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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8. MON

NEW HERO

밀레니얼 시대의 얼굴

한동안 런웨이를 지배했던 막강한 슈퍼 모델들이 사라지고, 다양한 인종과 연령,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이 하이 패션계를 접수했다

지난 2월, 막스마라 쇼에 익숙지 않은 얼굴이 나타났다. 나타샤 폴리, 지지 하디드, 이사벨라 폰타나 등 누구나 아는 슈퍼모델들과 셀럽들이 즐비한 프런트로를 제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바로 히잡을 두른 소말리아계 미국인 모델 할리마 아덴(Halima Aden)이었다. 19세인 할리마가 두 번의 런웨이(그녀의 데뷔 무대는 카니예 웨스트의 이지 쇼, 곧이어 알베르타 페레티 쇼에 등장했다)에 섰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녀가 불러일으킨 화제성은 가히 놀랄 만하다. 2017 F/W 쇼의 최대 화두는 단연코 할리마였다. “할리마의 등장과 화제성은 여러모로 타당한 이유를 지니고 있어요.” 막스마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언 그리피스는 말한다. “고객들은 런웨이 위에 있는 모델들의 다양성을 보면서 컬렉션을 판단하죠. 우린 런웨이에 리얼리티를 반영하고 싶었어요. 이젠 뉴 본드 스트리트나 몽테뉴 거리 등 쇼핑 거리에서 막스마라 코트에 히잡을 두른 여성들을 보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니까요.” 지난 수십 년간 패션계는 ‘젊고 마르고 섹시한 백인 모델’을 기용해 왔고, 이는 늘 따가운 비판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2017 F/W 쇼에선 전통적으로 지속된 이 편협한 ‘이상형’에 반격을 가하는 런웨이가 펼쳐졌다. 드리스 반 노튼, 시몬 로샤, 돌체 앤 가바나 등은 잔 드 빌뇌브(70세), 베네디타 바지니(73세), 바바라 마스(67세) 등 백발의 시니어 모델들을 캐스팅했다. 또 마이클 코어스와 프라발 구룽, 오스만 역시 샘플 사이즈가 아닌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애슐리 그레이엄, 마키타 프링, 캔디스 허핀)을 내세워 파격적이면서도 훨씬 더 현실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최근까지 ‘다양성’은 대개 ‘인종’을 뜻하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15년 전 저널리스트 일을 시작했을 때 ‘런웨이와 광고 캠페인 속 흑인 모델의 부재’에 관한 기사를 다룬 적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고 매 시즌 비슷한 기사를 써야 했다. 이번 시즌, 마치 패션계가 다양한 아름다움에 눈에 돌린 듯 인종적 측면을 뛰어넘어 보다 포괄적이고 중요한 변화들이 눈에 띈다.





웹 매거진 <더 패션 스폿>의 편집장 제니퍼 데이비슨은 ‘가장 큰 변화는 다양성에 관한 정의’라고 말한다. 그녀는 2014년 ‘어느 브랜드가 다양성을 무시했는지‘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 사실 비백인 모델의 기용에 대해 말하고 있었죠. 하지만 최근에는 사이즈, 나이, 트랜스젠더 등 보다 포괄적인 얘기들이 더 많이 오가고 있어요.” 사이즈-제로에 대한 분노, 미성년자 고용 문제 등을 포함해 패션계는 마침내 커다란 미래를 향한 다양한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캐스팅 디렉터 제임스 스컬리는 모델계의 차별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난 2월 파리 패션위크에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랑방이 에이전시 측에 흑인 모델을 보내지 말라고 당부한 사실을 맹비난했다. 또 스태프들이 점심 휴식을 갖는 동안, 물이나 음식도 주지 않은 채 어두운 계단 통로에 모델을 대기시켰던 발렌시아가의 캐스팅 디렉터들 역시 맹렬한 비난의 대상이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랑방은 런웨이에 흑인 모델들을 내보냈고, 발렌시아가는 캐스팅 디렉터들을 해고했으니 말이다. 고객층에도 변화의 흐름이 감지된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AT 커니에 따르면 ‘60세 이상의 시니어들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소비자 그룹’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 대학원의 제니 다로치 교수는 2015년 <애드위크>와의 인터뷰에서 ‘구매력을 지닌 소비자로서 나이든 여성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셀린, 케이트 스페이드, 생 로랑 등은 1934년생의 소설가 존 디디온, 91세의 패션 아이콘 아이리스 아펠, 전설의 싱어송라이터 조니 미첼 등이 뉴 시즌 캠페인에 등장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더 패션 스폿>의 제니퍼 데이비슨은 “일화로 판단한다면 ‘위대한 시즌’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수치를 놓고 봤을 때 결코 충분하지 않아요. 아직 일부 디자이너만이 다양한 모델을 기용했고, 이런 일이 기존보다 강력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에 불과하죠.”




