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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8. SUN

NEVER ENDING DINNER

셰프들의 디너 쇼

젋고 재기 발랄한 셰프 10여 명이 모여 쇼 같은 디너를 연출했다


10여 명의 젊은 셰프가 연 팝업 레스토랑 ‘동행 2018’. 낯선 주방에서 오랜만에 손발을 맞추느라 부산하다


‘셰프의 킥’. 올리브 TV 간판 프로그램 <올리브쇼>에서 셰프들이 결정적 팁을 공개할 때 외치던 말이다. 이 레서피 중심의 요리 프로그램은 젊은 셰프들이 서로 놀리고 괴롭히는 가운데 때때로 서로의 요리에 감탄하는 모습이 진솔해 꽤 인기를 끌었다. 3년간 방영한 <올리브쇼>는 먹방의 인기가 한풀 꺾인 2016년 말에 종영했고, ‘셰프의 킥’은 추억의 단어로 변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예능감을 익힌 셰프들이 재미있게 변형해 외치던 이 단어가 뇌리에 박혀 떠오를 때면 당시 재기 발랄하던 셰프들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이들 중 10여 명이 모여 팝업 레스토랑을 연다는 소식이었다. 이름하여 ‘동행 2018’. 셰프 겸 작가인 박준우를 중심으로 응집한 셰프 그룹이다. 지난 1월 20일, 프리 오픈 행사 준비가 한창인 박준우 셰프의 레스토랑 ‘알테르에고’를 찾아 그를 만났다. “사고 친 것 같아요. 술자리 농담이 이렇듯 큰일로 변했으니 말이에요.” 박 셰프가 열없게 웃으며 말했다. “<올리브쇼>가 끝난 후 저희끼리 자주 만나 밥 먹고 술 마시고 경조사를 함께 나누며 일종의 사조직으로 발전했어요. 모두 프로그램 종영 후 꽤 헛헛했어요. 서너 달 전 누군가가 우리끼리 재미있는 일을 도모하자고 제안했고,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팝업 레스토랑 이야기가 나왔죠.” 박 셰프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장내가 시끌시끌해졌다. 시선을 옮기자 10여 명의 셰프가 방송에서 본 모습 그대로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나도 모르게 시계를 봤다. 행사 시작 3시간 전. 저렇듯 장난기 가득한 셰프들이 남은 시간 동안 300가지가 넘는 음식을 과연 완성할 수 있을까. 박 셰프는 문제가 그뿐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헤드 셰프들끼리 모아놓으니 조리 속도가 상당히 더뎌요. 마치 3성 장군들한테 총 안겨주고 전장에 내보낸 격이라니까요.” 해가 저물자 30여 명이 레스토랑 1층에 있는 디저트 카페 ‘오트뤼’로 모였다. 연인, 가족, 친구끼리 온 사람들이 설레는 마음을 서로 나누느라 꽤 소란스럽던 장내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셰프들이 등장한 것. 셰프들은 손님과 짧고 경쾌하게 눈인사를 나누고는 재빨리 음식을 그릇에 옮겨 담았다. 첫 코스 메뉴인 아뮈즈부슈(한 입 크기의 식전 음식)를 핑거 푸드로 변형해 1층에서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아뮈즈부슈는 채낙영·김호윤 셰프의 몫이었지만, 모든 셰프가 협업해 일사불란하게 음식을 그릇에 나눠 담았다. 사람들은 진귀한 구경이라도 하듯 숨죽인 채 그 모습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훔쳐 담기 바빴다. 한바탕 플레이팅이 끝나자 기획자인 박준우 셰프가 대표로 인사를 건네고 행사를 간략히 설명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박 셰프의 뒤를 이어 첫 음식의 주인공인 채낙영·김호윤 셰프가 요리 설명에 나섰다. 아란치니, 타코, 참치 다타키로 구성된 아뮈즈부슈 ‘서커스의 막이 오르조’는 메뉴 이름부터 사람들을 웃음 짓게 했다. 긴 만찬의 시작을 알리는 이 절묘한 이름은 사실 두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소년서커스’와 ‘오르조’의 이름을 조합한 결과물이다. 들뜬 기분 때문인지 알코올 두어 모금에 취기가 오를 즈음 셰프들이 2층 레스토랑으로 길을 열어줬다. 셰프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지정된 테이블에 앉았다. 가장 먼저 냅킨 위에 놓인 기다란 메뉴판에 시선이 닿았다. 아뮈즈부슈 하나, 앙트레 둘, 메인 셋, 디저트 셋, 총 아홉 코스에 달하는 메뉴를 보니 가히 긴 호흡이다 싶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코스를 세분화한 형식이 꽤나 흥미롭다. 앙트레(전식)는 차가운 요리부터 따뜻한 요리까지, 메인은 생선·가금류·쇠고기, 디저트는 프리·메인·프티 푸르 순으로 나눴다. 그중 ‘프티 푸르(Petit-Four)’라는 단어가 낯설어 물으니 커피나 차와 곁들여 먹는 작은 디저트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는 프랑스에서 유학한 박준우 셰프가 정찬에 짜임새를 더하기 위해 메뉴를 프랑스식으로 세분화한 결과다. 각자 개성이 출중한 셰프들이 모여 엮어낸 정식인 만큼 코스에 리듬감을 기대하기 어려울 줄 알았다. 그런데 메뉴판을 보니 오히려 기승전결이 확실해 보였다.


