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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4. SUN

New Chapter

구호의 새로운 디자이너

정구호 디렉터의 부재 후 꾸준히 변화하며 글로벌 마켓에 도전을 해온 구호. 그 중심엔 16년이란 긴 세월을 함께 해온 수석 디자이너 김현정이 있다

지난 9월 15일, 구호의 2017 S/S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뉴욕 소호를 찾았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했음에도 이미 현장은 구호의 새로운 컬렉션을 궁금해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인상적이었던 건 정사각형 테이블 위에 마네킹처럼 일렬로 선 모델들. 정면에서 바라보니 이번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10벌의 키 룩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화사한 파스텔컬러부터 경쾌한 스트라이프 패턴과 조형적인 실루엣…. ‘쿨’하고 ‘영’한 감성이 더해진 구호의 이번 2017 S/S 컬렉션은 꽤 신선했다. 물론 미니멀리즘을 강조하는 고유의 아이덴티티는 그대로 유지한 채 말이다. 정구호 디렉터의 부재 후 꾸준히 변화하며 글로벌 마켓에 도전해 온 구호. 그 중심엔 16년이란 긴 세월을 함께해 온 수석 디자이너 김현정이 있다. 그동안 외부에 자주 노출되지 않았던 터라 그녀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뉴욕 패션위크를 끝마친 후,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뉴욕에서 첫 번째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인 기분 무척 정신이 없었지만 뿌듯했다. 구호의 글로벌화는 팀 모두의 숙원이었다. 양심 없는 카피 제품들이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는 요즘 시대에 전통성과 진정성 있는 디자인을 가지고 글로벌 마켓에 도전하고 싶었다. 해외 프레스들과 바이어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뉴욕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 구호는 컨템퍼러리와 디자이너 브랜드 사이를 잇는 교두보 역할이 되는 걸 목표로 해왔다. 뉴욕은 컨템퍼러리한 브랜드들이 가장 많이 활약하는 도시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정면승부를 하고 싶었다.


이번 2017 S/S 컬렉션을 준비하며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 있다면 일할 때 스스로 자문자답을 많이 하는 편인데 ‘여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디자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자주 하곤 한다. 글로벌 마켓을 중요시한 이번 컬렉션을 준비하면서는 다소 우습겠지만 ‘내가 만약 쇼핑을 좋아하는 외국 여성이라면?’이라는 질문을 했다.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한 디자이너이기보단 옷을 구매해서 입는 고객 입장에서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이고 싶다. 나 또한 구호의 옷을 많이 구입하는 VIP 고객 중 한 명이니까.


정구호 디렉터의 빈자리에 대해 느끼는 바가 남다를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매우 큰 부담이었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정구호 디렉터가 떠난 후 ‘그동안 큰 나무 밑에서 비도, 뜨거운 태양도 피하며 보호받고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주변에 응원해 주는 사람도 많았지만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나라 최고의 디렉터 밑에서 배운 최고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구호의 디자인팀을 이끌고 싶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구호의 가장 큰 변화는
더 젊어졌다는 것. 최근 구호의 소비자 층이 굉장히 광범위해졌다. 과거 구호의 주 소비층이었던 마니아들은 그대로 유지하되 젊은 고객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이전의 구호 컬렉션을 디자인할 땐 정해진 스타일 틀 안에서 스스로에게 제약을 많이 뒀다. 아무래도 요즘엔 젊은 고객들이 늘어나고 SNS를 통해 소통할 기회가 많아지다 보니 디자인에 있어서 좀 더 자유로워진 것 같다.


이번 2017 S/S 시즌 컨셉트는
‘서커스’와 ‘균형’이다.


미니멀리즘을 강조하는 구호가 표현한 서커스는 어떤 모습인가 일반적으로 서커스 하면 떠오르는 화려한 비주얼은 다양한 소재와 프린트를 통해 표현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루고 싶었던 건 서커스 공연에서 볼 수 있는 드라마틱한 ‘균형’이었다. 이런 균형을 옷에 투영해 구호만의 특별한 실루엣인 ‘뉴 아워 글래스 실루엣’을 완성했다.


‘뉴 아워 글래스 실루엣’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 여유로운 볼륨감을 주어 일반적인 여성스러움이 아닌 색다른 분위기의 ‘구호식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실루엣이다. 니트로 허리를 강조하고 위 아래를 볼륨감 있게 디자인한 보머 코트가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평소 본인의 경험에서 디자인 영감을 많이 얻는 편인가 물론이다. 이번 서커스 컨셉트도 9년 전 처음 보고 반한 ‘태양의 서커스’ <퀴담 Quidam> 공연에서 영감을 얻었다. 영구 종영 소식을 듣고 지난해에 재관람했는데 다시 보니 예전과는 또 다른 감동이 느껴졌다. 그런 감동이 디자인으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이번 2017 S/S 컬렉션 중 본인의 ‘취향 저격 룩’을 하나 꼽는다면 얇은 핸드메이드 울 코트 위에 트렌치코트를 쿨하게 레이어드한 룩.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유니크한 스타일링에 반했다.


의상뿐 아니라 액세서리 디자인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구호의 액세서리 라인은 무엇보다 편안함과 내구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상보다 더 예민하고 정확하게 디자인하는 편이다.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직접 경험해 보는 거다. 그래서 새로운 가방과 슈즈가 출시되면 온종일 들고 신어본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수정할 부분도 생기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티 백’은 클러치백의 불편함을 해방시켜 준 보석 같은 아이템이다.


최근 패션계에 불고 있는 디지털 열풍. 특별한 계획을 갖고 있나 디지털 영상 위주의 콘텐츠를 많이 선보일 예정인데, 최근엔 패션 쇼트 필름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전의 핵사 바이 구호처럼 해외에서 쇼를 선보일 계획은
아직 없다. 패션 에디터, 바이어들과 좀 더 가까이서 소통할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할 예정이다. 당신에게 ‘구호’는 어떤 의미인가 구호와 함께한 지 어느덧 16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하나의 삶이 됐다.


개인 인스타그램을 보니 여행 사진이 많더라. 인상 깊었던 도시는 3년 전 치열하고 힘들었던 파리 패션위크 쇼가 끝난 후 찾았던 스톡홀름.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 비로소 평안함을 찾을 수 있었다.


예술과 건축 분야에도 관심이 남다른 것 같은데 특별히 팔로하고 있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덴마크 예술가인 올라퍼 엘리아슨. 공상과학적인 상상력을 예술로 표현하고 있는 작품들이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가장 꽂혀 있는 것은 유머러스한 감성의 아트 퍼니처들.


최근 가장 많이 웃었던 순간은 얼마 전 부산에서 열린 VIP쇼 애프터 파티장에서 톱 모델 박세라와 이혜정이 코믹한 캣워크를 선보인 순간.


앞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디자이너로 기억되길 바라나 디자이너로서 거창한 바람은 없다. 그저 구호의 한 멤버로 기억되길 바란다.

CREDIT

PHOTOGRAPHER 김선혜
EDITOR 허세련
DIGITAL DESIGNER 오주희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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