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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5. TUE

LUXURY HALLMARKS

아카이브 전성시대

럭셔리 하우스 브랜드의 아카이브가 대담하고 분명한 태도로 트렌드 중심에 섰다



메일을 열었다. 발신인은 네타포르테로 4월 13일부터 펜디 익스클루시브 FF 캡슐 컬렉션을 독점 출시한다는 보도자료가 첨부되어 있었다. 세기말과 밀레니엄 시대의 스타였던 패리스 힐튼이 메고 다닌 펜디 주카 백처럼 로고를 내세운 디자인이 핵심 포인트. ‘패션은 돌고 돈다’는 법칙의 재발견? 최근 패션계는 일상적인 접근에 치우쳐 소비하기 쉬운 아이템(후디드 티셔츠, 스니커즈 등)의 범람에 빠져 있다. 매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브랜드가 창의성보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고려한 상업적인 측면에 치중한 결과다. 이런 현상을 지켜보며 ‘패션의 역사와 유산은 힘을 잃은 걸까?’라는 의구심이 들 무렵, 하우스 브랜드가 아카이브를 파헤쳐 완성한 디자인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연결고리이자 진정한 럭셔리 브랜드가 제시할 수 있는 해답으로 등장했다. 혹자는 이를 두고 빈티지의 귀환이라고도 말했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가시적이고 과시적인 컴백으로 말이다. 그렇게 돌아온 로고의 부활. 90년대 로고 패션은 취향으로 검열된 감도 높은 선택보다 경제력과 지위를 드러내기 위한 과시적 소비와 수단에 가까웠다. 로고의 남용은 ‘촌스럽다’는 부정적인 인식 속에 트렌드 뒤편으로 존재를 감추더니 호미스(Homies), 펠린(Feline)처럼 패러디 로고로 새로운 국면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보여주기 식’보다 풍자적이고 위트 있는 우회적인 노선에 머물 뿐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숨길수록 ‘쿨’해 보이는 로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희미해지고 스위치를 껐다 켠 것처럼 로고 풍년시대가 왔다. 그야말로 비호감이 호감이 된 형국이다. 수많은 로고 중 구찌의 로고 백은 선봉장에 서서 아카이브 부활의 긍정적 신호탄을 쏘아올린 아이템. GG 슈프림 백이 옷장 구석에서 나와 알레산드로 미켈레 시선으로 필터링돼 ‘잇’ 백으로 떠올랐다. 농구 경기를 관람하는 켄덜 제너의 옆에 놓인 GG 슈프림 백이 파파라치 사진에 찍히는 순간, 지금 가장 ‘핫’한 셀럽 효과가 머지않아 미칠 거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GUCCI’를 ‘GUCCY’로 유머러스하게 비틀어 해석할 줄 아는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만든 로고 백이라면 고루한 디자인일 리도 없다. 그뿐 아니다. 아카이브를 동시대적으로 재발견하는 실력은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역시 백점 만점.




