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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9. WED

Forefront of Ocean

바다의 영웅, 실비아 얼

실비아 얼은 높은 수압과 거친 조류, 여성에 대한 편견을 견디며 미지의 바다를 탐험했다


Sylvia Earle


어떤 마라토너들은 2시간 넘게 달리는 동안 훈련 과정이 필름처럼 머릿속을 지나가거나, 체력이 한계에 다다를 때면 부모의 얼굴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깊은 바다 밑바닥을 2시간 동안 거닐면 어떤 상념에 빠져들까. 이 얼토당토않은 질문에 진지하게 응답해 줄 사람이 있다. 미국의 해양 생물학자인 실비아 얼(Sylvia Earle). 100여 건 이상 해양 탐사 팀을 이끌고, 7000시간의 잠수 기록을 보유했으며, 해양학계에서 ‘바다의 대변자’라 불리는 그녀는 1979년 수심 375m의 해저에서 엄청난 수압을 견디며 2시간 넘게 보행했다. 자랑을 더하면, 역대 가장 깊은 수심이었으며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도전이었다. 현재 81세이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실비아 얼을 붙잡고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긴다면 이 질문을 해도 좋을 거다. 2주간 바닷속에서 생활하는 동안 뭍으로 나가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말이다. 이것도 엄연히 그녀에게 해당하는 얘기다. 실비아 얼은 1970년 여성들로 이뤄진 팀을 이끌고 수심 15m에 지은 시설에 2주간 머무른 바 있다. 듣기만 해도 숨막히는 이 도전은 20세기 과학사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여자라서 안 돼’라는 인식이 팽배하던 해양 탐사계에서 여자도 너끈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첫 사례였다.




“어린 시절 나는 CEO가 아닌 비서가 되는 교육을 받았어요. 하늘을 날고 싶으면 파일럿이 아닌 승무원이 되어야 했어요. 그리고 내가 커서 바다에서 했던 많은 일은 어린 학생과 젊은 과학자들에게 부적절한 사례로 인식됐어요. 너무 불공평했어요. 하지만 주위 시선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어요. 때문에 도전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어요.” 실비아 얼과 4명의 여성 팀원이 수면 밖으로 나왔을 때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바닷속에 머무는 동안 그녀들은 유명 인사가 됐고 거리 퍼레이드, 백악관 초청이 잇따랐다. 오롯이 실력과 열정으로 유리 천장을 깬 실비아 얼의 활약은 여타 분야에도 파급력을 발휘했다. “우리의 성공은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여성 우주비행사의 가능성을 열었던 거죠. 세월이 많이 흘렀고 지금은 여성 엔지니어, 여성 선장, 여성 탐험 책임자를 심심찮게 볼 수 있어요. 내게는 큰 기쁨이에요. ‘그 사람 여자잖아’라는 편견이 잦아드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한 것 같아 뿌듯해요.” 바다를 무대로 한 실비아 얼의 활약은 거듭됐다. 1980년대 벤처 기업을 설립해 수중 탐사를 위한 기술개발에 나섰고 1990년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의 첫 여성 수석 과학자로 임명됐다. “바다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의 97%를 차지해요. 거대한 생태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이곳에는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모든 것이 숨겨져 있어요. 하지만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는 바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아요. 우리가 해양 탐사를 지속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실비아 얼은 바다 생태계를 보호하는 최전방에 서고 있다. ‘미션 블루’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해 해양 보호구역 확대에 힘쓰고 있다. 생명체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그녀의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다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는 실비아 얼은 뉴저지의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열두 살까지 농장 생활을 했어요. 이웃 사람들은 어머니를 ‘동물들의 여인’이라 불렀어요. 상처 입은 동물들을 치료하고 돌봐주셨거든요.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수의사가 되어 동식물을 돌보는 게 꿈이었어요. 물론 생태학이라는 분야가 생기기 전이었지요.” 미지의 세계인 바다와 그 가치를 인류에게 알리기 위한 실비아 얼의 부단한 노력과 혁혁한 업적은 지속적으로, 폭넓게 인정받았다. 1998년 <타임>지 선정 ‘지구 수호의 영웅’, 2000년 미국의회도서관 선정 ‘살아 있는 전설’에 이름을 올렸으며 2009년에는 테드(TED) 프라이즈를 수상했다. 이는 사회 편견에 맞서 자기 길을 묵묵히 걸어온 실비아 얼의 도전 의식과 극복 의지에 대한 존경으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지금 만약 실패가 두려워 행동하지 않고 있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실비아 얼도 성공했는데 나라고 왜 안 되겠어?”

CREDIT

에디터 김영재
사진 ROLEX, ALEXANDRE DE BRABANT(PEOPLE), DAVID DOUBILET
디자인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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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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