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 > 디자이너 스토리

2017.12.14. THU

WE ARE OBSESSED

트렌드 메이커

버질 아블로의 손을 거치면 패션 문화가 된다는 새로운 공식이 정립되고 있다. 동시대를 향한 폭발적인 트렌드를 만드는 디자이너

“이제 막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네요.” 버질 아블로가 나이키와 만든 ‘The Ten’ 컬렉션을 소개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당일 아침이었다. 그는 최근에 협업한 리모와 트렁크와 루이 비통과의 협업 루머를 일으킨 제프 쿤스 백을 들고 나타났다. 누구나 가질 수 없다는, 그가 만든 나이키× 오프-화이트 에어 프레스토를 신고서. 현재 버질 아블로는 손만 댔다 하면 빵빵 터트리는 화제의 인물이다. 자신이 걸어가는 행보대로 밀레니얼 세대가 주목하고 동참한다. 그는 2009년 펜디 하우스에서 인턴 경험을 쌓고, 그 후 카니예 웨스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더니 2012년 랄프 로렌의 빈티지 셔츠를 싼값에 사들여 파이렉스(Pyrex), 화이트(White; DJ로서의 그는 Flat White라는 예명을 쓴다), 23을 크게 프린트해서 판매한 파이렉스 비전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에이셉 라키와 제이지, 비욘세의 애정 공세 속에서 2013년 단기간에 오프-화이트를 론칭해 스트리트 패션과 하이패션의 교집합을 만들어낸 실력자. 패션에만 발을 묶어두지 않고 일리노이 공과대학교에서 전공한 건축 실력을 살려 마이애미 아트 바젤에서 가구 컬렉션을 선보이고, 몽클레르와 나이키, 지미 추, 이케아 등과의 작업을 통해 협업의 귀재로 주목받는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터. 버질 아블로의 인생을 그래프로 본다면 규모와 성장 면에서 지금 가장 빠른 수직 상승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이런 그가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몰아치는 환호성에 쉬이 휘말리지 않는 사람 같았다. 침착한 첫인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고요한 일상과 다소 거리가 먼 듯하다. 인터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스마트폰을 손에서 ‘절대’ 내려놓지 못했으니까.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바빠 보인다고 하자 뉴욕에서 진행 중인 촬영 팀을 컨펌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국에 발도장만 찍고 가듯 당일 저녁 싱가포르로 떠난다는 말도 덧붙였다(바로 다음 날 아침, 그의 인스타그램에 오프-화이트 싱가포르 매장에서 촬영한 스토리가 올라왔다). 일상을 분 단위로 쪼개 쓰는 삶. 하지만 그는 고른 숨을 쉬며 ‘일이 즐겁다’고 말한다. 직장인의 정해진 답변처럼 무미건조한 고백은 아니었다. 스트리트 패션의 역사를 다시 쓰고, 유구한 유산을 앞세우는 하이패션의 영역에 진입했으며, 패션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떠들썩한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단기간에 놀랄 만한 필모그래피를 쌓은 그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 누구보다 유연한 사고와 자세를 갖춘 디자이너였다. 



2018 S/S 런웨이를 통해 지미 추와 협업한 슈즈를 선보인 버질 아블로. 포장한 선물처럼 비닐을 응용한 디자인이 이색적이다.


서울에 여러 차례 방문했다 이번 방한은 나이키 ‘The Ten’ 프로젝트를 통해 진화의 일환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제품을 직접 소개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다. 한국의 로컬 문화를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기대된다. 서울 길거리 속 풍경이나 누군가의 옷차림이 영감이 될 수 있다. 


프린트를 더해 재가공한 파이렉스 비전의 옷부터 ‘주의’ 표시를 떠올리게 하는 스트라이프나 책상 위의 클립처럼 일상적인 요소를 시그너처로 내세운 오프-화이트 그리고 나이키와의 협업까지. 당신이 만든 것들이 새로운 패션 문화가 된다는 걸 실감하는가 나는 좋은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고민할 뿐이다. 디자이너로서 내가 가진 심미안을 제품에 분명히 드러내길 원한다. 스트라이프 패턴처럼 멀리서 누가 봐도 내가 만든 옷인 걸 알 수 있도록.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익숙한 이미지나 사물을 응용했고, 이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차별화된 인상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이런 방식이 새롭고 신나는 것에 자극을 느끼는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적중한 것 아닐까?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의 경계를 허물었다고 평가받는다 디자인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가 바로 이 부분이다. 두 문화의 만남은 매력적인 발상인데, 문제는 서로 적절하게 ‘잘’ 섞여야 한다는 거다. 나는 오프-화이트가 이런 조합을 잘 보여주는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의 서로 다른 코드를 더하고 덜어내는 과정을 거쳐 오프-화이트 아이덴티티가 구축됐다. 


