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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8. SUN

Fashion Is Big Data

친밀한 기술

왜 빅데이터인가?



휴머노이드 로봇이 아닌 무척 레트로적인 로봇이 오프닝을 장식한 샤넬의 2017 S/S 컬렉션은 ‘친밀한 기술’을 시즌 화두로 던졌다.



2017년 S/S 파리 패션위크, 샹젤리제 거리의 그랑 팔레는 실리콘 밸리의 어느 빅 데이터 센터, 즉 칼 라거펠트가 작명한 이름으론 ‘샤넬 데이터 센터’로 탈바꿈했다. 차가운 금속과 알록달록하게 삐져나온 케이블, 슈퍼 컴퓨터로 빈틈없이 채워진 캐비닛 런웨이의 오프닝을 장식한 뮤즈들 또한 예상 밖이었다. 어마어마한 SNS 팔로어를 거느린 슈퍼모델이나 SNS ‘잇’ 키즈가 아니라 로봇 헤드기어와 보디수트를 장착한 두 대의 쌍둥이 로봇. 그들은 하우스의 상징인 부클레 트위드 수트를 블랙과 화이트 버전으로 단아하게 차려입고 복제 로봇처럼 나란히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가면 뒤의 인물들은 샤넬 쇼에 자주 등장했던 슈퍼모델 아만다 산체와 크리스티나 헤르만으로, 이날만큼은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지운 채 다프트 펑크를 닮은 쌍둥이 인공지능 로봇 역할에 충실히 임했다. 왜 데이터 센터인가? 캐비닛 한편에서 속사포 인터뷰를 나누던 칼 라거펠트와 에디터 팀 블랭크 곁을 지날 때 결정적인 단서가 흘러나왔다. 팀 블랭크가 테크놀로지의 역할에 대해 묻자 칼이 바로 받아쳤다. “폰 없이 살 수 있어요?” “아니요. 끔찍할 걸요.” “그게 바로 내 대답이에요.” 무려 넉 대의 아이폰과 30대의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테크마니아 칼 라거펠트는 그것 없이는 끔찍하다고 느낄 만큼 우리 삶의 일부이자 살아가는 방식, 럭셔리의 미래가 돼버린 기술과 로봇, 빅 데이터에 주목했고 2017년의 화두로 ‘친밀한 기술’을 던졌다. 




빅 데이터 센터로 꾸며진 샤넬의 그랑 팔레 쇼장.




로봇 미학에 심취한 앤릴리지(Anrealage)의 F/W 런웨이에 등장한 AI. 로봇 스타일.



