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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6. 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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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를 보여줘

이번 시즌 꼭꼭 숨기 바빴던 브랜드의 로고가 세상에 얼굴을 드러냈다.
패션 하우스의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담은 로고와 패턴을 입은 액세서리들의 진정한 가치에 대하여

“선배가 들고 나온 빈티지 구찌 클러치백이 예뻐서 찍어뒀는데 이번 컬렉션에 비슷한 게 나왔네요! 집에 가방 또 없어요?” 선배가 답했다. “우와! 이거 버렸으면 어쩔 뻔? 잘 묵혀놨더니 귀한 묵은지가 됐네!” 여기서 묵은지란 베이지색 바탕에 브라운 컬러의 GG 수프림 패턴이 새겨진 작은 클러치백이었다. 지난 2월에 발표된 구찌의 뉴 컬렉션에 이 클러치백과 거의 똑같은 디자인의 백이 등장한 것이다. 로고 플레이의 핵심이 이 대화 속에 있다. 패션 하우스의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담은 로고나 패턴이 담긴 제품은 시간이 지나도 가치를 잃지 않고 오히려 어떤 순간 더 귀해진다는 것. 한동안 브랜드의 정체를 감추는 담백한 스타일이 대세를 이루더니 다시 로고를 활용한 디자인이 눈에 띄고 있다. 먼저 주목할 것은 가슴팍에 이름표를 붙이고 등장한 컬렉션들. 돌체 앤 가바나와 디올, 구찌 등의 컬렉션에는 브랜드 이름을 내세운 아이템들이 대거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티셔츠는 특히 뜨거운 반응을 얻은 제품.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가격대의 아이템인 로고 티셔츠는 SNS에서 셀럽과 모델들이 입어 화제를 모으더니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고 있다. 이 같은 로고 플레이는 이번 시즌 슬로건 트렌드와도 맥을 같이한다.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문구나 편견에 맞서는 단어와 문장 등 다양한 메시지를 담은 룩이 등장한 것. 스텔라 맥카트니는 동물 보호를 외치는 메시지를 톱과 팬츠, 드레스 등에 프린트했고, 디올의 새로운 수장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소설가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의 책 제목()을 적은 티셔츠를 선보이는 것으로 자신의 신념을 직설했다. 이번 시즌 뉴욕에서 데뷔 컬렉션을 선보인 바라간(Barragan)은 레즈비언(Lesbian)이라는 단어를 쓴 티셔츠를 선보이며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맞섰고, 파코 라반의 줄리앙 도세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미래의 성을 뜻하는 ‘Futuresex’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로고나 슬로건 아이템을 실크 스커트(돌체 앤 가바나), 시스루 드레스(파코 라반), 시퀸 장식의 롱스커트(디올)처럼 지극히 여성스러운 아이템과 매치했다는 것. 타이포그래피는 어떤 룩이라도 젊고 신선하게 변신시키는 놀라운 힘을 가졌기 때문에, 글자를 쓰는 것으로 자신의 신념이나 브랜드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컬렉션에 젊은 기운을 불어넣는다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되는 것이다. 슬로건 티셔츠가 런웨이를 넘어 스트리트 패션까지 휩쓸고 있는 가운데, 브랜드 로고와 심볼이 반복되는 패턴 역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로고와 패턴의 파워가 가장 잘 드러나는 아이템은 역시 액세서리다. 액세서리 이야기를 하려면 이번 시즌 디올 컬렉션에서 시작해야 한다. 국내 매장에서는 없어서 못 판다는 디올의 자디올(J’aDior ; 존 갈리아노의 자도르(J’adore)의 변형)의 슬링백. 평범한 슬링백의 스트랩을 글자가 적힌 리본으로 만든, 어찌 보면 별것 아닌 디자인인데 왜 여자들은 이 슈즈에 열광하는 걸까? 이유는 단순하다. 예쁘니까, 신고 싶으니까. 디올의 아티스틱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이력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발렌티노와 펜디를 거쳐온 그녀는 오트 쿠튀르와 레디 투 웨어 디렉터이기 이전에 액세서리 디자이너였다. 펜디의 바게트 백과 발렌티노의 록 스터드 시리즈의 거대한 성공에는 그녀의 공이 크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녀는 여자들이 어떤 액세서리를 사고 싶어 하는지 잘 아는 디자이너다.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가리켜 ‘하우스의 큐레이터’라고 칭했던 그녀는 과연 하우스의 유산 중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쏙쏙 뽑아내 활용하고 편집하는 영리함을 발휘했다. 디올에 자디올 슬링백이 있다면 생 로랑에는 오피움 펌프스가 있다. YSL이 겹쳐진 카산드라 로고의 굽이 장착된 이 슈즈는 앞뒤 모습은 완벽한 스틸레토 힐인데 옆모습에 로고를 구조적으로 드러내는 반전 묘미가 있다. 백과 슈즈뿐 아니다. 주얼리 등의 다른 액세서리에도 이런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멋쟁이 큰이모 화장대에서나 보던 샤넬의 더블 C 귀고리가 먼저 눈에 띈다. 심볼 귀고리는 좀 올드하지 않냐고? 베이스볼 캡을 거꾸로 눌러 쓰고 커다란 심볼이 달린 귀고리와 진주 목걸이를 한 샤넬의 앳된 소녀들을 보라. 브랜드의 오래된 아이콘을 스타일링만으로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오프 화이트의 귀고리, 구찌의 선글라스, 베트멍의 모자 등은 또 어떤가. 스타일에 표정을 더하는 한 끗은 역시 유머와 재치다. 브랜드의 심볼이나 패턴이 더해진 디자인의 액세서리가 가진 진정한 가치는 뭘까. 이야기의 시작으로 돌아가보면 알 수 있다. 잘 묵혀두면 ‘귀한 묵은지’가 된다는 것.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맛을 더한다는 점에서 기가 막힌 비유 아닌가! 오랜 세월 동안 브랜드를 대표한 아이코닉 패턴이나 장식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다시 사용되기 때문에 한 시즌을 위한 트렌디 아이템과는 다르다. 당신 주변의 누군가가 할머니나 어머니에게 물려받았다고 자랑하던 그 오래된 핸드백을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언젠가 교체되기 마련이고, 교체된 디렉터가 재해석한 브랜드의 로고는 그가 활동하는 시기에만 살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소중해진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생 로랑 파리가 이브 생 로랑으로 불리던, 스테파노 필라티 시절의 카바 시크 라인(지금도 판매하지만 디자인이 많이 변형됐다), 라프 시몬스가 디올을 이끌던 시절에 선보인 앤디 워홀이 프린트를 더한 클래식 백, 그 어느 때보다 화려했던 마크 제이콥스 시절의 루이 비통 백 등은 더 이상 매장에서 살 수 없다. 구찌의 GG 수프림 패턴 위에 호랑이와 뱀을 그려넣은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액세서리도, 루이 비통의 여행용 가방을 본뜬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클러치백도 과거의 유물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여성이 열광해 마지않는 피비 파일로의 봄날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니! 당신의 어머니가 몇 십 년 전에 물려주신 셀린의 클래식 백을 꺼내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언해 본다. 이처럼 시대를 관통해 조금씩 다른 얼굴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패션 하우스의 클래식 패턴 액세서리의 진정한 가치다.

CREDIT

PHOTO IMAXTREE.COM
WRITER 김자혜
DIGITAL DESIGNER 박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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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세서리 본지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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