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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7. FRI

YVES SAINT LAURENT MEMORIS

여성에게 ‘자유’를 입힌 패션 혁명가, ‘이브생로랑’

여성 패션에 최초로 바지 정장을 도입하는가 하면 패션쇼에 흑인모델을 처음으로 세운 이브 생 로랑. 그는 패션을 진화시켰고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패션계를 너머 프랑스의 국가적 아이콘으로 불리는 이 위대한 대가의 삶을 엿들었다.



내가 디자이너 꿈을 키우기 시작한 건 크리스티안 베라르의 (희극)무대 의상을 보게 된 후부터다. 이 때부터 희극에 관심을 갖게됐고 방에 틀어박혀서 희극 속에 등장한 주인공들을 종이인형으로 제작해 그 인형의 옷을 만들며 놀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건데 내가 이 인형의 옷을 만드는데 열중할 수 있었던 것은 성격도 한 몫했다. 나는 소극적이어서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운동처럼 활동적인 일에는 치를 떨며 싫어했으니 말이다. 나에게 친구는 오직 인형들이 전부였다. 17세가 되던 해에 파리에서 열린 ‘디자인 콘테스트’에 참여했다. 그리고 칵테일 드레스 부분 1등을 차지했다. 세상을 다 갖은 듯 황홀했다. 이듬 해에는 당시 보그편집장이었던 미셸 드 브루노프의 추천을 받아 크리스챤 디올의 보조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는 행운도 거머쥐었다.  


나의 스승인 크리스챤 디올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나는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었다. 당시 내 나이 불과 21살. 정말 꿈 같은 일이다.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한 디올 오트쿠튀르 첫 컬렉션은 트라페즈 라인을 선택했다. 좁은 어깨에 높아진 허리선, 사다리꼴로 우아하게 펼쳐지는 드레스 라인으로 이것을 본 패션피플은 전통적인 우아함에 젊은 감각을 가미했다는 극찬을 표했다. 이런 첫 컬렉션의 성공은 내 이름을 딴 <이브 생 로랑 부티크>가 프랑스 파리에 창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이때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는 내놓았다) 난 이브생로랑의 첫 컬렉션에 몬드리안 룩을 선보였다. 이 룩은 평소에 즐겨봤던 예술작품을 옷의 패턴으로 적용한 것으로 나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내 나이 딱 서른살 때. 나는 일을 저질렀다. 내 인생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아이콘이자 시그너처가 된 르스모킹 룩을 만들었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겼던 턱시도를 변형시켜 여성의 의상에 적용시킨 것으로 최초의 여성용 바지 수트를 만든 것이다. 당시 여성 인권운동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까지 겹치면서 르스모킹룩은 그야말로 대히트를 쳤다. 또한 아프리카 수렵용 의상에서 착안한 사파리 재킷을 처음 선보인 것도, YSL 남성용 향수 론칭할 때 향수 광고 포스터에 직접 누드 모델로 등장한 것도 이때다. 이렇게 내 나이 30대 때는 ‘최초’의 기록을 선보였던 시기이고 동시에 스캔들의 시대이기도 했다.


40대에도 나의 패션 혁명은 이어졌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시스루 룩. 60~70년대의 성 혁명을 대표하는 패션의 하나다. 당시 가슴과 팔을 비롯한 보디라인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시폰 드레스의 시도는 엄청난 화제였다. 이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패션쇼에 세계 최초로 흑인 모델을 세운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이 패션계의 진화이자 혁명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나의 업적은 내가 47세 되던 날에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개인전을 열 수 있었다 (생존해 있는 패션 디자이너에게는 최초로 개인전을 열어준 이례적인 일). 이는 나의 의상이 현대 여성사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은 일이었다.


90년대 초반에 파리 패션계는 엉망이었다. 패션계의 약세로 나 또한 위기를 겪게 되었고 기성복 라인인 리브고쉬와 화장품 사업이 PPR 그룹에 인수되었다. 이런 패션계의 현실도 슬펐지만 가장 괴로운 건 따로 있었다. 그건 패션계가 전혀 예술적이지 않다 것.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저버리고 오로지 구매 욕구를 자극하려는 윈도 드레싱으로 전락한 시대에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난 2002년에 은퇴를 결심, 디자이너 인생 40년간의 작품을 테마로 고별 패션쇼를 열었다. 100여 명의 모델이 250벌이 넘는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섰고 피날레는 모든 모델이 르스모킹을 입고 등장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감동적인 순간을 잊지 못한다.


2008년 6월 1일, 나는 이 땅을 떠났다. 여기에 70년동안 머물면서 난 누구보다 이 세상의 모든 여성를 사랑했다. 그리고 진정으로 여성의 마음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여성을 구속시키는 옷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옷을 통해 여성 스스로 자유를 느끼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그 꿈은 어느정도 실현됐다고 생각한다. 후회 없는 소풍을 마친 지금 난 행복하다.





CREDIT

EDITOR 박세연
PHOTO GETTYIMAGES, YVES SAINT LAURENT
WEB DESIGN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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