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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4. SAT

NEW CHPTER

손열음의 물음표

어느덧 이토록 담대한 눈빛을 지닌 예술가로 성장해 우리 앞에 선 손열음



정명화·정경화 자매의 뒤를 이어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에 올랐어요. 서른셋, 전임들에 비해 훨씬 젊은 나이다 보니 ‘파격’이란 분위기가 큰데, 본인의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는 놀랐죠. 만일 20~30년쯤 뒤에 그런 역할을 맡는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은 해봤지만,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어요. (정명화·정경화) 선생님들이 부탁하신 게 있어서 한다고 했다가, 다시 부담돼서 못하겠다고 했어요. 연주 스케줄도 많고, 또 제가 제대로 안 하고 발만 담그는 식은 못해서…. 결국 사무국의 진정성과 열성에 수락하게 됐지요.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평창대관령음악제에 남다른 애정을 지닌 걸로 알아요. 2011년부터 매년 음악제에 참석했고, 이미 2016년부터 부예술감독으로 활동해 왔죠 그곳이 얼마나 시골이었는지 제가 너무 잘 아니까요(웃음). 어릴 때 강릉에 사는 사촌들을 만나러 대관령을 넘어갈 때면 정말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어요. 길이 뚫리고 올림픽이 유치되면서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심지어 음악제가 생긴다는 게 믿기 어려울 만큼 감격적이었죠. 외국에 나가서 우리도 이런 게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해준 데 감사함을 느껴요.

본인에게 내재된 ‘강원도의 힘’을 느끼나요 없지 않다고 생각해요. 서울 사람들이 각박하게 사는 것에 대한 자그마한 연민도 있고요. 물론 제가 온전히 강원도 교육으로 자랐다고 할 순 없겠지만, 서울에 있는 예원학교나 예고를 가진 않았잖아요. 그곳에서는 어릴 때부터 경쟁에 내몰리는 모습이 안쓰럽더라고요. 어린 시절 제 친구들은 늘 저를 챙겨주고 위해줬거든요.

올해 음악제의 주제인 ‘멈추어, 묻다’는 어떤 의미인가요 처음에는 아예 테마를 없앨까도 고민했어요. 너무 그 안에 국한되는 느낌이라서. 사무국과 몇 차례 회의를 통해 ‘Curiosity’란 단어가 나왔고, 한국말로 어떻게 풀어낼까 하다가 생각해 낸 게 ‘멈추어, 묻다’예요. 그게 바로 클래식 음악을 대변하는 말이 아닐까 했어요. 요즘의 음악들과 비교해 클래식의 가치를 찾다 보니 ‘사유하게’ 되는 기능이 있지 않나, 나와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보고 잠시 멈춰 가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그램을 살펴보니 음악제에 한 번도 연주된 적 없는 곡,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를 선정하는 등 신선함이 느껴져요 적어도 이런 자신감은 있어요. 서울에서는 못 만날 공연이라고. 다른 기획사라면 매표 걱정 때문에 절대 기획하지 못할 프로그램도 있어요. ‘네 멋대로 해라’라는 즉흥 연주 리사이틀이 있는데, 관객 입장에서는 좀 겁이 날 수도 있지만, 전 용감하게 기획할 수 있었죠.

해외 오케스트라에서 활약 중인 한국인 단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공연도 기대돼요 예전부터 갖고 있던 꿈이에요. 미국에 가면 어느 구석 도시이든 오케스트라에 꼭 한국인 연주자가 있더라고요. 그런 분들이 한국에 와서 다 함께 공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근래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에 종신 수석으로 선임되는 한국인이 늘면서 이런 아이디어가 더욱 굳어졌죠. 저분들을 한자리에 모으면 드림 오케스트라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쾰른 필하모닉,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도쿄 필하모닉 등 3대륙 곳곳에서 건너올 예정이에요.

