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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4. SUN

SPACE ODYSSEY

우주의 기운

새로운 패션 유토피아를 개척하기 위해 현실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우주로 향한 공상과학패션

비주얼 시대의 도래로 여기저기서 본 듯한 이미지가 범람하고 있지만 최근, ‘멈칫’하게 만든 피드를 발견했다. <스타 트렉>의 한 장면 처럼 우주를 항해하는 대원들이 출연하며, 선글라스를 쓴 초록색 얼굴의 외계인이 등장하는 등 익숙하면서도 낯선 SF 영상을 포착한 것. 비주얼에 대한 호기심은 구찌의 2017 F/W 패션 필름이라는 깨달음과 동시에 시쳇말로 ‘이거 실화냐?’라는 충격을 안겼다. 속도전을 다투는 디지털 혁신 속에서 60~70년대 버전의 패션 필름은 과거로의 역행을 이용한 예상치 못한 선공이었다. 스텔라 맥카트니 역시 타임머신의 바늘을 미래로 돌렸다. 리한나의 2016년 ‘브릿 어워드’ 퍼포먼스를 도맡아 퓨처리즘 바이브로 실력을 검증받은 비주얼 디렉터 필리파 프라이스와 미래적인 초현실주의 ‘이클립스’ 영상을 제작한 것. 미래에서 온 패셔너블한 무법자가 고전적 소재인 아메리칸 웨스턴을 배경으로 등장해 총구를 겨눴다. 흥미롭게도 두 브랜드는 미래적인 SF 패션에 레트로적인 아이디어를 접목해 우주정거장 착륙을 시도했다. SF 패션을 과거로 타임슬립해 시간 여행을 하는 것처럼. 물론 이번이 공상과학과 패션의 첫 번째 만남은 아니다. 알렉산더 맥퀸은 <아바타> 토착민을 연상시키는 초현실주의 룩을 선보였으며, 훨씬 더 앞서 앙드레 쿠레주와 파코 라반은 스페이스 룩을 제시했다. 하지만 현재, 다수의 브랜드가 현실주의에 매달려 안정적 노선에 머물렀을 때 몇 백 광년을 지나 미래로 떠난 건 과감한 출발이다. 패션은 한동안 전위적인 감각을 상실한 채 도전적인 시도나 파격의 부재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그랑 팔레에 로켓을 쏘아 올린 칼 라거펠트의 발상이 더욱 고무적인 것이다. 샤넬 로켓에 탑승할 준비를 마친 퓨처리즘 룩의 모델들이 당당하게 전진하고, 37m 높이의 로켓이 연기를 뿜어내며 치솟았을 때 외면당했던 SF 패션의 신세계가 열렸다. 퓨처리즘 패션의 발화점은 높아졌고, 드라마틱한 패션 판타지에 대한 패션 고수들의 허기가 채웠졌다. 이제 곧 뤽 베송의 SF 영화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가 개봉한다. 영화에서 우주 최강 에이전트로 등장하는 카라 델레바인이 퓨처리즘 패션의 미래상으로 재조명될 수 있다는 점에서 뤽 베송의 새 영화가 SF 패션 열풍에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은 억측일까? 파코 라반이 <바바렐라>의 제인 폰더가 입은 메탈릭 룩을 제작했고, 장 폴 고티에가 <제5원소> 리루의 화이트 밴디지 룩을 만든 것처럼 패션과 SF 영화는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다. 그러니 지금, SF에 빠진 영화와 패션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더욱 진일보하는 미래적인 패션 신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SF 패션이 스트리트까지 확장됐으니 퓨처리즘의 열기는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다. 켄덜 제너, 지지 하디드 등 패션 퀸들이 <매트릭스>의 포스터를 뚫고 나온 것처럼 사이파이 선글라스를 데일리 룩으로 소화하고 있으니까. 여기에 발렌시아가가 이번 시즌 ‘잇’ 액세서리로 사이파이 선글라스를 선택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이번 쇼를 준비하며 이렇게 말했다. “패션을 하면서 피하는 것 중 하나가 패션에 규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는 자유롭게 상상해 SF 패션 필름을 탄생시켰다. 지금 재조명된 SF 패션이 웨어러블한 디바이스를 진화시켜 디자인 기술 혁신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패션 영역의 새로운 유토피아를 찾기 위한 행보임은 분명하다. “나는 퓨처리즘을 싫어한다. 패션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고 말했던 칼 라거펠트도 미래적인 감각을 접목시켜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그러니 미래로 향한 패션 행보에 대한 비평보다 흥미로운 시선으로 접근하는 건 어떨까? ‘쿨’한 것만 찾던 현실주의적 패션을 넘어 아방가르드한 발상으로 나아가는 신호탄이 터졌다.

CREDIT

에디터 이혜미
사진 IMAXTREE.COM, COURTESY OF GUCCI, STELLA MCCARTNEY
디자인 박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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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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