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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8. SUN

FEARLESS FEMALES

강인하고도 우아한 세계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2019 디올 크루즈 컬렉션을 통해 또 한 번의 걸작을 완성해 냈다

오프닝과 피날레는 멕시코 여성 기수 8명이 텍사스 출신 밴드, 크루앙빈의 음악을 배경으로 퍼포먼스를 펼쳤다. 


크루즈 컬렉션은 특정 장소에서 영감받은 꿈과 아이디어에서 시작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패션위크가 열리는 4대 도시라는 제약이 없으니 브랜드들은 장소 선점에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인다. 환상적인 풍광을 비롯해 감각적이거나 유서 깊은 건축물, 동시대적인 룩의 3박자가 합을 이룬 완벽한 쇼를 위해 패션 하우스들은 기획부터 짜릿한 마무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2017년 5월, 캘리포니아 주 칼라바사스(Calabasas)에 있는 샌타모니카 산맥의 사막을 배경으로 대형 열기구를 설치하고 크루즈 쇼를 선보인 디올도 그중 하나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영입된 후 선보인 첫 번째 크루즈 컬렉션으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았던 런웨이는 디올의 유산에 치우리가 발렌티노 시절부터 영감을 받아왔던 대지의 광활함, 스테판 존스가 창조한 카우보이 햇 등을 버무린 ‘웨스틴 로맨틱’이 펼쳐졌다. 2017 S/S 시즌 런웨이에 ‘We should all be feminists’ 티셔츠를 입고 모델 어맨다 구그가 등장한 이래 디올 하우스를 지탱해 온 건 ‘강인한 여성’들이었으며 페미니즘은 디올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로 자리매김했다. 여성성을 자유롭게 표현한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첫 번째 크루즈 쇼에 이어 2019 크루즈 컬렉션은 파리 북쪽으로 40km 떨어진 작은 도시, 샹티이(Chantilly)에서 열린다는 초대를 받았다. 레이스의 전통이 살아 있는 도시이자 승마로 유명한 샹티이는 프랑스의 문화유산을 간직한 곳인 만큼 ‘하우스의 유산에 집중한 런웨이를 선보이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디올과 샹티이의 인연은 긴밀하다. 1947년 가을, 크리스찬 디올의 두 번째 패션쇼에 처음으로 샹티이라는 이름의 이브닝드레스가 등장했으며, 그 후 1957년 그의 마지막 F/W 컬렉션에서 다시 한 번 샹티이라고 불리는 우아한 이브닝 앙상블을 선보인 것. 그의 후계자인 이브 생 로랑과 마크 보앙의 작품에서도 샹티이를 떠올리게 하는 컬렉션을 공개한 적 있다고 하니 전통과 자유, 과거와 현재, 페미니티와 매스큘린을 잘 조합하는 치우리의 능력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니테일 헤어와 스테판 존스가 완성한 모자.



레이스를 연상시키는 깃발을 장식한 패션쇼장.



승마 연습장이 줄무늬 띠 장식을 두른 런웨이로 변신했다.