 


2017 F/W 시즌 동안 총 7035명의 모델 중 플러스 사이즈 모델은 고작 30명이었다. 50세 이상의 모델은 21명으로 더 적다. 하지만 유색 인종 모델의 경우 22.4%(2016 S/S)에서 27.9%(2017 F/W)로 큰 폭의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캐스팅 디렉터 매들린 오스틸리는 “체형에 관해서도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변화가 절실하죠. 이런 측면은 반드시 이슈화돼야 해요”라고 말한다. 스트리트 캐스팅으로 유명한 매들린 오스틸리는 패션 잡지 속에서도 다양성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왔다. 하지만 제니퍼 데이비슨은 ‘체형의 다양성’과 그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마른 여성을 이상적으로 꼽는 건 한동안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내려온 인식이죠. 디자이너들이 광범위한 샘플 사이즈를 선보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어쨌든 패션의 이상은 특정한 판타지에 기반한 것이니까요.” 캐스팅 디렉터 제임스 스컬리는 가장 중요한 건 ‘올바른 균형’이라고 정의한다. “때로는 다양성이 모든 걸 아우르는 단어로 비춰질 수 있어요. 패션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모든 것을 다뤄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인종 문제는 결코 트렌드에 치우치는 일시적 주제가 될 수 없습니다.” 영국의 캐스팅 디렉터 니치 토핑은 구찌의 2017 프리폴 광고 캠페인 '소울 신(Soul Scene)'에서 전문 모델들과 영국, 미국, 유럽 등의 일반인을 혼합해 캐스팅했는데, <뉴욕 타임스>는 이를 두고 ‘다양성의 시선 끌기’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니치 토핑은 “자신 역시 흑인이고 캠페인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중요한 요점을 놓치고 있다. 잉글랜드 북부 소울 음악의 관중들은 대개 백인과 노동 계급이었지만, 음악은 주로 흑인들이 만들었다. 흑인 문화의 영향력은 종종 과소평가되기 때문에, 이를 혁신적인 방식으로 비틀어 표현한 구찌에 갈채를 보내고 싶다.”





논란은 둘째치고 켄덜 제너, 지지 하디드, 벨라 하디드 등 그동안 런웨이를 지배했던 막강한 모델들은 스트리트 캐스팅으로 발탁된 뉴 페이스 모델 애드아보아슬릭 우즈 등 다양한 인종의 모델들에게 자리를 내줬다. 중요한 건 이 모델들이 새로운 이슈를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모델 할리마 아덴의 경우 무슬림계 미국인으로 런웨이에 캐스팅되고 22만8000명에 달하는 인스타그램 팔로어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는 사실은 그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막스마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언 그리피스는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과거의 편협한 고정관념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죠. 우린 이를 깨뜨리기 위해 패션 미디어와 런웨이에서 더 많은 다양성을 추구해 나갈 겁니다.” 발렌시아가와 랑방이 얻은 쓰라린 교훈에서도 알 수 있듯, 그 어떤 산업도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번져가는 격렬한 반발을 피해갈 수 없는 시대다. 캐스팅 디렉터 제임스 스컬리는 이렇게 강조한다. “다양성의 물결에 합류하지 않는다면, 결국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CREDIT

글 KENYA HUNT
에디터 방호광
사진 IMAXTREE.COM
디자인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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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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