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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2. SAT

Chapter 2

정욱준의 지금

어느덧 파리 컬렉션 데뷔 10주년을 맞이한 준지(Juun.J)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욱준. 제 2의 ‘준지 서막’을 연 정욱준과 좀처럼 공개하지 않았던 아틀리에에서 만났다

 

파리 진출 10주년. 10년 동안의 가장 큰 변화 가장 최근의 일이지만 준지의 여성 라인 론칭이 아닐까. 이번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여성복을 선보였다. 이전 시즌에도 런웨이에 여자 모델들이 등장했지만, 남성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여자를 위한 여성복을 제대로 선보인 것은 처음이다. 여성들이 준지의 남성복을 입은 모습을 많이 봐왔다. 그때마다 어딘가 모르게 아쉽더라. 실루엣을 보다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남성복 패턴으로는 한계가 있더라. 준지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오버사이즈다. 오버사이즈는 여자가 입었을 때 훨씬 매력적이다. 그녀들에게 정확한 피트감의 옷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제2의 준지가 나온 느낌이다. 

 

‘준지’의 트렌치코트 어릴 적부터 옷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5~6세 무렵부터 멋을 알았다. 부모님 옷장을 열어보고 굉장히 입고 싶다는 욕망이 컸다. 옷장 한켠에 어머니의 버버리 트렌치코트가 걸려 있었다. 지금도 그 장면이 흑백사진처럼 생생하다. 그 코트를 빨리 입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가장 완벽한 패션 아이템은 트렌치코트라고 생각했다. 남자를 가장 남자답게 보일 수 있고, 반면에 여자가 입었을 때는 남성적인 면보다 우아한 멋을 풍기게 한다. 어느 것 하나 떼어내고 덧붙일 것 없는 완벽한 형태를 지닌 아이템이다.

 

수주의 오프닝 런웨이 내가 생각하는 여자, 준지의 여성상이 바로 수주다. 그녀는 여성스러우면서도 파워풀하다. 이 시대의 여성상이랄까. 남자 혹은 여자 같지도 않은, 아시아인도 유러피언도 아닌 제3의 인종(?) 같다. 그런 분위기가 나를 압도한다. 요즘 워낙 젠더리스가 많다. 여성이 준지의 의상을 입었을 때 너무 남성적이거나 혹은 과하게 여성스러워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사실 처음 여성복을 선보일 때 피날레를 밀리터리 파카와 슬립 드레스를 매치해 봤다. 예상과 달리 그 옷은 준지 같지 않았다. 내 옷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더라. 내가 생각하는 여성상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구나. 그제야 깨달았다.

 

파리에서 선보인 2018 S/S 컬렉션 쇼장에 전시한 사진가 홍장현의 작품.

 

직접 연출하는 쇼 스타일링 처음부터 그랬다. 그게 준지인 것 같다. 다른 브랜드처럼 수백 개의 아이템을 만들고 톱 스타일리스트가 스타일링하지 않는다. 한 룩을 완벽하게 스타일링한 후 디자인을 완성한다. 어찌 보면 훨씬 경제적인 방법이다. 딱 정해진 룩만 만들면 된다. 처음부터 그랬듯 10년이 지나도 지금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을까. 사실 파리에서 첫 쇼를 하기 전, 에이전시에서 컬렉션을 보고 스타일리스트가 누구인지 묻더라. “난데?” “넌 미쳤다. 크레이지!”

 

