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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2. FRI

MODERN HANSIK

한식, 안녕하십니까?

전통과 퓨전. 이분법적으로 접근해 온 한식에 새로운 수식어가 붙었다. 이름부터 세련된 모던 한식


‘섞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Fuse’에서 유래한 퓨전. 이질적인 것들의 뒤섞임과 조합, 조화를 뜻하는 이 단어는 여러 장르들이 자신의 고유성을 해체하고 다른 것과 합쳐지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경향을 대변한다. 특히 국내 미식계에서는 한식과 다른 나라 식이(食餌)의 표현법을 섞는 행위로 널리 이용된다. 그런데 퓨전 한식이라는 표현에는 화자나 청자 모두를 묘하게 불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셰프들은 자신이 한식에 이국적 색깔을 더하거나 이국의 요리에 한식의 색을 입힌 요리를 내놓으면서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지 못한다. 그런 태도 때문에 음식이 자신의 상식을 조금만 벗어나도 퓨전이라고 쉬이 명명하는 경향이 당연한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로 인해 퓨전 요리는 그 안에 셰프의 고민이 제아무리 많이 담겨 있어도 피상적이고 무성의한 인상을 떨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모던 한식’이라는 새로운 표현이 귀를 솔깃하게 한다. ‘전통’ ‘퓨전’으로만 설명되던 한식에 정말이지 얼마 만에 새로운 수식어가 생긴 것인가. 모던 한식의 정체가 궁금해 최근 더 페스타 레스토랑을 한식당으로 개편한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을 찾았다. 호텔의 메인 레스토랑을 한식당으로 탈바꿈한 이 파격적인 행보의 선봉장은 셰프 강레오다. 사실 근래 들어 한식 레스토랑을 개편하거나 새로 마련한 호텔이 반얀트리만은 아니다.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이 수년간 라인업에 없던 한식 레스토랑의 문을 열었고, 2010년 대대적인 리뉴얼을 한 롯데호텔서울 한식당 무궁화도 좌석 수를 대폭 줄이고 식기를 한층 더 고급화하는 등 또 한 차례 개편을 단행했다. 특급 호텔이 이렇듯 한식에 신경 쓰는 결정적 요인은 지난해 발간된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이 아닐까 싶다. 별을 받은 레스토랑 24곳 중 반수가 넘는 13곳이 한식당이었고, 최고점에 해당하는 별 세 개를 획득한 레스토랑 두 곳 역시 한식당이었다. 그중 하나가 신라호텔 소속의 한식당 라연이다. <미쉐린 가이드>의 별을 받은 레스토랑을 보유했다는 사실은 특급 호텔로서 지켜야 할 자존심이자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 될 수 있다. 물론 한식이 미식의 한 장르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강레오를 비롯해 정식당 임정식, 밍글스 강민구, 권숙수 권우중 등 모던 한식의 주축을 이루는 셰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서양식을 전공했다는 사실이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에서 별 두 개를 획득했으며, 뉴욕 트라이베카에 레스토랑을 선보인 셰프 임정식이 한식에 도전한 이유는 “고급 한식당의 부재가 블루 오션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셰프 권우중강민구가 한식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각각 해외에 소재한 고급 한식 레스토랑과 모던 일식당 ‘노부’에서 일한 경험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강민구는 자신이 하는 요리의 본바탕을 한식에 국한하지 않는다. 한식과 아시아 요리를 기반으로 하는 뉴 아시언 요리를 표방한다고 주창한다. 한편 누구보다 서양식에 오래 몸담은 강레오는 한식에 집중하게 된 이유로 정체성을 꼽는다. “10여 년간 런던과 두바이를 오가며 장 조지, 피에르 가니에르, 피에르 코프만, 고든 램지 아래에서 요리를 했어요. 기본기를 탄탄히 다진 후 저만의 요리를 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뭘 해도 서양식인 데다가 장 조지, 피에르 가니에르, 피에르 코프만, 고든 램지의 색깔을 벗어날 수 없더라고요. 오랜 고민 끝에 독창적이면서도 창의적인 표현을 하려면 한식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고, 한복려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그가 궁중음식연구원장인 한복려 선생을 찾아가 궁중요리를 사사한 지 어느덧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제아무리 서양 요리를 전공하고 반평생 서양식을 다뤘어도 나면서부터 형성된 식습관과 그로 인해 축적된 정서적 에너지, 기운은 부정할 수 없는 모양이다. 임정식도 한식을 두고 “살면서 먹어온,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라고 정의 내렸으니 말이다.


