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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1. FRI

RAINBOW WARRIOR

현란한 프리즘 효과

이젠 블랙을 떠나 패션계의 화사한 에너지를 받아들일 때다


어른이 되기 전까지 난 늘 컬러에 사로잡혔다. 어릴 때는 60년대 포스트 모던기의 사이키델릭한 프린트와 네온이 좋았고, 70년대엔 인디언 프린트 페이즐리 드레스나 디스코 드레스에 푸른 테 안경으로 악센트를 주곤 했다. 고등학생 시절에 좋아했던 옷은 체리 컬러의 포플린 작업복…. 뉴욕으로 옮겨온 80년대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지색 퍼플이나 완두콩 그린을 택하거나, 온통 밝은 컬러 일색이었다. 처음으로 독립한 아파트 벽면엔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 스타일의 완전 화사한 샛노란 색을 칠했고, 이 컬러가 날 아티스트의 세계로 데려다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패션계에서 막 일을 시작할 무렵은 그런지와 고스의 시대, 케이트 모스가 오버사이즈 스웨터와 캘빈 클라인 무채색 슬립 드레스를 입었다. 돌이켜보니 그 후 인생의 반 정도를 무채색으로 치장하는 데 보냈던 것 같다. 1년 전부터 이제 블랙은 선택하지 말자고 결심한 이유는 이토록 눈부신 색채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데, 굳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버전을 고집했을까? 하지만 현실은 늘 칼 라거펠트가 야간에도 선글라스를 낀 채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았다. 옷장 속의 다크 행렬을 보니, 어디서부터 변신을 시작해야 할지 한숨이 흘러나왔다.


지난 수십 년간 여성들은 컬러를 ‘광대스러운 것’처럼 여겨왔다. <뉴욕 타임스>의 문화비평가 가이 트레베이(Guy Trebay)는 90년대 후반의 유니폼 같은 옷차림을 두고 ‘다크 버드’라 표현한 적 있다. 당시엔 앤 드뮐미스터의 옥스퍼드와 비대칭 실크, 헬무트 랭의 공리주의 코트, 정교한 깃털 장식의 꼼 데 가르송 스커트, 벨벳 자수 장식이나 롱 플리츠 스타일의 프라다 드레스, 수수께끼 같은 드레이프의 요지 야마모토 등 온통 무채색 행렬 중에 단연 블랙이 압도적이었다. 나 역시 한동안 앤트워트 6인방이나 일본 디자이너들의 옷에 감탄하면서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의 낭만성을 떠올렸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무채색이지만(영화처럼 종종 컬러로 색채가 변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스스로를 보호해 주는 철학적이고 세련된 망토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택하는 컬러는 바깥 세상에 대한 예술적 자아를 드러낸다. 때론 깨닫지 못한 욕망의 표현일 수도 있고, 불안감을 감추기 위한 직업적인 보호막일 수도 있다. 블랙은 나에겐 약간 뒤쪽으로 물러난 신비스러움과 흥미로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짙고 어두운 컬러를 택할수록 다른 이들의 불필요한 이목을 집중시키지 않는, 안전하고 전문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안도감도 있었다.



하지만 컬러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좀 더 낙천적이고 특별한 나를 드러낼 수는 없을까? 남의 기준과 판단을 둘째 치더라도 스스로 컬러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Think Pink!’를 외친 다이애나 브릴랜드, ‘레드는 슬픔의 치유책’이라는 빌 블라스처럼 말이다. 색상환을 한참 들여다본 끝에, 업비트 디자이너들은 이 컬러로 어떻게 다양한 믹스매치를 하는지 궁금했다. 올봄 런웨이에는 정교한 만화경 같은 코러스가 울려퍼졌다. 릭 오웬스의 더스티 파스텔, 샤넬의 채도 높은 선명한 프린트, 드리스 반 노튼의 버터컵 옐로, 셀린에서 크랜베리 컬러와 매치한 화가 이브 클라인의 블루와 민트에 이르기까지 우중충한 컬러는 없었다. 패션계는 오랫동안 블랙에 높은 자부심을 지녀왔다. 루이 14세는 가장 정교한 블랙을 만들어낸 베네치아 염색공에게 큰 포상을 내렸고, 빅토리아 여왕은 1861년 남편이 사망했을 때 오직 블랙만 입을 것을 맹세했다. 심지어는 아르데코 시대의 파스텔 색조에도 불구하고,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와 발터 그로피우스는 무채색의 미니멀리즘을 택했다. 그렇다면 르 코르뷔지에는 어떤가? 그는 건축 구조물 설계에 선명한 화이트를 선호했다. 컬러의 억울한 누명에 대해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때론 다채로운 컬러들은 미개한 혹은 점잖치 못한, 신분이 낮은 농부에게나 어울리는 것으로 치부됐으니 말이다. 계몽주의 시대인 18세기 후반에 괴테나 칸트 등의 철학자들은 ‘사과는 빨간색으로 보이지만, 그건 빛이 우리 눈에 반사돼 나타나는 생체학적인 반응일 뿐’이라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이론에 반기를 들었다. 괴테는 색채론을 연구했고, 물리적인 컬러가 아닌 인간의 심리와 감정적 측면의 작용을 파고들었다. 바우하우스의 화가 요제프 알베르스(Josef Albers)는 “50명의 사람들이 똑같은 빨간색을 볼지라도 그들은 서로 다른 빨간색으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흥미진진한 팩트가 여기 있다. 드레스가 회색인지 파란색인지, 아니면 파란색인지 금색인지를 놓고 2015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컬러 논란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컬러를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인지 알 수 있다. 패션계에서 오랫동안 일해왔음에도 난 갑각류보다 적은 색들을 응용해 왔다. 컬러는 대담하게 실험하는 것이 아닌, 가능하면 절제하거나 보완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던 탓이다. 옐로와 핑크의 믹싱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너무 휘황찬란한 보석 톤은 ‘최악의 취미이고 쿨하지 못한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80년대 포스터처럼 컬러 과잉이면 또 어떠랴. 얼마 전, 난 이스트 빌리지 거리에서 본 노부인의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데 그녀는 컬러플한 폴카 도트와 스트라이프를 당당하게 매치하고 있었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어!” 나에겐 야성적인 컬러 감각이 턱없이 부족했다. 카툰 같은 컬러 조합으로 누군가의 얼굴에 미소 짓게 한들, 아님 눈살을 찌푸리게 한들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까. 누구에게나 선호하는 컬러나 기피하는 컬러가 있겠지만 나에겐 레드가 기피 색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엔 꼼 데 가르송의 체리 토마토 모터사이클 재킷을 구입할 생각이다. 아님 더 나아가 캐런 캘러한(Caron Callahan)의 레드 보일러 수트까지! 밝은 레드 립스틱은 물론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얻은 셀린 레드 앤 블랙 플랫폼 슈즈까지, 그동안 잃어버린 시간들을 보충하듯 마음껏 자유롭게 색채들을 누려볼 작정이다. 이젠 블랙과 결별을 고한 후, 틀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컬러로 ‘표현의 자유’를 누려보길. 화려한 컬러의 스트라이프와 폴카 도트의 조합까지는 아니더라도 ‘행복하고 자유로운 패션’을 위해 대담한 용기를 발휘하길 바란다. 나 역시 ‘죽은 색보다 빨간색이 낫다’는 어머니의 말을 되새기는 중이다!

CREDIT

WRITER ANNE SLOWEY
EDITOR 방호광
DIGITAL DESIGNER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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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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