그러고 보니 요즘 패션계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 또한 ‘데이터’이다. “내 데이터가 곧 나예요(I am my data).” 뮤지션 윌 아이엠이 비즈니스 오브 패션(Business of Fashion)과의 대담에서 언급한 얘기나 “우린 그저 데이터의 일부일 뿐이에요”라는 패션 평론가 로빈 기반의 트윗은 우리 시대의 특징을 명확하게 요약한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에 익숙한 네이티브 디지털 세대인 ‘Z 제너레이션’에게 디지털 방식은 더 이상 우리 삶을 지배하는 대상이나 낯선 시스템이 아니라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자 나의 일부라고 여겨질 만큼 친숙한 환경이다. 뿐만 아니라 애널리스트들은 오래전부터 로봇이 패션계를 지배할 거라고 예견해 왔다. 가까운 미래에 테크 컴퍼니들이 패션 하우스를 인수해 그 자리를 장악할 것이며 로봇이 크리에이티브의 중심에 있는 패션 디자이너들의 자리마저 빼앗을 거라는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덧붙였다. 분야를 막론하고 미국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테크 기업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런 예측이 무리도 아니다. 더욱이 송두리째 바뀐 패션 캘린더 이후, 즉각적이고 퍼스널라이즈된 소통이 이뤄지는 e커머스가 럭셔리 패션의 중요한 통로가 되면서 빅 데이터는 그 어느 때보다 파워플한 존재가 됐다. 단순히 재고와 선호도 파악을 넘어 그보다 더 전문적인 분석과 제안, 트렌드를 전망하는 능력에 있어 인간의 능력을 로봇이 앞질렀고, 실제로 스탠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은 공동 연구를 통해 인간보다 로봇의 분석력과 제안 능력이 탁월하다는 걸 입증했다. 패션과 유행을 만드는 디자이너의 역할, 유행을 분석하고 제안하고 전망하는 에디터의 역할은 로봇이 대체하기 일보 직전이다. 업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전 구글러(Googler) 애비개일 홀츠(Abigail Holtz)가 론칭할 새로운 패션 플랫폼 아피니티(Affinity)는 이런 변화를 방증한다. 인체의 모든 유전 정보로 완성한 유전자 지도 ‘인체 게놈’처럼 빅 데이터를 통한 추천 기술을 통해 패션과 유행, 구매자의 행동을 모두 예측하고 파악한 ‘패션 게놈’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아피니티는 음악 취향을 간파하고 개인에게 추천하는 애플 뮤직이나 파트너를 추천해 주는 데이터 애플리케이션의 패션 쇼핑 버전으로,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변수가 있는 패션 데이터를 분석하고 예측해서 개인에게 제안한다. e커머스뿐 아니라 오프라인 매장마저 이전과는 다른 풍경으로 변화하고 있다. 럭셔리 e커머스의 대표 주자인 파페치(Farfetch)가 런던 하이패션의 상징적인 부티크 브라운스(Browns) 매장을 사들여 e커머스의 총체적인 테크놀로지를 실험하는 진보적 형태의 스토어 ‘Store of the Future’로 탈바꿈한다는 소식은 기술의 변화가 가져온 패션 리테일의 새로운 차원, 그 단면을 보여준다. 아피니티와 스토어 오브 더 퓨처의 실체는 다가올 봄에 드러날 예정이다. 






지난 11월, 스칼렛 요한슨을 모티프로 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공개되면서 이슈가 됐다.



다시 샤넬 데이터 센터로 돌아와서, 쇼가 시작되자 런웨이를 채운 컬렉션은 세트와는 다르게 무척 레트로적인 무드로 가득했다. 부클레 트위드 수트의 부드러운 여성성과 트위드 수트 아래로 드러난 클래식한 레이스 란제리, 여기에 로봇 모티프의 액세서리와 스트리트 요소가 재미를 더했다. “하우스의 가장 아이코닉한 재킷을 미래에서 온 미지의 생명체에 입힌 건 패션의 타임리스적인 면모를 드러낸 거죠. 데이터 센터는 바로 지금 현대 여성들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의미해요.” 칼의 설명이다.


생전에 알렉산더 맥퀸은 두 차례에 걸쳐 런웨이에 로봇을 들여놓은 적 있다. 밀레니엄을 코앞에 둔 1999년, 두 대의 로봇이 검정과 노랑 염료를 내뿜어 슈퍼모델 샬롬 할로의 화이트 드레스를 액션 페인팅 프린트로 흠뻑 적시면서 신성한 창조의 영역을 로봇이 대체할 거라는 패션의 미래를 보여줬다. 그로부터 10년 후, 맥퀸은 두 번째로 로봇을 들여놓았는데 그건 그의 유작이기에 더욱 전설적인 모멘트로 남았다. 2010년, 맥퀸은 쇼 스튜디오와 함께 카메라가 달린 두 대의 로봇을 통해 전 세계로 라이브 스트리밍 쇼를 시도해 하이패션의 민주화를 현실화했다. 그 후, 6년이 흘렀을 뿐인데 생전의 맥퀸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놀랍고 기이한 일들이 현실화됐다. 확실한 건, 앞으로 일어날 변화가 그토록 공포스럽거나 위협적이지만은 않을 거란 사실. 영화 <그녀 Her>에서 테오도르와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의 사이처럼 아주 친밀하게 다가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리고 칼 라거펠트가 데이터 센터를 통해 화두로 던진 것처럼 클래식한 여성성과 순수한 패션 판타지만큼은 시간과 기술을 완전히 뛰어넘는 불변의 미학으로 존재할 것이 분명하다.


CREDIT

EDITOR 주가은
PHOTO IMAXTREE.COM, GETTY IMAGES/IMAZINS
DIGITAL DESIGNER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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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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