다 쓴소리 하는 사람들의 요구도 충족시켜야겠다는 책임감이 앞서요. 물론 모두를 만족시킬 연기를 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노력해야죠.


힘들 땐 무슨 생각해요 이제는 생각을 많이 안 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정적인 날을 세울 일이 없어지더라고요. 이해가 안 가는 사람과 마주해도 일단 마음속으로 ‘이해하자’는 말을 반복해요.


그러면 이해가 되나요 간단해요. 전형적인 말 같지만 저 사람이 어떤 마음에서 날 이렇게 미워하는 걸까? 혹시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상처받지 않고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돼요. 신기하게 마음도 편해지더라고요.


많이 성숙해진 것 같네요 시간이 흐르면서 누구나.



베이지 터틀넥은 Hugo Boss. 네이비 와이드 팬츠는 COS.


지난번 인터뷰 때 “일단 면허를 따고 27세엔 군대에 가고, 29세에 제대해서 그때 만나는 사람 있으면 서른넷 정도까지 연애하고 그녀와 결혼할 거예요”라고 구체적인 동시에 막연한 인생 계획을 밝혔어요. 어떻게 변경됐나요 1년씩 그대로 밀렸죠.


35세에 결혼할 건가요 그때 짝이 있다면.


짝의 조건은 뭔데요 생각이 깊은 사람이 좋아요. 상대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요. 헌신적인 사랑을 원하는 건 아니고 자신을 사랑하지만 타인도 보듬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외모는 전혀 상관없고요.


27세면 한창 연애할 때 아닌가요 지금은 일에 집중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아직 군대도 안 갔는데 서로 상처 될 일은 하지 말아야죠. 만약 기다려줄 만한 사람이 있다면 몰라도. 그런 여자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제대하면 오히려 남자가 돌아서는 경우도 많잖아요. 진짜 기다려서 징그럽다고. 하하. 20대 초반이었다면 새로운 사람이 궁금하겠지만 이젠 저랑 맞는 게 중요하지 세상 어딘가에 얘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 같은 건 안 들어요.


여자친구 생기면 공개할 건가요 안 할 것 같은데요. 같은 일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여자친구한테 미안할 것 같아요. 저랑 만난다는 이유로 불필요하게 사생활을 노출해야 하잖아요.



굵은 짜임의 롱 니트 카디건은 J. W. Anderson by Koon. 버건디 터틀넥과 네이비 조거 팬츠는 모두 COS. 화이트 스니커즈는 Golden goose.


면허를 딸 거란 계획은 지켜졌나요 땄습니다, 드디어! 10년 된 중고지만 차도 샀어요. 연식이 좀 된 놈이라 약간씩 손 봐가면서 열심히 타려고요.


초보 운전 에피소드 같은 건 없어요 면허 따고 처음 혼자 연습하다가 실수로 접촉 사고를 냈어요. 제가 실수한 거라 상대편 아저씨가 엄청 화를 내시더라고요. 제가 차에서 내려 죄송하다고 하는데 갑자기 “어, 가만 있어 봐. 그 응답하라 나온 그 친구 아니야?” 그러시더니 차에 같이 있던 아저씨들을 부르더라고요. “어이! 나와 봐. 얘 알지?” 하면서요. 아저씨 세 분이 우르르 내리더니 “괜찮아. 괜찮아. 사진이나 한번 찍고 가”라고 하더니 오히려 제 차가 망가진 것 같다고 걱정해 주고 바쁠 텐데 어서 가라면서 차선에 쉽게 진입할 수 있게 수신호까지 해 줬어요. 너무 감사했죠.


얼굴이 알려져서 좋은 점도 있네요 한 번은 냉면 먹으러 갔는데 서비스로 요리를 메뉴별로 다 주시는 거예요. 제 연기를 보면서 즐거웠다고 챙겨주는 분들과 마주할 때 참 행복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고경표가 꿈을 향해 달리는 청춘들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과정이 쌓여서 결과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내가 원하는 걸 가지려면 뭘 해야 하는지 알아도 실천하는 게 힘들잖아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씩 해 나간다면 분명히 만족할 만한 결과와 마주할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얼마 전부터 그런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거든요. 나이를 떠나 청춘은 뭐든 할 수 있으니까.


이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요 예전에는 모든 면에서 완벽해지고 싶었어요. 그렇지 못함에 대한 열등감도 심했고. 근데 어느 순간 그런 내가 못나 보이더라고요. 완벽함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 저를 맞추려고 스스로 괴롭혔던 거죠. 이젠 나를 뽐내고 표출하는 것보다 얼마만큼 수용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게 느껴져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자연스럽게 저를 다듬어 나가는 거죠.


어떻게 늙고 싶어요 어디선가 꼰대와 멘토의 차이를 들었어요. 멘토는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조언해 주는 사람이고 꼰대는 내가 힘든 일이 없음에도 조언하는 사람이래요. 절대 꼰대는 되지 않기를.



CREDIT

EDITOR 김보라
PHOTO 김선혜
STYLIST 윤은영
HAIR STYLIST 노혜진(A. BY BOM)
MAKEUP ARTIST 노미경(A. BY BOM)
DIGITAL DESIGNER 최인아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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