서양 요리를 전공한 젊은 셰프들이 한식으로 회귀하는 이유를 일정 부분 이해할 것 같다. 또한 서양의 조리법이 몸에 밴 셰프들인 만큼 그들의 손에서 탄생하는 한식이 우리가 익히 아는 선에서 벗어나 있을 거라는 점도 짐작된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모던 한식’이라는 새로운 장이 열렸을 것이다. 모던 한식은 현대, 아니 좀 더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 닿게 표현하자면 ‘현재의 한식’을 의미한다. 강레오는 한복려 선생에게 궁중요리를 사사하며 서양에 있는 웬만한 조리법이 이 땅에도 이미 존재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우리 선조가 가지고 있던 조리법은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했어요. 제가 전통 한식을 배우며 가장 인상 깊었던 사실을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메뉴를 전통 조리법을 기준으로 분류했어요. 과거에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조리법을 서양 요리를 배우며 쌓은 경험에 빗대어 재현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메뉴에 증, 선, 초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었는데 증과 선은 굉장히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조리법이에요. 증은 찜을 의미하는 한편 선은 끓이면서 찌는 조리법이에요. 서양 조리법과 비교하면 선은 브레이징, 초는 글레이징, 증은 말 그대로 스팀에 가깝지요.” 강레오는 과거에 있었으나 지금은 없는 것들이 앞으로 많이 나와줘야 그만큼 한식의 표현력이 다채로워진다고 강조한다. “과거에 있던 조리법이나 음식이 다시 재현돼 그것이 서양의 것과 만났을 때 비로소 퓨전이 아닌 한식의 미래로 거듭난다고 생각합니다.” 동서양, 과거와 현재를 섞고 그 안에서 조화를 찾는 시도였던 퓨전 한식은 과정일 뿐 결코 종착점은 아니다. 그 행위를 통해 새로운 도달점에 다다라야 하며 그것이 지금 이 순간의 한식, 즉 모던 한식인 셈이다.


하지만 퓨전 한식이 그러했듯이 모던 한식을 두고 정체성에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있다. 강레오는 그들에게 논란거리라도 안겨주려는 듯 메뉴에 자장면과 짬뽕을 버젓이 올렸다. 사실 한식당 메뉴에 등장한 자장면과 짬뽕은 쉬이 수용하기 어렵다. “나가사키 짬뽕을 우리는 라멘집에서 찾지, 중국집에서 찾지 않잖아요. 나가사키 짬뽕은 중국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건너간 화교가 동족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전통 음식을 변형하여 만든 요리예요. 그 뿌리가 중국에 있음에도 우리는 나가사키 짬뽕을 중국이 아닌 일본 음식이라고 여겨요. 자장면과 짬뽕 역시 우리나라에 건너온 화교가 개발했지만 우리 입맛에 맡도록 변형, 발전됐어요. 실제로 중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요리를 찾을 수 없지요. 그 원류가 국경 밖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그 지역에 정착하여 지역색에 맡게 변형됐다면 그건 그 지역 음식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자장면과 짬뽕을 메뉴에 올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어요.” 그의 말에 수긍이 갔지만 과연 다른 사람들도 흔쾌히 동의할 수 있을까. 강레오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전통 한식의 대표 메뉴로 신선로를 꼽는 데 주저함이 없지요. 그런데 이렇듯 전통 음식이라는 사실에 일말의 의구심도 갖지 않는 신선로가 사실은 고려시대 중국으로부터 유입됐다는 사실을 아나요? 자장면과 짬뽕이 한식이 아니라면, 같은 맥락에서 신선로도 더 이상 한식이라고 명명할 수 없는 셈이죠.”  한반도는 오랜 시간 중국의 영향권에 있었고 음식에서도 그 흔적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강레오는 궁중음식을 배우며 오히려 중식을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중국의 색깔이 입혀진 우리 음식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한식의 전통성, 정통성을 강조하는 이들조차 전통 한식을 정의 내리기 힘든 시대적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의 문화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기 마련이다. 한식도 마찬가지다. 전통이 있다면, 현재와 미래가 있으며 또 있어야 한다. 지난해 국립국어원이 개통한 국민참여형 국어사전 ‘우리말샘’에는 기존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단어 50만 개에 새로 구축한 일상어와 전문 용어 등의 신조어 50만 개가 추가로 수록됐다. 시류에 따라 변한 언어를 우리는 외국어나 외계어가 아닌 한국어로 인정한다. 한식도 마찬가지다. 변화를 인정할 때다.

CREDIT

글 이주연
에디터 김영재
사진 우창원
디자인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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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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