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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6. THU

BEYOND THE CAR

놀이터가 된 자동차 쇼룸?

요즘 자동차 쇼룸은 차를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놀이터가 됐다

감각적인 휴식 공간을 표방한 한국토요타자동차의 ‘커넥트 투’.


세계 최초의 메르세데스-벤츠 디지털 쇼룸인 청담 전시장.


“자동차 좋아하는 아들이 여기 가자고 얼마나 조르는지 몰라요. 집에서 가깝지, 밸릿파킹 되지, 카페에서 음료도 마실 수 있으니까 특별한 목적지 없는 날의 아지트로 삼고 있죠.” 지난 2014년 도산공원 사거리에 자동차 서적을 볼 수 있는 라이브러리 겸 카페가 들어선 현대자동차의 체험형 공간 ‘현대 모터스튜디오’가 오픈했을 때 전문가들은 이곳을 고객과의 심리를 좁히는 ‘감성 마케팅’의 일환이라 여겼고, 행인들은 자동차가 비스듬히 ‘걸려 있는’ 독특한 쇼룸이라 생각했다면, 아들 가진 워킹 맘들에게 그곳은 더할 나위 없는 키즈 카페였다. 당시 육아에 힘겨워하던 후배에게 ‘2~3시간을 훌쩍 때울 수 있는 고마운 장소’로 통한 현대 모터스튜디오에 종종 설치미술 작품이 바뀌면 뚜벅이였던 나도 관람하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수단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공간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자동차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 이 감성 마케팅 장소가 고객과의 간극을 좁혀온 것은 분명해 보였다. 요즘 엄마들에게 입소문이 난 곳은 지난해 문을 연 기아자동차의 ‘비트360’이다. 지하 주차장에서 밸릿파킹을 맡기고 지상으로 오르면 음악 콘서트, 북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 이벤트와 함께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카페’와 테라스에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야외 퍼팅을 할 수 있는 ‘가든’, 전문적인 차량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살롱’을 테마로 구성한 쇼룸이 나타난다. 자동차가 전시돼 있지만 넓은 카페 공간 덕분에 유모차를 끌고 다니기에 충분한 데다 모닝, 카니발, K3, K5, 스팅어, K9 등에 아이와 탑승해 직접 차량을 살펴볼 수도 있다. 또 홀로 렌즈 매개현실(MR) 기술을 통해 모델별 특장점을 경험해 볼 수 있는 ‘디지털 도슨트’, 아마존의 안면 인식 솔루션을 이용해 체험자의 감정 상태에 맞춰 앰비언트 라이트를 추천하고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뮤직 라운지’ 같은 비트360만의 경험 집약적 콘텐츠들이 갖춰져 있어 압구정 주변 직장인들의 랜드마크로 떠오르기도 했는데, 부지런한 이곳 카페는 평일 오전 7시 30분에 문을 연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첫 전용 전시관인 ‘제네시스 강남’.


자동차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자리잡은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


구글이 선정한 이 시대 최고의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다가올 미래를 ‘경험이 움직이는 시대’라고 정의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기보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더 많은 경험을 원한다는 뜻이다. 이런 시대를 ‘서드 스테이지(3rd Stage)’라 이름 지은 사람도 있다. 츠타야 서점을 통해 ‘리딩 엔터테인먼트’를 구현한 마스다 무네아키는 자신의 책 <지적 자본론>을 통해 넘쳐나는 물건과 서비스 속에서 고유한 취향을 선망하고 제안을 필요로 하는 서드 스테이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이 단계에서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서점’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잡스는 아이폰이라는 물건을 판매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아이폰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이 서드 스테이지 마케팅을 가장 열심히 구현하고 있는 업계가 자동차 브랜드들이다. 최근 3~4년 사이 문을 연 쇼룸들이 ‘라이프스타일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는 데는 판매 정체와 소비층 노화에 대한 두려움도 녹아 있을 것이다. 과거 자동차에 대한 열정이 컸던 2030세대가 다시 자동차에 관심을 갖게 만들 경험과 더불어 다양한 세대에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놀이터가 요즘 자동차 전시장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엔 하나같이 츠타야 서점의 스타벅스처럼 카페가 입점해 있다. ‘핫플’ 마니아라면 한 번쯤 방문해 봤을 법한 ‘커넥트 투(Connect To)’는 현대모터스튜디오 오픈과 비슷한 시기에 한국토요타자동차가 잠실 롯데월드몰에 문을 연 컨셉트 스토어로 어느덧 100만 방문객을 바라보는 곳이 됐다. ‘휴식의 숲’을 표방한 이곳은 쇼룸인지 카페인지 혹은 갤러리인지 혼돈하기 딱 좋은 공간이다. ‘차(Car)를 파는 곳’보단 ‘차(Tea)를 즐기는 곳’ 같아 보여서였는지 자동차에 전혀 관심없는 사람들까지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 교류의 지점으로 확대된 것이다. 일찍이 토요타자동차는 자신들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렉서스의 체험 공간 ‘인터섹트’를 도쿄 아오야마에 열어 자동차를 설명하려는 욕심을 버렸다. 대신 가장 좋은 커피와 음식을 내놓으며 소통의 지점으로 만들어간 전략적 경험이 있다. 2014년부터 메르세데스-벤츠도 파워플한 브랜드 체험 공간인 ‘메르세데스 미’를 독일 함부르크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 오픈 중이며, 베이징 매장은 그중 백미로 손꼽힌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방향성이 좀 다르다. 지난해 11월 한성자동차가 운영하는 청담 전시장에 세계 최초로 디지털 쇼룸을 선보인 게 그 증거다. 이곳에 들어서면 갓 볶은 커피 향이 코끝을 스친다. ‘메르세데스 카페 바이 한성’이라는 이름의 카페에선 바리스타가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팔고, 오로지 이 커피를 마시기 위한 목적으로 찾는 손님도 제법 된다. 여기선 다양한 차량 액세서리와 컬렉션 제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2층과 3층에는 ‘메르세데스-AMG 퍼포먼스 센터’와 ‘메르세데스-마이바흐 & S클래스 전용 전시장’이 마련돼 있다. 벤츠 마니아가 아니라도 꽤 설레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 디지털 쇼룸답게 ‘페이퍼리스’를 표방하는 이곳은 데이터 관리와 실시간 시승 예약, 재고 관리, 디지털 계약 및 지불까지 원스톱으로 가능한 통합 디지털 세일즈 플랫폼 ‘세일즈 터치’를 이용해 컨설팅한다. 태블릿 화면을 상담 공간에 설치된 대형 미디어 월과 미러링하면 차량 내외부를 360° 버추얼 뷰로 구현한다. 미디어 월을 보고 있으니 문득 메르세데스-벤츠에서 ‘디지털 카탈로그 앱’을 론칭했다는 소식으로 떠들썩했던 2015년의 일이 생각났다. 앱으로 디지털 카탈로그를 만들었다는 게 화두가 된 게 불과 3년 전이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어느 시대든 ‘이노베이션’이 화두다. 하지만 혁신은 인간의 삶에서 근본적인 습관의 변화를 이끌어내야만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6월엔 해운대 전시장을 동일한 컨셉트로 리뉴얼한 이 페이퍼리스의 디지털 쇼룸이 어떻게 확장과 진화를 거쳐 소비자가 자동차를 구입하는 습관을 변화시킬지 궁금해진다.


