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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0. TUE

LOVE YOURS ACTUALLY

보수적인 여자의 개방적인 산부인과 이야기

어염집 규수라면 산부인과에 출입할 이유가 없다고 믿은 채 살아오다가 30대를 넘은 동정녀가 산부인과를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리게 된 이야기


고리타분한 여자의 산부인과 흑역사
혼전 순결을 지키며 보수적으로 살아온 K에게 산부인과란 친해지기 힘든 존재였다. 예를 들어 그녀가 20대 중반일 때, 회사 동료가 퇴사를 결심하며 “야근과 스트레스 때문에 자궁출혈이 생겼지 뭐야”라고 조용히 얘기한 적 있다. 그때 K는 주변을 살피며 모기만 한 목소리로 “그래도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할지 모르니까, 다른 사람한테는 그런 얘기 굳이 하지 마”라고 조언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참고로 서울라헬여성의원 김재원 원장에 의하면 K의 동료에게서 나타난 것과 같은 일시적인 비정상 자궁출혈은 정상 여성의 60%가 겪는 증상으로 성경험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혹시라도 자궁내막 용종, 자궁근종, 자궁선근증, 난소 혹 등으로 인한 출혈일 경우 그냥 방치했다가는 질환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K는 동료에게 쉬쉬하는 것이 좋겠다는 속수무책의 반응을 보인 것이다. 또 20대 후반에 건강종합검진을 받으러 갔던 K는 산부인과 검사 전 ‘성경험 유무’ 표시란에서 ‘무’에 동그라미를 쳤고 그로 인해 산부인과 검사를 건너뛰게 되었는데, 그때 K는 남모를 흐뭇함마저 느꼈다고 고백했다. 결국 그 흐뭇함은 훗날 K의 뒤통수를 치고야 만다. 자세한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자. 그런데 왜 종합검진을 진행한 병원에서는 K에게 산부인과 검사를 건너뛰게 한 걸까? 서울라헬여성의원 노은비 원장의 답변이다. “종합검진에서 시행되는 산부인과 검진은 주로 자궁경부암을 검사하는데, 성경험이 없는 여성에게는 발생률이 매우 낮은 질환인 데다, 자궁경부 세포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심한 통증과 처녀막 파열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보통 시행하지 않는 것이 맞아요. 하지만 성경험의 유무와 상관없이 발생하는 질환도 있기 때문에 생리불순이나 심한 생리통 등 이상 증세가 보인다면 항문 초음파나, 비교적 해상도는 떨어지지만 복부 초음파 검진이라도 시행해야죠.”


동정녀도 피해갈 수 없는 산부인과 질환
20대에 꿈꿨던 계획과는 다르게 K는 동정녀인 채로 30대에 접어들었고, 그녀의 생각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단체로 받는 종합검진에 후배 직원과 동행한 K. 모든 업무를 조목조목 가르쳐줘야 했던 후배가 산부인과 내진을 받으러 들어가는데 K 혼자 복부 초음파(이번에도 K는 성경험 ‘무’에 동그라미를 쳐야 했고, 신체 나이 30대 이상이기 때문에 종합검진에서 산부인과 질환을 복부 초음파로 검사하도록 권고했던 것)를 보기 위해 정수기 앞에 앉아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참고로 복부 초음파는 소변이 가득 찬 상태에서 확인이 가능) “적어도 한 가지는 내가 후배에게 배워야 할 것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약간 자격지심 같은 걸 느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자궁에 지름 6cm나 되는 근종이 있으시네요.” 말 그대로 ‘갑툭튀’한 자궁근종에 K는 울먹이며 생각했다. ‘왜 나처럼 자궁을 소중히 여겨온 사람이 이런 벌을 받아야 해?’
K는 그렇게 처음으로 산부인과 문을 열었다. 담당의사는 자궁근종은 일종의 양성 종양으로 가임기 여성의 20~30%가 가지고 있다며, 생리 양이 지나치게 많고 생리통이 심한 것, 빈뇨나 변비 등이 그 증상이라고 얘기했다. 실제로 K는 이전 해부터 생리 양이 심할 정도로 많아진 것을 느꼈지만, 스스로 ‘혈기’ 왕성한 자궁의 소유자로 착각했다. 의사는 사이즈가 크지 않고, 위치가 난임을 유발하지 않는다면 좀 더 지켜볼 수도 있겠지만 K의 경우엔 바로 제거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그렇게 K는 복강경으로 근종 절제수술을 받았다. K는 휴가를 써야 했기 때문에 회사와 아주 친한 친구 몇몇에게 이 사실을 알린 채 그 일을 없었던 일로 해버릴 생각이었다. 마치 K가 몇 년 전 동료에게 충고했던 것처럼….