특별히 초대하고 싶었거나 섭외에 공들인 아티스트는 누구인가요 사실 다 그래요. (김)선욱 씨 같은 경우는 이번에 제일 먼저 생각한 연주자 중 한 명이에요. 친구이기도 하고, 너무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죠. 지휘자 드리트리 키타옌코 선생님도 여러 번의 구애 끝에 모셨어요. 해외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으로 오케스트라를 꾸린 것처럼, 비슷한 스토리를 가진 지휘자가 누구일까 생각하다가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활동했던 선생님이 떠올랐어요. 처음에는 계속 안 하시겠다는 거예요. 한국의 7~8월이 얼마나 더운지 너무 잘 알고 계셔서, 평창의 연평균 기온까지 보내면서 설득했어요.

연주 스케줄과 병행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이런 경험이 본인에겐 어떤 영향을 주나요 프로그램을 짜는 건 당연히 할 일이고, 섭외하거나 글을 쓰는 등 거의 모든 일에 관여하고 있어요. 재미는 확실히 있어요. 진행 상태도 바로 눈에 보이고,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크니까. 원래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굉장히 추상적이잖아요. 그에 비해 이런 일은 과정이나 결과물이 똑 떨어지니까, 내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형태화시키면서 정리되는 느낌이에요.

10월 말에 열릴 부조니국제피아노콩쿠르 예선 심사위원장으로도 위촉됐다고. 부쩍 대외 활동이 늘어난 느낌인데, 연주자 그 이상의 역할에 관심이 있나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럼 사람 아니에요. 내가 안 하면 큰일나겠구나 할 때만 움직여요. 이번 음악제도 15주년이고 올림픽이 끝난 시점에서 저를 필요로 해 들어가게 된 거죠. 부조니는 올해 심사위원을 다 제 또래 피아니스트로 꾸렸더라고요. 한번 실험해 보는 것 같아요.

올봄 새 앨범 를 발매했어요. 영화 <아마데우스>의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지휘자 故 네빌 마리너를 추모하는 의미도 담겼죠. 두 사람이 만난 시간은 짧지만 특별한 교감을 나눴다고요 사실상 만난 횟수는 다섯 번 정도지만, 그분에게 감명을 많이 받았어요. 일단 너무 친절하고 따뜻해서 놀랐어요. 사실 대부분의 지휘자들이 좀 대하기 어렵거든요. 굉장히 프로페셔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아주 편안하고 느긋한, 다양한 면모의 밸런스가 좋은 분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리허설 끝나고 직접 택시까지 불러주기도 했는데…. 부음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예전부터 모차르트를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라고 말해왔죠. 이번 앨범을 통해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녹음 작업을 하면서 여러 가지로 재미있었는데, 음반 하나를 전부 모차르트로 채우려니 되게 힘들더라고요. 저는 그동안 모차르트 곡을 치면서 한 번도 어렵다는 느낌이 없었어요. 랭귀지처럼 자연스러웠거든요. 그런데 하나하나 모든 음이 다 가치 있고 살아 있다 보니 계속해서 연주하는 게 피곤하더라고요. 죽을 뻔했어요(웃음).

2015년에 펴낸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에서 피아니스트의 숙명에 대해 얘기했어요. 일단 무대에 올라가면 이 곡을 멈출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는 것. 그런 중압감에서 벗어났나요 점점 더 느끼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마냥 좋기만 했어요. 무대에서 떨어본 적 없어요. 그 글을 쓸 때만 해도 중압감보다 외롭다, 고독하다는 정도? 그런데 지금은 간혹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무대에 올라가서 완벽하게 몰입이 안 된 상태면 머릿속으로 ‘한번 멈춰볼까?’ 생각할 때도 있어요. 그야말로 진짜 되돌릴 수도, 되풀이할 수도 없는 것. 반대로 잘 끝냈을 때는 엄청난 성취감이 뒤따르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느낌!

나이가 들면서 연주나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를 느끼나요 그건 끊임없이 변하는 거고, 멈춰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원래 되게 내향적인 사람인데, 지금까지 오는 길에 열심히 많은 의견을 곁들여서 연마하려는 노력을 했다면, 이제 다시 내 안으로 파고드는 시점이 된 것 같아요. 일일이 분석하고 구체화하는 것보다 훨씬 더 추상적으로, 포괄적으로 생각하게 돼요. 전보다 자유로워진 면이 있어요.