일리노이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그 감각을 살려 마이애미 아트 바젤에서 가구 컬렉션도 선보였다. 건축적 사고가 어떻게 패션으로 향하게 됐나 건축은 내 사고방식을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다.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건축물은 없지만 전 세계인이 건축을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인다. 이런 현상은 패션에도 통용된다. 스타일도 건축처럼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내 디자인에 등장하는 그래픽적 라인이 건축적인 실루엣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오프-화이트의 첫 번째 런웨이인 2016 F/W 컬렉션부터 2018 S/S 컬렉션까지 모든 룩을 일렬로 놓고 보면 성장하는 여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번 2018 S/S 컬렉션은 다이애나 왕세자 빈에게서 영감을 받아 여성성이 더욱 돋보였다. 스트리트 패션의 DNA를 강조하던 스타일에 변화를 줘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했나 오프-화이트가 ‘진화’했다고 말하고 싶다. 여성 컬렉션은 여성을 위한 옷, 남성 컬렉션은 남성을 위한 옷처럼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여성 컬렉션을 선보이며 여성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오프-화이트에 여성스러움을 좀 더 불어넣어 진일보한 패션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이키뿐 아니라 지미 추와 협업한 슈즈를 2018 S/S 런웨이에서 선보였다. 신발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가 모든 협업은 흥미로운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잘 팔릴 제품을 만들기 위해 손잡는 게 아니다. 디자이너의 미학보다 상업성이 먼저일 수 없다. 그리고 협업은 그 분야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대상과 함께한다. 지미 추와 나이키가 그랬다. 내가 시도해 보지 않았던 것들, 기존의 브랜드가 하지 않았던 것에 도전할 수 있어서 협업은 매력적이다. 많은 사람이 지금 어떤 브랜드의 러브 콜을 받고 있냐고 물어보는데 특별한 계획은 없다. 2019년 제품으로 선보일 이케아와의 협업에 집중하고 있다. 


나이키와 작업한 ‘The Ten’ 반응이 폭발적이다. 나이키를 상징하는 스니커즈를 재창조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도전이다 협업을 준비하며 10개의 스니커즈를 하나의 컬렉션으로 바라봤다. 나만의 색깔을 접목해 서로 다른 생김새와 역사를 지닌 스니커즈에 연결 고리를 만들었다. 매 시즌 컬렉션을 아우르는 컨셉트를 설계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 메모하길 좋아하는 내 아날로그 감성을 ‘AIR’, ‘FOAM’ 등의 글자로 표현했다. 대문자 폰트나 오렌지 탭 등 오프-화이트의 상징적인 디자인도 적극 활용했다. 


디자이너에게 영감이란 때론 피할 수 없는 숙제와 같다.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는가? 영감을 찾으려 애쓰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여행을 다니다 본 풍경, 친구들이 입고 있는 스타일 등 내 모든 일상이 영감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당신을 동시대의 패션 아이콘이라 말한다. 인간 버질 아블로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모든 것에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지금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도 ‘왜’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겁다고 말하면 이상할까? 지금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현재 무엇에 꽂혀 있는가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것. 용량 초과로 눈에 다 담을 수 없으니 사진으로 기록해 두길 좋아한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이미지화해 다시 꺼내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스트리트 패션의 역사를 새로 쓴 디자이너로서 스트리트 패션이 계속 주목받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트렌드는 동시대를 반영한다. 현재 사람들은 스트리트 패션에 열광하고 있다. 특정 스타일이 패션 역사에서 지고 피는 건 순리지만 스트리트 패션을 향한 관심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다. 스트리트 패션은 우리의 삶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일상’ 아닌가.



나이키를 상징하는 10개의 신발을 재해석한 ‘The Ten’ 협업. 버질 아블로의 손을 거쳐 재탄생한 줌 플라이.



이케아의 프락타 백을 종이로 만든 버질 아블로. 그의 상징적인 폰트 프린트가 돋보인다.

CREDIT

에디터 이혜미
사진 차혜경, COURTESY OF OFF-WHITE, IMAXTREE.COM
디자인 박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2월호
참고하세요!

저작권법에 의거, 엘르온라인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타 홈페이지와 타 블로그 및 게시판 등에 불법 게재시 불이익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