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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5. SUN

WORLD OF TWIST

빔 델보예의 거대한 농담

현대미술계의 악동, 빔 델보예. 각종 권의주의를 갖고 노는 그의 농담 같은 세계

작품 ‘Suppo’를 배경으로 선 빔 델보예.



앙팡테리블. 벨기에 작가 빔 델보예(Wim Delvoye)는 현대미술계의 오랜 악동이다. 2000년대 초반 델보예는 살아 있는 루이 비통 가방을 만들었다. 돼지 등짝에 루이 비통의 모노그램을 잔뜩 새겨넣은 다음 그 돼지가 죽고 나면 가죽을 캔버스로 만들어 컬렉터에게 판매했다. 천민자본주의와 현대미술 엘리트주의에 대한 직설적인 풍자다. 불경함에 대한 예술계의 분노는 동물권 논란으로 이어져 유럽 내에서 그의 작업이 금지됐다. 그러자 그는 보란 듯이 중국으로 건너가 아예 문신을 위한 돼지를 사육하는 ‘아트 팜’을 세웠고, 디즈니월드 캐릭터와 각종 명품 로고를 새긴 돼지를 사육하고 있다. 그곳의 돼지들은 삼겹살이 되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예술품이 돼 자연사할 때까지 자유롭게 풀밭을 뛰어다닌다.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킨 작품은 ‘클로아카(Cloaca)’다. 그는 대학교수와 과학자, 디자이너, 컴퓨터 전문가, 기술자 등과 협업하고 자신이 직접 바이오 엔지니어링을 마스터하면서 인간의 소화기관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기계를 만들었다. 미술관에서 공개된 이 거대한 크기의 기계는 밥을 먹고 똥을 만들어냈다. 그는 동시대의 첨단 기술력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똥을 ‘클로아카’라는 고유의 브랜드를 입혀 제품으로 만들었고, 컬렉터에게 판매하고 광고도 만들었다. 그의 최근 작품으로 구성된 개인전이 갤러리현대에서 국내 처음으로 열린다. 3층짜리 공간에는 고딕 양식으로 조각한 덤프트럭, 페르시아 문양을 아로새긴 알루미늄 페라리, 중국 목각 문양을 새긴 타이어 등 화려하고 장식적인 작품이 주를 이룬다. 과거의 그가 보인 파격보다 아이러니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특히 ‘고딕 작품(Gothic Works)’ 연작은 콘크리트 믹서나 덤프트럭, 삽 등을 지극히 정교한 장식을 지닌 예술품으로 만든 작업이다. 델보예는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도구에 컴퓨터 렌더링과 레이저 컷 등의 기술을 사용해 귀족적인 패턴을 입혔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장식된 콘크리트 믹서는 이제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가장 쓸모 있는 물건에 쓸데없이 공을 들여 그 무용함을 증명하는 것, ‘클로아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현대미술계에 델보예가 취하는 삐딱한 시선인 것이다. 그는 나선형으로 뒤틀린 아름다운 고딕 성당 조형물을 만들어 ‘Suppo’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번역하자면 ‘좌약’이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고급스러워진’ 지위가 한 방에 농담으로 뒤집히는 순간이다. 그는 현재 벨기에에 성을 개조한 작업실을, 영국에 건축 스튜디오를, 중국에 농장을 두고, 전 세계를 무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본업은 예술가지만 부업도 다양하다. 타투이스트, 건축가, 바이오 엔지니어, 직물공예가, 도예가, 스테인드글라스 작가 등이다. 예술계의 악동으로 시작한 그는 관심이 가는 분야를 차례로 마스터하면서 그 자체로 거대한 농담 같은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미술계와 자본주의, 각종 권위주의를 갖고 놀 수 있는 세계. 발칙하고 기발한 그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전시는 4월 8일까지 만날 수 있다.



화려함 속에 아이러니를 품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장.


디지털 레이저 컷으로 완성한 섬세한 조각들.



한국에서는 최초의 갤러리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작들은 어떻게 선택했나 각 작품의 메시지뿐 아니라 작품 간의 관계에서 이야기가 발생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가령 살라미와 햄으로 대리석 바닥을 재현한 사진(Marble Floor) 앞에는 실제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 작품(Coccyx Double)이 있고, 사진 속의 페르시아 패턴은 알루미늄으로 만든 페라리 테스타로사(Ferrari Testarossa)에 세공돼 있다. 3층으로 된 공간을 연작별로 구분해 전시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로 이어지게끔 노력을 기울였다. 


유럽의 고딕 장식, 페르시아 문양, 중국의 장식적 요소 등 과거 공예들을 작업에 결합했다. 중세의 공예와 장식에 매료된 이유는 예술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문득 일반인들은 오늘날의 예술에 관심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대신 미국인·중국인·인도인 관광객들은 모두 벨기에 겐트에 있는, 이름 모를 누군가가 몇 백 년 전에 지은 성당에 줄을 서 있더라. 멀리서 와서 막 사진을 찍고 칭송하는데, 그 어떤 현대미술가의 작품도 이 같은 대접을 받지는 못할 거다. 결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우리가 지난 100년간 노력하며 만든 새로운 것이 아니라 훨씬 이전의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우리가 카이로에 가는 건 오늘날 사람들이 만든 복잡한 거리 때문이 아니라 과거 피라미드를 만든 위대한 옛날 사람들 때문이지 않나.  