‘모든 것이 음악으로 귀결되는 사람’이라 했죠. 개인적인 휴식이나 즐거움을 얻는 방법은 사적이고 소소한 것들이죠. 저는 혼자 있으면 가만히 충전되는 스타일이에요. 어디 연주를 가도 돌아다니거나 구경하지 않아요. 하노버에서도 집 밖에 잘 안 나가요. ‘멈추어, 묻다’라는 것, 사실 제 스토리예요. 제가 제일 잘하는 두 개가 그거예요. 전 되게 많이 쉬어야 하는 사람이에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쉬어야 하고, 계속 물어보는 사람이죠.

주로 어떤 질문들인가요 남자를 만났는데 꼬인다거나 할 때,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까(웃음)? 평소 음악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가만히 받아들이는 경우는 별로 없고, 왜 이럴까, 왜 그럴까, 질문이 자꾸 생기는 편이에요. 자신에 대해서도 너무 궁금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하는 음악이 어떤 건지.

피아노만큼 책을 좋아하는 걸로 아는데, 최근에는 뭘 읽었나요 요즘 책을 만드는 게 있어서 다른 건 읽을 시간이 없었어요. 음악제 프로그램 북인데, 제가 강력히 주장해서 완전 새로운 형식으로 만들고 있거든요. 매거진처럼 중간중간 심층적인 기사나 연주자 인터뷰도 들어가요. 약 60~70%의 원고를 직접 쓰고 있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알고 보니 내 꿈이 책을 쓰는 일이었구나 할 정도로. ‘피지컬 카피’만이 주는 매력, 감동이 있잖아요. 기자님, 정말 좋은 일 하는 거예요.

그러나 다들 종이 책의 종말을 걱정하는 걸요. 클래식 음악은 어떤가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클래식 음악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이를테면, 콘서트 문화는 어쩌면 더 확장될 것 같아요. 사람들은 점점 더 총체적 경험을 하고 싶어 하니까요. 그럼 음반은? 시간 예술이란 게 한번 하면 지나가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 흔적을 남기는 게 음반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음악 하는 사람 입장에선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데,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어요.

북한에서 공연할 기회가 있다가 무산되기도 했죠? 다시 한 번 기회가 온다면 그런 식으로 교류가 이어질 수 있다면 좋은 일이죠. 강원도가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도란 점에서 우리 음악제도 그런 기획을 여러 번 했는데 잘 안됐다고 들었어요. 제 생각에 북한의 음악가들이 절대 실력이 모자랄 것 같지 않아요. 모스크바는 물론이고 비엔나, 베를린에도 공부하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궁금하기도 하고, 앞으로 함께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죠.

세계적으로 다방면에서 여성 이슈가 뜨거워요. 공감하는 부분이 있나요 직접 경험한 건 아니라 말할 자격은 없지만, 저 역시 들은 얘기는 많아요. 과장되거나 축소됨 없이 더 많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는 젊은 여성이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는 것을 불편해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하죠 그 점은 확실히 공감해요. 저 역시 20대에도 계속 ‘소녀’처럼 행동해야 하는 게 싫었어요. 스스로 그걸 당연하게 생각한 면도 있어요. 뭔가 말을 할 때 애써 친절하게 얘기한다거나, 단순히 문자 하나를 보낼 때도 이모티콘을 써야 할 것 같은…. 지금 생각해 보면 프레임에 갇혀 있었던 거죠.

손열음 같은 여성이 더 늘어나야 하는 이유겠죠. 아주 먼 훗날의 모습도 상상해 보나요 결혼이나 아이를 낳는 일은 상상이 안 돼요. 나한테 음악보다 더 소중하고 사수해야 하는 것이 생긴다는 게 두렵기도 하고요. 사실 미래에 대한 생각은 안 하려는 편이에요. 제가 뭔가 계획하면 항상 정반대로 되는 것 같아서. 저는 살면서 점점 더 인생에 끌려가는 걸 즐기고 있어요. 단지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계속 피아노를 치는 거? 그냥 치는 거 말고 ‘잘’ 치는 거요. 

*2018 제15회 평창대관령음악제는 7월 25일부터 8월 5일까지 알펜시아 리조트 내 콘서트홀과 강원도 일대에서 열린다.

CREDIT

에디터 김아름
사진 김선혜
스타일리스트 원세영
헤어 조미연
메이크업 김미정
디자인 황동미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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