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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2. TUE

FOR THE NEXT LEVEL

이유 있는 계승

하우스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와 동시대의 트렌드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디자이너 기욤 앙리

직원의 안내를 받고 비밀 통로 같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영화 <물랑루즈>의 공연장이 연상되는 색다른 공간이 펼쳐졌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온통 레드 벨벳이 뒤덮인 그곳은 아직 이른 오후인데도 저녁에 있을 니나리치 파티 준비로 정신없이 분주한 모습이었다. 거대한 그랜드피아노가 무대 중앙에 설치되는 광경을 보며 넋을 잃은 사이, 기욤 앙리가 도착했다. 포마드를 발라 깔끔하게 뒤로 넘긴 헤어스타일에 모던한 블랙 수트를 차려입고 나타난 그는 동그랗고 커다란 초록색 눈동자를 깜빡이며 차분하게 인사를 건넸다. 한쪽 구석에 인터뷰 자리가 마련되고, 그가 파티 준비를 하고 있는 직원들을 향해 부드럽고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만 하고 있던 모든 일을 멈춰주시길 바라요. 지금부턴 에디터의 목소리에만 집중하고 싶으니까요.” 소녀처럼 빨개진 얼굴을 감출 틈도 없이 인터뷰가 시작됐다.
이번이 첫 서울 방문이다. 지금까지 서울은 당신에게 어떤 이미지인가 어제 도착하자마자 갤러리아백화점, 분더샵, 10 꼬르소 꼬모 서울을 방문했다. 즐겁기도 하면서 동시에 질투심도 생기더라. 프랑스엔 이런 멋진 셀렉션을 볼 수 있는 편집 숍이 많지 않다. 무엇보다 매장이 많지 않음에도 니나리치에 많은 지지와 관심을 보여준 한국 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서울을 방문하게 돼 무척 기쁘다. 여섯 시즌의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제 좀 적응이 됐을 것 같다 니나리치에 들어오게 된 건 영광이고 행운이다. 지금도 처음과 변함없이 열정적으로 내 역할을 해내고 있다. 니나리치는 나에게 브랜드 이상이며, 한 명의 고귀한 ‘여성’과도 같다. 지금까지의 인터뷰마다 니나리치를 ‘여성’으로 표현했다. 당신이 추구하는 니나리치는 어떤 ‘여성’인가 디자인 과정 내내 스스로에게 ‘니나리치는 어떤 여성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시적인, 강인한, 여성스러운’, 이 세 가지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여성이야말로 니나리치가 추구하는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은 어느 때인가 자기만의 컬러를 당당히 드러내고 보여줄 때 가장 아름다워 보인다. 영감을 주는 뮤즈는 과거 셀럽 중엔 독일 출신 프랑스 배우 로미 슈나이더, 요즘 셀럽 중엔 리한나를 꼽고 싶다. 다른 디자이너들이 화려하고 자극적인 트렌드를 선택해서일까? 매 시즌 클래식에 기반을 둔 당신의 컬렉션이 오히려 새롭게 느껴진다 나는 시골 출신의 프랑스인이다. 전통을 중요시하는 집안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헤리티지 스타일을 무척 좋아한다.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니나리치의 아카이브 컬렉션을 스포티하거나 캐주얼한 동시대 스타일로 변화시키고 싶지 않았다. 본래 파리의 쿠튀르 하우스였던 니나리치 본연의 모습을 존중하고 싶었으니까. 2017 F/W 컬렉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당신이 보여준 웨스턴 스타일은 기존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이번 컬렉션을 통해 특별히 표현하고 싶었던 건 무엇인가 웨스턴 컨셉트를 선보인다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카우 걸’을 그대로 보여주기 싫었다. ‘자신감’ 넘치는 애티튜드에 프렌치 쿠튀르스러운, 섬세하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더하고 싶었다. 강인한 웨스턴 컨셉트에 여성스러운 핑크를 메인 컬러로 선택한 이유는 사실 컬렉션에 핑크를 사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핑크를 잘못 사용하면 너무 걸리시하게 보이기 때문에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았다. 이번 컬렉션에서 핑크는 블랙과도 같다. 벌키한 퍼 코트는 카리스마가 넘치고, 메탈릭한 드레스는 관능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시즌은 핑크를 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전 시즌에 비해 스타일링 또한 예사롭지 않다 평소 의상을 볼 때 이브닝 웨어, 데이 웨어, 언더웨어 같은 구분을 전혀 하지 않는 편이다. 때문에 란제리를 밖으로 노출하거나, 백을 벨트에 거는 등 상식의 틀을 깨는 스타일링을 선보일 수 있었다. 이미 모든 아이템이 존재하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아이템을 디자인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컬렉션에서 어떤 아이템이 등장하는가 보다 어떤 아이템끼리 어떻게 스타일링하고 믹스할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거다. 하우스 브랜드에 영입된 동시대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아카이브보다 자신의 색깔을 드러낸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나 또한 디자인할 때 아카이브를 참고하지 않는 편이다. 그건 50년대에나 해당하는 것이지 지금은 아니니까. 내 앞에 있는 당신이 그땐 없는 데님 팬츠를 입고 있고, 내가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아카이브에서 브랜드를 상징하는 키포인트를 찾아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건 굉장히 필요한 일이다. 새로운 컬렉션을 준비하기에 앞서 영감을 얻기 위해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 컬렉션이 끝난 며칠은 일단 아무것도 하지 않고 최대한 패션을 멀리하려고 노력한다. 이 시간은 디자이너에게 정말 중요하다. 머릿속을 산뜻하게 비워야 비로소 새로운 걸 채울 수 있으니까. 영감을 얻고 싶을 땐 영화 감상과 독서, 포토 스크랩 같은 활동도 좋지만 무엇보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사람을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 휴식 기간 중 SNS 활동은 나는 인스타 계정이 없다. 인스타그램으로 패브릭을 만질 수 없지 않나(웃음). 니나리치 공식 인스타그램은 종종 확인하곤 한다. 인스타그램은 소비자에게 니나리치 브랜드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소통의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이미지는 스스로 관리하는 걸로! 스타일로 고민하는 니나리치 팬에게 조언을 한다면 트렌드에 휩쓸려 과장된 스타일을 억지로 꾸미려 하면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 있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스타일리시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서울에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사실 서울에 오기 전 친구인 아이린과 아미송에게서 꼭 가봐야 할 맛집과 클럽 리스트를 받았다. 그들은 언제나 스타일리시함과 동시에 스마트하다. 바쁜 스케줄이라 한 군데라도 둘러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코리안 바비큐는 먹어보고 싶다. ▒

CREDIT

에디터 허세련
사진 채대한, IMAXTREE.COM
디자인 박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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