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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8. SUN

A BIG DREAMER

또 다른 시작

푸시버튼 박승건의 유쾌한 런던 패션위크 도전기, 그는 아직 젊다


데뷔 15년 차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도전이 주는 의미가 궁금해요 2011년 S/S 컬렉션이 첫 무대였어요. 솔직히 그때보다 더 정신없었던 것 같아요. 당시는 겁 없이 열정으로 가득했다면, 지금은 그간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에요. 한마디로 ‘중고 신인’인 셈이죠. 수차례 패션쇼를 진행해 왔지만, 여전히 새로운 도전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있잖아요. 그동안의 경험이 많은 도움은 됐지만, 신인 시절에는 보지 못했던 현실적인 측면이나 이성적 사고가 여러 번 발목을 잡기도 했어요. 오히려 아는 게 없었더라면 패기만 가지고 무작정 덤벼들었을 텐데.
하비 니콜스, 네타포르테를 비롯해 홍콩의 I.T 등 글로벌 마켓에서는 이미 기반을 잡았어요. 그런데도 런던 패션위크에 진출한 계기가 있다면 예전부터 런던에서 패션쇼를 선보일 계획을 하고 있었어요. 개인적인 일이 겹치면서 조금 늦어졌지만…. 이번에는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지더라고요. 서울시 지원도 한몫했고, 여러 가지 여건들이 모두 따라줬어요. 놓쳐서는 안 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죠. 일본인들은 런던 패션에 남다른 동경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유년 시절에 일본 잡지를 보며 자랐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런던 패션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런더너들 특유의 친절하고 적극적인 반응도 큰 몫을 했죠. 우리 옷에 많은 관심을 보여서 정말 고맙더라고요. 매 시즌 출시되는 아이템 중에 ‘선더 힐(번개 모양 굽 장식의 신발)’이라는 상품이 있는데, 어느 날 누군가 복잡한 인파를 헤집고 찾아와 브랜드를 알려줄 수 있는지 정중하게 묻더라고요.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언젠가 해외에서 쇼를 하게 된다면 꼭 런던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오프닝 무대를 장식한 언밸런스드 실루엣의 팬츠 수트가 인상적이었어요. 컬렉션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사면초가’예요. 어느 날 지인과 통화하다가 사면초가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수첩에 네모를 그렸어요. 다음 날 디자이너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가 수첩에 그려놓은 네모를 보면서 ‘어깨 실루엣을 네모 모양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죠. 그렇게 컬렉션의 윤곽이 잡혔어요. 이번 시즌은 저에게 ‘혼돈’이었어요. 그동안 쇼를 열 번 넘게 선보인 디자이너로서 내공을 보여줘야 할지, 아니면 초심으로 돌아가 신선함과 재기발랄함을 담아야 할지…. 이 둘을 아우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모델의 독특한 헤어스타일도 눈길을 끌었어요 저는 문화적 황금기였던 80~90년대를 직접 겪으며 자란 세대예요. 그래서 제 옷에는 늘 80년대의 화려함과 자유분방함이 묻어나죠. 옷을 만들 때 가장 많이 생각하는 부분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생각했던 ‘퓨처리즘’이에요. 이번 쇼의 컨셉트를 예로 들면 ‘80년대 사진 속 어머니의 헤어스타일에 퓨처리즘을 가미하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죠. 시대 요소에 동시대적인 터치를 더하는 것. 제가 늘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죠. 개인적으로 이번 패션쇼에서 선보인 모델의 헤어와 메이크업이 무척 맘에 들었어요.
특별하게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작품성’과 ‘실용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싶었어요. 물론 시선을 끄는 쇼 피스는 그 자체로도 임팩트가 있지만 금방 싫증 나기 마련이죠. 문득 컬렉션을 준비하는 내내 이런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어요. ‘푸시버튼의 옷에서 전위적인 실루엣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건 뭘까?’
준비 과정에 힘든 건 없었나요 아무래도 동양인이 적다 보니 언어 장벽이 높았어요. 또 한국과 다른 캐스팅 시스템에 어려움을 겪었죠. 한국에서는 보통 한 번에 모델 캐스팅이 이뤄지는 편인데, 해외의 경우 오픈 타임 형식으로 캐스팅이 진행되거든요. 이틀 동안 캐스팅을 위해 무작정 기다렸죠. 정해진 타임 테이블도 없을뿐더러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마음에 드는 모델을 캐스팅할 기회를 놓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해외에서 만나는 한국 모델들이 유독 반갑게 느껴지더라고요.




