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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6. SUN

I'M OKAY

마음 근육이 필요해

누구나 상사에게 깨지고, 애인에게 상처입고, 자신에게 실망해 무너질 때가 있다.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 산뜻하게 다시 튀어오르는가 하는 것이다



“내 자존감 점수는 16점입니다.” 현대인의 회복탄력성에 대한 원고를 시작하기 전 인터넷에 떠도는 자존감 테스트(SEI)를 진행했다.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50문항의 질문에 빠르게 답하는 형식. 평소 스스로 자존감이 높은 편이라고 믿어왔는데 고작 16점이라니! 점수 아래 덧붙여진 친절한 설명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미국 SECS연구소 발표에 의하면 평균은 25점이며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사(기업 CEO)들의 평균 지수도 28점으로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건강한 자존감 지수는 65점부터이며 35점 이하는 자존심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마이너스 지수도 빈번하다고 하니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문득 실체도 명확하지 않은 내 마음에 대해 높고 낮음을 매기는 것 자체가 가능한 건가라는 의문이 들었다(점수가 낮게 나와서 자존심 상해 하는 말은 아니다). 고개만 돌리면 다양한 매체에서 ‘자존감’을 이야기하는 시대이다. 카드뉴스, 캘리그래피, 일기 형태의 위로 가득한 메시지가 온라인에 유행처럼 돌아다닌다.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소설이나 자기계발서를 제치고 지친 마음을 북돋워주는 에세이가 불철주야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 역시 퇴사를 앞둔 시점, 묘한 길티 플레저를 느끼며 곰돌이 푸가 덩실덩실 웃고 있는 책을 사들고 온 경험이 있다. 한때 직장인들의 처방전처럼 읽힌 책 <약간의 거리를 둔다>에서 받은 약발이 듣지 않던 참이었다. 최근 이렇게 부쩍 자존감이 화두에 오른 이유는 뭘까? 적어도 여기서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야기되는 한 가지 양상을 유추할 수 있다. 자존감이 상할 일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이란 곳은 때로 얼마나 냉정하고 비정한 전쟁터인지…. 동료보다 부족한 평가를 받거나 중요 업무에서 은연중에 배제될 때, 상사의 불합리한 지시나 요구에 ‘노’할 수 없을 때, 며칠씩 밤새워 준비한 기획안이 묵살당했을 때 우리는 자괴감을 느낀다. 자기애로 똘똘 뭉친 것처럼 보이는 밀레니얼 세대도 예외는 아니다. 별다른 실패 경험 없이 부모의 보살핌 속에 성장한 ‘고스펙’ 인재들이 이상과 다른 현실의 모습에 좌절하거나 상사의 작은 꾸지람에도 큰 상처를 입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S전자를 비롯해 일부 대기업에서 밀레니얼 세대와 소통하는 법이란 주제로 강연을 열거나 팀 리더들에게 ‘요즘 신입’들을 대하는 매뉴얼을 나눠주는 이유다). 바로 이런 때 필요한 것이 상처를 털어내고 본연의 나로 돌아오는 회복탄력성이다. 모 스타트업 회사의 기술 영업직 2년 차인 김주임은 직무와 반대되는 성향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자신이 상실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내가 나를 잃지 않으려면 마음에 관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출퇴근길에 <자존감 수업>을 읽고 유튜브로 중국 사업가 지아 장의 ‘거절당하기 연습’을 돌려봤어요.” 미국에서 MBA를 따고 안정적인 회사에 다니며 승승장구해 온 지아 장은 사업 초반, 예상하지 못한 거절을 경험하고 충격에 빠진 후 100일 동안 의도적으로 거절당하는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이를 통해 그는 더 이상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거절로 인해 생기는 새로운 상황을 기대하게 된 것이다. 한편 김주임과 같은 회사에 재직 중인 최차장은 사장의 불합리한 요구와 폭언에 애사심은 물론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마다 엑셀 파일을 열어본다고. “지금까지의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정리된 실적표예요. 가슴속 사표는 접어두고 잠시나마 마음의 위안을 찾을 수 있어요.” 거절당하는 경험이 적은 젊은 세대는 사회에 나와 거절당하는 연습을, 참는 것에 도가 튼 기성세대는 자신의 성과를 곱씹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 근육을 단련하고 있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대며 이별을 말한 전 남자친구의 통보에 터무니없이 자존감이 낮아졌을 때, ‘연애 고수’라 불리던 친구는 내게 연애일지를 써보라고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해 쓰면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된다는 것. 이상형을 구축하기 위한 작업 같던 그것은 실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를 찾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존재의 의미를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찾는 것. 우리는 때로 자신의 부정적인 면에 집착해 근사한 점을 놓쳐버린다. 그러나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인정욕구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에게 더 집중한다. 지난 6월 개봉한 영화 <아이 필 프리티>를 봤는지? 외모 콤플렉스에서 탈피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 가는 캐릭터 르네 역을 맡은 에이미 슈머는 호쾌한 미소와 “내가 너무 예뻐져서 못 알아볼 수 있겠지만, 너희가 아는 나야”라는 자신감 넘치는 대사로 이 구역의 스타가 됐다. 그녀는 마침내 외모와 상관없이 자신의 삶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또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에 부딪힐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인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우리가 속한 세상 역시 문제투성이다. 자의든 타의든 내 안의 내가 넘어지고 무너지는 경험을 했을 때 우리가 인지해야 할 건, 그때 느끼는 절망감이 충격에 의한 감정의 동요라는 점이다. 동요하는 감정을 가만히 앉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방전된 스마트폰의 배터리처럼 깜빡이는 불빛이 보인다. 내면의 에너지가 방전돼 무기력해지고 자신이 초라해질 때를 대비해 자존감이란 마음 근육을 단련할 필요가 있다. 그 단련법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인생을 살며 흔들리는 순간마다 단단한 코어 근육처럼 심신을 지탱해 줄 것이다. 요즘 대세인 개그우먼 박나래가 어느 행사에서 던진 말을 곱씹어보자. 가히 인생의 진리에 가깝다. “남들이 저를 비난하는 얘기를 들으면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냐고 물어요. 근데 전 이렇게 생각해요. 개그우먼 박나래가 있고, 디제잉하는 박나래가 있고, 술 취한 박나래도 있다. 그러니 누가 내 개그를 까도 괜찮아, 디제잉하는 박나래가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누구나 실패할 수 있잖아요. 그 실패가 인생의 실패처럼 여겨지지만 여러분은 한 사람이 아닌 거예요. 우리는 여러 가지의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CREDIT

에디터 김아름
글 이다영
사진 BERNARD LAURE
디자인 황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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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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