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 > 스타 인터뷰

2014.07.08. TUE

JUNHO CHAPTER Ⅱ

'준호' 이야기

2PM에서 준호로. 시간을 다시 처음부터 써내려 가고 있는 한 남자에 관하여.

 

블랙 라운드 넥 니트는 Neil Barrett. 그레이 깅엄 체크 수트는 Umit Benan by Koon With a View. 구슬 십자가 실버 브레이슬렛, 작은 꼬임 실버 브레이슬렛, 블랙 도트 디테일의 실버 링은 모두 Frica.

 

 

 

 

 

 

네이비 싱글 블랙 재킷, 그레이 라운드 넥 티셔츠는 모두 Balmain.  스트라이프 팬츠는 Andrea Pompilo by Koon. 골드 포인트 카무플라주 슬립온은 Giuseppe Zanotti. 십자가 펜던트 네크리스, 구슬 십자가 실버 브레이슬렛, 작은 꼬임 실버 브레이슬렛은 모두 Frica.

 

 

 

 

 

 

회화적인 패턴의 퍼플 컬러 셔츠, 쇼츠는 모두 Todd Snyder by Beaker. 레터링이 들어간 보드 삭스와 버건디 넥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핑크 포인트 화이트 스니커즈는 Adidas.

 

 

 

 

일본에서 솔로 가수로 데뷔하면서 더 바빠졌지? ‘욘사마’만큼 인기가 많다면서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웃음). 지난해 7월에 첫 미니 앨범 <키미노 코에>를 발매했는데 그때만 해도 회사에선 결과를 두고 긴가민가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집계했던 앨범 판매량이 8만 3000장 정도?

 

지금은 회사에서 뭐라고 이야기하나 ‘준호를 과소평가했다!’ 사실 그런 우려도 당연하다. 솔로로 일본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건 내가 처음인데 혹시라도 반응이 안 좋아서 괜히 2PM에 타격을 입힐 수 있잖아. 근데 이상하게도 걱정은 안 되더라. 그냥 나만 잘하면 잘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앨범 판매량에도 크게 신경 안 썼는데 막상 발매 직후 오리콘 차트 3위를 차지하니까 뿌듯하긴 하더라.

 

2PM이 아닌 ‘준호’로 인정받는 기분 내겐 터닝 포인트이자 기회라서 그 자체로 소중하다. 동시에 맨몸으로 서 있는 기분이다. 2PM 활동 땐 멤버들과 서로 부족한 걸 채워 나가니까 그러면서 장점이 극대화되는 부분이 있거든. 솔로는 말 그대로 홀로 무대에 서는 거니까 껍질을 홀랑 벗은 ‘백숙’ 같은 느낌이 들더라 (웃음).

 

그룹 활동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이 많았나 보다 아이돌 그룹은 아무래도 하나의 단체로 비친다. 멤버 각각의 속성보다 팀으로 더 굳건하게 나가는 일이 우선시된다. 축구팀을 예로 들면 선수 개인이 아무리 골을 잘 넣어도 공격수, 수비수로 역할을 나누고 활동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일본에서 활동해 보니 어떤가 가수로서 자부심이 많이 생겼다. 한국에서 그러지 못했단 의미는 결코 아니다. 다만 일본엔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아이돌로 여전히 장수하고 있는 스맙(Smap), 아라시(Arashi) 같은 대선배들이 많아서 인상적이었다. 평생 아이돌로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탄탄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도 아이돌로 활동할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요즘 그 고민이 제일 크다.

 

솔로 가수에 이어 배우로 활동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 2PM 활동이 정말 행복했지만 2PM 하면 떠오르는 ‘준호’의 반응이 필요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결국 가수든, 배우든 대중의 관심을 먹고사는 직업이잖아. 관심이 없으면 밥을 못 먹는 거고. 얼마나 배가 고프겠나. 처음으로 자신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어서 그런 갈증이 많이 해소됐다. 갈망했던 일을 하나씩 할 수 있게 되니 기쁘다.

 

JYP엔 어떻게 들어가게 됐나 지금으로 치면 <슈퍼스타 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 서바이벌>에 출연했다. 전 세계적으로 6천500명가량의 도전자가 신청했는데 그중 상위 12명에 뽑혀서 3개월간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때 같이 뽑힌 친구가  (옥)택연, (황)찬성, (한)선화, 주(Joo)다.

