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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NEW YORK & SEOUL
박상미의 두 도시 이야기 뉴욕 남자 서울 남자
서울에 오면 진한 습기만큼이나 얼굴에 확 와 닿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의 남자들이다. 먼저 외양부터가 되게 독특하다. 점심시간쯤이면 모두들 똑같은 옷차림, 즉 흰 와이셔츠에 회색이나 감색, 검정색 양복 바지를 입고 지나다닌다. 신기하게도 속이 약간 비치는 듯한 양복감엔 번들거리는 광택이 흐른다. 그리고 우르르 몰려다닌다. 일부는 건물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우고 일부는 나란히 길을 건넌다. 좀 무심하고 오만해 보이는 팔자걸음으로. 수줍은 기미가 보이지 않는 얼굴 표정 또한 인상적이다. 비슷한 흑백 실루엣과 비슷한 '자태'의 남자들을 이렇게 무더기로 보는 건 희한하다. 8차선 드넓은 도로나 가로수로 심은 소나무처럼 나에겐 아직 이국적인 풍경이다. 사실 그동안 “난 한국 남자들을 좋아해요.”라고 말하길 좋아했다. 다들 한국 남자들 흉보기 바쁘니까 남다른 선정성으로 주의를 끄는 효과도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생각을 종종 했다. 덩치만 커가지고 신경증적인 뉴욕 남자들을 보면서 “남자가 뭐 저래?” 하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이다. 엄마가 뭐라고 바가지를 긁어도 허허 웃어넘기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을 거다. 짐짓 화를 내도 아랑곳 않고 애정 표현을 하던 옛 애인을 떠올렸을 수도 있겠다. 항상 조심스럽고 생각이 복잡하고 소극적인 뉴욕 남자들이 영 이상했다. 함께 다니면 문도 열어주고 음식점에서 좋은 자리에 앉히고 재킷도 입혀주는 그들의 친절은 쉽게 잊고 말이다. 얼마 전에 신라 호텔에서 하는 아트 페어에 갔었다. 거기서 완전 충격을 받았는데 보러온 관객의 80퍼센트 이상이(그냥 눈짐작이었지만) 여자였고 그 대부분이 중년 여성들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계모임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도대체 남자들은 어디 갔다는 말인가? 뉴욕에선 아트 페어에 가면 샤프하게 옷을 입은 남자들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거나 바쁘게 걸어 다닌다. 이곳에서 남자들은 그림을 사지 않는가? 돈을 버는 건 남자들이 아니었나? 하긴 서울에 온 이후로 명문대를 나와 훌륭한 직장에 다니는, 소위 엘리트라는 남자들을 만나도 예술이나 문학 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 보르도 와인을 마시고 수상 스키를 타도 그림을 모르고 문학에도 관심이 없으니 이상한 일이다. 뉴욕에선 오히려 예술과 문학 얘기는 남자들과 했다. 아는 딜러나 작가도 다 남자들이었고 이 분야에 깊이 있게 관심을 두는 사람도 남자가 많았다.(대개 여자들은 패션에 관심이 많다.) 소위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예술이나 문학을 모르면 저녁 식사 테이블에서 망신을 당하게 된다. 오바마 부부가 이번에 백악관에 걸린 그림을 현대와 동시대 미술로 바꾼 것은 이 시대 미국 엘리트의 취향 뿐 아니라 아트 마켓의 트렌드까지 정확하게 반영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에드워드 루셰이의 작품을 좋아한다니 그가 비록 내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정치인이지만 얼마나 할 얘기가 많겠는가. 한국 남자들은 도대체 무얼 하며 살까? 다들 돈 벌기 바쁘겠지만 정말로 뭘 하는지 궁금하다. 술을 마시나? 노래를 부르나? 골프를 많이 치는 것 같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다니고 서점에 가서 요즘 인기 있는 단편소설을 고르는 일은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 서울에 온 지도 두 달여가 흘렀건만 아직까지도 교양과 품위를 두루 갖춘 지적인 남자는 참 만나기 힘들다. 모두들 머리도 좋고 능력도 출중하고 적극적이고 열정도 많다. 하지만 수저를 얌전히 사용하고 소리 내어 음식을 씹지 않으며 상대방의 직업이나 관심사를 고려해 대화 소재를 선택하는 남자는 별로 없는 것이다. 주로 자기 얘기를 하다가 불쑥불쑥 개인적인 질문을 던진다. 간혹 지적인 대화로 흐른다고 해도 자기가 모르는 얘기가 나오면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진다. 우리 점잖은 선조들이 가졌던 우아함은 어디 갔을까? 먹을 갈고 시를 쓰다가 난을 치는 습관은 완전 잊은 걸까? 아직 난 한국 남자의 팬이다. 이 드넓은 서울에서 지적인 뉴욕 남자들과 대화하는 게 그리워지니 좀 서글퍼진다. WORDS 박상미
4 박상미 (PROFILE) 박상미는 1996년부터 뉴욕에서 살면서 미술을 공부했고 글도 쓰기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뉴요커>와 <취향>이 있고, 옮긴 책으로<앤디 워홀 손 안에 넣기>, <우연한 걸작>, <빈방의 빛>, <그저 좋은 사람>, <어젯밤>, <사토리얼리스트> 등이 있다. 현재 ‘가로수길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패션 프로젝트를 위해 서울에 체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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