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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2. TUE

SOFTLY NOW

좋은 온기

이하나의 유순하고 정겨운 목소리가 남긴 그녀에 대한 단서들

화이트 수트는 Jil Sander.



화이트 셔츠와 레이어드한 튜브 톱은 모두 Kenzo. 팬츠는 Celine. 이어링은 H&M. 슈즈는 Loewe.


화보 촬영하면서 여러 번 “나 같지 않다”고 속삭이더군요 화보에서의 제 모습, 여전히 많이 생경해요.
데뷔 후 13년간 많은 화보를 찍었는데도요 네. 그래도 많이 편해졌어요. 예전에는 마냥 부끄럽고 민망하기만 했는데 이젠 화보가 점점 좋아져요.
배우는 자신을 드러내는 직업이잖아요. 기본 성향과 충돌한 적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배우가 될 줄 몰랐어요. 가족 역시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고요. 얼마 전 SNS로 연락이 닿은 고교 동창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학창 시절의 너는 튀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자기만의 행복이 뚜렷한 아이였다”고. 그래서 연기자가 된 걸 봤을 때 ‘그럴듯한데?’라고 생각했대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 좋더라고요. 배우라는 직업과 인연이 전혀 없지는 않았구나, 싶었죠. 
자기만의 행복이 뚜렷한 아이였던 학창 시절이 궁금하군요 아웃사이더 기질이 강했어요. 옥상 좋아하고, 비 오는 날 운동장을 뛰어다니기도 하고(웃음). 왜 항상 이어폰 꽂고 다니는 애들 있죠?
고교 동창을 오랜만에 만난 기분은 어땠나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는 걸 느꼈죠. 많은 걸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느낌이랄까. 
드라마 <보이스>에서 연기했던 ‘강권주’와도 시즌 2로 곧 재회하잖아요? 소리를 분석해 사건을 해결하는 프로파일러 역할인데, 떠나 보냈던 캐릭터를 다시 만나는 건 또 다른 느낌이겠죠 일단 대본이 너무 좋아서 의욕이 솟아요. 액션 스쿨을 제안하셔서 다니고 있는데 요즘 그 매력에 푹 빠져 있어요. 그야말로 맹수가 된 기분이 들어요(웃음). 몸을 과격하게 쓰는 PT 체조를 시작으로, 유도를 베이스로 한 호신술, 범인을 제압하는 동작을 배우는데 참 재미있어요.

의외네요 운동, 못할 것 같죠? 다들 그렇게 보세요. 저는 학창 시절에 체력장에서 특급을 놓쳐본 적이 없어요. 특히 달리기를 잘했어요. 학교 대표로 대회에 나갈 정도로요.
운동신경은 누구의 영향인가요 한 살 터울인 오빠 영향인 것 같아요.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해서 어릴 때 오빠 친구들과 많이 어울렸어요. 자연스럽게 줄넘기보다 발야구나 축구를 많이 했죠. 그때 오빠가 저를 강하게 키운 게 아닌가 싶어요. 1주일에 한 번, 아파트 주민들과 피구 시합도 즐겼는데 그 시간이 많이 그리워요.
연기했던 캐릭터 중에 다시 만나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요 <메리대구 공방전>의 ‘메리’. 마니아 드라마였는데 열 메이저 부럽지 않았어요. 개인적으로 참 아끼는 캐릭터예요.
긍정의 화신 메리는 독특하고 만화적인 여성이었죠 지금 다시 연기하라면 똑같이 할 수 있어요. 다만 보시는 분들이 조금 불편하지 않을까 싶네요(웃음).

설마요. 2014년 방영된 <고교처세왕>에서 메리의 확장판 같은 캐릭터 ‘정수영’으로 사랑받았잖아요. 로맨틱 코미디에서 큰 활약을 펼쳤는데 돌이켜보면 메리도 그렇고 정수영도 그렇고, 개성이 강했어요 그 부분은 제가 일본 드라마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 것 같아요. 일본영화 <안경>과 <카모메 식당>에 나오는 고바야시 사토미라는 배우가 있어요. 그분의 유니크함에 매료돼서, 이전에 출연했던 드라마들을 구해서 찾아보곤 했어요. <고교처세왕> 때 특히 많이 참고했죠.
캐릭터 영향인지 ‘이하나는 4차원’이라는 시선도 많아요.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좋아요. 그렇게 되고 싶어 노력하는 사람이라 그저 감사하죠. 실제의 저는 내향적인 쪽에 가까워요. 스태프들의 노고에 누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극복하며 쾌활하게 연기하는 것이지, 그게 제 모습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천부적으로 유니크한 배우에 대한 부러움이 있어요. 



재킷과 팬츠는 모두 Stella Mccartney. 이어링은 & Other Stories. 슈즈는 Thom Browne.



셔츠 원피스와 원 숄더 니트 톱은 모두 juun.J. 스커트는 Recto. 이어링은 Viollina. 슈즈는 Nina Ricci.



시스루 원피스는 Recto. 태슬 장식 슈즈는 Celine.




