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브/라이프 > 컬쳐

2017.08.20. SUN

Fictional Epic

허구의 예술

가짜를 통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이야기를 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이 창조한 허구는 기꺼이 믿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다

데미안 허스트의 ‘Mickey’.

 

데미안 허스트의 ‘Sphinx’.

 

 

2008년 아프리카의 동쪽 해안에서 수중 난파선이 발견됐다. 고대 시리아 왕국의 어느 부유한 수집가가 모은 진귀한 보물을 품고 항해를 떠났다가 침몰된 함선이었다. 태양신을 위한 신전에 바쳐질 진귀한 조각과 예술품, 동전, 장신구 등이 해양탐사대에 의해 수면 위로 떠오르자 전설처럼 내려오던 이야기는 현실임이 증명됐다. <Treasures from the WRECK of the Unbelievable>. 해석하면 ‘믿기지 않는 난파선으로부터 건져낸 보물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고대 유물 전시가 현재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전시 중이다. 오묘하게도 전시 주체는 동시대의 가장 파괴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 데미안 허스트다. 여기에 반전이 숨어 있다. 사실 이 모든 이야기는 데미안 허스트의 신작을 위한 허구다. 산호와 조개 껍질로 뒤덮인 유물 또한 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지난 4월 전시 시작과 함께 이 모든 사실이 공개되기 전까지 데미안 허스트는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했고, 앞서 공개한 수중탐사대의 유물 발굴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미술계와 언론을 감쪽같이 속이기도 했다. 베니스의 팔라초 그라시와 푼타 델라 도가나, 두 미술관에서 12월 3일까지 전시되는 189점의 작품 중에는 스핑크스와 메두사 등 신화 속 조각뿐 아니라 케이트 모스와 페럴 윌리엄스의 얼굴을 하고 있는 흉상도 있다. 산호로 뒤덮인 미키 마우스와 구피, 심지어는 작가 자신의 청동 조각 또한 포함된다. 데미안 허스트의 블록버스터급 개인전은 시작과 동시에 미술계의 논쟁거리로 등극했다. 어떤 이는 무모할 정도의 스케일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유물이 컬렉터들의 돈을 얼마나 모을지 내기하듯 전망하는 기사도  나왔다. 데미안 허스트가 소수의 인터뷰를 통해 반복적으로 말한 메시지는 이렇다. “이 전시는 사람들이 믿고 싶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과거와 연결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기꺼이 믿고 싶어 한다.” 아름답기보다는 차라리 기괴하고 신비스러운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마주하면 어떤 게임에 초대된 느낌을 받게 된다. 허구와 죽음이라는, 형태가 없는 예술적 영감을 어떻게든 현존하는 물체로 남기고 싶어 하는 데미안 허스트의 블랙 유머 속으로 말이다. 커다란 유리 탱크에 상어와 소를 박제해 넣었던 예술가는 더욱 대담한 방식으로 진실과 거짓, 환상과 허구, 독창성과 복제에 관한 논쟁을 던진다. 어쩌면 과거를 통해 21세기 동시대가 품고 있는 의문과 혼란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대니엘 아샴의 ‘Rose Quartz Teddy Bear (Large)’, 2017.

 

대니엘 아샴의 ‘Ash, Pyrite, and Selenite Teddy Bear’, 2017.

 

허구를 통해 유희적이며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인 아티스트가 또 한 명 있다. 몇 년 사이 미술계 신성으로 떠오른 대니얼 아샴이다. 그는 키보드, 스피커, 농구공 등 일상의 오브제를 화석화된 모습으로 변형시킨 ‘허구의 고고학’ 시리즈를 선보였다. 최근 갤러리 페로탕 서울에서 공개된 그의 전시 <Crystal Toys>에서는 오랜 시간 동굴 속에서 풍화된 듯한 테디 베어가 등장했다. 실제 인형을 캐스팅해 만든 조각을 깨어 구멍을 내고 그 안에 지질학적 연대를 상징하는 크리스털을 넣은 작품이다. 눈 앞의 예술품은 분명 ‘현재’의 물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오래된 유물처럼 깨지고 부식된 모양 때문에 마치 ‘미래’의 존재가 된 느낌을 받는다. 대니얼 아샴의 또 다른 신작 ‘모래시계’는 10월까지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전시되고 있다. 잘게 분쇄된 크리스털 가루 속에 파묻히는 일상적 유물을 통해 작가 스스로 칭한 ‘순환적 고고학’을 경험할 수 있다. 허구의 서사로 연금술을 행하는 예술가들은 존 파울즈의 소설 <마법사>를 떠올리게 한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주인공 니콜라스는 그리스의 한 섬으로 떠나고, 이곳에서 기묘하고 비밀스러운 노인 콘키스를 만난다. 그 노인이 펼치는 극적이고 환상적인 인생 이야기에 결국 니콜라스는 진실과 허구를 혼동하게 된다. 우리는 어쩌면 기꺼이 속을 준비가 돼 있는 니콜라스가 아닐까?

CREDIT

글 강보라
에디터 김영재
사진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PERROTIN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8월호
참고하세요!

저작권법에 의거, 엘르온라인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타 홈페이지와 타 블로그 및 게시판 등에 불법 게재시 불이익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