그래서 직접 공예 기술을 익혔나 그렇다. 하지만 지금 작업들은 대부분 아웃소싱한다. 아라베스크 무늬는 페르시아 장인의 손에서 탄생했고, 나무 세공은 인도네시아 장인이 한 것이다. ‘고딕 작품’은 숙련된 전문가들이 컴퓨터로 렌더링한 다음 스테인리스 강판을 디지털 레이저 컷으로 잘라서 완성한다. 이토록 기술이 발전하고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오늘인데 모든 걸 내 손으로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당신은 바이오 엔지니어링 기술자이자 타투이스트이고, 직접 돼지 농장을 운영한다 난 가만히 하나만 하는 성격이 못 된다. 내 주변 예술가들이 몇 주 동안 계속해서 같은 그림을 그리는 게 나에게는 더 신기하다. 많은 작업이 당시 내가 맺은 관계에서 출발한다. 타투이스트들과 친했기 때문에 돼지 몸에 문신하는 작업을 할 수 있었고, 이슬람 문양의 작업은 이란 친구를 사귀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요즘은 누구와 친한가 건축가들이다. 많은 건축가가 좌절한 예술가라지만, 나는 좌절한 건축가다. 왜 건축가가 되고 싶은가 사람들은 갤러리를 찾기보다 거리에 놓인 거대한 어떤 것에 관심이 더 많다. 좀 더 실용적인 이유도 있다. 건축가들은 특정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절실하게 노력하지만 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어긋나도 괜찮다. ‘고딕 작품’ 작업 중 덤프트럭이나 콘크리트 믹서 등은 건축에서 완성된 형태를 미리 보여주는 스케일 모델이다. 이걸 모델로 건축을 할 수 있고, 만약 실현이 불가능해지면 모형 자체를 작품으로 팔 수 있으니 나로서는 잃을 게 없는 셈이다. 그래서 만약 나에게 건축 의뢰를 하면 건축가보다 훨씬 저렴하게 작업해 줄 수 있다. 


수많은 관심 분야 중에서 협업의 절정은 인간의 소화기관을 그대로 재현하는 기계 ‘클로아카’로 보인다 기계를 만들 당시 2000년대는 복제양 ‘돌리’가 화제였다. 인간의 복제품을 만들기 위해 직접 영국에서 바이오 엔지니어링을 마스터했고 기계공학자, 과학자, 컴퓨터 전문가, 디자이너 등과 협업했다. 그래서 인간의 복제품인 ‘똥 만드는 기계’가 나왔다. 인종과 나이, 성별을 뛰어넘어 인간이라면 모두 먹고 싸지 않는가. 


그런데 이 기계는 꾸준히 진화한다고 들었다. ‘터보’ 버전도 있고 ‘쿼트로’도 있던데 최근 7년 동안 클로아카에 손대지 않았더니 ‘터보’가 변비에 걸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손보다가 이번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했다. 바로 ‘채굴’ 기능이다. 인도의 전문가가 알고리즘을 만들었고 이제 내 ‘똥 싸는 기계’는 똥을 만들면서 가상화폐를 캐내게 됐다. 


그 화폐는 가치가 있나 가상화폐 거래소에 상장할 거다. 클로아카는 늘 자본주의와 대기업 운영의 논리를 따랐다. 그래서 근사한 로고를 만들고 주식도 상장하려는 시도를 했다. 오늘날 블록 체인과 가상화폐는 클로아카의 논리와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논란을 일으키는 작업을 많이 했는데, 관람객의 반응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전 세계의 다양한 미술관에서 ‘클로아카’를 50번 이상 전시한 것 같다. 재미있는 게 나라별로 나타나는 반응이 국민성과 비슷하다는 거다. 가령 프랑스에서는 많은 사람이 그 기계가 먹는 음식이 무엇인지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 반면,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전시할 때는 도덕적 문제를 논하더라.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굶어 죽고 있는데 눈앞에서 음식을 낭비하는 게 불편하다고 말이다. 프로이트의 나라 오스트리아에서는 이 기계를 놓고 나에게 어린 시절 배변과 관련한 기억을 물었고, 미국은 당시 9·11 테러 이후라 전시 관계자들이 이 기계가 미생물 테러와 관련 있는지 염려했다. 


클로아카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을 먹지만, 당신은 음식으로 설탕을 먹는다고 들었다 나는 완벽하게 정제된 설탕 파우더를 좋아한다. 매일 그것만 먹고 살고 싶다. 설탕은 기계가 만든 완전한 음식이 아닌가? 나는 사람 손보다 기계를 믿는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좋아하는 걸 찾았는데, 포장된 미숫가루다. 


논란이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예술가로서 무서운 게 있나 글쎄. 오, 하나 있다. 죽음. 나는 정말 죽고 싶지 않다.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죽어줬으면 좋겠다. 지금 내 곁에 많은 걸 도와주는 어시스턴트들이 있는데 죽음만은 그들이 대신해 줄 수 없으니까. 스무 살쯤에 세상을 떠난 친구가 있는데 그를 떠올리면 안타깝다. 그는 결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알지 못했을 거다. 내가 죽고 난 다음의 세상이 너무 궁금하다. 


요즘 관심 가는 주제나 계획이 있는가 물론 있다. 묘지를 디자인하는 거다. 묘지라는 게 이미 슬픈 사람들을 더 슬프게 하는 장소 아닌가. 나는 사람들이 너무 즐거워서 꼭 체험하고 싶은 묘지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 또 하나는 내 클론이다. 100% ‘미니미’인 나를 만들 거다. 농담이 아니다.

CREDIT

에디터 김아름
작가 원영인
사진 김성곤
디자인 황동미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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