메인의 마지막을 장식한 쇠고기 요리를 맡은 장지수 셰프


김호윤·김소봉 셰프의 차가운 앙트레는 화이트 비니거로 버무린 퀴노아 샐러드에 제철 해산물인 전복, 꼬막과 ‘바다의 포도’로 불리는 해조류를 올리고 김 소스를 뿌렸다. 쫄깃하고 톡톡 터지는 식감이 흥미로워 집중해 씹으니 입 안 가득 기분 좋은 산미와 바다 향이 퍼지며 침이 고였다. 들뜬 분위기에 잠시 잊고 있던 허기가 일순간 되살아났다. 샐러드가 바닥을 드러낼 때쯤 따뜻한 앙트레가 나왔다. 오징어 먹물로 색과 향을 더한 감자 퓌레에 아기 손바닥만 한 라비올리를 올린 그릇에 비스크 소스를 뿌렸다. 비스크 소스가 바다를 직관적으로 떠오르게 했다면, 라비올리를 반으로 자르는 순간에는 다른 차원의 바다 향이 피어올랐다. 해산물 라구로 속을 채운 것. 숟가락으로 라비올리 반 조각과 소스, 퓌레를 함께 떠 입에 넣자 소스와 라구의 깊고 묵직한 바다 향 사이로 오징어 먹물의 풍미가 고개를 들었다. 오징어 먹물이 이렇듯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 이유는 퓌레를 만들 때 넣은 모시조개 육수가 이를 받쳐줬기 때문일 터. 따뜻하고 온화한 요리 덕에 온몸에 훈기가 돌자 메인 요리가 무척 궁금해졌다.


서관덕·채낙영 셰프의 바다 향 가득한 라비올리 요리


셰프들이 주방에서 요리하는 동시에 서빙도 도맡아 팬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행사 시작 전 마지막으로 동선을 점검하는 셰프들


