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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7. SAT

WHAT'S NEXT FOR BEAUTY

K뷰티 제2막

지난 10년의 K뷰티 성공을 바탕으로 새롭게 준비해야할 '포스트 K뷰티' 시대를 위하여


올해로 뷰티 에디터 생활 11년 차.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K뷰티의 성공을 지켜본 것”이라고 답하겠다. 3300원짜리 화장품으로 돌풍을 일으킨 미샤를 시작으로 등장한 ‘저렴이’ 브랜드들은 화장품 가격에 대한 기존 상식을 과감히 깨버리며 ‘가성비’라는 뷰티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자연주의 브랜드와 코스메슈티컬 브랜드의 등장은 피부에 무해한 원료를 썼는지에 대한 관심을 높여 모든 소비자를 성분 전문가로 만들었고, ‘화장품 전성분 표시제 시행’이라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다. 또 한 번의 터닝 포인트가 된 계기는 쿠션과 시트 마스크의 등장. 한류 열풍도 한몫했다. 한국 여자 연예인들의 뽀얗고 화사한 피부를 닮고 싶었던 중국, 동남아시아 여성들은 한국 화장품을 사재기하며 기꺼이 지갑을 열었으니! 미국과 유럽 여성들까지 사로잡으며 세포라, 부츠, 타깃 등에 안착할 수 있었던 건 다양한 캐릭터를 활용한 여심 저격 패키지와 독특하고 재미있는 사용법 같은 펀(Fun)한 요소들 덕분. 빌리프 홍보 담당 문향기 대리는 뉴욕 세포라 출장 당시의 기억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최고의 해외 브랜드 바로 옆에 K뷰티 브랜드가 나란히 놓여 있고 한국 브랜드로만 구성된 스페셜 세트가 판매되는 걸 보면서 그 위상을 실감했어요. 한 달 동안 ‘K뷰티 애니메이션’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미국 전역의 세포라 매장에서 캠페인도 진행됐었죠.” 모델 박지혜가 커다란 가채를 얹고 윤광 메이크업을 한 채 미소 짓는 비주얼을 에디터 역시 선명하게 기억한다. ‘저 가채가 꼭 필요했을까’란 생각도 잠시, 어쨌든 이 세상 모든 뷰티 브랜드가 입점하길 원하는 최대 리테일러 세포라를 K뷰티가 집어삼킨 것만은 분명했다.


영원할 것 같던 K뷰티 전성기에 적신호가 들어온 건 지난해. ‘지나친 포화 상태다’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왔고, 설상가상 중국의 사드 보복이 장기화되면서 명동을 가득 메웠던 유커들이 발길을 끊어버렸다. 급기야 상위 5개 기업의 합산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약 20% 이상 급감했다는 뉴스까지. 뷰티 에디터들도 K뷰티에 대한 피로감과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음을 조심스레 털어놓고 있었다. “한국시장이 전 세계 트렌드를 주도해 나간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K뷰티가 젊은 층만을 위한 ‘패스트푸드’가 돼버린 느낌이에요. 광고 모델도 다 비슷비슷해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어요.” <엘르> 중국 수석 뷰티 에디터 헬레나 후(Helena Hu)의 말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설화수, 려, 더 히스토리 오브 후를 정말 좋아합니다. 한국의 전통이 녹아 있는 브랜드 스토리와 인삼·적송 등 굉장히 한국적인 원료, 뛰어난 제품력,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을 위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거든요. ‘일부’ 브랜드들 때문에 K뷰티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한국에서는 화장품을 만드는 데 2~3개월밖에 안 걸린다고 들었어요. 한 브랜드에서 ‘미투 제품’을 내놓으면 다른 브랜드가 이 제품을 또 따라 만들죠. 브랜드를 가리면 분간할 수 없는 수백 개의 쿠션 팩트 대신 브랜드의 명확한 DNA를 담은 ‘스타 프로덕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뒤이은 말에 또 한 대 빡! <포브스>가 예측한 2018년 트렌드마저 비관적이다. “지금까지 한국 화장품에 열광했다면 2018년은 J뷰티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고 시세이도, 가네보, 케이트 등에서 올해 뷰티 트렌드의 핵심인 내추럴하면서도 더욱 정돈된 룩을 완성해 줄 제품을 선보일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일본의 화장품 기업이야말로 피부 메이크업과 안티에이징에 관한 한 ‘장인’임에 틀림없다”는 내용. 일본 출장 갈 때마다 돈키호테에 들러 ‘신박템’을 찾아 다니는 에디터지만 막상 ‘다시 한번, 일본으로의 회귀’라는 타이틀을 단 <포브스>의 기사를 보니 씁쓸할 수밖에.


