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브/라이프 > 라이프 스타일

2019.03.19. TUE

TRAVEL FOR A BROKEN HEART

약혼자에게 실연당하고 여행을 떠났다

결혼식을 석 달 앞두고 실연당했다. 산산조각 난 삶은 세계를 여행하면서 서서히 회복됐다

“여행은 그냥 가야겠지?” 아버지가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2015년 여름이었다. 결혼 예정일을 12주 앞두고 약혼자는 다른 여자가 생겨 나를 떠나버렸다. 한때 ‘우리’의 보금자리였던 버킹엄셔의 시골집에서 아버지와 나는 취소 목록을 훑어보다가 마침내 ‘허니문 사파리 여행’ 항목에 이르렀다. “네가 떠날 준비가 됐다고 느낄 때 떠나렴.” 아버지는 덧붙였다. “영원히 준비가 될 것 같지 않아요.” 나는 무덤덤하게 답했다. 내가 결혼하려던 남자는 여자들이 인생의 반려자감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춘 것처럼 보였다. 그 ‘완벽남’은 영원히 내 옆에 있겠다고 약속한 후에 떠나버렸다. 그냥 그렇게 나는 혼자가 됐다. 무언의 작별이 내게 준 충격은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처럼 내 인생을 산산조각 냈다. 그러나 실연은 이 스토리의 끝이 아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호주에 있는 어느 바위산에 홀로 앉아 아름다운 절벽을 내려다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열대우림 폭포와 호주 원주민들의 암각화를 지나 덤불숲 지대를 가로지르는 하이킹 코스를 이미 완주한 후다. 나를 나약하게 만든 슬픔 그리고 나를 강인하게 만든 고통을 회상한다. 지금은 내 모습에 만족하고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다. 세계를 여행하면, 그리고 그 경험들이 나를 통째로 꿀꺽 집어삼키면서 나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치유됐다.


거친 산맥을 오르며 생의 의지를 되찾게 된 오만.


아버지와 사파리 여행에 관한 대화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막내 여동생 조지나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성한 팀바바티(Timbavati) 지역으로 날아갔다. 남편 없이 신혼여행을 한다는 건 어떤 강심장에게도 괜찮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조지나가 있었다. 동생의 애정과 유머가 나를 격려했고 기분 전환도 해줬다. 어느 날 밤, 탁 트인 덤불숲에서 별을 관측하는 탐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댐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새끼 표범들과 마주쳤다. 그때 난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자고 결심했다. 해돋이를 바라보며 마시는 모닝커피엔 아마룰라를 꼭 섞어야 했고, 자연보호구역에서의 저녁 식사는 근처에서 콧바람을 뿜어대는 하마와 으르렁거리는 사자들이 함께했다. 나는 그 후 약 서른 번의 여행을 다녀왔다. 각 여행은 조각난 삶을 다시 이어 붙이고 더 나은 내 모습을 만들어줬다. 고통으로부터 시작됐지만, 떠날 만한 가치가 있고 기억할 만한 가치는 더더욱 넘쳐나는 여정이었다.

Makanyi Lodge, 스위트룸 1박당 577유로(식사와 음료, 매일 두 번의 사파리 드라이브 포함 가격), makanyilodge.com



 Hvar, Croatia    

2개월 후 | 히어로가 되다
“시동이 안 걸려!” 알렉스가 다급하게 말했다. 우리가 탄 모터보트는 갑자기 위아래로 흔들렸다. 흐바르 섬에 머물고 있던 우리는 또 다른 섬으로 가기 위해 보트를 렌트했다. 작동법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대충 배웠다.  용감한 항해사처럼 들리겠지만 현실은 술이 아직 깨지 않은 델마와 루이스에 가까웠다. 한적한 해안가 외곽에 닻을 내린 지 한 시간도 안 돼 우리는 큰 소리로 도움을 청하는 신세가 됐다. “이제 어떡하지?” 알렉스는 극심한 공포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말했다. 지난 몇 주 동안 생기 없이 살고 있던 내 안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내가 가서 도움을 청할게!” 밀물이 바위섬 가장자리까지 밀려왔을 때, 나는 플립플롭을 신은 채 절벽을 마구 기어 올라갔다. 간신히 꼭대기에 도착할 때쯤 여기 섬의 대부분이 무인도라는 말을 들은 게 생각났다. 그러나 나는 극적으로 빨랫줄을 발견했고, 별 반응 없는 노인에게 과장된 몸짓으로 구조 요청을 하는 사이, 한 남자가 나를 도와주러 왔다. 그 남자와 나는 서둘러 알렉스에게 되돌아갔다. 알렉스는 바위 위에서 불가사리 모양으로 균형을 잡으면서 우리 보트가 바위에 충돌하지 않도록 애쓰고 있었다. 흐바르 섬에 대한 환상이 깨진 뒤에도, 우리만의 재난영화를 찍은 이날을 생각하면 계속 미소가 지어졌다.
Youth Hostel Villa Marija, 프라이빗 아파트 1박당 132유로, vmh.hr


