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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6. FRI

BEYOND THE STREET

무너진 경계

비주류에 갇혀 있던 스트리트 컬처가 오랜 전통의 하이패션 런웨이부터 호텔, 뮤지엄, 신문 등 기성세대의 일상에 침투했다

출고를 앞둔 <뉴욕 포스트지>의 모습.


2019 S/S 루이 비통 멘즈 컬렉션이 끝난 직후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킴 존스와 함께한 버질 아블로.


CFDA에서 최우수 남성복 디자이너 상을 수상한 슈프림제임스 제비아.



지난 8월 13일 <뉴욕 포스트>는 지루한 월요일 아침 뉴욕 시를 가로지르는 어떤 ‘소동’을 일으켰다. 하루 23만 부가 발행되는 조간 신문이 특별한 이슈가 없음에도 완판됐기 때문이다 (이 한정판 신문은 현재 이베이에 최대 20달러에까지 판매되고 있다). 이 사건 한가운데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슈프림이 있다. 신문 1면 제호 아래에 기사 대신 들어간 새빨간 사각형의 슈프림 로고 하나가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뉴욕 포스트>는 평소 트럼프를 지지하는 등 보수적 입장을 취해온 신문으로 알려진 만큼 이번 협업이 꽤 파격적으로 다가온다. ‘패션 오스카’라 불릴 만큼 공신력 있는 CFDA 패션 어워즈의 선택 역시 슈프림이었다. 1994년 슈프림을 창립한 제임스 제비아(James Jebbia)가 유력한 수상 후보였던 버질 아블로를 제치고 올해의 남성복 디자이너상을 수상한 것. 패션계 변두리에서 하위 문화를 대변하는 스케이트보드 브랜드로 시작한 슈프림의 CFDA 수상은 오늘날 패션계를 잠식한 스트리트웨어의 위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제임스 제비아는 20여 년간 슈프림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왔지만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인 게티에 단 두 장의 사진만 존재할 뿐이다). 사실 스트리트웨어가 위세를 떨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뎀나 바잘리아나 고샤 루브친스키 같은 이국적인 이름들이 패션계를 잠식한 순간조차 잠깐의 유행에 그칠 것이라던 모두의 예견을 깨고 스트리트 웨어가 하이패션과 일상에 더욱 깊숙하게 파고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슈프림과의 협업이라는 실험을 거쳐 킴 존스가 떠난 멘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 버질 아블로를 임명한 루이 비통의 행보는 무척 특별하다. 카니예 웨스트의 패션 어드바이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이름을 알린 버질 아블로는 전문적인 패션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전통적 패션 디자이너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럭셔리 하우스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가 더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문화와 예술을 후원하고 전통을 지지해 온 펜디도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에 ‘F is For…’라는 이름의 디지털 플랫폼을 공개하고 음악과 예술, 라이프스타일을 버무린 야심 찬 프로젝트를 위해 세계 각국의 길거리 아티스트 여섯 명과 ‘미래’를 주제로 특별한 아트워크를 선보인 것. 영국, 이란, 미국, 일본, 홍콩에서 온 아티스트와 한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조대(Jodae)는 로마에 있는 펜디 본사 옥상에서 경계 없는 예술 작품을 창조해 냈다. 장소의 한계성을 뛰어넘는 ‘그래피티’라는 새로운 예술체계는 하이패션으로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공산권 문화와 자본주의가 결합된 유년기의 기억과 다양한 서브 컬처를 믹스해 베트멍과 발렌시아가를 가장 ‘핫’한 레이블로 만든 장본인인 뎀나 바잘리아도 그래피티에 심취했다. 긍정적인 문구들로 완성된 ‘그래피티 동산’을 배경으로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유산에 스트리트 무드를 얹은 스노보드 룩이 펼쳐지며 그야말로 ‘쿨’한 경관을 연출했으니.



의상부터 베어브릭과 보드데크까지. 아 마 마니에르의 쿨한 셀렉션.