 

2008년 2PM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니 데뷔한 지 벌써 7년째다. ‘매너리즘’을 느낀 적은 ‘I’ll be back’을 준비할 때 어깨를 다쳤다. 과감한 아크로바틱 동작을 하다가 어깨의 ‘관절순’이 끊어졌다. 팔을 거의 못 쓰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바람에 우영이가 내 역할을 대신 했는데 당시 많이 우울했던 것 같다. 시간이 없어서 수술도 못했고, 다치고 나서 일주일 뒤에 바로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너무 아파 한꺼번에 진통제 8알을 먹었다.

 

여전히 그 상태는 아니지 한 2년 악으로 깡으로 버티다 2년 전에 수술했다. 어느 순간 팔이 말을 안 듣더라. 머리까지 고통이 옮겨갈 정도로 신경이 손상됐다. 수술한 뒤에도 80%밖에 팔을 못 쓸 거라 하더니 손을 위로 쭉 올리면 통증이 느껴진다. 2년째 재활 훈련 중이다.

 

수술을 못할 정도로 개인적인 삶이 없는데, 가수 생활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이것 아니면 할 게 없다(웃음). 원래 자기가 좋아하는 게 일이 되면 ‘딜레마’가 생긴다. 종종 친구들이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나에게 상담을 많이 한다. 그럴 때마다 똑같이 말한다. ‘관두고 싶으면 관두고, 할 거면 어중간하게 하지 말고 제대로 해라.’ 일이 잘 풀릴 때도 똑같은 고민을 할 것 같거든. 머릿속에 ‘이것 아니면 안 돼!’란 생각이 들면 아무 생각 없이 가는 거다. 지금은 뭐 관두고 싶다 아니다 하는 생각 자체가 없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 진짜 해야 할 일은 못한다’는 영화 <감시자들> 속 대사가 떠오르네. 정말로 하고 싶은데 못하는 상황 많지 그렇지. 오늘처럼 화보 촬영이 있는 날 너무 피곤해서 자고 싶거나, 친구들과 놀러 가고 싶어도 못하잖아.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어쨌든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지금껏 포기한 일 중 가장 아쉬운 것 1집 때부터 최근까지 내가 다닌 나라들, 그리고 그곳에서 봤던 공연장과 유적들에 대한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었던 게 새삼 슬프게 느껴졌다. 여권은 벌써 다섯 번이나 갱신했는데 손에 꼽을 만한 추억을 만들지 못했다는 게 아쉽다.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너무 쉽게 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뭐 이제부터 깨달으면 되니까. 지금부터라도 ‘기록’을 남기려고.

 

연기 데뷔작인 영화 <감시자들>에서 감시 형사 중 하나인 ‘다람쥐’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아, 막상 영화 오디션에선 진짜 연기를 못했다. 오디션 보던 날이 어깨 수술한 지 4일째 되던 때였다. 수액으로 몸이 ‘띵띵’ 불어 있었다. 다행히 조의석 감독님이 좋게 봐주셔서 역할을 맡게 된 것 같다. 오디션 현장에서도 연기 테스트를 한다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다람쥐’를 연기할지에 대한 계획을 늘어놨었다. ‘기린보다 다람쥐란 별명이 낫겠다, 나이 많은 선배보단 나이 어린 선배가 낫겠다’ 뭐 이런 얘기.

 

 

남자배우의 ‘로망’인 액션영화에 또 캐스팅됐다. 이병헌, 전도연, 김고은이 출연하고, 박흥식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협녀: 칼의 기억>(이하 협녀) 얘기다 <협녀>는 검술을 다루는 사극이라서 <감시자들>과는 또 달랐다. 훨씬 더 어려웠다. 이번엔 홍이(김고은)와 맞붙는 장면에서 모형 칼에 잘못 맞아서 한동안 깁스를 하고 다녔다. 그런데도 재미있더라.

 

시놉시스에 ‘율’은 야망이 있는 무사로 설명돼 있던데 음, 사실 그게 전부다. 솔직히 큰 비중은 아니다. 스승을 배신하면서 목표를 이루려는 어린 날의 덕기(이병헌)를 그대로 닮은 캐릭터랄까. 그리고 우연히 만난 여자에게 깊은 사랑을 느낀다.

 

함께 출연한 전도연이 그렇게 예뻐했다면서! (전)도연 누나가 나를 챙겨주는 게 신기하고 고마웠다. <협녀> 촬영하면서 너무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셈이다.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많이 없었지만 늘 “준호 어딨니? 보고 싶네”라고 얘기하면서 찾으셨다. 가끔 (이)병헌 형님, (김)고은이와 함께하는 술자리에도 불러주셨고.