 Kandy, Sri Lanka    

4개월 후 | 마음의 평화를 되찾다
계속 바쁘게 지내는 것이야말로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비극에서 탈출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나는 그 불행한 장면들을 잠시 잠재울 게 아니라 영원히 꺼야만 했다. 스리랑카의 신비로운 도시 캔디를 방문한 목적은 출장이었다. 캔디는 옅은 안개가 자욱한 산으로 둘러싸인 차 재배 지대다. 지극히 평화롭고 이국적인 풍경은 다른 차원에 와 있는 느낌을 줬다. 호숫가를 거닐며 고대 사원들을 지나는 산책 코스는 휴식을 취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이 여행은 내게 슬픔을 직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준 동시에, 상처 입은 감정들을 훌훌 털어버리는 신호탄이 됐다.

OZO Kandy, 더블 룸은 1박당 70유로부터, ozohotels.com



다양한 사랑의 존재를 일깨워준 포르투갈.


 Vale Do Lobo, Portugal    

1년 후 | 단순한 진리가 사랑을 가르쳐주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포르투갈을 종종 방문했다. ‘그 사건’이 벌어진 지 1년 후, 가족들과 다시 포르투갈에 갔다. 친구네 별장에서 함께 지냈는데, 자신이 치유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던 날들이었다. 마치 상처가 아무는 것처럼 말이다. 테라스에서 엄마와 함께 모닝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해 질 녘엔 여동생들과 석양을 보며 달리고, 밤에는 웃음이 가득한 바비큐 파티를 늦게까지 즐겼다. 9개월 된 조카와 모래성을 지을 때, 아이가 내 손을 잡으려고 손을 뻗자 ‘그’를 거기에 데려갔던 추억이 물밀 듯 밀려왔다. 가슴 아파했던 날들 동안 내 마음속에는 물음표가 떠 있었다. 누군가를 향해 품었던 사랑은 그가 떠나버린 후에는 어디로 가는 걸까. 발레 도 로보 해변에서 어렴풋이 깨달았다. 내가 그를 만나기 전에도, 또 그와 헤어진 후에도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황토색 절벽에 철썩철썩 부딪히는 파도처럼 가족은 언제나 변함없이 늘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Ibiza, Spain    

13개월 후 | 다시 새롭게 시작하다

“아니야, 아니야!” 할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팔을 아주아주 높게 뻗어야 해. 그리고 바깥쪽으로, 그리고 아래로 펼쳐야 해. 야자수처럼.” 이비사에서 맞이한 아침 5시 45분의 광경이었다. 밤새도록 광란의 파티를 즐긴 후, 우리는 일출을 바라보며 우리 내면의 야자수와 교감을 나눴다. 아무 이유 없이 6일 동안 스페인 남자들과 신나게 놀며 자유를 만끽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아침, 하늘이 수백 가지의 파스텔 색상으로 변하며 아침 햇살이 고요한 바다에 반사돼 눈부시게 빛날 때, 우리 둘은 그곳에 앉아 아무것도 아닌 얘기에도 깔깔 웃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또 웃었다. 지난 20년간 친구와 난 수많은 계획을 세워왔고, 또 바꿨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고 온전히 웃고 있었다. 만약 단짝친구와의 여행이 실연의 상처라는 깊은 구덩이에서 나를 꺼내 새로운 시작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는 증거를 대보라면, 그건 바로 이 여행이었다. 
Hotel MiM Es Vive, 더블 룸은 1박당 109유로부터, hotelmimibiza.com



동생과 함께 찾은 남아프리카공화국.