기아자동차 ‘비트 360’의 서라운드 미디어 존.


고객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밖에서는 차가 보이지 않도록 설계한 ‘제네시스 강남’.


앞서 소개한 자동차 쇼룸들이 열린 공간이었다면, 이와 정반대의 컨셉트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곳도 있다. 올 초 삼성역 부근에 오픈한 ‘제네시스 강남’은 무려 건축가 렘 쿨하스와 사미르 벤텔의 공동 프로젝트로 완성된 곳이다. “제네시스 강남의 공간은 서서히 발견되게끔 설계됐습니다”라는 사미르 벤텔의 설명대로 이곳은 밖에서 보면 잘 안 보인다. 일반적인 쇼룸이라면 차를 잘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쏟은 공간으로, 크게 궁금하지 않은 이상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이 노련한 크리에이터들은 숨기는 것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려면 사전예약 또는 현장예약을 해야 전담 큐레이터의 가이드를 받을 수 있다. 노출 콘크리트 벽으로 분리된 내부로 들어가면 각 모델의 쇼룸과 라운지가 의외로 한데 어우러져 있다. 쇼룸 뒤편엔 ‘론치 베이’라는 이름의 시승장도 마련돼 있어 사전예약으로 시승을 신청한 고객은 약 15분에서 최대 50분간 원하는 차량으로 강남 일대를 돌아볼 수 있다. 이곳을 체험하다 보면 하남 스타필드에 있는 제네시스 스튜디오가 브랜드 스토리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인 데 비해 강남점은 실제 구매가 이뤄지는 공간이라는 정체성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브랜드에 관심 있다면 차를 살 의향이 없는 사람도 충분히 체험해 볼 만한 곳이다. 시간을 거슬러 2015년 강남역에 제네시스와 에쿠스 위주의 고급 세단과 함께 렉시콘, 하만카돈 등 최고급 오디오 시스템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오토스퀘어’를 오픈하고, 코엑스몰에 대형 디지털 스크린을 설치하고 터치 모니터를 활용해 2만6000여 가지의 옵션 중 자신만의 차량을 만들어볼 수 있는 ‘현대 모터스튜디오 디지털’을 선보였으며,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을 오픈해 또 하나의 브랜드 체험관을 열었던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에 쏟는 차별화된 애정을 보고 있으니 타깃별로 차별된 경험을 제공하려는 노력과 투자에 간절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개인적으로 일본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오다이바에 있는 메가웹 토요타 시티 쇼케이스 같은 곳을 도대체 왜 갈까 하는 의문을 품은 적 있다. 취향의 문제로만 알던 이유를 이제야 알아보니 ‘타볼 수 있다’가 답이었다. 당장 살 수 없더라도 가격을 체크해 볼 수 있으니 왈가왈부하는 즐거움까지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경험은 여행과 맞닿아 있다. 오히려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여기서도 거기서도, 즐거운 놀이터가 돼주는 곳이라면.

CREDIT

글 채은미
디자인 황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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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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