 

말수가 적은 편은 아니네 없을 땐 진짜 없다. 물론 마음에 드는 주제가 있을 때 얘기하는 것은 좋아한다. 그러다가 얘기할 게 없으면 또 아무 말도 안 한다.

 

곧 일본에서 발매될 2집 솔로 앨범 <Feel>은 1집처럼 전곡을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했다고 내가 만든 노래를 내가 부른다는 즐거움이 있다. 뮤직비디오용 의상, 헤어 시안도 직접 찾는다. 감독님과 방향성을 이야기해 나가면서 내것을 만드는 과정이 진짜로 재미있더라.

 

준호의 음악을 모니터해 주는 가장 냉정한 비평가는 완성된 곡을 옆사람에게 들려주고 의견을 구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모든 걸 공개하는 시점에 대중에게 최초로 평가를 받는달까. 곡을 다 만들면 꼭꼭 숨겨두고 아낀다. 아, JYP 엔터테인먼트 내에 곡을 감별하는 부서가 따로 있어서 맨 먼저 그 팀에 곡을 들려주긴 한다. 듣자마자 좋다고 얘기하더라(웃음).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JYP 오디션 본 것. 말도 안 되는 도전이었다. 뽑힐지 몰랐다. 경험 삼아 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운 좋게도 합격했다. 생각보다 결과가 좋으면 그게 늘 운인 것처럼 느껴진다. 참 가혹한 것 같다. 덕분에 스스로 노력을 더 할 수밖에 없다.

 

어릴 땐 어떤 아이였나 성질 급한 아이. 되게 빨랐다. 별명도 ‘날쌘돌이’였다. 노는 것도 좋아했고 운동도 좋아했다.

 

‘생각대로 안 살면 사는 대로 산다’란 이야기에 공감하나 생각한 대로 안 되는 세상인데? 안 되면 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냥 사는 거다. 어쨌든 그동안 마음에 들 때까지 노력하긴 했다. 이왕 하는 김에 멋있게, 맘에 들게 해야 하지 않겠냐? 끊임없이 내게 물어본다.

 

곧 일본 5개 도시에서 전국 투어 콘서트를 한다. 마지막 공연은 ‘부도칸’에서 한다 조용필 선배님도 공연하신 곳이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공연하기엔 굉장히 좋다. 일본 공연의 성지이자 명예의 전당 같은 곳이라 기쁘다.

 

콘서트에서 준비한 스페셜 프로그램이 있다면 콘서트 실황을 전국 각지 영화관에서 스크린으로 동시 생중계한다. 팝콘을 먹으면서 공연을 볼 수 있다. 이번 앨범에선 좀 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착한데 잘 노는 남자? 그런 느낌이다. 아마 콘서트에서도 그런 컨셉트로 공연하겠지.

 

세월호 참사 후에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부금을 전달했고, 영화 <더 테러 라이브>의 ‘베리어 프리 버전’ 제작에도 재능 기부를 한다고 들었다. 원래 사회적인 일에 관심이 많나 특별히 의식적으로 행동하진 않는다. 그저 내가 돕고 싶은 순간에 돕는 것뿐이다. 세월호 참사 때 익명으로 기부금을 전달했는데 공개돼서 당황스러웠다. 회사나 멤버들도 몰랐거든. 아버지가 젊은 시절 항해사로 일하셨다. 부모님과 이야기하다가 마음이 무거워져서 가족 이름으로 기부했다. 원래 좋은 일은 공개돼야 타인을 독려할 수 있단 입장이었지만 이번엔 웬만하면 조용하게 넘어가고 싶었다.

 

검은색 마스크를 쓴 공항 파파라치 컷이 많더라. 뭔가 나 건드리지 마, 이런 느낌인데. 사생활 공개에 민감해서인가 아주 민감한 건 아니다. 마스크를 한창 쓰고 싶을 때였다. 흰색은 좀 아파 보여서  싫었을 뿐. 그래도 검은색은 좀 무서운데 ‘포스’가 있잖아(웃음).

 

 

 

CREDIT

EDITOR 김나래
PHOTO 김영준
DESIGN 하주희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7월호
참고하세요!

저작권법에 의거, 엘르온라인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타 홈페이지와 타 블로그 및 게시판 등에 불법 게재시 불이익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