 New York, USA    

2 년 후 | 종지부를 찍다
나는 헤어진 지 2년도 안 돼 삶의 리듬을 되찾았다. 그리고 인생의 타이밍을 신뢰하는 법을 다시 한 번 배웠다. 결혼이나 출산을 한 친구들을 축하해 주면서, 32세가 되도록 그동안 한 번도 혼자 여행을 떠나본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나 홀로 여행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2017년 9월에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했다. 슬픈 것을 좋은 것으로 바꿀 만한 계기를 위해 예전의 약혼 반지를 팔아 뉴욕행 비행기 티켓을 샀다. 다른 나라에서 혼자 서너 달을 지낸다는 것은 나로서는 대단한 발전이었다. 이 여행은 삶의 주도권을 되찾고 자아를 찾기 위한 기회이기도 했다.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택시를 타고 지나며 바라본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90일 동안 나는 이스트 빌리지의 지난 역사와 스트리트 아트, 브라운 스톤의 건물들, 웨스트 빌리지의 재즈 바에 완전히 반했다. 구석진 곳에 있는 나만의 뉴욕 아지트도 찾았고, 현지인들이 피자를 먹으러 어디로 가는지도 알아냈다. 나는 브루클린 브리지를 걸어서 건너는 것도, 자전거를 타고 센트럴 파크를 돌아다니는 것도, 혹은 페리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 옆을 지나가는 것도 싫증나지 않았다. 박물관과 미술관, 술집도 혼자 갔다.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기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데이트도 했다. 바퀴벌레가 우글대고 사기꾼 같이 의심스러운 세입자들과 지내는 에어비앤비 숙소도 끝까지 견뎌냈다. 그러다가 결국엔 재미있는 룸메이트들과 눈이 튀어나올 만큼 근사한 루프톱 아파트도 발견했다. 뉴욕에서 보낸 시간은 내게 혼자 지내는 법을 알려줬고, 자신감을 심어줬다. 내가 그런 자신감을 갖고 있었는지는 예전에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결코 극복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감정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뉴욕은 모든 게 너무 빠르고, 때로는 정말 짜증나는 도시지만,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믿게 해주는 곳이다. 내가 고향에 갖고 돌아온 게 바로 그 희망이었다. 


 Al Hajar, Oman
2년 반 후 |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여기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가이드가 아이언 케이블에 클립을 고정하면서 말했다. 우리는 오만에서 알하자르 산맥의 한 부분을 올랐다. 등반 루트 중 가장 가파른 암벽을 향해 길을 만들면서 나아가는 중이었다. 그 암벽으로 가려면 줄타기 곡예에서나 볼법한 아찔한 밧줄 다리를 거쳐 위쪽으로 구불구불 나 있는 길을 올라가야 했다. 나는 되돌아갈 수 없는 막다른 지점에 도착해서 잠시 멈췄다.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혔지만 긴장감과 불안은 곧 아드레날린과 경외심에 압도됐다. 나는 마침내 다리를 건너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더 멀리 나아갔다. 자신을 채찍질하며 억지로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매번 내 앞에 펼쳐지는 어마어마한 광경을 고스란히 두 눈에 저장했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내면의 나침반을 모험 방향으로 돌리고 나니, 미래를 만들어 나갈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았다. 만약 앞에 놓인 길을 두려워했던 과거의 나와 마주하게 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때로는 많이 힘들겠지만, 그 두려움을 받아들여라.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네 삶을 풍요롭게 하고 강력한 내면의 힘을 키워줄 테니까. 앞으로도 여권을 볼 때마다 나를 회복시켜 준 추억들이 생각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저 바깥세상으로 기쁘게 걸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Alila Jabal Akhdar, 더블 룸은 1박당 470유로부터(비아 페레타 암벽 등반은 호텔 및 호텔 가이드가 제공), alilahotels.com 

CREDIT

콜라주 GUS & STELLA
글 LISA HARVEY
에디터 SUSAN WARD DAVIES, 이경은
사진 LISA HARVEY/GETTYIMAGESKOREA
번역 이소영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3월호
참고하세요!

저작권법에 의거, 엘르온라인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타 홈페이지와 타 블로그 및 게시판 등에 불법 게재시 불이익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