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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0. THU

THE FUTURE IS SERVED

식사가 됩니까?

한 줌의 파우더와 칩이 5첩 반상보다 영양가 높고 든든하다고? 오늘 ‘미래형 식사’가 도착했다

우리 식생활에서 단백질과 탄수화물, 지방, 식이섬유, 미네랄이 완벽하게 균형을 맞춘 식사를 하려면 5첩 반상은 돼야 할 터. 밥과 국을 제외한 나물, 구이, 조림, 전 등의 반찬을 다섯 가지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번거로움을 한 방에 날려줄 제품이 나왔다. ‘미래형 식사’라고 부르는 파우더형 간편식. 플라스틱 용기에 든 가루에 물을 붓고 흔들어 먹으면 한 끼에 필요한 열량을 보충할 뿐 아니라 영양도 균형 있게 섭취할 수 있다. 이는 2014년 미국에 등장해 ‘시간이 돈’인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식문화를 바꿔놓았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식사는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괴상한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25세의 로브 라인하트(Rob Rhinehart)는 친구들과 투자자로부터 목돈을 받아 휴대전화 기지국을 개발했으나 실패했다. 그들은 남은 돈으로 어떡하든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야 했기에 허리띠를 졸라맸다. 라인하트는 식비를 아끼기 위해 코스트코 냉동식품, 맥도날드 햄버거, 케일 원 푸드 식이요법 등으로 식단을 바꿔봤으나 오래 견디기 힘들었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골치 아픈 끼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곧 음식을 공학 기법으로 접근했고 우유 대신 우유에 든 영양소인 아미노산과 지방을 섭취하면 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식품의약국, 농무성 홈페이지를 통해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소가 35개라는 사실을 알아낸 그는 인터넷 쇼핑으로 이것들을 구했는데 대부분 가루나 알약 형태였다. 분명 미식가는 아니었을 라인하트는 이들을 물과 함께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렸다. 허옇고 걸쭉한 회반죽에 가까운 이 요깃거리를 라인하트는 ‘소일렌트’라고 불렀다. ‘소일렌트’는 1973년 개봉한 공상과학영화 <소일렌트 그린>에서 따온 이름이다. 영화의 원작 소설 <메이크 룸! 메이크 룸!>에서 ‘소일렌트’의 주원료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콩이었다(참고로 영화에는 인육이 재료로 쓰인다). 라인하트는 소일렌트로 한 달을 연명하며 자신의 체험기를 블로그에 연재했다. “먹을 만하다” “전보다 훨씬 건강해졌다”는 리뷰와 함께. 사람들은 그의 엽기에 가까운 체험기에 극과 극의 반응을 보였다. 그중 레서피 아니, 공식을 알고 싶다는 반응이 절반을 차지했다. 기꺼이 공식을 공개한 라인하트는 곧 소일렌트가 어떤 앱보다 자신의 삶에 가치 있다고 여기고 친구들과 회사를 차려 크라우드 펀딩으로 선주문을 받았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크라우드 펀딩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된다.


현재 국내에서 파우더형 대체식의 선두주자로는 ‘랩노쉬’와 ‘밀스’가 있다. 랩노쉬를 생산하는 이그니스의 박찬호 대표는 소일렌트가 세상에 나올 당시 사회 초년생이었다. 대기업 신사업 개발팀에서 근무하던 그는 소일렌트를 성공 사례로 미래식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보고서는 상사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았으나, 그는 가파르게 성장하는 미래식 시장을 꾸준히 지켜봤고 급기야 퇴사해 친구들과 회사를 차리기에 이르렀다. “회사를 세우고 소일렌트를 주문했는데 주문이 폭주해서 당장 보내줄 수 없다는 거예요. 끝내 소일렌트를 수중에 넣는 데 8개월이 걸렸지요. 그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수 없어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시식기를 수십 번씩 돌려보며 성분을 유추해 유사하게 만들어봤지만 하나같이 맛이 없었어요. 맛이 좋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무 맛에 가까웠어요.” 밀스를 생산하는 인테이크도 처음 상품을 개발하면서 같은 문제에 봉착했다. 각종 영양소를 구해 이를 고루 섞고,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물에 잘 개지도록 만드는 기술적인 부분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바로 맛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미숫가루라는 파우더형 대체식이 존재했어요. 물론 미래식처럼 영양 균형이 잡혀져 있지는 않지만요. 그래서 미국보다 파우더형 식사에 대한 맛의 기대치가 높았지요. 영양의 균형과 함께 미각의 만족을 이끌어내는 게 가장 큰 과제였어요.” 인테이크 마케팅팀 노석우 실장의 말이다.


현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테이크는 밀스에 견과류 분태를 넣어 씹는 맛을 더했다. 콩 단백질을 주로 활용하여 맛은 미숫가루에 가깝다. 중간중간 씹히는 건더기가 제법 고소하며, 무엇보다 익숙한 맛이다. 한편 랩노쉬는 패키지와 가루의 색이 알록달록한 만큼 맛도 초콜릿, 밀크티, 자색고구마, 토마토 등 다양하다. 아무래도 맛이 다양하니 자주 섭취해도 질리지 않겠지만 모든 맛이 입맛에 맞는 건 아니다. 밀스가 최대한 콩 단백질을 활용하여 채식주의자와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을 배려했다면, 랩노쉬는 우유 단백질 함량을 높여 현대인의 입맛을 공략했다. 두 제품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우리의 몫이지만 식사를 거를 정도로 격무에 시달린다면 물리지 않도록 둘을 번갈아 가며 먹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사실 파우더형 대체식은 우리나라에서 다이어트식으로 변질되는 경향이 있다. 다이어트라는 특수한 식이요법에 간편식이 잘 맞는 데다가 단백질과 식이섬유의 함량이 높아 포만감이 오래가며 배변 활동도 원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회사는 여전히 자신들과 같은 스타트업 종사자를 비롯한 바쁜 현대인에게 균형 잡힌 끼니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며, 알약 형태의 대체식 개발을 궁극적 목표로 한다. 그 일환으로 파우더형에 그치지 않고 칩과 쿠키, 바, 음료 등의 형태로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그것들 가운데 인테이크가 출시한 미래형 간식 ‘밀스칩’은 영화 <소일렌트 그린>에 나온 대체식과 모양이 쏙 빼닮았다. 이 영화는 미래를 반이상적으로 그리고 있다. 인구 과잉과 자원 고갈, 환경 오염 등의 문제로 더 이상 식자재를 키울 수 없게 되자 정부는 원자재를 플랑크톤이라고 속이고 인육으로 칩 형태의 대체식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급한다. 지금은 우리가 바쁜 순간을 위해 간편식을 선택하지만 영화처럼 자원이 고갈돼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순간을 경계하기 위해 미래식 개발자들은 용기 소재부터 한 번 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오늘 아침에는 밀스 프레시모닝을, 점심에는 랩노쉬 자색고구마 맛을 먹었다. 아니, 마셨다. 소일렌트 개발자인 라인하트가 놀랄 정도로 맛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대여섯 모금만에 끝났고 나는 벌써부터 씹고 맛보고 즐기는 저녁을 꿈꾼다.

CREDIT

WRITER 이주연
EDITOR 김영재
PHOTOGRAPHER 이수현
DIGITAL DESIGNER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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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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