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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9. MON

WHAT IS THE ART?

기러기 없는 <기러기>

작가는 작품으로 이야기한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 김민애 작가의 전시 <기러기>가 던진 메시지는 ‘미술은 무엇인가’다

Installation view from GIROGI, 2018, Paint on polystyrene and rubber sound, moving light, 300×4000×3cm (Sound design: Woo Morceau J.) Photo by Nam Kiyong ⓒ에르메스 재단 제공


고요한 전시장에 정체불명 소리가 난다. ‘푸드덕’ ‘파다닥’. 고막을 날카롭게 치는 쨍한 소리가 전시장을 가득 메운다. 그 소리는 났다가 안났다가를 반복했다. 하얀 벽을 따라 새가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를 인간은 동경한다. 인간은 중력을 거슬러 하늘을 날 수 없으니, 인간보다 자유로워 보이는 새를 우리는 동경한다. 그러나 김민애 작가의 새들은 벽에 꼭 붙어 있다. 날지 못한다. 참새, 비둘기, 갈매기, 닭, 청둥오리, 오리, 거위, 캐나다구스, 백조.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의 크기다. 윤곽선을 따라 그린 그림 같다. 벽에 붙어 있는 새를 보고 있으니, 등 뒤에서 빛이 서서히 몰려 온다. 빛의 세기가 강렬하다. 빛이 새를 비추면 새는 순간 사라졌다가 엄청난 존재감으로 다시 나타난다. 그러다 다시 정체불명의 ‘푸드덕’ 소리가 울린다.



전시장의 벽면을 따라 빛이 움직인다. 무빙라이트는 벽에 고정된 새에게 생동력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산공원에 위치한 에르메스 지하에 있는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는 현재 <기러기 GIROGI> 전시가 한창이다. 김민애 작가의 전시다. <기러기 GIROGI> 전시를 이루는 요소는 부조, 음향, 무빙라이트다. 전시장에 울렸던 ‘푸드덕’, ‘파다닥’ 소리는 진짜 새가 날아 오르는 소리다. 전시장에 있는 스피커 3개가 불규칙적으로 그 소리를 뱉어 낸다. 전시장에 있는 날지 못하는 새, 새의 날개짓 소리가 이질적으로 충돌한다. 전시장 천장 한 가운데 무빙라이트가 있다. 푸드덕거리는 새들의 날개짓 소리 뒤로 무빙라이트의 강한 빛 한 줄기가 벽면을 따라 천천히 회전한다. 밝음과 어둠이 반복되며 벽면 새들의 형상은 드러났다가 감춰진다.




김민애의 전시장에는 볼 것은 없다. 대신 생각할 거리는 무한하다. 1974년 로스앤젤레스의 클레어 코플리 화랑에서 열렸던 전시가 있다. 작가 마이클 애셔의 전시였다. 그가 전시했던 것은? 바로 텅 비어 있는 전시장이다. 즉, 그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전시의 의미는 무엇일까? 마이클 애셔는 전시장 공간을 작품화하여 ‘미술은 무엇인가’, ‘미술이 미술인 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에 대해 관람객 스스로 질문한 셈이다. 즉, 여태 미술을 둘러싸고 있던 근본적 질문을 가시화한 것이다. 미술을 떠받치는 역사와 담론, 관습과 관행의 무게 속에 여전히 미술은 스스로를 미술로 정의한다. 김민애의 <기러기 GIROGI> 전시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전시 작품 중에 기러기는 없다. 벽에 있는 작품은 빛에 따라 시시때때로 사라진다. 모순과 역설, 존재의 유무 사이를 무수히 오가며 ‘미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김민애 작가의 생각의 자취를 우리는 <기러리 GIROGI>로 짐작한다.



김민애 작가의 <기러기 GIROGI> 전시는 5월 13일까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진행된다


CREDIT

에디터 김은정
사진 아뜰리에 에르메스 제공
디자인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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