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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3. WED

WEAR A SUN VISOR

미션 컴플리트

서머 '잇' 아이템으로 급부상한 선바이저를 쓰고 거리로 나간 에디터의 과감한 도전기

퓨처리즘 스타일의 선바이저는 46만5천원, Dior.


카멜리아 장식의 라피아 선바이저는 가격 미정, Chanel

2 레이싱 걸을 연상시키는 선바이저는 4만2천원, Tommy Jeans.



모자는 틈만 나면 산다. 봄과 여름에는 캡과 버킷 햇을, 가을과 겨울에는 주로 비니를 쓴다. 순도 100%의 검은색, 물 빠진 검은색, 푸른빛이 감도는 검은색…. 엄마는 내가 모자를 바꿔 가며 쓰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지만 색깔도 오묘하게 다르고 챙의 너비나 로고 모양에 따라 느낌이 상이해 ‘분명’ 다른 스타일이 완성된다. 이렇게나 모자에 ‘집착’하는 편인데 선바이저라면? 고민 없이 내 마음속에서 열외. 컬렉션 출장을 다니며 선바이저를 쓴 모델들을 런웨이에서 종종 봤지만 소유욕은 다른 사람의 영역일 뿐, 그저 ‘화보 아이템’이라 생각했다. 시각적으로 강렬한 잔상을 남겨도 딱 거기까지였다. 누군가 쓰고 다니면 놀라웠고, 누군가 내게 권한다면 극구 사양할 낯선 물건. 그런데 이번 시즌, 선바이저가 강세다. 디올이 틴티드 렌즈처럼 노랗게 물든 챙이 달린 선바이저로 스포티 감성을 내세웠고,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버버리에 이별을 고할 때 선바이저를 활용해 젊은 에너지를 불어넣었으며, ‘시 나우 바이 나우’를 고수하는 타미 힐피거는 동시대를 향한 2018 봄 컬렉션을 위해 선바이저를 밀었다. 이들의 발상과 제안은 분명 디자이너의 창의적인 해석이 낳은 결과다. 하지만 디자이너와 런웨이의 지지를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패션이 대중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는 것은 아니지 않나. 내 마음속의 선바이저는 이렇게 포지셔닝돼 있었다. 도심 속의 플로피 햇보다 더 큰 결심이 요구되는 불편하고 어려운 패션. 지나친 거부감이려나? 혹시 나는 틈을 내어주지 않을 만큼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건 아닐까? 고집스럽게 비슷한 내 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다른 인상을 남기기 위해 선바이저를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혹독했고 결코 쉽지 않았다! 이것은 혹시 벌칙 수행? 제일 ‘평범한’ 선바이저를 골라 쓰고 아침 출근길에 올랐던 그날의 아침 풍경을 잊을 수 없다. 늘 그렇듯 내 지정석은 버스 맨 뒷자리. 사람들은 나의 등장을 신경 쓰지 않으려는 듯 창밖이나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지만 ‘지금 지나간 건 뭐지?’라는 당혹스러움과 힐끔거리는 시선을 철저하게 감추긴 어려워 보였다. 그때 나는 박시한 티셔츠에 와이드 팬츠를 입고, 토트백을 들고 있었다. 지극히 보편적인 옷에 선바이저를 매치했지만 지극히 보편적이지 않았던 내 모습. 지금 나는 설마 패션 테러리스트? 버스 뒷자리에 앉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며 맨 처음 치마를 꺼내 입었던 어린 시절의 그 순간처럼 마음가짐까지 조신해졌다. 이번에는 선바이저를 쓰고 포토그래퍼 앞에 서서 물었다. ‘실장님, 저 어때요?’ 돌아온 건 찰나의 정적과 허공을 향한 동공지진. 무언은 되려 정확한 대답을 주었다. 일상적인 장소에서 선바이저는 생경한 멋으로 포장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도전에 가까웠다. 잘못 건드렸다 데인 격이라 해야 할까? 그런데 얼마 전, 아미 송이 디올의 선바이저를 쓰고 코첼라 페스티벌을 즐기는 모습을 SNS에서 포착했다. 불신만 남아 있던 나였는데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든 건 왜일까? 드레스에 선바이저를 매치한 믹스매치의 멋은 개성 넘치는 페스티벌 장소에서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한 끗 차이’의 요소로 작용했다. ‘아, 그렇다면 장소를 바꿔보자!’ 한 번 더 용기를 내어 날 좋은 주말 오후, 한강으로 피크닉을 떠나며 라피아 선바이저를 착용했다. 흔히 선바이저를 떠올리며 테니스 선수의 모자나 약수터에 물 뜨러 가는 어머님들이 쓰는 햇빛가리개 모자를 생각하는데 여름을 겨냥한 라피아 소재의 선바이저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수공예 터치가 가미된 라피아 선바이저는 한적하고 여유로운 오후의 순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햇빛 때문에 볼이 발그레해졌지만 볼 빨간 소녀로 돌아간 기분마저 들었다. 이만하면 새로운 도전이 낳은 긍정적이고 만족스러운 경험이 아닌가. 장소에 따라 선바이저는 얼마든지 실용적이고 감각적으로 연출할 수 있다는 확신도 얻었다. 써보기도 전에 굳은 결심을 필요로 하는 난해한 패션 아이템이라고 단정지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최근 선바이저를 쓰고 해변에서 인증 샷을 찍은 킴 카다시언처럼 리조트 룩으로 활용하면 감성적인 플로피 햇과 전혀 다른 스포티 매력을 어필할 수 있다는 힌트도 얻었다. 그러니 페스티벌의 계절과 뜨거운 여름을 감각적으로 즐길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면 선바이저를 가방에 챙겨보는 건 어떨까? 당신의 얼굴에 새로운 표정을 가져다 줄 의외의 아이템을 발견한 것처럼 기분 좋은 변화를 즐길지도 모른다. 스스로 정의 내린 스타일에 갇혀 있던 자신을 보다 열린 자세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CREDIT

에디터 이혜미
사진 IMAXTREE.COM, 우창원
디자인 황동미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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