지난 5월 25일 금요일 저녁, 파리에서 샹티이를 향하는 도로는 전 세계 패션 인사들과 프레스들의 차로 인산인해를 이뤘으며, 1시간 30분 남짓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줄기는 쇼장에 다다르자 장대비로 바뀌었지만, 일곱 번째 콩데 왕자인 루이-앙리 드 부르봉(Louis-Henri de Bourbon)이 만든,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승마장인 그랑드 에퀴리(Grandes E′curies)의 위용은 빗속에서도 손색없었다. 삼각 깃발이 나부끼는 돌로 완성된 화려한 성을 따라 들어가니 줄무늬 띠가 둘러진 둥근 승마 연습장이 나타났고 폭우를 뚫고 어느 때보다 역동적인 크루즈 컬렉션의 막이 올랐다. 오프닝은 블랙 & 화이트 엠브로이더리 드레스를 입고 솜브레로(챙이 넓은 멕시코 모자)를 쓴 8명의 기수들이 텍사스 출신 밴드 크루앙빈(Khruangbin)의 라이브 음악을 배경으로 우아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렇다. 온몸으로 말해주듯 치우리의 두 번째 크루즈 컬렉션의 테마는 바로 ‘디올로데오(Diorodeo)’. “이번 크루즈 컬렉션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승마 기술을 선보이는 에스카라무사(Escaramuzas)라고 불리는 멕시코 여성 기수들을 차용했어요. 거친 스포츠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여성미를 잃지 않고 우아하게 해내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라고 치우리는 말했다. 디자인 면에서는 디올의 아카이브에서 라이딩 재킷과 여러 가지 복장을 참조,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눈길을 끈다. 피티드 재킷의 대부분은 허리를 강조한 벨트와 조각한 듯 여성미를 강조한 자수와 레이스 장식의 풀 스커트를 매치했고, (마치 비가 올 것이라고 예상한 듯) 카키 컬러 레이스업 러버 부츠가 쇼 전반을 장식했다. 이외에도 프랑스의 전통 제작법인 투알 드 주이(Toile de Jouy)라 불리는 호랑이, 뱀 같은 야생 동물 시리즈 프린트를 레이스나 스커트 등에 활용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한편 치우리는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을 최초로 묘사한 칠레 출신의 작가 이사벨 아옌데(Isabel Allende)의 소설 <영혼의 집 La Maison aux esprits>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았다. “이 소설은 마법과도 같은 리얼리즘을 다루고 있어요. 신화의 현실, 환상과 꿈을 이야기하며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여 있죠. 신화적 아름다움을 지닌 아마존 여전사의 이미지에서 영향을 받아 장르를 넘나드는 스포티 의상이 가능하게 됐죠.” 여기에 스테판 존스는 멕시코 기수들이 착용하는 전통 모자를 재해석한 스트로 모자를 완성했으며, 포니테일 헤어와 여러 버전의 새들 백 등이 어우러져 우아하면서도 힘 있는 페미니티, 아트와 히스토리, 헤리티지와 모더니티가 조화를 이룬 또 한 번의 걸작을 완성해 냈다.



투알 드 주이 기법으로 완성한 뱀, 호랑이 등의 프린트.



아티스틱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디올로데오’ 컨셉트로 꾸며진 2019 크루즈 컬렉션.




새들 백 플랩과 멕시코 플라워 자수가 특징인 코르셋 벨트. 



바 재킷과 허리를 강조한 넓은 벨트, 볼륨감이 풍부한 튤 스커트가 매치된 패션쇼.


2019 크루즈 컬렉션에서도 페미니티의 힘을 극찬하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목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지난해 크루즈 컬렉션이 좀 더 야성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담았다면, 이번엔 두려움 없는 당당한 여성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고 할까. 남성의 눈으로 바라본 섹슈얼리티를 과도하게 강조한 의상이 각광받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이고 그 중심에 치우리가 있다. 멕시코 여성 기수와 샹티이 성의 레이스,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이어진 마법의 리얼리즘에 이르기까지 2019 크루즈 쇼에 담긴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비전은 유서 깊은 아카이브를 영민하게 활용, 밀레니얼 시대에 디올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또 한 번 현명하고 명백하게 제시했다. 폭우 속에서도 성큼성큼 런웨이를 하던 당당한 모델은 ‘We should all be fearless females’라고 외치는 듯 했다.



샹티이 성의 노하우를 반영한 레이스와 화려한 멕시코 자수.



화이트 레더와 프린지로 장식한 디올의 뉴 백.

CREDIT

에디터 정장조
사진 ADRIEN DIRAND, COURTESY OF DIOR, ESTELLE HANANIA, GETTYIMAGESKOREA,
INES NANAI, SOPHIE CARREE, MORGAN O’DONOVAN
디자인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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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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