사진가 홍장현과 비주얼 작업 홍장현의 사진이 무척 좋았다. 무작정 ‘그와 캠페인 작업을 함께하면 어떨까’ 해서 시작했다. 준지 하면, 사진은 홍장현이 촬영하고, 헤어스타일은 주형선, 음악은 미셸 고베르 등. 이들이 진짜 준지의 크루들이다. 홍장현 실장이 먼저 옷을 본 후 전체적인 톤 앤 매너를 보낸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것이다. 나는 사진가 홍장현이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지 가장 궁금하다. 그러면 그 범위 안에서 준지의 색깔을 넣어 새로운 작업물을 완성한다. 절대 ‘이런 사진으로 찍어주세요’라는 식의 요구는 없다. 컬래버레이션이다. 헤어 스타일리스트 주형선도 마찬가지다. 가봉된 의상 사진 몇 개를 보내면, 엄청난 아이디어의 헤어스타일 레퍼런스를 보내온다. 이제는 서로 스타일을 잘 알기 때문에 특별한 말 없이도 합이 잘 맞는다. 2018 S/S 컬렉션에서는 사진가 홍장현과 작업한 비주얼 전시도 함께 선보였다. 화보라기보다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컬렉션을 하나의 작품이나 화보로 만들어서 최대의 크기로 보여주고 싶었다. 단순히 쇼만 선보이는 것이 아닌, 런웨이와 프레젠테이션의 컬래버레이션이라고 봐도 좋다. 모델들은 피날레가 끝나고 자신이 입은 옷 사진 앞에 섰다. 관객들이 모두 나와 가까이에서 옷을 보고 즐기는 또 다른 장을 연 셈이다. 처음 시도하는 방법이라 걱정도 많았지만, 파리의 반응은 굉장히 좋았다.

 

준지의 여성상, 톱 모델 수주가 쇼의 오프닝을 열었다.

 

트렌치코트는 준지에서 빠질 수 없는 아이코닉한 아이템이다.

 

리한나부터 카니예 웨스트, 지디, 태양 등 절대 욕심 내지 않았다. 슈퍼스타가 꼭 입어야 해! 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진짜 매력적인 사람은 완벽하게 생긴 사람이 아니다. 패션은 애티튜드다. 키가 크든 작든 옷을 소화하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디 같은 경우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지난 시즌 캠페인 촬영 때 보니 옷을 입고 나와 셔츠를 뒤로 젖힌다든지 한쪽 소매를 길게 내리는 등 스타일을 바꾸더라. 리한나는 준지의 첫 여성 고객이었다. 그래서 애착이 남다르다. 이번 2018 S/S 컬렉션도 10벌이나 직접 주문했다.

 

최근 패션계 동향, 여성과 남성의 통합 쇼 에디터나 바이어에겐 미안한 마음이 있다. 하지만 요즘 리조트, 프리폴, 쿠튀르 컬렉션 등 디자이너를 너무 혹사시킨다. 업무의 과부하가 가장 큰 문제점이다. 내가 건강하려면 어쩔 수 없다. 하하. 한 시즌의 남성과 여성 컬렉션은 보통 하나의 아이디어나 영감에서 출발한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분리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또 남성과 여성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 훨씬 시각적 효과가 크다. 경제적인 면도 분명 있겠지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가치 있는 변화다.

 

‘See Now, Buy Now’, 베트멍의 ‘No Show’, 패션위크의 스케줄을 바꾸는 프로엔자 스쿨러와 로다테 등. 패션계의 관습을 깨려는 움직임에 관하여 SNS 영향이 큰 것 같다. 개인적으로 현장직구 시스템은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 다른 브랜드를 의식해 먼저 팔아버리려는 일종의 속임수 같다. 물론 브랜드의 선택이다. 패션은 판타지다. 컬렉션을 본 후 6개월을 기다려 그 아이템을 갖고 싶게 만드는 것이 패션이다. ‘다음 시즌 저건 꼭 입고 싶어!’ 그런 기대감을 없애버리는 것은 절망적이다. 그들의 방식을 존중하지만 준지의 전략과는 잘 맞지 않는다. 베트멍 같은 경우 워낙 전략적으로 잘하는 팀이다. 요즘 세대답게 패션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굉장히 똑똑한 집단이다. 다른 브랜드의 아카이브와 유산을 자신의 브랜드와 흡수해 ‘베트멍화’한다. 비즈니스적으로 잘 다듬어졌다. 베트멍의 마케팅 전략을 볼 때마다 깜짝 놀란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이런 많은 변화는 지금, 우리가 감당해야 할 하나의 패션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10년 후 ‘메종’이 돼 있을 것 같다. 그래야 한다. 국내에는 이렇다 할 메종이 없다. 메종은 패션의 역사다. 나아가 50년 뒤에는 ‘하우스’가 되고 싶다.

 

CREDIT

사진 김선혜
에디터 방호광
디자인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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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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