마크 보앙이 1967년에 선보였던 작품을 재구성한 오블리크 백을 통해 디올 로고의 역습을 보여주고 있다. 파리에서 열린 2018 F/W 디올 리시(Re-See) 현장에서 업그레이드된 오블리크 백을 직접 들어 보았다. 비슷하면서도 확실히 달랐고, 빈티지하면서도 멋스러웠다. “앞으로 디올의 아이코닉한 백으로 자리 잡을 예정입니다”라는 홍보담당자의 말에서 럭셔리 하우스 브랜드만 시도할 수 있는 전진과 진보를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 로고를 갖고 노는 건 예기치 못한 현상이었어요. 이제 더 이상 로고의 철학만 내세우는 건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유효하지 않은 방식이죠. 로고에 대한 접근 방식에 변화를 줘 자유롭게 장난치는 것이 훨씬 매력적입니다.” 패션 컨설턴트 에밀리 고든 스미스(Emily Gordon Smith)는 SNS 세상에서 시시각각 이미지를 접하는 젊은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면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두문자어(頭文字語)에 젊은 에너지를 불어넣는 방향으로 진일보한 펜디가 좋은 예다. 정사각형 버전으로 새롭게 디자인된 더블 F 로고는 마치 ‘Fendi is Back’을 알리는 ‘로고매니악’의 외침처럼 전면에 선명하고 과감하게 응용됐다. 스웨트셔츠나 버킷 햇, 블루종 등 젊은 감각의 디자인에 더블 F 로고를 뒤덮어 ‘힙’한 패션을 완성한 것. 칼 라거펠트가 펜디에 합류하면서 하우스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장치를 만들기 위해 제안했던 심볼이 트렌드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다가 현재, 메종에 활기를 불어넣는 매개체로 떠오른 것이다. 1958년 광고 캠페인 포스터에 사용했던 로고를 변형해 리디자인한 뉴 로고 룩을 밀고 있는 막스마라도 마찬가지. 잠시 질문. 그렇다면 혹시 당신은 90년대에 멋 좀 부리는 X세대였는가? 그 시대를 즐겼다면 삼각형 금속 라벨의 프라다 나일론 백의 전성기를 목격했을 것이다. 미니멀 라이프의 유행과 함께 급부상한 나일론 백은 그 시대가 낳은 패션의 아방가르드한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일론이란 산업용 소재를 명품의 반열로 오르게 만든 발명품이었으니까. 바로 그때 그 시절의 나일론 백이 프라다의 2018 S/S 광고 캠페인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2018 F/W 남성과 여성 컬렉션에서 다양한 변주로 업그레이드돼 시선을 끌고 있다. 마치 이번 시즌 치고 올라온 PVC 백처럼 쏟아지는 기세가 매우 맹렬하다.




이처럼 패션 하우스의 얼굴을 활발하게 드러내는 아카이브 전성기 속에서 킴 존스와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시그너처 패턴을 재해석한 룩과 함께 후회 없는 작별을 고했다. 먼저, 킴 존스는 모노그램 코트를 입은 케이트 모스와 나오미 캠벨의 손을 잡고 걸어 나오며 인상적인 피날레 인사를 남겼다. 90년대를 장악한 모노그램 코트를 입은 90년대 슈퍼모델이라니. 호기롭던 그 시절의 향수병에 걸린 듯 럭셔리 하우스의 풍요로운 과거를 2018년 버전으로 불러낸듯 했다. 누군가에게는 파격적이면서도 고전적인 선택처럼 보였겠지만,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생경하고 참신한 패션신으로 느껴질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아카이브 재해석에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 효과다. 반면,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버버리의 노바 체크를 혁신적으로 재창조하길 원했다. 지난 시즌처럼 블루종, 스웨트셔츠 등 스트리트 감성을 접목시킨 것은 물론, 성소수자를 위해 무지개 색을 드리운 노바 체크 룩으로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전했다. 고정관념처럼 각인된 클래식 패턴의 변형으로 브랜드의 가치가 한번 더 진일보하게 된 셈. 17년 동안 진두지휘한 버버리를 미련 없이 떠나도 좋은, 명민한 이별 무대였다. 아카이브 룩 퍼레이드로 지아니니 베르사체를 헌정한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말이 떠오른다. “그가 창조한 컬렉션은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문화적 견지이자 영감의 대상이었습니다. 나는 그가 사랑한 프린트와 빛나는 메탈 메시로 정의되는 그의 패션에 경의를 표합니다.” 시대의 흐름과 디자인 철학이 응집된 아카이브를 향한 경외감과 존경심이 느껴지는 고백이다. 세월의 먼지는 털어내고 동시대의 빛을 받아 새로운 반짝임을 얻은 브랜드의 유산.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아카이브 패션의 재탄생이야말로 진정한 럭셔리 브랜드만 선물할 수 있는 새로운 미학이 아닐는지.

CREDIT

에디터 이혜미
사진 COURTESY OF MAXMARA,PRADA, IMAXTREE.COM, GETTYIMAGESKOREA
디자인 황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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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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