가볍게 넘기면 안 될 질염
몇 년이 흘러 K는 결혼과 함께 동정녀를 졸업했고, 만혼이라도 신혼부부가 해야 ‘할 건’ 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K는 외음부에 심한 가려움증을 느꼈고, 급기야 속옷에서 이상 물질을 발견하게 된다. 리코타 치즈 같은 하얀 물질을…. 겁이 난 K는 원인이 성적인 것에 있을 것이라고 직감했고, 먼저 초록 창에 검색을 시도했다. 검색어는 ‘외음부’ ‘가려움증’ ‘분비물’ 그리고 ‘리코타 치즈’. 신기하게도 이를  모두 아우르는 지식검색이 존재했고, 그 밑에 달린 산부인과 전문의의 답변을 보고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바로 칸디다성 질염. 75%의 여성이 평생 한 번 이상 경험한다는 대표 질염으로, 성 접촉이 아니더라도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 곰팡이 균의 감염으로 일어난다는 것. K는 ‘지식인’의 안내에 따라 약국에서 항진균제를 사다 발랐고, 이틀 만에 치료가 됐다.
K의 경우 다행히도 산부인과 진료 한 번 없이 해당 질염으로 인한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질염에 대해 제대로 산부인과 진료를 받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심소현 교수는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질은 정상적으로 약한 산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성적인 원인이 아니더라도 잦은 세척 등으로 인해 질 내부의 환경이 알칼리화되면 질염에 걸릴 수 있어요. 가장 흔한 게 세균성 질염과 칸디다성 질염인데, 연고 등으로 쉽게 치료되기도 하고, 세균성의 경우 아예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죠. 그런데 이와는 달리 트리코모나스 균에 의한 질염은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해요. 악취가 나거나 고름 같은 분비물이 나오는 경우 의심해 볼 수 있는데, 치료하지 않으면 방광염, 자궁내막염, 골반염을 일으킬 수 있어요.”


아끼고 아낀 자궁인데, 난임이 웬 말
결혼 후 K는 바로 임신을 원했다. 지금껏 피임이나 가임에 대해 아무런 궁금증을 가진 적 없었던 K는 그냥 배란기에 남편과 관계를 갖기만 하면 무조건 임신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 석 달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않자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넉 달째 생리가 또 찾아오자, 결혼 4개월 차 부부에겐 흔치 않은 불임 클리닉 문을 두드렸다. 지금껏 산부인과 왕래를 꺼리던 K가 그토록 스피디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자궁에 너무나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K는 남편의 문제를 의심하던 중이었지만 의외의 진단 결과를 받았다. 바로 몇 년 전 받았던 근종 제거 수술로 인해 자궁 내 유착이 생겼고 그것이 임신 저해 요인일 수도 있겠다는 것. 그 후로 K는 배란일도 받아보고, 시험관아기 시술도 받아보기 위해 산부인과를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수개월 후 산부인과 상식이 풍부해지고, 내진 진료가 청진기 진료만큼 친근하게 다가왔을 즈음, K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아이를 임신했고, 건강한 딸을 출산할 수 있었다.


불임 클리닉 다니다가 이제는 피임 걱정
그런데 K에게 또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딸아이의 수유를 끝낸 직후의 일이다. 수유가 끝났는데도 생리가 시작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혹시 조기 폐경이 온 건 아니겠지?’라는 걱정에 산부인과를 찾았다. 진단 결과는 예상치 못한 둘째 임신. 수유 중에는 임신이 어렵다 들었고 난임으로 고생했던 터라 전혀 개념이 없었는데 수유 양이 줄어들자 배란이 시작됐고 첫아이 출산과 함께 자궁 유착 문제가 해소되면서 쉽게 둘째를 갖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둘째를 낳고 난 후 셋째는 계획에 없던 K 부부는 피임에 신경 쓰기로 했다. K가 머리털 나고 지금껏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피임이어서 우선 지인들의 케이스를 물어보았다. 배란기를 피하는 방법과 콘돔 사용이 가장 흔한 답변이었지만, 아예 남편이 정관수술을 받은 경우와 루프 시술을 받았다는 친구까지 생각보다 다양한 피임법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K 부부는 정확하진 않지만 가장 흔하고 쉽다는 이유로 배란기를 피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에는 가임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 아침 계산해 보니 남편의 정자가 질 내에서 6~7일 동안 생존하는 슈퍼 정자일 가능성을 배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시 초록 창 ‘지식인’께 여쭙자, 심지어 생리 중에도 임신은 가능하다는 식의 마이너한 가능성까지 긁어 모아 겁을 줬고, K는 금방 입덧이라도 할 것처럼 임신한 기분이 들었다. K는 헐레벌떡 근처 산부인과에 가서 사후 피임약을 처방해 달라고 했다. 의사는 K를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K씨. 사후 피임약은 일반적인 피임법으로 남용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일반 피임약에 비해 호르몬 함량이 약 10배 이상 높아 체내 호르몬 농도를 인위적으로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착상을 방해하는 원리입니다. 따라서 생리주기 자체를 바꾸기도 하고, 부정 자궁출혈이나 배란 장애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요. 게다가 피임 실패의 가능성도 있어서 복용 후 2~3주 이내에 정상적인 월경을 하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하죠.” 순간 K는 365일 중 300일 이상 감기 기운이 있다고 골골거리는 남편의 모습을 떠올렸고, 사후 피임약은 처방받지 않았다. 그리고 2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셋째 소식은 없다.
K는 얼마 전 우연히 영화 <라붐 2>를 다시 봤다. 영화 속에서 소피 마르소가 굴곡진 몸매를 드러내며 춤추는 장면에서, 그 모습을 바라본 그녀의 엄마가 “이제 나이가 되었으니 산부인과를 소개해 줄게”라고 얘기한다. 원래의 성향대로 “역시 프랑스란…” 하며 넘어갈 뻔한 K는 순간 이런 고리타분한 편견을 대물림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영화 속 멘트 역시 산부인과라는 단어에 피임이나 임신에 대한 우려가 주된 의미로 내재된 상황이 맞긴 했지만). 애지중지 동정만 지키면서 자궁의 건강은 돌보지 않았던 K지만, 딸만큼은 청소년기부터 생리통이 심해지는 증상에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서 교복을 입고라도 산부인과 전문의의 상담을 받으러 갈 수 있을 정도로, 진정으로 자신의 여성을 소중히 여기는 여자로 키우고 싶다고 K는 생각했다.

CREDIT

글 김지민
에디터 김미구
아트 김란
디자인 오주희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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