‘동행 2018’의 모든 코스 중 가장 미감이 뛰어났던 스스무 고바야시 파티셰의 메인 디저트


남성렬 셰프가 본인의 레스토랑에서 선보이는 생선전 메뉴에 김소봉 셰프의 우엉조림이 곁들여진 생선 요리는 등장하기 전부터 레스토랑 전체를 고소한 냄새로 휘감았다. 모든 테이블에 음식이 놓일 때쯤 남 셰프가 등장해 음식 설명과 함께 맛있게 먹는 방법을 일러줬다. “페스토가 뿌려진 농어를 숟가락에 얹고 그 위에 우엉조림을 조금 올려 한 입에 드세요.” 그의 설명대로 골고루 숟가락에 얹어 한 입 가득 넣자 부추와 멸치액젓을 넣은 페스토의 알싸하고 감치는 맛과 농어전의 기름지면서도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입 안에서 뒤섞이며 어우러졌다. 여기저기서 작은 감탄사들이 터져 나왔다. 마지막에 입 안에 남은 우엉조림의 달고 짜고 쌉싸래한 맛은 자칫 느끼하거나 비릴 수 있는 생선전의 여취를 말끔히 씻어내는 역할을 했다. 생선 요리까지 싹싹 비우니 슬슬 배가 불러오면서 나머지 코스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덜컥 겁이 났다. 게다가 앙트레부터 이어온 해산물에서 육류, 그것도 오리로 점프하려니 마음에 급제동이 걸리는 듯했다. 때마침 박준우 셰프가 다가와 능숙한 자세로 잔에 레드 와인을 따랐다. 한 모금 머금자 입 안이 환기되며 브레이크를 밟고 있던 발에 힘이 천천히 풀렸다. 특히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의 주인공인 이승준·서관덕 셰프가 등장하자 터져 나오는 환호 소리에 다시 포크와 나이프를 쥘 자신이 생겼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핑크빛으로 익힌 가슴살에 오리 육수로 만든 소스를 끼얹고, 뿌리는 굽고 잎과 줄기는 샐러드처럼 무친 냉이, 군밤 퓌레를 곁들인 후 고수 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요리를 이룬 다양한 주·조연을 한 번에 입에 넣고 씹자 입 안에서 외마디 탄식이 터져 나왔다. 특별한 행사인 데다가 프리 오픈이다 보니 다소 어수선해 고가의 정찬을 즐기고 있는 게 맞는지 드문드문 의구심이 생겼다. 이승준·서관덕 셰프의 오리 요리는 그러한 의구심을 일순간 스러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팬에 시어링한 립아이, 브레이징한 꽃갈빗살, 감자 도피누아, 대파구이가 한 입 크기로 나온 장지수 셰프의 쇠고기 요리는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 무기질이 완벽히 조화를 이룬 결정체였다. 요리 프로그램 <노 오븐 디저트>부터 <올리브쇼>까지 꾸준히 인기를 쌓은 이진환 파티셰의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입에서 녹는 순간 왜 이 디저트의 이름이 ‘비긴 어게인’인지 알 것 같았다. 코스가 클라이맥스를 지나 결말부에 다다랐으나, 만찬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메인 디저트로 등장한 스스무 고바야시 파티셰의 요리는 그날 본 음식 중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머랭, 아이스크림, 무스, 셔벗이 고루 어우러진 접시에 면사포를 씌우듯 사탕 공예로 반투명의 막을 씌운 디저트는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이 차올랐다. “아무래도 긴 코스의 막판에 등장하는 만큼 이미 배부른 손님들이 포크를 다시 들도록 시각적 아름다움을 강조했어요. 같은 이유로 당도와 아이스크림 농도도 조금씩 줄였고요.” 설탕으로 만든 왕관을 포크로 콕콕 내리쳐 으깬 후 한 번에 떠 입에 넣었다. 아이스크림, 무스, 머랭, 설탕이 차례대로 녹는 순간, 더 이상 미각적 즐거움이 존재할까 하는 의심도 함께 사라졌다. 셔벗으로 경쾌하게 끝낸 스스무 파티시에의 디저트는 감미로운 음악 소리로 가득한 공기처럼 산뜻하고 달큰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짙고 쌉싸래한 커피에 수형진 쇼콜라티에가 만든 초콜릿으로 식사를 마무리하자 셰프들이 미식을 찾아 나선 긴 여정에 동행한 것 같은 끈끈한 동료애가 느껴졌다. 또 그 여정을 끝냈다는 흡족함과 훈기가 감돌았다. 갑작스럽게 헤어진 친구와 다시 만나 긴긴 밤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눈 기분이라고 할까. 그날의 만찬은 하나의 쇼에 동참한 것처럼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CREDIT

에디터 김영재
작가 이주연
사진 KIM S GON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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