K뷰티 선봉장 역할을 해온 아모레퍼시픽은 현 상황을 어떻게 볼까? 상품전략부 배지현 상무의 의견을 물었다. “K뷰티를 소비하는 새로운 세대, 밀레니얼 고객들의 특성을 짚어봐야 할 때가 왔습니다. 2014년 전후의 K뷰티는 ‘10단계 이상의 꼼꼼한 스킨케어’라는 이미지로 대변됐죠. 하지만 최근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보고서를 보면 밀레니얼 세대들은 화장품 가격에 민감하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 효과를 원하는 셀프 뷰티족이 많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건강하고 아름다운 피부’에 대한 열망은 그대로입니다. K뷰티를 더 이상 매력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전에 비해 간소화된 루틴을 선호한다는 거예요.” 전 <엘르> 싱가포르 뷰티 디렉터이자 현재 런던과 싱가포르를 오가며 뷰티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바네사 치아(Vanessa Chia) 역시 K뷰티가 여전히 건재함을 밀레니얼 세대와 연관시켜 설명한다. “K뷰티에서 시작된 트렌드 중 하나가 입술 안쪽만 진하게 연출하는 ‘그러데이션 립’이었잖아요. 이에 힘입어 라네즈에서는 손쉽게 투 톤 립을 연출할 수 있도록 ‘투 톤 립 바’를 선보였죠. 많은 외국 브랜드에서 쿠션 파운데이션과 시트 마스크를 벤치마킹하자 한국에서는 블러셔 쿠션, 아이브로 쿠션, 부위별 마스크 등으로 제품을 확장했는데 이것이 K뷰티의 혁신성과 기발함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고 생각해요. 패키지는 또 얼마나 ‘인스타그래머블’한가요! SNS에서 어떻게 보여지는가가 매우 중요한 밀레니얼 세대에게 디즈니, 마블 등과 컬래버레이션한 K뷰티 제품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어요.” K뷰티 브랜드들이 비단 패키지에만 신경 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체험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는 것도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함이다. 마스카라 출시에 맞춰 증강현실과 접목한 프로모션을 진행한 투쿨포스쿨, 모바일에서 주문한 뒤 원하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픽업하는 O2O(Online to Offline) 테이크아웃 서비스를 내놓은 에뛰드 하우스, 제품을 전면에 내세워 소비자들에게 주입시키는 대신 ‘셀피’와 ‘인스타 감성 사진’을 부르는 멋진 공간 안에 제품과 제품을 주제로 한 영상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유도한 탬버린즈 등이 그 예. <엘르> 퀘벡 뷰티 디렉터 안젤리크 마르텔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제2의 삶으로 여기는 밀레니얼 세대 덕분에 K뷰티가 빠른 속도로 ‘핫’해진 것에 동의하면서도 35세 이상 X세대가 바라보는 K뷰티 역시 강조한다. “솔직히 이 나이(35세 이상)가 되면 수많은 제품에 대한 경험치가 쌓이잖아요. 화장대 위의 가짓수를 심플하게 줄이고 자신의 피부에 맞는 몇몇 브랜드에 정착하게 되죠. 패키지보다 제품의 포뮬러와 효과, 성분을 꼼꼼히 따지게 돼요. 반면 한국 제품들은 너무 빨리 등장하고 금세 사라져버려요. 나에게 맞는 제품을 찾아도 몇 달 뒤에 매장에 가보면 단종되고 없는 게 대부분인데 과연 K뷰티 브랜드에 충성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무리 밀레니얼 세대가 겉으로 보여지는 걸 중시할지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화장품이 SNS에 올리면 끝인 1회성 아이템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K뷰티를 ‘패스트푸드’에 빗댄 <엘르> 중국 수석 뷰티 에디터 헬레나의 의견과도 비슷하다.


K뷰티가 위기라는 뉴스만 접하다가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외국인들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나니 <포브스>의 예측이 ‘맞아떨어질 것만 같아’ 더욱 신경 쓰인다. 이 와중에 바네사가 낙관론을 펼쳐주니 어찌나 위안이 되던지! 얘기인즉슨, J뷰티가 갖고 있는 강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K뷰티 역시 아시아 뷰티를 이루는 또 하나의 축으로서 결코 J뷰티에 뒤처지는 게 아니라는 것. 다만 K뷰티가 일본 뷰티 브랜드에 비해 뒤늦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한국 브랜드들도 일본 못지않은 훌륭한 역사와 아카이브를 갖고 있지만, 대중에게 이를 알리려는 노력보다 혁신적인 제품개발에만 집중해 왔다는 것이다. “스토리텔링,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포장해 들려주는 것, 그거 일본 뷰티 브랜드의 최고 특기잖아요. 하하.” 농담처럼 던진 그녀의 말 중 ‘스토리텔링’이란 단어에서 작은 섬광이 번뜩하는 느낌! 대놓고 말할 순 없지만 막강한 자본력으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내놓은 화장품을 보면 에디터 역시 안타깝다. 사람의 피부를 다루는 일인데 장인 정신이나 올곧은 철학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SNS에서 도배됐다가 사라질 ‘소모품’들을 보고 있어야 하는 참담한 기분이란. 하지만 극히 일부 브랜드를 제외한다면 K뷰티는 이미 상향 평준화된 지 오래다. 이미 똑똑해질 대로 똑똑해진 소비자들에게 이 제품이 얼마나 좋고, 얼마나 우수한 성분을 사용했으며, 얼마나 드라마틱한 피부 변화를 가져다줄지를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 제품력으로 소구하던 K뷰티의 1막은 끝났다. 앞서 만나본 아모레퍼시픽 배지현 상무의 말을 인용하면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안전한 성분,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 믿을 수 있는 품질을 통해 건강한 피부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것이 K뷰티의 정수’임은 전 세계가 다 아는 사실. 물론 신성분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성실한 연구원이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가득한 제품 기획자의 역할도 여전히 중요할 테다. 하지만 K뷰티의 2막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K뷰티만이 갖는 정서를 세련되게 포장해 전 세계 여성들로부터 포괄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훌륭한 이야기꾼이 아닐는지.


CREDIT

에디터 정윤지
사진 전성곤
디자인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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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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