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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3. SAT

THE MEN AT THE TOP

옷으로 말하는 남자

패션이라는 분야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각인시켜 온 한 총과 <엘르>코리아가 만났다


HAN CHONG

페미닌한 기퓌르 레이스 컬렉션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브랜드 셀프 포트레이트(Self Portrait)의 한 총.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비욘세를 비롯한 슈퍼 셀럽들을 고객으로 둔 셀프 포트레이트는 부드럽고 로맨틱한 레이스 룩에 도회적이고 간결한 실루엣을 조합해 동시대 여성들이 원하는 ‘페미니티’를 충족시킨다. 슈퍼 셀럽들의 화려한 레드 카펫 스타일은 물론, 보다 특별한 하루를 원하는 여성을 위해 합리적인 컬렉션을 선보이는 한 총의 특별한 감각과 마주했다.



2018 S/S 뉴욕 컬렉션의 셀프 포트레이트 런웨이 피날레.


한 총의 쇼디치 스튜디오는 잘 정돈된 카오스와도 같다. 벽면에는 형광색 포스트잇과 페이지 끝이 너덜너덜해진 편지들, 수많은 이미지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테이블마다 메모장과 패브릭 견본들이 놓여 있고, 정신없이 분주한 장면의 중심에 서 있는 말레이시아 출신 디자이너가 모델과 얘기 중이다. 잠시 후 나를 발견한 한은 현장을 떠나 복도 쪽 의자로 이끈다. “처음 시작은 저와 인턴 한 명에 불과했어요.” 그가 미소를 지으며 운을 뗐다. “이제 그녀는 고객서비스 매니저가 됐고 우린 28명으로 팀을 구성하게 됐죠. 모든 건 이 스튜디오에서 출발했어요.” 셀프 포트레이트는 어찌 보면 아이러니한 브랜드라 할 수 있다. 그는 크리스틴 스튜어트, 레이첼 맥애덤스, 리즈 위더스푼과 비욘세 등 슈퍼 셀럽을 위한 드레스를 만들지만, 동시에 레드 카펫과는 동떨어진 간결하고 합리적인 룩도 선보인다. 결혼식 들러리 원피스나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살짝 멋을 낸 듯한 드레스까지, 모두 높은 퀄리티와 장인 정신으로 제작되지만 가격대는 합리적이다. 상의는 160파운드, 드레스는 200~400파운드로 이뤄진 가격은 셀프 포트레이트를 핫 리스트 반열에 올린 요소 중 하나다.


2013년에 론칭한 이후, 브랜드는 파티 드레스의 상징으로 자리해 왔다. 한은 자신의 시그너처 룩인 기퓌르 레이스 드레스를 시즌마다 업데이트된 실루엣과 소재로 선보인다. 인기 높은 아젤레아(Azaelea) 레이스 드레스는 매치스 패션(Matches Fashion)에서 하루 만에 매진됐다. 또 2015년 봄/여름 시즌의 파스텔컬러 드레스와 2016년 가을의 점프수트 역시 없어서 못 파는 아이템으로 등극했지만 한 총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지키되 늘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지난해 수익은 70%나 상승했고, 파티에 그의 옷을 입고 등장하는 여성들도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합리적인 가격대와 좋은 품질을 겸비한 여성 컬렉션을 선보이길 원했어요.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 재학 중일 때, 럭셔리 하우스 매장에 들르곤 했지만 아무것도 살 수 없었죠.” 한은 패션의 대중화를 시도한 것을 브랜드 성장의 원동력으로 꼽는다. 셀프 포트레이트는 하이 스트리트 제품보다 비싸지만 20~30대의 여성들은 윔블던으로 향하는 비욘세나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시사회장에 나타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점프수트를 입을 기회를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 “특별한 날, 2000파운드가 넘는 드레스를 걸칠 여성들은 많지 않죠.” 


