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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2. WED

LOVE YOURSELF

우린 너무 예뻐!

나의 몸을 긍정하는 '보디 포지티브 운동'이 패션계 화두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표현하는 것이 미의 절대 기준이 되고 있다


매년 연말쯤 개최되는 빅토리아 시크릿의 패션쇼가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 11월 8일 뉴욕에서 열렸다. 지지 하디드, 켄덜 제너를 비롯해 늘씬한 체형의 모델을 앞세운 쇼는 늘 그렇듯 완벽한 몸매, 관능적 디자인의 속옷 브랜드의 건재함을 과시하듯 화려한 엔터테인먼트로 막을 내렸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패션쇼를 본 뒤 달라진 시대흐름을 읽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 건 비단 에디터뿐이었을까. ‘신체 긍정(Body Positive)’이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지금, 여전히 마른 백인 여성 모델만 고집하는 빅토리아 시크릿의 철학은 “우리 쇼는 판타지이기 때문에 트랜스젠더와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최고마케팅책임자 에드 라젝이 밝인 이유(물론 이후 경솔한 발언이었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만으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없다. 인스타그램에 보디 포지티브 해시태그를 달고 올라온 게시물은 무려 750만여 개. 보디 포지티브란 말 그대로 이상적인 미의 기준을 버리고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신체해방운동’을 뜻한다. 과거 보디 포지티브 운동이 과체중 혹은 비만을 중심으로 한 여성 위주의 운동이었다면 최근 미국 시장에 불고 있는 보디 포지티브 운동은 단순히 신체 사이즈뿐 아니라 인종과 성별, 나이, 장애 유무 등으로 영역이 확대됐다. 즉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자’ 는 것이 최근 대두되고 있는 모토인 것이다. 현재 하이패션에서도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다양성, 즉 보디 포지티브다.


2017년부터 남녀 컬렉션(보테가 베네타와 발렌시아가가 선두주자)의 경계가 무너진 것을 시작으로, 시즌을 거듭할수록 여러 인종이 런웨이를 걸었고(패션 스폿에 따르면 2019 S/S 뉴욕 패션위크에선 유색 인종 모델은 44.8%), 플러스 사이즈 모델 애슐리 그레이엄(XXL 사이즈의 몸매로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2017년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약 59억원) 모델’에 이름을 올렸다)을 비롯해 팔로마 앨세서, 캔디스 허핀 등이 영향력 높은 모델이 되었다. 또 트랜스젠더 모델 하리 네프와 아리엘 니콜슨 머타, 소피아 라마를 비롯해 백반증 모델 위니 할로, 척추측만증 모델 엠마 아루다는 전형적인 모델의 경계를 깨뜨린 인물들이다. 보디 포지티브 운동이 미국에서 시작된 만큼 지난가을에 열린 2019 S/S 뉴욕 패션위크는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벗어난 런웨이가 두드러졌다. 먼저 리한나가 선보인 란제리 새비지×펜티(Savage×Fenty)의 브래지어 사이즈는 32AA부터 44DD까지, 브리프는 XS부터 3XL까지 모든 체형과 사이즈를 포함한 속옷을 선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패션쇼 역시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유명한 팔로마 엘세서를 비롯해 일반 체형의 모델들이 대거 등장했다. 더불어 까까머리에 앞니가 벌어진 모델 슬릭 우즈가 임신 7개월의 몸으로 런웨이를 장식하는가 하면, 아프리카 수단 남부 출신으로 현재 호주 모델계를 주도하는 더키 토트 등 모델의 인종도 다양했다. 다양한 피부색과 체형의 모델들이 셀룰라이트가 있어도 상관없다는 듯 속옷을 입고 런웨이를 활보했고, 리한나는 진정한 비차별주의자라는 칭찬이 이어졌다.


한편 크로맷은 전통적인 보디 고정관념에 맞서 ‘샘플 사이즈(Sample Size)’라고 레터링된 티셔츠를 입은 서로 다른 체형의 모델이 등장했고, 브랜던 맥스웰은 임신한 모델 릴리 앨드리지가 달라붙은 레드 드레스 차림으로 런웨이를 걸었다. 네팔 출신의 디자이너 프라발 구룽의 패션쇼에서는 35개국 이상에서 온 모델들이 그의 다채로운 창작물을 입었으며, 굴곡진 체형의 모델 캔디스 허핀이 런웨이를 워킹할 정도로 그의 디자인 역시 사이즈의 포괄성을 가지고 있었다. 리얼 웨이에서도 그런 노력은 계속된다. 나이키는 근육질의 모델을 줄이고 통통한 여성에게 자사 옷을 입히기 시작했고, 동양인과 온몸에 문신한 모델도 등장시켰다. 타미 힐피거는 장애우가 입을 수 있는 청바지를 선보인 적 있으며, 마이클 코어스와 꼼 데 가르송은 지난해 플러스 사이즈 분야에 진출했다. H&M과 포에버21, 아소스도 플러스 사이즈 라인을 점차 확대해 가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 다양한 인종성을 강조한 누드 컬러의 컬렉션을 내놓은 속옷 브랜드 에어리(Aerie)와 나자(Naja), 다양한 사이즈 옵션을 제공하는 요가 브랜드 요가스모가(Yogasmoga), 미국 빅 사이즈 전문 수영복 브랜드 스윔수트포올, 생얼에 어떤 포토숍도 사용하지 않은 채 캠페인 이미지 작업을 한 아메리칸 캐주얼, 미국 플러스 사이즈 의류 브랜드인 레인 브라이언트(Lane Bryant) 역시 인기를 얻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민텔(Mintel)은 2019년 글로벌 트렌드 중 하나로 ‘젠더 뉴트럴 뷰티’를 제시했다. 젠더 뉴트럴 트렌드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남자, 여자, 성 소수자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같은 ‘사람’으로 본다. 사회가 정해놓은 타인이 세운 기준을 무너뜨리고 자신만의 취향과 자기다움에 집중하는 현상이다. 획일적 아름다움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며, 아름다운 것은 이미 내 안에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정에 달하는 추세. 보디 포지티브 운동은 다양한 소셜 미디어와 더불어 앞으로 더 많은 산업 영역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는 시각적인 파워가 있음을 자각한 패션 마켓이 그 중심에 선다면 획일적인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CREDIT

에디터 정장조
사진 GETTYIMAGESKOREA, IMAXTREE,COM
디자인 이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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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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