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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5. SAT

OLD AND HEARTY

초량, 마음 속 고향

부산항과 부산역을 마주한 산비탈을 따라 단층집들이 내려앉은 초량동. 고도 제한이 해제되면서 곧 스러질 이곳의 골목들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터의 무늬'다

초량1925의 2층 다다미방.



원형이 잘 유지된 초량1925.



“부산 하면 바다를 떠올렸어요. 부산에 여장을 풀고 나서야 이 고장의 상징이 바다가 아닌 산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초량1925’의 책임 큐레이터인 창파의 말이다. 서울 통의동에 자리 잡은 갤러리 ‘보안여관’의 큐레이터를 역임한 그녀는 1년 6개월 전 일맥문화재단의 본거지 초량1925를 맡으며 부산에 정착했다. 실제로 ‘부산’이라는 단어를 이루는 한자를 풀면 ‘가마(솥) 꼴의 산’이며, 지형의 절반이 산으로 이뤄져 있다. 최근 동구 초량동에 우유 카페와 식당을 나란히 연 황보찬 씨도 같은 생각이다. “부산 하면 으레 해운대나 광안리를 떠올리는데, 사실 그곳은 변두리였어요.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었죠. 군사비행장 정도가 있었다니까요.” 그렇다면 부산 토박이인 그가 생각하는 부산의 중심은 어디일까. 그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이곳이라고 답했다. 자신의 카페와 식당이 자리한 초량동 말이다. “전쟁 이후에 사람들이 부산으로 대거 모여들었어요. 그때 배나 기차를 타고 부산에 닿아 삶의 여장을 푼 곳이 바로 이곳 초량이었죠. 진짜 부자도 살고 진짜 가난한 사람도 살았어요.” 실제로 초량동은 부산역, 부산항과 맞닿아 있다. “그러던 중 다른 한적한 동네에 신도시가 생기면서 부자들이 한둘 빠져나갔고, 그 바람에 소위 ‘못사는 동네’라는 꼬리표가 생긴 겁니다.”



초량1941 외관.



주인의 정성 어린 손길이 묻어나는 초량1941 내부.



초량동 전경.



사실 나만 해도 일생의 절반을 부산에서 지냈지만 초량을 찾은 건 올해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눈에 띄는 구석이 없었던 것이다. 한때 도시의 중심이었으나 문화의 변방으로 전락한 동네에 발길을 들인 이유는 작은 카페 하나 때문이었다. 부산 출장 길에 우연찮게 발견한 ‘초량1941’은 고고한 일본식 가옥으로 녹차, 홍차, 커피 등의 맛을 가미한 우유를 파는 카페였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좁은 골목을 따라 한참을 오르며 과연 이곳까지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의아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셀카봉을 든 앳된 연인들이 일제히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고 있었다. 목적지에 당도하자 영화 세트를 연상시키는, 국적도 시대도 모호한 건물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초량1941이었다. 아담한 앞마당과 일식 가옥, 작은 부속 건물 두어 채로 이뤄진 카페는 앉을 곳을 찾기 어려울 만큼 인기가 높았다. 다소 북적거렸지만 그 정도 소란은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낯설고 오래된 공간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있었다. 왜 하필 우유 카페. 단지 우유가 최근 유행하는 품목이어서일까. 카페 입구에서 힌트를 찾았다. “초량은 ‘풀밭의 길목’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옛날 산기슭에 초량목장이 있었다고 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던 것. 예쁜 유리병에 든 우유 한 모금을 들이켜며 초록 일색의 풀밭에서 소들이 노니는 목가풍의 장면을 잠시 상상해 봤다. 당시 방문했을 때 멀고 낯선 곳까지 와서 우유만 마시고 가는 아쉬움이 전해진 까닭일까. 지난 9월 초량1941은 바로 아래 건물에 식당을 열었다. “올 초 이 공간을 쓰던 새시 공장이 나갔어요. 또 다른 공장이 들어와 저희가 조성한 분위기를 해칠까 두려워 덜컥 떠안은 후 가까이 교류하던 소반봄 사장님 부부에게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초량1941이 건물이 지어진 연도를 따 이름을 지었다면, 식당에는 번지수를 따 ‘초량845’라는 이름을 붙였다. 초량845는 공장 건물이었던 만큼 층고가 높고 공간이 넓은 데다 내부를 하얗게 칠해 산뜻하면서도 시원한 개방감을 안겨준다. 특히 통창을 통해 한눈에 들어오는 풍광이 장관이다. 비탈면을 따라 줄지어 서 있는 집들과 북항, 부산항대교, 그 너머 섬의 산봉우리는 부산을 사랑한 화가와 사진가들의 작품에서 숱하게 봐온 장면이다. 이 집의 음식은 나무 쟁반에 갖가지 반찬과 요리, 국, 밥이 한 상 차림으로 나오는데, 그 구성이 여느 건강 가정식과 다르지 않아 살짝 식상해 보였다. 그러나 맛은 보기 좋게 예상을 빗나갔다. 어떤 음식은 마늘이, 또 어떤 음식은 소금이, 다른 음식은 산초 열매가 듬뿍 들어간 게 정갈한 담음새와 달리 부산 특유의 박력이 느껴졌다.