쇼를 마친 기분은 어땠나요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저는 일본 잡지를 보며 디자이너의 꿈을 키웠어요. 당시 잡지 속에서 일본인이 동경하던 런던 패션 역시 저에게도 많은 영감을 줬어요. 제가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런던에 와 있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했어요. 쇼를 도와준 헤어 스타일리스트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일본인이었어요. 그들을 진두지휘하며 동경하던 도시에서 쇼를 준비하는 풍경이 무척 생경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이 뭉클했어요. 국위선양하는 느낌도 들고, 그래서인지 그때의 상황과 감정에 더 고취된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음악에 조금 문제가 있었어요. 패션쇼 하루 전날, 사운드트랙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DJ와 연락이 두절된 거예요. 온갖 인맥을 총동원해 방법을 찾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당시에는 ‘정말 음악 없이 워킹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저히 음악 없이 무대가 완성될 것 같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서울에 있는 지인에게 도움을 청해 기존의 사운드트랙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러던 찰나에 DJ와 연락이 닿았죠. 다행히 쇼는 별 탈 없이 마무리됐지만, 그때의 불안함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네요.
이번 시즌 런던 컬렉션에 참석하는 모든 브랜드가 일제히 퍼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해 눈길을 끌었어요. 이런 시대 흐름에 누구보다 빨리 동참했고요 2011년 F/W 컬렉션 이후 단 한 번도 리얼 퍼를 사용한 적 없어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퍼를 사용하는 게 꺼림칙하더라고요. 가끔 디자이너로서 소재 제약을 받는 건 조금 아쉬워요. 예를 들어 무희를 디자인으로 표현한다고 가정했을 때 ‘깃털을 사용하지 않으면 어떤 소재로 움직임을 표현해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제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물론 앞으로도 리얼 퍼를 사용할 계획은 없고요.
푸시버튼 하면 전성기 시절의 마돈나가 떠올라요. 당신이 추구하는 여성상이 궁금해요 ‘젊은 여자, 젊어 보이는 여자 그리고 젊어 보이고 싶은 여자’예요. 누군가는 젊음에 대한 일종의 강박 아니냐고 묻더군요. 사실 제가 추구하는 젊음은 단순히 외모에 집착하기보다 자기 일을 가지고 진취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당당한 여자예요. 그런 여성이라면 충분히 제 옷을 입고 즐길 수 있어요.
다음 시즌에도 당신의 도전은 유효한가요 물론 하고 싶죠.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해요. 디자이너이기에 앞서 브랜드를 이끌어가는 경영자로서 경제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이번에는 서울시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았지만, 예상보다 훨씬 큰 비용이 들더라고요. ‘꼭 도전해야지’라는 생각은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다만 조금 느리더라도 내실을 잘 다진 다음, 누구에게나 좋은 평가를 받는 브랜드로 도약하고 싶은 욕심이 커요.
서울에서도 쇼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런던보다 착장을 더 늘리고 남성 룩도 함께 선보일 예정이에요. 런던에서 보여준 옷을 그대로 내놓기보다 조금씩 비틀고 변형해서 새롭게 구성하고 있어요. 오히려 서울에서의 준비 과정이 더 정신없는 것 같아요.
올해가 가기 전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아주 짧게라도 어디론가 떠나서 휴식을 취하고 싶어요. 원래 런던에 좀 머무를 계획이었지만, 곧바로 서울에서 선보일 패션쇼 준비도 해야 하고, 반려견 푸시 생각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수록 불안감이 커져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오롯이 저만을 위한 시간을 가졌으면 해요. 가까운 제주도라도 가서 휴식을 취하고 싶네요.
요즘 푹 빠져 있는 것 ‘The Internet’의 모든 곡. 그중에서도 ‘Come over’.



CREDIT

사진 고원태
에디터 이건희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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