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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2. THU

LOVE OF 'OTHERS'

완전한 사랑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단순한 러브 스토리가 아니다


기괴하지만 우아하고, 잔혹한 동시에 동화적이며, 익숙하지만 낯선 세계. 멕시코 출신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늘 동거가 불가능해 보이는 양가적인 감정을 뒤섞어 관객을 홀려왔다. 델 토로의 소유격이라 불리는 판타지 요소들을 한데 모은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월 22일 개봉)에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스파이스릴러, 필름 누아르, 심지어 뮤지컬 코드까지 소환한 그는 영화라는 매체가 사랑에 대해 담아낼 수 있는 가장 매혹적인 순간을 포착해 낸다. 서사 자체는 단순하다. 괴생명체와 사랑에 빠진 여자가 인간에게 위협당하는 괴생명체를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야기. <킹콩> <미녀와 야수> 등 할리우드에서 많이 봐온 설정이다. 그러나 여주인공 엘라이자(샐리 호킨스)가 말을 못하는 장애인이자 사회적으로 하층민에 속하는 청소부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심지어 앞선 영화처럼 전형적인 백인 미녀를 캐스팅하지 않았다. 괴생명체인 양서류 인간(더그 존스)은 그런 엘라이자를 결핍의 대상이 아닌, 존엄한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본다. 엘라이자 역시 양서류 인간을 편견 없이 대한다. 둘이 사랑에 빠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온전히 마음이 시킨 일이다. 배경은 미국과 소련이 우주 진출 경쟁에 자존심을 걸었던 1960년대다. 미국 경제가 가파른 상승선을 타던 이 시기는 인종과 계급, 남녀 차별 문제가 사회를 뜨겁게 달구던 때이기도 했다. 실험실에 잡혀온 양서류 인간은 남미에 생존한 마지막 개체로, 아마존 원시부족이 신처럼 모신 존재라는 점은 그래서 흥미롭다. 미국이 자국의 미래를 위해 해부용으로 사용하려는 이 생명체는 엘라이자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켜내고 싶은 과거의 어떤 가치이기도 하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인간의 속물성으로 인해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가치를 품음으로써 ‘단순한 사랑 이야기’에만 머무르기를 거부한다.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영화 <악마의 등뼈> <판의 미로>가 그랬듯, 이번에도 델 토로는 엄혹한 현실의 한가운데에 판타지를 풀어놓는다. 그의 판타지란 그런 것이다. 오락과 희열, 환상의 영역이 아닌 부조리한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또 다른 통로. 끔찍한 세상일수록 그의 환상은 더욱 간절해진다. 영화에서 악의 화신으로 대변되는 나사(NASA)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셰넌)는 백인우월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과시적으로 흘리는 캐릭터다.
그런 그가 숨기지 못하는 것은 ‘타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다. 전기 충격봉을 양서류 인간에게 휘두르거나 성공한 백인 남성을 상징하는 캐딜락을 타고 도로를 달릴 때, 역설적이게도 그는 자신의 세계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가장 강렬하게 드러낸다. 양서류 인간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세계가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스트릭랜드를 저지하려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사회적 약자들이다. 양서류 인간 구출작전의 조력자로 나서는 이들은 엘라이자의 이웃집 친구 자일스(리처드 젠킨스)와 동료 청소부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즉 사회가 ‘나이 든 게이 남성’ ‘흑인 주부’로 규정한 인물들이다. 이 영화에는 민권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비주류들의 연대가 던지는 의미에 대한 깊고 너른 시선이 있다.



“형식이 곧 내용”이라고 피력해 온 델 토로는 늘 창의적인 미술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해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야기 자체만 놓고 보면 지나치게 원형적이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힘들지만, 시청각적 요소들이 적재적소에 스며들어 이야기의 빈틈을 보수해 낸다. 엘라이자의 방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영화관 불빛이라든가, 버스 창 위로 굴러다니는 물방울, 욕실을 가득 채우는 물의 이미지가 스크린을 흠뻑 적신다.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인,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아가미와 비늘이 있는 괴생명체. 아마도 제임스 캐머런이라면 화려한 시각효과로 괴생명체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델 토로는 배우에게 수트를 입히는 방법으로 자신의 야심을 완성한다. 여기에는 <미믹>(바퀴벌레 인간)에서부터 <헬보이>(물고기 인간), <판의 미로>(요정), <크림슨 피크>(악령)까지 델 토로의 영화 속 크리처 연기를 단골로 맡아온 더그 존스의 유려한 몸의 언어가 있다. 190cm가 넘는 더그 존스의 탄탄한 근육이 더해져 남성미 넘치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탄생했다. 그럼에도 이 러브 스토리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샐리 호킨스다. 샐리 호킨스는 늘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연기자지만, 여기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그녀의 섬세한 연기는 플라토닉 사랑을 넘어 성적인 환상에까지 닿는 인간과 괴생물체의 사랑을 설득시킨다. 이 영화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13개 부문에 최다 노미네이트되면서 비상한 관심 속에 놓여 있다. 수상 결과는 지켜봐야겠지만, 지난해 아카데미가 ‘반(反)트럼프’ 정서로 대동단결했던 걸 상기하면 <셰이프 오브 워터>가 챙길 트로피 수가 적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영화가 담고 있는 소수자 배척 등의 메시지는 정확히 트럼프를 향한 논란과 맞닿아 있으니 말이다. ‘미투 캠페인’ 여파로 여성이 올해 화두로 부상한 것 역시 여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셰이프 오브 워터>에 가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나 미투 이슈 없이도 이 영화는 그 자체로 단단한 모양을 갖춘 수작이다.
불완전한 상대를 끌어안는, 완전에 가까운 사랑의 형태. 한마디로 아름답다.

CREDIT

글 정시우(MOVIE COLUMNIST)
에디터 김영재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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