시원한 개방감을 안겨주는 초량 845.



초량의 매력에 푹 빠져들 즈음 퍼뜩 떠오른 게 있었으니, 다정한 이웃사촌인 보안여관 최성우 대표가 운영하는 일맥문화재단의 본거지이자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일식 가옥 초량1925다. 초량845에서 초량1925를 찾아 굽잇길로 한참을 내려가자 아담하면서 정겨운 집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큰 가림막을 두른 거대한 공사장이 나타났다. 이곳도 초량인지, 이곳에 정말 초량1925가 있는지 의구심이 고개를 들 즈음 공사장 안쪽 좁은 골목에서 부산시 등록문화재 팻말을 단 집을 발견했다. 찾아 헤매던 초량1925였다. 철문을 밀고 들어서자, 방금 전 그 문이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입구였나 싶을 정도로 신비한 분위기를 품은 일식 가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1925년에 지어진 집은 기존 건물을 중심으로 양쪽에 각각 양식 가옥과 2층짜리 일식 가옥을 덧붙여 독특한 풍취와 미감을 자아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건물에 틈이 벌어지고, 가장 아름다워야 할 정원에 방수막이 덮여 있다. 책임 큐레이터 창파에게 이유를 물었다. “바로 옆에서 대규모 공사를 시작하면서 지반이 약해진 바람에 건물이 조금씩 상하기 시작했어요.” 순간 수십 년 동안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초량에 최근 재개발 붐이 인 연유가 궁금해졌다. “1972년부터 산복도로 주변에 짓는 건물의 고도를 제한하던 규제가 2016년에 해제되면서 속속 공사를 시작한 겁니다. 초량1925 일대의 주택가도 초량1-3 재개발구역에 속하면서 지난여름에 사라졌습니다.” 일맥문화재단은 그 직전에 문화예술인들과 골목을 연구하고 기록했다. “구술 채록을 위해 이웃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는데 제 어린 시절이 떠오르더라고요.” 초량동에서 자신의 추억 속 한 조각을 발견한 건 비단 그녀만의 일은 아닐 터. “이 지역의 재개발은 이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전제로 앞으로 저희가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해야 할지가 최근 고민거리입니다. 일대의 아파트 단지에 들어올 새로운 이웃에게 초량1925가 교육적·환경적으로 순기능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녀와 담소를 나누며 건축가 승효상 씨가 들려준 말이 떠올랐다. ‘터무니없다’는 말에 쓰는 ‘터무니’의 어원은 ‘터의 무늬’로, 그만큼 우리 조상들이 땅이 품은 역사와 이야기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초량1925가 초량동의 새 주민들에게 자신들이 공중에 떠 있는 땅의 무늬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초량동의 재개발은 필연이다. 굽이진 산복도로 아래에 난 비탈을 따라 어깨와 등을 맞대고 이어지는 이곳 집들의 행렬이야말로 부산의 정수라고 하니, 그 풍경이 스러지기 전 한 번쯤 둘러봄 직하다.

CREDIT

글 이주연
에디터 김영재
사진 박정우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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