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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1. FRI

JOURNEY FOR LIFE

나의 몸, 나의 선택

낙태법 폐지 논의가 한창인 지금, 세계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지난 5월, 낙태죄 폐지 국민투표를 앞두고 더블린의 벽을 장식한 벽화.



적절한 시기에 시술을 받지 못해 결국 패혈증으로 목숨을 잃은 사비타는 아일랜드 낙태죄 폐지 운동의 상징이 됐다.


IRELAND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낙태법을 ‘가졌던’ 곳이다. 앞의 말이 과거형인 이유는 지난 5월 국민투표로 낙태죄가 드디어 폐지됐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아일랜드는 낙태한 여성을 최대 14년의 징역에 처하고, 형법이 아닌 헌법에서 태아의 인권을 보장한 국가였다. 암암리에 불법 시술이 이뤄지는 한국과 달리, 아일랜드에서는 불법 중절 시술조차 받기 어려워 여성들은 주로 영국으로 가서 수술을 받곤 했으나 정부는 이 또한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웃에게 강간당해 임신한 10대 소녀가 낙태하지 못하도록 출국 금지 명령을 내린 일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2012년, 이미 가망이 없는 배 속의 태아를 위해 위험한 상황에 처한 임신부를 방치한 끝에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있었고, 이는 낙태죄 폐지론에 불을 붙였다. 가톨릭에 기반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가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어렵게 얻어낸 이 권리가 단단히 뿌리내리도록 지금도 싸우고 있다.


POLAND
폴란드는 한국과 낙태죄 관련 현행법이 가장 비슷한 국가다. 강간 및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 태아에 심각한 유전적 질환이 있거나 모체의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가 불법인데, 2016년 보수 여당은 이 예외 조항마저 폐지하는 법안을 추진했다. 이에 분노한 10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전국적으로 검은 옷을 입고 시위에 나섰고, 결국 낙태 전면금지화 법안은 철회됐다. 가톨릭이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피임조차 신 앞에 죄’라고 가르치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저항이 가능했을까? 폴란드 활동가 우르술라는 그 이유를 ‘공포’에서 찾는다. 원치 않는 임신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그때 국가가 여성 시민이 아닌 태아의 생명에 우선권을 준다는 사실에 여성들은 즉각적 공포를 느끼고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게 일부 여성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죠.” 그러나 지금도 폴란드의 종교기관과 보수 정당들은 관련 규정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이들의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시몬 베유를 추모하는 <엘르> 프랑스. 그는 여성의 자유를 위해 싸운 영웅이었다.  



거리로 나선 폴란드 시민들. 과거 불법 낙태 시술에 사용된 철사 옷걸이를 그려들었다.


NETHERLANDS
암스테르담에 자리한 ‘위민 온 웨이브(Women on Waves)’의 수장 레베카 곰퍼츠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낙태권 활동가일 것이다. 네덜란드는 일찍이 낙태죄 폐지를 이뤄냈지만, 실제로 수술받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국가가 지정한 합법적 중절 수술을 제공하는 병원의 수가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이다. 낙태를 여느 수술과 다를 바 없는 메디컬 케어로서 정착시키는 데 실패한 경우다. 레베카는 의사이자 활동가로서, 수십 년째 전 세계 여성의 낙태권을 위해 싸우고 있다. 낙태가 불법인 국가의 인근 해역에서 법망을 피해 유산유도제를 전해주기도 하고, 낙태약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에콰도르 여성을 위해 게릴라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현재는 ‘위민 온 웹(Women on Web)’ 시스템을 구축해 전 세계 여성에게 우편으로 낙태약을 전달 중이다. “모든 여성이 인간으로서 자신의 몸에서 일어날 일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하고,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임신을 중지할 수 있어야 한다.” 레베카는 지난 7월 낙태권 캠페인을 위해 한국을 찾은 바 있다.


FRANCE
낙태 시술을 제공한 여성을 단두대에서 처형하기도 했던 프랑스. 그러나 1970년대에 접어든 프랑스 사회는 법의 금지와 관계없이 실제로 낙태가 횡행하고 있으며, 불법 낙태가 수많은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현실을 직시하기로 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 등 당대 지식인을 포함한 343인이 “나는 낙태했다”고 선언한 ‘343 선언’은 폭발적 기점이었다. 당시의 운동은 정치인들이 “저 여자들이 장관실 앞에서 낙태를 하고 말 것”이라고 겁먹을 정도로 격렬했고, 결국 보건부장관 시몬 베유는 남성으로 가득한 국회에서 낙태합법화를 이끌어냈다. 현재 프랑스 여성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아 무료로 약물 낙태와 임신중절 수술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임신 12주 차까지의 이야기. 이 시기가 지난 프랑스 여성들은 24주까지 낙태가 합법인 네덜란드로 떠나고 있다. 아흔이 넘은 활동가 마리 클로드는 “설령 임신 9개월이라 해도 임신부 본인이 결정하면 낙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힘줘 말한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시몬 베유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으며, 그는 판테옹에 안장된 다섯 번째 여성이 됐다.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의 네 명이 한 달 동안 유럽 5개국의 낙태권 운동가들을 직접 만났다. 좀 더 자세하고 생생한 이야기는 신간 <유럽 낙태 여행>에서 볼 수 있다.



‘낙태 합법화’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들


무분별한 낙태가 늘어난다

치료가 가능하니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다친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다. 어린 미혼 여성이 낙태 시술을 받을 것이라는 상상과 달리, 한국에서는 기혼 여성의 낙태율이 더 높다. 성별 감별에 의한 여아 낙태가 성행했던 80~90년 대를 돌이켜보면, 가부장제가 허락한 낙태에 대해서는 관대했음 또한 짐작할 수 있다.


피임을 잘하면 문제가 없다

피임이 불가능한 상황도 있으며, 100% 피임법은 현존하지 않는다. 설령 완벽한 피임법이 있다 해도 임신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기본권으로 주어져야 한다. 낙태가 불법인 많은 나라가 미혼 여성의 성생활 자체를 터부시해 기본적인 성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문제다.


태아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은가

부모와 아이를 위해서라도 원할 때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어야 한다. 낙태를 엄격히 금지했던 루마니아는 불법 시술로 많은 여성이 죽은 동시에 단기간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이가 버려진 나라가 됐다. 생명 자체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왜 미혼모를 향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며, 왜 여성에게만 더 큰 책임과 비난이 가해질까?


시술은 산모에게 위험하다

그래서 더욱 합법적으로 안전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낙태의 위험성이 부풀려지는 동안 임신에 따른 위험은 무시돼 왔으며, 낙태를 겪은 여성의 심리적 후유증은 근거 없는 것임이 밝혀졌다. 어떤 위험을 강조할지 그 기준을 결정하는 건 그 사회다.


낙태를 대체할 단어는 없을까

태아를 모체에서 떨어뜨린다는 의미의 낙태는 실제로 부정적인 뉘앙스로 많이 사용된다. 최근에는 ‘임신 중단’ 또는 ‘임신 중지’로 바꿔 부르고 있다.

CREDIT

에디터 이마루
글 이두루
사진 GETTYIMAGESKOREA/COURTESY OF BAUME A L’AME
디자인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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