영화 <특종>에서 호흡을 맞춘 배성우는 이렇게 이야기했죠. “이하나는 4차원 같은 부분과 보편적인 부분이 혼재돼 있다. 결이 다채롭다”고요 오, 정말로? 그게 제 이상향인데.
그렇다면 이상향대로 살고 있는 것 같은데요 갑자기 너무 행복해지네요. 노력한 보람이 있구나, 싶어요(웃음). 저는 아이들이 참 부러워요. 순수하기 때문에 그만큼 감정에 솔직하잖아요? 나이가 들면 아는 게 많아지고, 그러다 보면 아는 걸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연기는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거라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이런 고민은 데뷔 시절에 많이 했어요. 지금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보다 명확해졌어요.
지금의 이하나는 확실히 편해 보여요. 몇 년 사이에 확고해진 건가요 고민의 시간을 지나서 어느 정도 정착한 느낌이랄까. 안 되는 건 결국 안 되고, 좋아하는 건 또 끝까지 좋아하게 되더라고요. 다만 결단이 조금 더 빨랐으면 하는 욕심은 아직 진행 중이에요.
가령 어떤 부분에서요 어떤 목수님이 “문이 고장 나면 문을 고친다”는 말씀을 하셨대요. 그 말씀이 뭘까를 지금도 생각해요. 아주 단순한 것일 수 있겠더라고요. 가령 자주 사용하는 무언가가 고장 나서 매일 그것과 마주하는데도 고치지 않고 투덜대기만 할 때가 있잖아요? 고장 난 걸 한 번 고치면 되는데 스트레스만 받고 있는 거죠. 그런 것들이 내 행복지수를 낮추는 게 아닌가 싶어서 의도적으로 고쳐본 적 있어요. 반복되는 일상에서 에너지 소모가 적은 쪽으로 생활 패턴을 바꾼 거죠. 그랬더니 행복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렇다면 지금 행복지수는 어떤가요 이전에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자책부터 했어요. 그런데 어떤 일이든 그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깨달음을 통해 발전도 하고요. 이젠 문제의 이면을 보려고 해요. 그 안에 행복이 있지 않나 생각해요. 
아버지가 1994년, 밴드 ‘데블스’에서 노래와 리드 기타를 담당한 이대헌 씨인데요. 어린 시절 당신의 눈에 기타를 치는 아버지는 어떻게 보였나요 제가 사실 객관적으로 보는 걸 좋아해요. 저나 가족에 대해서는 특히 더요. 그런데 아빠의 음악은 아무리 객관적으로 봐도 너무 아름다워요. 어릴 때는 아빠의 아름다운 음악을 저만 듣는 게 아쉬울 때가 많았어요. ‘이 정도 음악이면 더 유명해져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지금은 아니에요. 언제부터인가 아빠가 덜 알려지는 삶을 원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중보다 늘 우리 곁에 있어주셨죠. 그런 아빠를 보면서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오랜 기간 뮤지션을 꿈꿨어요. 그러다가 배우의 길로 들어섰기에, 초반에는 배우가 내 길이 맞나 하는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 고민을 접고 배우로 살아갈 것 같은 확신은 언제 들었나요 음악은 확실히 하고 싶어요. 자신도 있고요. 그런데 타이밍이 있나 봐요. 아끼는 친구가 저에게 “시작을 배우로 했으니까 배우로서 정확한 입지를 다지고 음악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아, 내가 배우로 먼저 알려졌다는 걸 나만 잊고 있었구나’ 싶었어요. 나만의 꿈에 취해서 경주마처럼 달려 온 게 아니었나 되돌아봤죠. 지금은 배우로 우뚝 서고 싶은 마음이 훨씬 강해졌어요. 음악을 위해서라도 배우로서 더 확실하게 서고 싶은 마음이에요.
‘아직 보여줄 게 많다’는 의지가 느껴지네요 보여줄 게 없어도 만들어보려고요. 배우로서 칼을 뽑았으니 할 수 있을 때까지 힘껏 해보려고요.
인간관계든, 일이든, 사랑이든, 우연을 믿는 편인가요 믿어요. 연분은 피해간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해서인지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안달하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랑에 있어서는요 하하. 지금은 일하느라 무념무상의 시간을…. 그런데 인연은 만나든 만나지 않든 늘 진행 중이라고 생각해요.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만날 인연이라면 만나지 않을까 싶은 거죠. 이 정도면 저, 운명을 엄청 믿는 거죠? 이렇게 말하면서도 인연을 만나고자 깨알같이 노력할 것 같긴 해요. 제가 배포가 크진 못해서(웃음).
마지막으로 요즘 미세 먼지 등 환경 이슈가 많잖아요? 최근 지구를 위해 한 행동 중에서 스스로 기특하게 생각한 일이 있다면요 플라스틱 섬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분해되지 않는 것으로 과대 포장된 제품들은 사지 않으려 노력하죠. 몇 해 전부터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먹을 만큼만 접시에 덜어 먹는 방식으로 식사하고 있어요. 쓰레기도 줄고 설거지도 적게 나와서 좋더라고요. 기분 때문인가. 맛도 더 좋아요!

CREDIT

사진 김선혜
글 정시우
에디터 김영재
패션스타일리스트 이보람
헤어 조미연
메이크업 유혜수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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