디자이너로서 한이 쿠튀르 요소에 집중한다면, 정작 자신은 편안한 스타일을 즐긴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과하게 꾸미지 않아요. 캐주얼한 편이죠. 날씨가 무덥기 때문에 대부분 반바지와 티셔츠 차림이에요.” 페낭(Penang)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 외에 8명의 숙모와 함께 성장했다. 어린 시절의 패션에 대한 관심도 이때 형성됐다. “결혼식이 있을 때면 다들 한껏 멋을 부린 차림이었어요. 패션이 자신감을 심어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페낭의 아트 칼리지에서 공부한 후,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를 졸업하게 된다. “90년대였어요.” 그가 회상한다. “당시는 존 갈리아노와 알렉산더 맥퀸의 전성기였죠. 섬마을 출신인 저는 느닷없이 패션계에 완전히 빠져든 거죠.” 당시 소호는 가레스 퓨와 헨리 홀랜드를 비롯해 재능 넘치는 신예들의 발판이었다. 이들은 한이 학창시절에 자주 갔던 클럽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은 문을 닫은 붐박스를 정말 좋아했어요. 디자이너들과 드래그 퀸들이 한 지붕 아래서 파티를 즐기곤 했죠. 정말이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었어요.” 고향으로부터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의 파티 룩은 한에게 색다른 스타일에 대한 아이디어를 선사했다. “데이빗 보위처럼 보이길 원했어요. 갈리아노 옷을 입고 싶어서 잡지 파티 사진들을 잔뜩 모았지만, 그럴 만한 돈은 없었죠. 드레스를 만들어 친한 친구들에게 팔기 시작했어요. 부유한 학생들의 숙제를 대신 해주면서 돈을 받기도 했고요. 돈이 되는 건 무엇이든지 했고,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나머진 몽땅 옷에 투자했어요.” 셀프 포트레이트의 본격적인 출발은 그가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를 졸업하면서부터다. “광범위한 고객층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업적인 측면을 배울 수 있었죠.” 잠시 톱숍에서 근무했다는 그가 말한다. 그곳에서 한은 하이엔드와 스트리트 패션 사이의 간극에 흥미를 느꼈고, 당시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친구 이본느 호앙(Yvonne Hoang)과 온라인 패션 플랫폼 스리 플로어(Three Floor)를 시작했다. 하지만 빠른 성장을 달리던 시기에 그는 스리 플로어를 빠져나왔다. “처음은 나와 이본느가 시작했지만  그녀의 남편과 동생, 아들이 영입됐어요. 다들 제 목소리를 내고 싶어했고 상황은 복잡해졌죠.” 결국 2013년 11월 그는 독자 노선을 택해 셀프 포트레이트를 론칭했다. 브랜드는 잇따라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는데, 2014년 셀프리지 백화점을 시작으로 매치스 패션, 네타포르테와 ASOS의 바잉이 이어졌다.


소셜 미디어는 셀프 포트레이트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은 인스타그램을 적극 활용해 고객들의 피드백을 얻는다. “좀 더 보수적인 아시아에선 노출이 강한 드레스에 티셔츠를 함께 매치하곤 해요. 반면 런던 여성은 날씨 때문에 레이어드를 좋아하죠. 여성이 주어진 옷을 다양하게 스타일링하는 걸 보는 건 굉장히 흥미로워요.” 다음 달, 한은 마릴본의 앨버말 스트리트에 첫 매장을 오픈한다. 셀린 스토어 작업으로 유명한 건축가 캐스퍼 뮐러 니어(Casper Mueller Kneer)가 설계를 맡았다. 그는 셀프 포트레이트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새로운 장을 써내려가고 있는 셀프 포트레이트에서 여전히 변치 않는 한 가지가 있다. “저는 여성들이 브랜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늘 염두에 두고 있어요. 그녀들은 언제나 감각적이고 강인하며,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습니다.”


CREDIT

글 SHANNON MAHANTY
스타일리스트 HARRIET STEWART
사진 JAMES NELSON
번역 권태경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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