한편 오는 9월 17일 2019 S/S 컬렉션으로 신고식을 치를 버버리의 리카르도 티시는 아트 디렉터 피터 사빌과 함께한 새로운 모노그램으로 각국의 도시를 도배하고 있다. 국내 성수동에 맨 처음 모습을 드러낸 모노그램은 한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세바(Xeva)의 작품. 이처럼 그래피티는 단순한 거리 낙서가 아닌, 도시와 패션을 아우르는 새로운 예술로서 대중과의 연결 고리를 더욱 단단히 하고 있다. 이색적인 컨셉트 스토어와 숙박 업계의 참신한 시도에도 주목할 것. 스트리트 패션계의 대부라 불리는 후지와라 히로시는 지난 8월 9일 도쿄 긴자에 패션 편의점, ‘더 콘비니(The Conveni)’를 열었다. 수영장, 당구장, 주차장에 이은 후지와라 히로시의 네 번째 컨셉트 스토어인 더 콘비니는 제품 패키지부터 진열, 인테리어, 직원 유니폼, 공간에 이르기까지 편의점이라는 컨셉트에 충실했다. 실제 편의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은 물론 특별히 제작된 더 콘비니 캡슐 컬렉션과 프라그먼트 디자인, 네이버후드, 더블탭스, 뱅키시 같은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의 의상도 만날 수 있어 매일 많은 인파로 붐빈다고. 워싱턴 DC에는 스트리트웨어 편집 숍과 숙박 시설을 결합한 복합생활공간인 ‘아 마 마니에르(A Ma Maniere)’가 오픈했다. 한 건물에 ‘의’와 ‘주’를 결합한 아 마 마니에르의 숍은 나이키, 아디다스, 베어브릭, 오프화이트™ 같은 브랜드 의상과 액세서리, 책과 스케이트보드로 채웠고 객실은 호화로운 예술품과 장난감을 비롯해 스나키텍처가 디자인한 테이블 등으로 꾸며 스케이트보더뿐 아니라 패션 피플의 성지로 거듭나기에 충분해 보인다. 최근 홍대에 오픈한 라이즈 호텔도 유스 컬처와 예술적인 감성을 결합한 새로운 스타일의 호텔이다. 여기에 스타 셰프 데이비드 톰슨의 레스토랑 ‘롱침’과 스트리트 패션 편집 숍 ‘웍스아웃’, 신진 작가들의 실험 전시를 선보이는 ‘아라리오 갤러리’, 청담동 르 챔버의 멤버들이 만든 바 ‘사이드 노트 클럽’까지 젊은 청춘은 물론이고 기성세대까지 아우르는 다채로운 시설을 구비했다.


사회적인 이슈와의 협업을 즐기는 디자이너 헤론 프레스톤은 미국항공우주국 나사와 함께했다.


긍정적인 문구를 그래피티로 새긴 발렌시아가의 2018 F/W 런웨이.


지난달 성수동에 그려진 버버리의 새 모노그램 로고.


이쯤 되니 또다시 궁금증이 생긴다. 일상에 불어닥친 ‘스트리트 컬처’는 한낱 유행에 불과한 것일까? 어디까지 진화하고 언제까지 지속될까? 다시 CFDA로 돌아가 제임스 제비아가 남긴 2분이 채 되지 않는 수상 소감이 답이 될 것이다. “나는 슈프림을 패션 회사 혹은 디자이너라고 여기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인식에 감사드립니다.” 올해의 디자이너상 수상자가 남겼다기엔 다소 불친절한 소감은 슈프림이라는 브랜드의 정체성뿐 아니라 슈프림이 하위문화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슈프림 그리고 스트리트 컬처가 지닌 태초부터 ‘쿨’한 태도와 기성세대와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심, 평등함은 2018년의 패션 하우스와 대중을 사로잡은 비결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스트리트 정신은 점차 우리 주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이다. 우리는 이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즐기면 된다. 하이패션과 스트리트웨어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고루하고 지루한 시대가 도래했으니.

CREDIT

에디터 이연주
사진 DAVID LEZCANO ON UNSPLASH, IMAXTREE.COM, GETTYIMAGESKOREA
디자인 황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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